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양을 가꾸는 출판사, 닻프레스

닻프레스와 닻미술관의 대표 주상연 작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부를 하고, 한국에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치며 생각했다. “해외에 비해서 우리나라는 토양이 부족하구나. 나 또한 작업을 지속하려면 ‘토양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겠다’ 생각했어요. 그 방법으로 출판을 떠올렸죠.” 출판사 닻프레스(Datz Press)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주상연 대표는 사진을 시작하는 예비 작가의 마음을 이해하고, 발 디딜 곳을 제공하기 위해 10년 동안 닻프레스를 운영했다.

 


사진과 책이 함께하는 공간
광진구에 있는 닻프레스를 찾아가봤다. 1층 오픈 갤러리 ‘디프런트 스페이스’(D’Front Space), 지하에 위치하고 음료를 마시며 작품집을 볼 수 있는 ‘다크룸’(D’ARK ROOM), 그리고 출판물을 제작하는 ‘닻북스’(Datz Books)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디프런트 스페이스와 다크룸에서 10월 31일(목)까지 〈빛들의 책〉 전시가 열린다. 주상연 대표는 이번 전시를 이렇게 소개했다. “〈빛들의 책〉은 올해 저희의 가장 중요한 테마인 ‘다원적 감각’에 대해 보여주는 전시예요. 시와 사진 그리고 책, 이 세 가지가 연결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마치 벽면이 책속의 편집 공간인 것처럼, 편집하듯 이미지가 붙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실제 책 속에 들어있는 공간을 물리적인 현재 공간에 보여주는 전시인 거죠.”

〈빛들의 책〉은 3년째 진행하는 ‘다크룸 북메이킹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닻미술관에서 전시한 작가와 연계하여 작품집 출판, 전시 개최, 작가와의 워크숍을 한 세트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마침 인터뷰 당일 저녁 7시 30분부터 알란 에글린튼 작가와의 아티스트토크가 있었다. 이 행사를 ‘FNL’(Friday Night Lecture)이라고 부른다. 주상연 대표가 직접 사진에 관한 강연을 진행하기도 하며 ‘미니북 만들기’와 같은 가벼운 워크숍도 전시와 연계하여 진행한다.

다크룸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닻프레스가 10년간 출간한 작품집과 매년 한 권씩 발행하는 매거진 「깃」이 놓인 매대가 있다. 「깃」은 아쉽게도 작년 발행한 10호를 끝으로 잠시 쉬는 시간을 갖는다. 출판물은 모두 ‘북스’에서 수제로 제작한다. 디자이너, 북메이커, 사진가가 이곳에서 협업하여 책을 만들어낸다. 타 출판사로부터 의뢰를 받아 디자인을 만들기도 하며, 종이 품질 선택부터 인쇄, 제본까지 책 만드는 모든 작업을 할 수 있다. 인쇄소에 있을만한 장비를 구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주상연 대표는 닻프레스를 소량출판, 스몰프레스라고 소개했다. 일반 출판사가 전문 인쇄소에 의뢰해 1,000권을 제작할 때, 닻프레스는 100권 이하로 직접 소량 제작한다. 책의 가치와 밀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침이다.

닻프레스에서 출간한 작품집과 더불어 대표가 20여 년간 사진계에 몸담으며 수집한 작품집을 ‘아카이브룸’에서 볼 수 있다. 책의 개수는 대표가 말하기를 천여 권이 넘는다고 한다.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아 평소 접하기 어려운 책을 읽기에 좋은 공간이다. 단, 닻프레스 멤버십을 신청해야 이용 가능하다. 기본 연간 회원제이며 닻프레스가 제공하는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고, 1일 회원도 신청 가능하다.

 








지난 10년, 앞으로 10년
“처음 5년은 생존,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죠. 토양이 없는 느낌이었어요. 사진작가로서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본인만 좋은 작업을 해서는 안 되더라고요. 결국에는 토양이다. 생각했죠. 좋은 작가가 많이 나오기 위해서는 교육, 출판, 공간, 기획에 대한 전문적인 비평가, 콜렉터까지, 모두 풍성한 곳에서 다양하고 좋은 작업이 많이 나온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나라 사진의 역사가 해외보다 짧잖아요. 그 역사의 차이가 토양의 부족함을 야기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출판으로 책을 만들고 강의를 진행했어요. 저희 나름대로 10년 동안 열심히 토양을 가꿔왔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노력 때문일까. 미국에서 닻프레스를 알아보고 다양한 협업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스탠퍼드 대학교 도서관과 뉴욕 퍼블릭 라이브러리에서는 닻프레스의 모든 출판물을 소장하고, 지난 9월 19일부터 22일까지 뉴욕 MoMA PS1에서 열린 ‘뉴욕 아트북페어’에 4년째 유일한 국내 출판사로 참가했다. 올해 2월과 5월에 열린 CODEX 북페어, LA 아트북페어에도 참여했다. 행사장에서 소개하고 싶은 작품집을 발굴하면 다크룸에 진열하기도 한다.

“닻프레스의 앞으로 10년은 어떨까요?” 대표에게 물어봤다. “10년 되니까 겨우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까지 왔어요. 하지만 국내 활동보다는 해외 활동으로 힘들게 유지하고 있어요. 미국 연계 프로그램이 많이 있어 다행이죠. 그래서 지금은 아직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미국 시장을 책으로 확장하려고 해요. 그러다보면 국내에서도 조금씩 힘을 받지 않을까 하는, 자연스럽게 알아봐줬으면 하는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삶과 괴리된 예술에 소모성을 느낀 주상연 대표는 ‘무작위적인 예술적 친절’을 모토로 시각예술의 보편화를 위해 닻프레스를 지켜왔다. “예술사진은 사진을 예술로 생각하는 사람만 접하잖아요. 하지만 사진은 대중 모두가 활용하고 있어요. 그 사이에 어떤 괴리가 있는 거죠. 매력적이고 활용 가능한 사진이 얼마만큼의 예술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 확장해서 보여주는, 저희가 그런 통로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꿈이 있어요.”

 





 

글 장영수 기자  이미지 제공 닻프레스
해당 기사는 2019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