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PHOTO 2017 ③ : PRISMES SECTION 이정진 〈Unnamed Road〉



“내게 작업은 명상과도 같다”
파리포토 PRISMES SECTION 이정진
〈Unnamed road〉

2017 파리포토에서 가장 주목받은 섹션 중 하나는 2층 Salon de Honor 공간에 마련된 PRISMES SECTION이다. 지난 2015년부터 3번째 연이어 기획된 PRISMES SECTION 에서는 14개의 프로젝트가 대형 사이즈로 설치됐다. Peter Miller, Henry Chalfant, John Chiara, Katsunobu Yaguchi 등 14명 작가가 참여했는데, 한국 이정진 작가도 참여했다.

지난 2015년 처음 기획된 PRISMES SECTION에서도 한국의 배병우 작가가 참여했지만, 당시에는 불시에 일어난 파리테러로 파리포토2015가 개최 이틀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이번 파리포토 2017에서는 이정진 작가의 〈Unnamed road〉 시리즈가 PRISMES SECTION의 가장 중앙에 위치한 22m의 벽면에 설치됐다.

이정진 작가의 〈Unnamed Road〉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프레데릭 브레너가 이끄는 ‘이스라엘 : 진행 중인 초상화(Israel: Portrait of a Work in Progres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지역의 풍경을 촬영한 작업이다. 이정진은 당시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스테판 쇼어, 제프 월, 토마스 스투루스 등 현대사진의 거장 11인과 함께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가 담아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풍경은 분명 우리에게는 낯선 땅임에도 유독 친근하고도 쓸쓸하다.

촬영한 사진을 감광유제를 붓으로 바른 한지에 인화하고 다시 스캔과정을 거쳐 인쇄하는 그만의 방식으로 작업한 이 사진들은, 풍경이 종이에 찍혔다기보다는 마치 종이 위에 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단지 한지에 인쇄하는 독특한 방식만으로 그의 작업이 주목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진 속 풍경에서 은근하게 배어나오는 자연스러운 여백의 미와 깊이가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수백 수천 장의 사진 이미지가 홍수를 이루는 파리포토에서, 유독 그의 사진 앞에서는 발걸음이 느려지며 한참을 명상하듯 응시하는 관람객들이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파리포토의 Howard Greenberg New york, Camera obscura 갤러리 부스에서 진행된 사인회에서 그의 사진집은 완판됐고, 사인회를 마치고나서도 그의 사진집 구매를 원하는 관객들의 문의가 쇄도하기도 했다. 이정진 작가에게 이번 파리포토 PRISMES SECTION에서 선보인 〈Unnamed Road〉 시리즈에 대해 들었다.

 


Unnamed Road Ⓒ 2010-2012 JUNGJIN LEE


파리포토의 PRISMES SECTION 참여는 언제부터 알고 준비했는가?
지난 4월 정도에 알게됐다. Howard Greenberg가 파리포토의 운영위원 중 한 명인데, 그가 이번 RISMES SECTION에 내가 참여하게 됐다고 알려줬다. 내가 함께 일하는 Howard Greenberg New York, Andrew Bae Chicago, Camera Obscura Paris, Stephan Witschi Zurich 갤러리가 함께 콜라보를 해서 참여했다. 주최측은 작가를 선정했지만 따로 특정 작업을 지정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Unnamed Road〉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해 가을 스위스 Fotomuseum Winterthur에서 초대전을 가질 때, 디렉터인 토마스 실링Thomas Seelig이 전시를 기획했는데, 그가 이번 PRISMES SECTION의 전시기획도 맡아주었다. 그 역시 〈Unnamed Road〉를 보여주자는데 이견이 없었다. 곧게 뻗은 22m의 벽은 좋은 전시조건인데 여기에서 전체 시리즈를 보여주기로 했고 그에 맞춰 디자인을 하고, 프린트 사이즈를 결정했다.



Unnamed Road Ⓒ 2010-2012 JUNGJIN LEE



최근작 중 〈Echo〉나 〈Everglades〉, 〈Opening〉 시리즈 등이 있는데, 〈Unnamed Road〉를 파리포토에서 보여준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작업들 중 가장 정치적인 작업 아닌가?
옛날 아날로그 시리즈는 작업수가 적어서 이 공간에 다 보여주는 것은 가능하지가 않다. 또 〈Echo〉 시리즈 같은 메인작업들은 지금 전세계 갤러리에서 전시하느라 여지저기 돌아다니고 있다. 아무래도 상업화랑과 일을 하면, 파리에서 전시하든, 스위스에서 하든, 작가가 의도한 전체를 보여주기는 쉽지 않다. 미술관에서 전체 프로젝트를 다 보여줄 기회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작가의 의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작은 사이즈의 개인전보다는, 시리즈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담긴 사진집이란 형식이다.

〈Unnamed Road〉는 2014년 38점의 작업이 담긴 사진집으로 나왔는데 처음 찍은 2000권이 3달 만에 완판됐고, 이후 2판도 완판됐다. 그래서 이 기회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이 사진집의 전체 작업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다른 시리즈는 한 장으로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이 시리즈만은 전체적으로 보여줘야 했다.


Unnamed Road Ⓒ 2010-2012 JUNGJIN LEE


관객과 이야기 나눌 때 자신의 작업과정을 ‘나만의 요리방식’이라고 설명해서 인상적이었다. 수제한지에 인화하는 방식이 남다르다 보니까 이를 궁금해하는 이들도 많은 것 같다.
나는 그 부분을 설명하는 게 정말 싫다. 한지에다 감광유제를 붓으로 발라서 인화하고, 다시 이를 스캔해서 인쇄하고. 물론 관객들이 내 프린트를 볼 때 일반적인 것과는 다르니까, 마치 드로잉 같기도 하고, 정말 사진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싶은 호기심은 이해하지만, 그런 질문은 답하기 재미없다. 내 작업은 프린트를 남과 다르게 해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진을 찍고 프린트하는 전 과정을 포함해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사진을 찍다보면 일반적으로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있다. 촬영 장소와 시점이다. 그러나 내 사진은 이런 어떤 정보도 주지 않는다. 어디에서 뭘 찍었는지는 내 사진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구체적인 대상과 장소를 넘어서고 해체해서, 정신적인 부분에 다가서도록 찍고 싶었다. 나는 충분히 사람들이 이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내 작업에 사람들이 반응한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이미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사진적인 기본 질문을 하는 이들이 있는데, 내가 ‘내 사진은 시간성과 대상 자체의 리얼리티가 중요한 사진은 아니다’라고 답하면 금방 알아듣는다. 내가 뭘 보여 주려하는지 다 알지만, 가끔 작가에게 언어로써 뭔가 확인하고 싶어하는 부분이 있는 듯 하다. 그렇지만 그런 ‘확인과정’이 없어도 내 작업은 이미 작품만으로 충분히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Unnamed Road Ⓒ 2010-2012 JUNGJIN LEE


시간성, 장소성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이스라엘 프로젝트는 아무래도 정치적인 함의를 담는 그룹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강 서안지구(West bank)라는 분쟁지역을 촬영했기에, 그 현실에 대한 작가만의 해석이 들어갔을 것 같은데?
이 작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계에서 진행하며, 이 두 나라를 나만의 해석으로 담았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도발하거나, 무언가를 드러내기 보다는, 단순하게 나의 언어로 그 지역을 보고, 그들의 관계를 한 장 안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사진들을 보면 밝은 언덕과 어두운 언덕을 분리해서 잡은 사진들이 많은데, 이는 한 프레임 안에 같이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준다. 또 다른 사진에서는 뒤에 길이 있음에도 어마어마한 바위가 그 앞을 꽉 막아서고 있다. 저 길을 가고 싶지만 그 길을 막아선 암울한 현실같이.

한편으론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무덤에서 많이 작업했다. 사막의 베드윈족의 무덤과, 유대인들의 거대한 석조 무덤이 대비되는데, 팔레스타인, 유대인, 베드윈 족이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과 태도 등이 각각 다름에 관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이 38점의 작업을 통해서 현재 삶이 암울하고,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듯이 보이지만, 그것을 넘어선 초월을 보여주고도 싶었다. 암울한 사진이지만 사람들은 이를 보면서 평화를 느끼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것이 이 시리즈의 메시지이다. 그것은 내가 누구에게 애써 전하기보다는, 내 스스로가 그렇게 초월하고 평화롭고 싶다는 그런 열망들이 반영됐다.

 


Unnamed Road Ⓒ 2010-2012 JUNGJIN LEE


이번 파리포토에서의 활약은 눈이 부실 정도다. 만약 지금 자신이 20대 때의 자신을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가? 그 나이라면 한참 인생에서 갈피를 못잡고 헤매는 시기 아닌가?
나는 인생에서 헤맨 적은 있을지 몰라도, 사진을 하면서 헤맨 적은 한 번도 없다. 나는 남에게 해줄 이야기는 없다. 내 작업에서 사람들이 감동을 받으면 그것이 고맙고, 내가 좋은 작가가 된 느낌은 들지만, 작업으로 소통하면 된 것이지, 따로 글로 전달하거나, 인터뷰하거나, 혹은 강의로 전달하는 것을 너무 싫어한다. 어떻게 보면 나는 나 밖에 모르는 ,그냥 작가일 뿐이다. 3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는 굉장히 나의 감정 상태를 세상에 반영했다. 그 대상이 나무가 됐든, 땅이 됐든 사진이란 매체로 나를 투영해서 나의 감정상태를 보여주려 했다. 당시의 내가 오로지 ‘나’에만 집중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덜 그렇다.

 〈Unnamed Road〉의 전체 프로젝트 제목이 〈This Pace〉이다. 언젠가 이 작업에 대해 “내 사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찍었지만, 내 사진 속 ‘This Pace’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나의 place’이다. 그리고 당신들이 내 사진을 보고 내가 느낀 느낌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place'이다”고 말했는데 그 때 관중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당시 작업을 하면서 ‘역사적으로도 레이어가 많고, 평행으로도 경계가 여기저기 있고, 정치, 종교적으로 쫙쫙쫙 갈라져서 히스테리칼하게 아옹다옹 다툴까, 이들이 왜 그리 서로 미워하고 고통받는지, 미친거 아냐,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라고 감정이 막 힘들게 일어날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나 역시도 그 때 내 마음의 평화가 없었다. 이 사람들은 왜 이럴까라고 비난했지만, 그렇게 비난하는 내 마음에도 분쟁과 갈등이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작업은 명상과도 같다. 작업을 하면서 작품을 남기기 위해 작업을 하기 보다는, 그냥 작가로서 작업을 하는 과정 그 자체가, 인생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이고 내가 택한 길이라 생각한다. 그 자체가 목적이지, 남아있는 작품이 목적은 아닌 것 같다.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제공 PARIS PHOTO www.parisphoto.com
해당 기사는 2017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