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심리학자 신수진의 “램프랩” | 예술적 삶을 공유한다



새로운 공간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같은 밥이라도 놋그릇에 담길 때와 접시에 놓일 때 그 식탁을 둘러싼 분위기와 화제는 달라질 수 있는데, 하물며 문화예술을 담는 공간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사진심리학이라는 생경한 분야를 공부한 신수진 디렉터가 꿈꾸는 공간이라니 더욱 궁금하다.

한남동에 있는 램프랩을 찾았다. 오밀조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동네로 깊숙하게 들어와 위치한 램프랩은 언뜻 보면 여느 전시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30평 규모의 공간에는 전시실과 신수진 박사의 작업실, 그리고 작은 사무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은 문을 연 지 두어 달밖에 되지 않아서 쓰임새가 고정되어 있다기보다 새로운 시도를 앞둔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이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신수진 디텍터는 세 가지 생각으로 램프랩의 문을 열었다고 말한다. 그 첫 번째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사진 이야기만이 아니라 타 분야 사람들과 다양한 토론을 통하여 사진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갖도록 유도하고, 사진바깥의 그들이 생각하는 사진의 가치는 무엇인지도 들어보려고 한다.

“사진의 여러 문제들을 사진 안에서 해결하는 방법도 있지만 사진 밖 사람들이 사진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외부에서 해결해오는 방법도 있거든요. 어쨌든 필요한 건 사진 내부와 외부의 소통입니다. 그리고 사진 안에서도 작가와 기획자, 평론가, 컬렉터 등 서로 입장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 필요해요.”

신수진 디렉터는 궁금증이 많다. 그래서 계속 공부를 하고, 대화를 좋아하고,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는다. 사진을 심리학과 접목시켜 사진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공부한 것도, 뇌과학에 관심이 많고 예술과 과학의 접점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것도 모두 그녀의 반짝거리는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그녀는 램프랩의 궁극적인 목표는 일반인들도 예술을 공유하며 예술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램프랩에서는 여러 방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격의 없이 만나서 예술과 가까워지고 사진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함으로써 사진의 영역을 확장하고 그것이 모두의 삶을 즐겁게 하는 결과가 되기를 희망한다.

사실 신수진 디렉터 자신이 어떤 장르든 소화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 사진책을 기획하고 전시를 만들고 리뷰를 쓰고 강의를 하는 식의 기존의 일은 물론이고, 예를 들어 “이미자 쇼 55주년” 공연에서 영상 쇼를 만든다든지 하는 식의, 이미지를 갖고 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실험하고 시도하며 길을 열어가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그녀의 열린 생각들이 램프랩에서 태동되고 구체화될 것이다.  


 


한국현대사진의 지형도를 그린다
지금 신수진 디렉터가 진행하고 있는 일 가운데 3년 동안 준비해온 중요한 일이 있다. 1980년대 이후 한국현대사진가의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책을 만드는 일이다. 2015년 여름 출간을 목표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Korean Contemporary Photography”는 일우재단의 지원으로 독일 핫체 칸츠(Hatje Cantz)에서 출판하는, 아마 본격적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사진가를 모아서 외국에 알리는 첫 번째 사진책이 될 것 같다.  

“해외에 한국 작가를 알리는 뜻 깊은 책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몇몇 작가들이 개인적인 채널을 통해 해외에서 전시하거나 책을 낸 적이 있지만 약 80명의 작가가 이렇게 대규모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적은 없었거든요.”

그렇게 많은 작가들을 정리하는 프로젝트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신수진 디렉터는 벽면 가득 작가들의 대표작 4-6점을 붙여 놓고 그녀 특유의 분류법으로 작가를 카테고리화 했다. X축과 Y축을 그어놓고 그 작가가 속하는 좌표에 작가를 위치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2014 파리나 상해 등 사진시장을 보면 사진의 성장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요즈음 미술시장이 침체되었다고 풀이 죽어 있는데, 나는 우리나라 작가들이 한국의 현실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작가 혼자 외국무대로 나가 스타가 되는 것도 좋지만 여럿이 같이 움직이는 것과 병행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한국도 힘이 생겼고 기업이 후원을 할 수 있는 위치가 되었거든요.”

한국사진의 문맥을 만들 때가 되었다고 강조하는 신 박사는 지금 작업하는 책을 통하여 무엇이 한국사진인지 보여주려 한다고 덧붙였다.


 


만남 소통 공감
“네가 내일 죽어도 지금 이 일을 할 것인가?”

스티브 잡스가 자신에게 물었다는 질문을 신수진 디렉터도 때때로 자신에게 질문해본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많은 일을 소화해낼 수 없을 것 같다. 연세대학교 전문연구원이면서 일우재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그녀는 정부기관이나 기업 공공단체 등의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고 틈틈이 기업에서 강의를 한다. 이런 일들을 하면서 스스로 자극을 받는다는 것.

“예술을 어디에 쓸까? 예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예술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갖고 있을까? 예술의 사회적 효용성은 무엇인가?”

예술작품은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에게 가치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기업 강의를 통하여 예술 안에 매몰되지 않고, 소위 ‘전문가병’에 걸리지 않는 자극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 만남과 소통을 통하여 공감하는, 즉 작가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예술의 외연을 넓히는 효과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 일을 작가가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램프랩 같은 공간이 필요하고 신수진 디렉터 같은 역할이 중요하다.

“꾸준히 열심히 해왔으니 이제 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국제무대 진출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제는 외국의 작가로부터 리뷰를 부탁 받는 정도가 되었다. 20년 활동을 통해 외국에 채널을 갖게 되고, 국내외를 아우르는 프로젝트를 여러 해 진행하면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어떤 일이든 지금은 힘들다고 해서 여건이 갖춰진 다음에 하려고 한다면 결국 못해요. 힘들어도 일을 하다보면 여건이 만들어지기도 하거든요.”

그녀는 필요하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지금 해야 한다는 정신을 갖고 있다. 강하기보다 긍정적인 성격이어서 그런 일들이 가능한 거 같다. 진정성만 있다면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램프랩에서는 장태원 작가의 작품이 전시중이다. 7년 동안 작가를 지켜보았다고 말하는 신수진 디렉터는 “제가 하는 일 가운데 이렇게 작가를 오래 지켜보고 작가가 성장하는 과정을 본다는 기쁨도 참 커요.”라고 말한다. 좋은 작가는 비전을 갖고 작업하며, 빨리 승부를 보려고 하지 않고 그 일이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꾸준히 작업하는 작가라고 말한다. 그런 그녀의 확신을 증명하듯 최근 장태원 작가의 작품은 메이저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때 현대미술 장면에 사진이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분위기였지만 사진만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뭐가 사진인지 인식이 되어야 하죠. 이제는 사진가들이 목소리를 모아서 사진의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기꺼이 그 역할을 맡을 생각이라고 했다. 램프랩이 위치한 동네엔 디자이너와 건축가 등 예술관련분야의 종사자들이 많다고 한다. 그녀는 동네사람들과 사진가들이 함께 지난 12월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에 난장토론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슈가 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작가를 도와줄 잠재적 애호가들을 만나고, 작가들이 편하게 오래 작품을 보여주며 이야기하는 기회를 가질 생각이다.

“많이 아는 것보다 깊이 아는 것을 좋아한다.”는 신수진 디렉터. 그녀가 새로운 공간 램프랩에서 이루어지길 소망하는 일들은 우리 사진가들이 모두 오랫동안 꿈꾸어온 일들이다. 그곳이 있어 2015년 새해가 크게 기대된다.

 

글 윤세영 편집주간
해당 기사는 2015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