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마이어 │단 한사람을 위한 사진












 
마이어는 카메라를 들고 걷는 거리,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과 사물을 향해 렌즈의 초점을 맞추고
셔터가 열렸다 닫히는 순간에만 세상을 향해 자신을 열었다.

마이어는 균형 있고 정제된 정사각형 프레임을 활용해 폭로가 아닌 무심한 시선으로
빈민가의 삶을 관찰하고, 위트와 아이러니를 통해 도시의 삶을 풍자한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과 삶
사진가가 셔터를 눌렀으나 사진으로 보지 못한 사진, 비비안 마이어(Vivian Dorothea Maier, 1926~2009)의 사진이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마이어는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뉴욕과 시카고에서 보모, 가정부, 간병인으로 일하며 40여 년간 생활 속에서 14만여 장의 필름을 촬영해 남겼다. 살아있는 동안 일기를 쓰듯 매일 사진을 찍었지만, 세상에 내보이지 않았다. 2007년에 생활고로 창고임대료를 내지 못해 보관하던 물품에 포함된 네거티브 필름과 현상하지 않은 필름, 인화한 사진 등이 시카고의 한 경매장에서 팔렸다.

마이어의 필름과 물품을 구매한 사람 중 한 명인 존 말루프(John Maloof)가 마이어 사진의 특별함을 알아채고, 무명 사진가를 추적했으나 2009년에 그녀의 죽음만을 확인했다. 이후 말루프는 마이어가 남긴 필름과 녹음테이프, 영화 필름 등을 수집하고, 그녀의 사진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 등에 연락했다. 하지만 공고한 예술계는 작가가 선별하거나 확인하지 않은 사진은 작품이 될 수 없고, 가치도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말루프는 수집한 필름을 사진 전문가와 갤러리 큐레이터와 협력해 현상하고 인화하며, 사진을 정리해갔다. 그 사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첫 사진전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Finding Vivian Maier)》(2010)를 열었고, 2011년 시카고 문화센터의 전시는 성공적이었다. 특히 마이어가 1950~70년대 뉴욕과 시카고의 거리에서 촬영해 남긴 탁월한 사진들은 베일에 싸인 무명 사진가의 삶을 궁금하게 했다. 소장자와 관계자들은 마이어의 사진을 연구하는 동시에 그녀의 생전 생활과 가족사를 밝혔다. 말루프는 2013년에 영화 프로듀서 찰리 시스켈(Charlie Siskel)과 다큐멘터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공동 연출하고 제작해, 그녀의 삶을 조명했다.

마이어는 폭력적이고 자녀를 방임한 부모는 물론 감화원을 드나들며 불우한 10대를 보낸 오빠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연이 끊겼다. 보모로 일하며 이 집 저 집을 전전했고, 평생 독신으로 살며 연인도 오랜 친구도 없었다. 지적이고 배려심이 있었으나 냉소적이고 냉담했던 성격으로 그녀를 고용한 가족들이 증언했다. 30대부터 신문 등을 수집하기 시작해 강박적인 저장장애를 보였고, 이로 인해 머물 집이 없던 말년에는 8톤가량의 짐을 임대한 창고에 보관해야 했다. 사후 남겨진 짐에는 신문, 잡지, 노트, 음반, 배지, 장신구, 엽서, 편지, 영수증, 의류 등은 물론 총 7천여 장의 인화된 사진 그리고 13만 3천여 장의 필름이 인화되지 않고, 일부는 현상조차 되지 않은 채로 있었다.

마이어가 생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으나 평생 촬영한 사진, 그중 1950~70년대 뉴욕과 시카고에서 촬영한 뛰어난 거리 사진(Street Photography)은 당대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게리 위노그랜드(Garry Winogrand, 1928~1984)와 리 프리들랜더(Lee Friedlander, 1934~) 등의 사진에 비춰지기도 하고, 여성사진가로서의 삶과 사진이 리제트 모델(Lisette Model, 1901~1983)과 헨렌 레빗(Helen Levitt, 1913~2009) 등과 비교되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 사후 발견된 방대한 필름에서 타인이 선별해 인화해서 전시하는 마이어의 사진으로부터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주제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한 개의 이미지를 필름에서 선택하고, 필름에서 어떻게 사진으로 재현하는가 또 재현한 사진을 다른 어떤 사진과 어떻게 구성해서 어떤 맥락에 놓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게 읽히는 게 사진의 속성이다. 더욱이 마이어는 대부분의 사진에 어떤 설명(촬영일 및 장소, 주제)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작가로서 그녀의 사진을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사진을 향한 열정과 비밀스러운 삶은 마이어의 사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은밀한 열정의 사진가”, “천재적인 보모 사진가”, “익명의 삶을 살다 간 예술가” 등의 수식어와 함께 마이어의 사진은 여러 기획전으로 구성을 달리해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세계 곳곳을 순회한다. 대중은 마이어의 사진에 찬사를 보냈고, 수수께끼 같은 일생으로 마이어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한국에서 열리는 사진전, 《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그라운드시소 성수 | 8.4.~11.13)는 큐레이터 앤 모렝(Anne Morin, 스페인 전시기획사 diChroma Photography)과 그랑 팔레(Réunion de Musées Nationaux-Grand Palais)가 공동 기획해 개최하는 전시다. 2021년 프랑스 파리 뤽상부르 미술관과 올해 이탈리아 토리노 왕립박물관에서의 전시 이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리며, 마이어가 직접 인화한 사진과 미공개작을 포함한 270여 점의 사진을 전시한다. 또 슈퍼 8 필름(Super 8 Film) 형식의 영상과 마이어의 목소리가 담긴 오디오를 함께 선보이고, 그녀가 사용했던 롤라이플렉스(Rolleiflex)와 라이카(Leica) 카메라, 촬영 시 쓰고 다니던 모자 등의 소장품을 공개한다.

전시는 ‘거리 사진(Streets)’, ‘인물 사진(Portraits)’, ‘셀프 포트레이트 사진(Self-Portraits)’, ‘컬러 사진(Color)’, ‘시네마틱 사진(Cinematic)’ 그리고 ‘제스처(Gestures)’, ‘형태(Forms)’, 아이들을 촬영한 ‘유년의 사진(Childhood)’ 총 8개의 섹션으로 이뤄진다. 작품의 주제별로 구성되는 여느 사진전과 달리 작가 사후 소장자와 연구자에 의해 수집되고 조사된 사진이 시각적으로 선별됐다. 사진에 대한 작가의 의도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작가가 관심을 가졌던 사진의 대상과 촬영 스타일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의 ‘거리 사진’과 ‘인물 사진’에는 뉴욕과 시카고의 도시 풍경과 사람들이 포착됐다. 마이어는 거주가 보장되는 한편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한 보모로 일하며, 시간이 있을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도시 거리를 활보했다. 고개를 숙여 뷰파인더를 확인하며 허리 높이에서 촬영하는 이안 반사식 카메라인 롤라이플렉스를 사용해 마이어는 대상으로부터 자신의 시선을 감추고, 그들의 시선으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확보했다. 마이어가 사진에 관해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이 없음에도, 숙련된 사진 기술로 찰나에 촬영한 훌륭한 스냅 사진을 보여준다.

특히 1950~60년대 아메리칸드림에 가려진 경제 공황의 현실과 반공 이데올로기가 휩쓴 사회정치적 불안이 익명의 군중은 물론 여러 인종과 계층의 개인들과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 사진에서 드러난다. 마이어는 균형 있고 정제된 6×6cm 필름 판형의 정사각형 프레임으로 폭로가 아닌 무심한 시선으로 빈민가의 삶을 관찰하고, 위트와 아이러니를 통해 도시의 삶을 풍자한다. ‘제스처’의 섹션에서는 대상에 다가가 촬영하는 클로즈업을 통해 사람들의 의복과 머리 스타일, 액세서리 또는 그들의 손과 다리의 제스처와 뒷모습 등을 촬영해 사람을 향한 호기심과 유머를 내보인다.

또 ‘제스처’의 섹션에서는 마이어가 1970년대에 가판대의 신문이나 길거리와 쓰레기통에 버려진 신문, 사람들이 손에 쥔 신문들을 촬영한 컬러 사진을 함께 선보인다. 마이어의 거리 사진에서도 신문과 「타임스(Times)」, 「라이프(Life)」를 포함한 잡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마이어는 존 F. 케네디, 리처드 닉슨, 지미 카터 등의 대통령을 포함해 당대 주요 인물과 이슈와 관련한 신문 및 잡지의 헤드라인을 통해 정치 또는 사회경제 문제를 간접적으로 사진에서 드러낸다. 신문과 잡지 등 정기간행물은 마이어가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였으며, 이에 대한 사진은 자기 의사를 세상에 말없이 표현하는 소통의 방법이 됐다.

한편 ‘형태’ 섹션의 사진에서는 건물의 모서리와 창틀, 땅에 떨어진 낙엽과 장갑, 벗어놓은 낡은 구두와 빗질에 쓸린 땅 등을 클로즈업으로 촬영해 서정적인 서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이어의 섬세한 관찰력과 남다른 상상력을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그리고 ‘컬러 사진’ 섹션에서는 1960~70년대 시카고에서 35mm 카메라로 촬영된 거리 사진뿐만 아니라 1950년대 뉴욕에서 간헐적으로 촬영해 인화해둔 사진들을 볼 수 있다. 마이어는 직사각형의 역동적인 프레임으로 도시의 생생한 풍경과 사람을 기록하고, 화려한 도시의 색과 간판 및 영화 포스터 그리고 신문들을 촬영해 컬러 사진으로 남겼다.

또 1970년대 무비 카메라로 시카고 중심가인 메디슨 거리의 사람들을 촬영한 슈퍼 8 필름 형식의 컬러 영상 등이 ‘시네마틱 사진’ 섹션에서 선보인다. 그리고 이 섹션에서는 마이어가 195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화물선을 타고 필리핀, 홍콩,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 예멘, 이집트 그리고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을 공개한다. 화물선이 정박하는 항구와 항구도시를 촬영하고, 여객선과 열차를 타고 가 중국의 아이들, 말레이시아 페낭의 거리, 인도의 가족, 이집트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 등을 찍은 사진과 함께 수십 장의 밀착인화를 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아이들을 모델로 영화와 같은 연속적인 장면을 촬영하거나 빛과 그림자, 실루엣을 활용해 조형성을 강하게 연출한 사진도 이 섹션에서 볼 수 있다.

마이어가 낮은 앵글로 거리의 사람들을 촬영한 사진에서 어른들은 때때로 경계와 위압적인 표정으로 드러나지만, 아이들은 눈높이를 맞춘 앵글로 좀 더 친밀한 시선으로 나타난다. ‘유년의 사진’ 섹션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사진들은 불우한 가족사와 유년 시절 결핍된 사랑, 고독했지만 독자적인 생활을 이뤄 나간 마이어의 삶과 연관돼 이해된다. 특히 아이들을 대상으로 촬영한 사진과 영화 필름에는 마이어가 돌보던 아이들과의 행복한 한때는 물론 어른의 세계에서 약자인 아이의 감정과 몸짓이 배어 있다.

전시의 ‘셀프 포트레이트 사진’ 섹션에는 관람자가 마이어가 사용한 이안반사식 카메라 롤라이플렉스의 뷰파인더로 거울 속에서 반복적으로 반사되는 자기 모습을 볼 수 있는 체험 공간이 마련됐다. 마이어는 수백 장의 셀프 포트레이트를 남겼는데, 사진의 대부분은 거리의 상점가 유리창 또는 진열장에 놓이거나 실내외에 걸려 있는 거울에 반사된 모습과 자신을 투영한 그림자가 진 장면이다. 셀프 포트레이트에서 마이어는 거울이나 유리창에 반사된 카메라의 렌즈가 아닌 그것에 반영된 자신을 응시한다. 거울과 유리창 안팎의 풍경을 함께 넣은 마이어의 셀프 포트레이트는 세계 속 자신의 존재를 카메라로 증명하는 장면처럼 보인다. 또 때로는 야생화를 배경으로, 때로는 길에 버려진 신문지와 쓰레기통에 처박힌 인형을 배경으로 드리운 자기 그림자를 통해 당시의 내면과 감정을 은유하고 암시한다.
 
비비안 마이어는 40여 년간 매일같이 사진을 촬영했으나 공개하지 않았고, 가족을 포함한 사적인 이야기를 타인에게 전하지 않았다. 다만 평생 혼자였던 일생을 스스로 기록하고, 기억하고, 저장하는 데 사진과 녹음기와 무비 카메라를 활용했다. 사후 발견된 필름 가운데 현상조차 되지 않은 필름이 4만 5천여 장이나 될 만큼 사진보다 셔터를 누르는 기록의 행위로써 남는 기억과 저장의 의미가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이어는 카메라를 들고 걷는 거리, 그곳에 마주친 사람과 사물을 향해 렌즈의 초점을 맞추고 셔터가 열렸다 닫히는 순간에만 세상을 향해 자신을 열었다. 자기를 위한, 단 한 사람을 위한 사진의 기억은 수많은 상자에 넣어져 창고에 저장돼 문이 닫혔다.

2007년 81세의 사진가는 자기 인생이 담긴 상자를 시카고 교외 한 창고에 맡겨 두고 임대료를 내라는 독촉장을 계속 받았지만, 가난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2009년 4월 21일에 세상을 떠난 마이어는 보모로서 1956년부터 11년 동안 시카고의 아일랜드 파크에서 돌보았던 세 형제, 말년에 오갈 곳 없는 자신을 보살펴준 겐스버그(Gensburg) 형제들에 의해 화장돼 그들이 야생 딸기를 따던 추억을 함께한 숲에 뿌려졌다. 현재 마이어가 남긴 필름 14만여 장의 대부분을 존 말루프가 소유하고 있으며, 저작권의 상속자를 찾는 동안 마이어의 유산은 시카고의 쿡 카운티(Cook County) 관리하에 있다. 쿡 카운티 당국은 2016년 5월 비비안 마이어와 관계된 사업에서 존 말루프를 주요 조정자로 인정하며 협약했다. 
 
 

글 정은정 사진 리뷰어
해당 기사는 2022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