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이슈]2018 Asian New Wave 한·중·일 동아시아의 젊은 작가들②


어느 영역이든 젊은 피가 돌아야 지속될 수 있다.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시도는 사진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사진예술은 이번 스페셜 이슈에서 한국, 중국, 일본에서 사진공모전에서 수상하며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젊은 작가들을 소개한다. 한국 이재욱, 조경재, 일본 타이스케 나카노, 켄타 코바야시, 중국 첸 즈어, 픽시 리아오.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이들은 사진 매체에 대해 전세대보다 더 열려있고 유연한 태도를 견지하며, 때론 사진의 물질성을 실험하는 과감한 시도로, 때론 진지한 관찰과 사회 통념에 대한 도전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중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지금 동아시아 사진계에 밀려오는 새로운 물결을 느낄 수 있다. - 편집자 주

이재욱 JAEUK LEE
조경재 Kyoungjae Cho
켄타 코바야시 Kenta Cobayashi
타이스케 나카노 Taisuke Nakano
첸 즈어 Chen Zhe
픽시 리아오 Pixy Liao



본다는, 그 순수 감각에 따라
조경재 Kyoungjae Cho



 

Ⓒ조경재, 바람, 180cm x 150cm, 대형카메라 필름촬영, Inkjet print, 2015


조경재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촬영했을 때의 태도, 역할, 현상’뿐이라고 한다. 그는 즉흥적인 작업을 하는 편인데, 조성재의 사진은 그의 순간적인 미적 감각에 따라 구성한 오브제를 있는 그대로 찍은 결과다. 그는 작업에 대한 해석을 말하는 대신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해석이 전개되는 과정을 즐기는 조경재의 태도 덕에 우리는 작품을 보며 '왜?'라는 질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조경재의 작업을 보고 우리는 각자 어떤 내용을 채우게 될까. 
 

어떤 상황에 무언가 있었고, 그저 보았을 뿐이다 

독일 유학 시절, 조경재의 지도 교수였던 다니엘 부에티는 의미를 먼저 구체화한 후 작업을 하던 조경재에게 “처음부터 명확한 상징과 의미를 부여하고 결과물을 창출하지 말고 무언가를 보고 그것에 대해 인지해보라”고 말했다. 그 조언을 듣고 조경재는 주변을 다시 보기 시작했고 그것을 단순히 찍기 시작했다. 작업을 진행할수록 본다는 행위는 시각을 넘어 촉각, 후각, 상황, 조건까지 확장됐다.


 

Ⓒ조경재, 검은소, 180x150cm, inkjet print, 2016
 

“내가 본 것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과거 베를린에서 박람회 아르바이트를 했을 당시에 기계를 감싸던 비늘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것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좋았다. ‘검은소’란 작업에 그 비늘을 가져와서 사용했다. 아름다움은 내게 상황, 공간 또는 공간에 있는 역사성이 될 수 있다. 내가 본 아름다운 것을 아틀리에로 가져와서 비슷한 오브제들과 다시 설치해서 찍는다. 난 어떤 상황 속에서 본 무언가를 주어왔거나 그저 본 것을 작업에 반영한다. 내용은 내 역할이 아니다.”


조경재의 작업은 실제 공간, 오브제, 카메라 그리고 시간성을 가진다. 작업을 진행할 때, 그는 장소가 가지고 있는 특성 속에서 발생하는 아이디어와 카메라 앞에 오브제가 있다는 두 가지 조건을 발생시킨다. 작업은 그 두 가지 조건 속에서 그의 행위 그리고 사진 매체가 가진 시간성을 갖는다. 그리고 조경재는 “그것이 내 작업의 전부다”라고 언급한다. 


 
“난 보통 작업을 할 때, 재료가 어떻게 놓여있으며, 이것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나뉘는지 등에 중점을 둔다. 그리고 무거움과 가벼움의 조화, 추상 속의 구성 등의 다양한 내용을 보면서 결정하는 편이다. 그 결과로 나온 작업에는 사진이란 매체를 사용했기에 갖게 되는 시간성이 있다.”


조성재의 미적 감각에 따라서 순간적으로 구성된 형태감은 사진이란 매체를 거치며 그의 취향과 어긋나기도 한다. 조경재는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성을 통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진 프레임 안에 그의 미적 취향과 관계없는, 단서들이 생기는 것이 ”재미”라고 한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으면 내 미적 감각이 100% 반영됐을 것 같다. 캔버스 안에 빨간색이 어느 정도의 채도와 면적으로, 어떻게 칠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사진은 내가 원하는 그 상태, 형태를 똑같이 재연할 수 없다. 느슨하게 작업하는 편이지만, 그 과정에서 작품이 딱딱 맞물려가는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그 결과물 속에는 구체적인 사건이나 어떤 사물의 구체적인 형상을 발견할 수 없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조경재가 순간적으로 선택한 미적 감각에 따라 기울어지고, 혹은 찌그러지고, 뒤엉켜있는 추상적인 형태의 오브제 조합이다. 작품 제목도 그의 이런 태도가 반영됐다. 블루치츠, 오브제, 카펫, 계단 등등. 조경재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들로 제목을 짓는다. 그렇다고 모든 작업 제목이 직관에 따르는 것도 아니다. 아예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무제라고 정한 것도 있다.


“난 작업에 사적 생각을 넣지 않는다. 물론 작업을 진행하면서 보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해석하겠다는 짐작을 하지만 그것을 표면화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숨기려고 노력한다. 내가 다른 작가의 작업을 볼 때도 그 작업이 내포한 의미가 나를 때려서 좋을 때도 있다. 하지만 기본 취향은 내 해석을 넣을 수 있는 작업을 더 좋아한다. 내 작업을 보여줄 때도 그렇다. ‘내 작업은 이런 작업입니다’라고 답을 내리기보다 관객이 작업을 보고 느낀 감상에 대해 말할 수 있게 유도하고 싶다. 그편이 더 재밌다.”


조경재는 작품을 아이에 비유한다. “아이를 낳고 열심히 교육해서 엘리트로 키우려는 부모가 있지만 네 멋대로 살라고 하는 부모도 있다. 난 후자에 가깝다. 열심히 키워주지만, 성인이 되면 그들을 독립적인 개체로 생각한다. 독립적으로 봐주는 것이 작업에도 좋다고 생각한다.” 작업은 조경재의 의도에 따라 관객과 만남을 통해서 다양한 시각과 해석을 생성하게 된다. 이런 접근 덕에 조경재의 작업은 끊임없는 창조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눕혀졌거나 세워진 형태, 혹은 굵기 등등. 사진 속 요소를 보고 관객마다 다른 해석을 한다. 그것은 그들의 해석 자체가 사회성을 띄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우리가 볼 때와 과거의 우리가 볼 때도 달라지지 않을까. 보이는 자체의 이미지는 맥락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데, 결국은 문화인 것 같다.“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조경재가 아니라 그의 작품 그 자체이며 그것을 채우는 것은 관객인 우리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문화와 사회적 맥락은 작품을 해석하는 흐름을 갖게 된다. 이것이 “작업이 모든 언어로 분석된다면 더는 이야기할 필요도, 재미도 없을 것 같다”는 조경재가 추구하는 “가벼움 속에서 찾는 중요함”을 찾는 방식일 것이다. 

 
사진의 평면적 인식에서 자유롭기를 갈망하며


 

Ⓒ조경재, 건물30, 180cm x 150cm, 대형카메라 필름촬영, Inkjet print, 2015

조경재는 2011년쯤 사진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2013년에서 2015년 사이에 지금의 작업 형태로 구체화했다. 그 후로도 사진 속 이미지를 밖으로 꺼내서 해체하는 설치, 조각의 개념까지 작업에 표현했다. 이는 조경재의 작업에 대해 “사진의 평면적 인식과 방법론에서 자유롭기를 갈망하며 공간의 차원으로 접근”한다는 중앙대학교 사진전공 교수 천경우의 평과 연결된다.


“지금의 작업 형태로 3~4년 동안 사진 작업을 하니, 의도와 달리 작업이 딱딱해졌고 나도 카메라 앵글 안에 오브제를 볼 때 답답해졌다. 다시 느슨하게 해체하는 시간을 갖는 과정이 필요했고, 사진과 설치를 오가는 실험을 시작했다. 그래서 영은미술관에서의 전시는 버려진 오브제를 다시 조합하고, 사루비아다방에서의 전시에서는 기본적인 재료의 물성 자체만을 구조화해봤다.”


<부서진 모서리>(2017. 12. 13~2018. 1. 12,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조경재가 보인 사진 작업은 단 3점에 불과했지만 전시는 사진전으로 분류됐다. 전시에서 그의 미적 감각에 따라 강약, 가벼움과 무거움, 직선과 곡선의 아름다움 등이 반영됐다. 그리고 전시는 조경재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차원적으로 그리고 사진적으로 표현됐다는 평이 많았다. 이는 사진이 가진 평면성을 기반으로 장시간 작업하며 형성한 그만의 시각이 있기에 가능한 관객의 감상일 것이다.

 
조경재는 올해 제 5회 아마도사진상을 받았으며, 올해 11월 아마도예술공간에서 그 수상전시를 앞두고 있다. 아마도사진상은 만 40세 미만의 국내 및 아시아 국적의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국제 사진 공모전으로, 사진의 매체적 특수성과 동시에 확장성에 주목하며, 그 의미를 재정립하는 것을 목표로 제정됐다. 아마도사진상은 지금까지 이현무, 조준용, 장성은, 전명은과 같이 사진과 동시대 미술의 접점 속에서 그 영역을 실험하는 작가에게 돌아갔다. 조성재의 작품은 이번 아마도사진상에서 “불특정 공간 속에서 상징성이 배제된 물건들을 한 장의 이미지를 위한 ‘공간구성’으로 실현한 기하학적 대형사진 작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글 김다울 기자
이미지 제공 아마도예술공간

해당 기사는 2018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