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 김성수, 〈buste〉

위대하지도, 유명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신화 속 다비드나 비너스의 지극한 아름다움도 없다. 김성수는 인물의 위상과 업적을 오래 기억하고 기념하고자 또는 이상화된 얼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초상화와 조각의 흉상(胸像)을 차용해 평범한 사람의 얼굴을 촬영했다. 2008년의 “buste(흉상, Bust)” 시리즈에는 이상적인 삶에 대한 욕망이 담겨 있고, 2015년의 “buste” 시리즈에는 현실적인 삶에 대한 겸허가 담겨 있다. 김성수의 “buste 2008/2015” 시리즈는 유한한 시간, 그 시간의 흐름에 변해가는 우리 삶의 덧없는 얼굴을 드러낸다.
 
 
김성수, buste series 2008/2015, Heo yangyeol ⓒ김성수
 
보통의 인물, 사진의 “흉상”
 
김성수의 “buste” 시리즈는 초상화와 조각의 흉상에서 형식과 형태를 차용했다. 인물의 가슴까지 상반신을 촬영하는 바스트 숏(Bust shot)에 초상화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얼굴의 방향과 시선 처리, 조명 등을 따랐다. 그리고 흉상 조각의 좌대 위 형태를 시각적으로 연상시키는 검은 의상을 제작하여 인물에게 입혔다. 검은 배경에 검은 의상은 인물의 얼굴과 목, 가슴 부위를 부각시켜 초상사진을 좌대 없는 흉상 조각의 형상으로 보이게끔 한다. 이십 대에 김성수는 미국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있는 비너스 상을 바라보며 당시 진행하고 있던 ‘셀프’ 시리즈의 연장선 상에서 “buste” 시리즈를 처음 구상했다.

 
“작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은 욕망이있었어요. 그런데 기억하고 싶은 욕망과 기억되고 싶은 욕망이 비너스라든지 조각으로 만들어진 ‘흉상’에 너무 잘 드러나 있는 거예요. 꼭 내가 아니어도 나와 같은 무명의 누군가를 기념비적 인물처럼 시각적으로 풀어보는 방법을 서구 흉상의 형태를 차용해 표현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김성수, buste series 2008/2015, Florian ⓒ김성수


무한한 가능성 앞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컸고, 예술가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열정만큼 욕망도 컸다. 김성수는 “buste” 시리즈에서 보이는 검은 의상을 입고 셀프 포트레이트를 촬영했다. 그러나 단순한 프로필 사진처럼 보여 만족스럽지 못했다. 스스로가 이상화한 자아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작업은 진척을 이루지못했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2005년이었다.

 
 김성수, buste series 2008/2015, Christine ⓒ김성수

 
그곳에서 비너스 얼굴에서 느껴지는 인상을 유럽 친구들의 뚜렷한 이목구비에서 발견했다. 비너스의 얼굴이 서구의 얼굴이고, 유학생이라는 이방인으로서 서구 또래의 얼굴이 낯선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buste 2008” 시리즈는 그렇게 서구 젊은이들의 얼굴을 통해 삼십 대의 김성수에게서 완성됐다. 흉상 조각 같이 보이는 초상사진으로써 70억 중의 한명이 가진 힘과 공적으로 기록되는 역사가 배제한 개개인의 소중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한 명, 그 한 개인은 김성수, 작가 자신이 투영된 모습이기도했을 것이다.
 
 김성수, buste series 2008/2015, Jo Euljin ⓒ김성수

시간의 흐름, 덧없는 얼굴
 
김성수가 이삼십 대에 꾸었던 무한한 가능성과 이상화된 자아는 귀국 후 현실에 의해 부서졌다. 나보다 내 가족이, 꿈보다 생계가, 예술보다는 생활이 삶에서 앞섰다. 그리고 아이들을 낳고 키워가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커갔다. 삶의 욕망보다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많아진 것. 이때 마치 예측하지 못한 사고처럼, 한 요양원에서 노인들의 영정사진을 촬영하는 재능기부를 하게 됐고, 그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한편에 놓아두었던 “buste” 시리즈를 떠올렸다.
 
 

김성수, buste series 2008/2015, Moon gwangsoo
 
김성수는 죽음의 시간과 가까워진 얼굴로, 가족의 기억에서조차 잊힌 그들을 “buste 2015” 시리즈를 통해 기억하고 싶었다. 그들의 삶이 얼굴에 새겨놓은 시간을 사진으로 기념하고 싶었다. “buste 2008” 시리즈에서 보이는 흉상 조각의 형상을 연상시키는 검은 배경에 검은 의상을 입히는 형식은 유지했다. 단 이전에는 서구 초상화처럼 인물을 우아하고 부드럽게 표현하기 위해 렘브란트 조명을 구현했다면 2015년에는 탑 라이트를 이용했다. 현장의 상황적 제약도 있었지만 탑 라이트가 피부의 결과 주름으로부터 시간의 그림자를 선명히 남겼기 때문이었다.
 
그 검은 그림자는 김성수가 갖고 있던 이상적인 삶과 자아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적인 삶과 자아를 역설적으로 대면하게 했다. 그 대면은 나약한 인간으로서 유한한 삶을 받아들이는 겸허였을 것이다. “buste 2008”과 “buste 2015”시리즈는 이상과 현실, 욕망과 상실, 젊음과 늙음, 삶과 죽음 등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buste 2008/2015” 시리즈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Tree” 시리즈와 조합돼 “commemoration-memory 2015”로도 발표됐다.
 
김성수, commemoration-memory 2015, Lee Yeon Woo/Ha soonbun ⓒ김성수
 
“수종에 따라 다르지만 한 몸에서 번식하고, 생과 사를 한 몸에 지닌 대상이 나무더라고요. 안에서는 끊임없이 생성과 번식이 이뤄지고, 죽어 있는 바깥 껍질은 생명이 살아있는 데에 붙어 있기도 해요. 이런 순환의 개념이 이두 흉상 시리즈의 연결고리로 보였어요.”

역광으로 촬영한, 그리고 인화할 때 일부러 태워버린 고목의 검은 형상은 그 자체로 오랜 시간을 견뎌온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또 이로써 인간의 삶과 죽음을 자연의 순환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었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것 같은, 기념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없는 인물을 기억과 기념을 위한 사진의 “흉상”으로 재현함으로써 김성수의 “buste” 시리즈는 반문한다. 유한한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는 누구를, 왜 오래 기억하려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며, 기념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 대한 역설적 재현이기도 하다. 또 각각의 시리즈는 “buste 2008/2015” 시리즈로 이어지면서 인간의 위상보다는 삶의 위상을 보여주고, 인물을 기념화하기보다 인간의 유한성, 그 시간을 기념화한다. 회화와 조각에서 흉상의 형식과 형태를 차용하면서도 김성수의 사진은 사진의 특성을 놓지 않는다. 잃어버리는 시간과 기억, 그 직면하고 싶지 않은 덧없는 얼굴을 드러내며 나약한 삶의 본질을 끄집어내고야 만다.
 
김성수(1972년~)는 개인전 <작은 풍경>(lib l’U, 디종, 프랑스, 2007), (프랑스한국문화원, 파리, 프랑스, 2008), <복제의 재구성Ⅱ>(KT갤러리, 2009), <보이는 것 너머의 portrait>(갤러리온, 2010) 등을 가졌다. 제8회 KT&G 상상마당 한국사진가 지원프로그램 SKOPF 올해의 작가 3인(2015), SECO 사진상(2011)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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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은정 기자

이미지 : 김성수 작가

해당 기사는 2019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