유형학적 사진의 창시자 베허부부

베허 학파(Becher School)를 설립하고 유형학적 사진(Typology)의 창시자인 베른트 베허와 힐라 베허(Bernd and Hilla Becher)는 산업 건축물 사진가, 개념 예술가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58년 독일 서부에 위치한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함께 수학하며 공동작업을 시작하였으며 그 후, 약 50년의 세월 동안 독일은 물론 유럽 및 미국 대륙을 다니며 자신들만의 철학을 담아 깊고 꾸준하게 작업해 온 사진가 부부이다. 이들의 작품을 소장하며 연구하고 있는 <쾰른-본 슈파카세 문화 예술 재단(The SK Stiftung Kultur der Sparkasse KölnBonn)>은 지난 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관객에게 역사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닌 대표 작업을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베허 부부는 그들의 학파와 길러낸 제자만 보아도 오늘날까지 그들이 사진 예술 역사에 미치는 영향력을 인지할 수 있다. 독일의 체계적으로 잘 세워진 문화 시스템은 자국에서 태어나 국제적으로 활동하며 어쩌면 ‘가장 독일 스러운 사진 작가‘로 여겨질 수 있는 그들의 가치 있는 업적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며 작가와 사회 속 예술의 성장을 함께 도모하고 있다.

독일의 문화 및 예술 시스템의 강점 중 하나는 올바른 취지를 지니고 경제적으로도 탄탄한 예술 재단이 각 지역별로 고르고 뿌리 깊게 발달했다는 것이다. 이 전시를 주최하는 <쾰른-본 슈파카세 문화 예술 재단>은 1975년 독일의 서부 도시인 쾰른에 지역의 예술적 발전과 사회적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쾰른의 문화 발전에 기반을 두고 사진을 포함한 시각 예술 뿐 아니라 전통 춤, 쾰른 지역의 고유 언어(Kölsch Sprache)의 연구와 보존도 포함되며 지역 기반의 금융 기관인 슈파카세 쾰른본(Sparkasse KölnBonn)에 의하여 설립된 사립 재단으로 오늘날 약 38.3백만 유로(한화 약 48.5억원)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독일의 가장 큰 문화예술 단체 중 하나이다.

 
ⓒ Estate Bernd & Hilla Becher; courtesy Die Photographische Sammlung/SK Stiftung, Kultur, Koln,
Museum fur Gegenwartskunst Siegen, erworben mit Mitteln der, Kunststiftung NRW
 

이 중 사진에 초점을 맞춘 <쾰른-본 슈파카세 사진 예술 재단(Die Photographische Sammlung/SK Stiftung Kultur)>은 기록의 기능을 하는 도큐멘터리 사진이나 객관적 오브제를 담은 작품을 중심으로 컬렉션을 구성하고 있다. 아카이브를 구축해 가며 작품의 학술적인 연구와 보존을 목적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전시와 함께 예술가의 지역적, 국제적 활동을 지원하며 관객들에게는 기록 사진에 관한 다양한 측면을 선보이고 있다. 약 140평 넓이의 전시 공간에서 1년 약 2-3개의 전시와 출판물을 선보이며 외부 작품과 함께 컬렉션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전시를 만날 수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전시명은 <지겐 산업 지역의 건축 구조>전으로 베허 부부의 산업 건물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 Estate Bernd & Hilla Becher; courtesy Die Photographische Sammlung/SK Stiftung, Kultur, Koln,
Museum fur Gegenwartskunst Siegen, erworben mit Mitteln der, Kunststiftung NRW

베른트와 힐라 베허가 함께 작업을 하기 시작한 초반에 그들은 지겐(Siegen) 지역의 건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베른트 베허의 고향이자 그들이 수학하고 있던 뒤셀도르프에서 근접한 지역이라는 이유도 작용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쾰른에서 동쪽으로 차로 약 한시간 정도, 약 100키로 정도 떨어진 곳에 지겐(Siegen)이란 작은 도시가 위치한다. 기원전 약 450년도에 시작된 유럽의 후기 철기 시대인 라텐느 문화(La Tène culture)의 배경에서부터 광업이 발달한 광산지역으로 20세기까지 활발한 산업 도시로 성장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지역적 특색을 바탕으로 이 곳에 세워진 건축물과 산업 시설 등을 관찰하고 연구한 베허 부부의 작품이 소개된다.

지겐 지역을 시작으로 산업 지역 건물의 프레임을 촬영한 프로젝트는 약 1958년에서부터 1974년까지 진행되었다. 대상은 건물을 포함하여 광산의 제조 설비 시스템이나 채석 운반탑, 수조 탱크 등으로 확대 되었으며 각각의 개별적인 이미지들은 기능, 형태, 표면 재료와 같은 그들이 창조한 목록을 기준으로 분석 및 종합을 통해 완성되었다. 이처럼, 수집가가 관심있는 하나의 품목을 수집하듯 그들은 산업사회에서 기능을 위하여 만들어진 건축물을 대상으로 동일한 조건과 방식을 이용하여 하나하나 렌즈 안에 담았다. 대상의 왜곡된 전달을 방지하기 위하여 최대한 수평의 앵글을 유지하여 원근감을 없앴으며 장시간 노출 방식으로 변함 없이 서 있는 건물 이외에 구름과 같은 배경 속의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사라지도록 하였다. 덕분에 건물이나 산업 시설, 장비 등의 모든 사진들은 하나의 시리즈처럼 공통된 회색 배경의 균형 잡힌 구조로 완성되어 각각의 대상을 더욱 뚜렷이 관찰하고 비교할 수 있다.  

이러한 사진 작업 방식을 통하여 오늘날에는 유형학적 사진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베허 부부이지만 1970년대 이전 까지는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20세기 초의 활발하던 추상 및 표현주의와는 대조를 이루며 오브제 자체의 객관성이 돋보이는 그들의 작업은 미국을 중심으로 현대미술의 돌풍같이 등장한 미니멀리즘이나 개념 미술과 맥락을 같이하는 사진 유형으로 여겨져 개념 미술 사진가로 인정받게 된다. 그 후, 유형학적인 건물 구조에 관한 작업은 세계 최대 규모의 예술박람회 <제 11회 카셀 도큐멘타>(2002년)에 전시되며 여전히 영향력 있는 사진가로 활동 중이다.

그들은 개념미술의 컨셉을 지지하거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작업태도를 살펴보면 전통적인 관습을 따르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즉, 두 명의 작가가 함께 작업하여도 예술가 자체의 독창성을 유지하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라면 베허 부부의 작품에서는 작가의 개성이 최대한 절제되었기 때문에 보는 이에게 베른트와 힐러의 구분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들의 작업은 사물 자체에 접근하여 객관적 실체를 철저히 파악하고자 하는 사실주의적 특성을 지녔으며 이는 과학적 기술로 완성된 렌즈를 통하여 대상을 정밀하고 객관적으로 접근하여 인간의 눈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새로운 이미지를 추구하는 19세기 초 독일에서 시작한 신즉물주의 예술경향과 부합한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을 기반으로 한 분류 체계를 이용하여 다양한 지식 분야의 종합체로 자리잡아 20세기 사진과 시각 예술의 선구자로 인정받는 것이다.

 
 ⓒ Estate Bernd & Hilla Becher; courtesy Die Photographische Sammlung/SK Stiftung, Kultur, Koln,
Museum fur Gegenwartskunst Siegen, erworben mit Mitteln der, Kunststiftung NRW
 

<지겐 산업 지역의 건축 구조>시리즈는 새로운 사진 형식이라는 방법론 적인 요소 이외에도 피사체의 역사적인 배경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들이 렌즈에 담은 대부분의 산업 건물과 설치물들은 촬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 속으로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예를 들어, 지겐 지역의 광산업이 줄어들며 건물이 철거될 위기에 놓였고 대부분의 시설과 건물은 말 그대로 인류의 역사 속에서 흔적 없이 지워졌다. 운이 좋은 몇 건의 사례만 문화적인 명목으로 보존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남은 건축물은 본래 의도되었던 산업 시설의 기능이 아닌 미술관과 같은 예술 시설의 기능으로 변화되었다.

베허 부부는 오랜 시간동안 산업 지역을 배경으로 꾸준히 작업하며 해박한 지식이 담긴 이미지 목록을 창조하였다. 전문적인 산업 시설 및 건축물의 이미지 분류는 광산 및 철강업의 주요 지역으로 묘사되는 장소를 시각적으로 기록하며 역사적으로 주요한 발견물들을 보여준다. 그 후, 독일의 산업 지역을 시작으로 서유럽과 북아프리카 주요 지역의 문화적 배경과 기술 발전 역사에도 초점을 맞추었으며 홀란드, 벨기에, 프랑스, 룩셈부르크, 영국 그리고 미국의 다양한 주를 배경으로 하였다.

1977년 <지겐 산업 지역의 건축 구조(fachwerkhäuser des Siegener Industriegebietes)>의 타이틀로 지겐 건축물 프로젝트에 관련한 첫번째 책을 출간하였으며, 이후 전반적인 산업 건물 구조에 대한 전공 논문으로 확장되었다. 이 책에 따르면,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기법으로 개별적인 조립 요소를 조합하는 건축 방식으로 여겨지는 전형적인 목조 구조의 건물 형태는 약 19세기 후반에 가장 오래된 광산 지역인 지거렌드(Siegerland)에서 발전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이러한 건축 방식은 "외관은 기능을 따른다"라는 산업 디자인의 원칙을 잘 반영한다고 여겼다. 또한, 이러한 건물 구조 연구를 통해 얻은 영감을 더욱 깊이 발전시켜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적 미학과 규칙으로 명확한 견해를 창조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동시대에 만날 수 있는 위대한 예술 작업과 역사적인 사실을 함께 접할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 이는 뛰어난 작가의 활동은 물론이며 이를 지원하는 사회의 예술 시스템도 한몫 한다고 믿는다. 2004년 독일 서부의  지역 문화 재단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예술 재단(Kunststiftung NRW)>은 베허 부부의 지겐 산업 지역을 바탕으로 한 유형학적 사진 작업 15점 구매를 위한 지원을 제공하였다. 이로 인하여 <지겐 현대 미술관(Museum für Gegenwartskunst Siegen)>의 사진 컬렉션과 <쾰른-본 슈파카세 사진 예술 재단>의 컬렉션이 한층 두텁게 완성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독일 서부 지역을 배경으로 한 베허 부부의 중요한 작업과 지역 사회적 연관성이 돋보일 수 있으며 이를 공유한 관객들에게도 큰 감동이 전해지며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것이다.

 

글 조희진 통신원 이미지 제공 The SK Stiftung Kultur der Sparkasse KölnBonn
해당 기사는 2017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