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기본으로 돌아가다 ③현광훈, 메탈 수제카메라 메이커

 

 

여기 내장된 기어부터 부속품 하나하나까지 손으로 깎아 만든, 말 그대로 ‘손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카메라를 제작하는 사람이 있다. 메탈 수제카메라 메이커 현광훈 디자이너가 바로 그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 필름과 나사 부품들이 외부로 노출된 빈티지한 디자인, 각진 금속이 전달하는 매혹적인 외형, 게다가 심장 소리와 같은 째깍째깍 기계음. 그의 카메라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한껏 자극 하는 ‘아트웍art work’이다.

Q. 대학과 대학원에서 금속조형디자인을 전공 했다. 그런데 금속조형 하면 흔히 떠올리게 되는장신구나 조명, 제품 같은 것이 아니라 금속형 핀홀카메라를 만들고 있다. 왜 그 많은 것 중에 카메라였나?
A. 나에게 카메라는 펜이나 붓을 대신해 일상을 기록하는 수단이었다. 모두가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카메라의 작동 원리가 내겐 굉장히 직관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빛을 제어하는 메커니즘이 특히 매력적이었다.

Q. 카메라를 직접 손으로 제작하게 된 계기는?
A. 대학 3학년 때 사진 교양 수업 중에 종이를 접거나 알루미늄 캔을 이용해 핀홀카메라를 만드는 과제가 있었다. 종이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나는 금속을 접어 핀홀카메라를 만들었다. 이후에 졸업 전시 준비 과정에서 그동안 만들었던 것 중, 가장 재미있는 것을 떠올려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전공 수업 결과물보다 교양 수업에서 만든 핀홀 카메라가 자꾸 머릿속에 맴돌더라. 그래서 졸업 전시를 위해 금속으로 된 핀홀카메라를 제작하게 되었다.

Q. 카메라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지닌 기계적인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한다. 학교에서 이를 가르쳐줄 사람은 당연히 없었을 터. 이러한 원리를 어떻게 터득했나?
A. 카메라를 깊게 연구해보고 싶어 오래된 필름카메라를 하나둘 사 모았다. 대부분 중고 사이트를 이용해 판매자와 직접 만나 실물을 보고 구매했다. 구식 카메라의 경우 작동법이 난해했지만 본격적으로 기계적 원리를 알게 된 계기는 고장 난 카메라를 통해서다.

 





Exposure Calculate Plate I, 2014 Brass, 6497movement 90x60x9mm


Q. 학부를 나오고 곧장 직장생활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카메라와 관련된 곳이었나?
A. 수제 스피커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다. 그것도 웹디자이너로 말이다.(웃음)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금속의 덩어리를 깎아 부품을 만드는 과정을 어깨너머로 알게 됐다. 여러 제작 공정들을 보면서 카메라도 그런 공정으로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1년 정도 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작업실을 마련했다.

Q. 첫 번째 작품은 언제, 어떻게 완성되었나?
A. 처음 만든 카메라는 현재 내게 없다. 작업실을 오픈했을 때 모아둔 돈이 많지 않았다. 작업은 해야 하는데 재료를 살 돈이 없어서 종이를 접어 모델링만 하던 중에 자주 방문하는 카메라 관련 웹사이트에 그 모델링한 사진을 올려놓았다. 그러던 와중에 한국계 미국인에게서 카메라의 완성된 모습을 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재료 살 돈이 없어 제작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그는 재료비에 필요한 30만 원을 보내왔다. 그렇게 첫 번째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나중에 후원해준 그에게 카메라를 보냈고 그는 카메라 비용을 지불해줬다. 그렇게 준비된 비용으로 다시 재료를 사고, 그 다음 작업을 진척시켜 나갔다.

Q. 카메라 바디 내부의 부품들이 외부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A. 필름카메라를 해부했을 때 신기하게도 카메라 바디의 안과 밖이 전혀 다르더라. 수많은 기어들이 오밀조밀하게 박혀서 사용자가 필름을 장전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맞물린 기어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었다. 그래서 외형은 물론 내부 부품까지 직접 철을 깎고 뚫고 붙여가며 만들었고, 내장된 기어나 부속을 밖으로 꺼내 도장이나 후가공을 하지 않았다. 제작 과정이 전부 한눈에 보이는 외형을 가지게끔 디자인했다. 무엇보다 카메라의 메커니즘에 매료되어 시작한 작업이기에,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사용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Q. 초기에 만든 카메라에 ‘옵스큐라’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도 궁금하다.
A. 이유는 단순하다. 내 카메라가 말 그대로 어둠상자이니까. 그 이름을 계속해서 쓴 이유는 만족스러운 작품이 나올 때 이름을 지어줘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그래서 옵스큐라 뒤에 일련번호를 붙였다. 말하자면 옵스큐라 시리즈는 개발을 위한 과정작作이라 할 수 있다. 제대로 이름을 지어준 것은 ‘하트비트Heartbeat’ 시리즈가 처음이다.

 







Heartbeat I, 2014, brass modified 6497movement, 95×66×33mm



Heartbeat I, 2014, brass modified 6497movement, 95×66×33mm

Q. 지금은 셔터부의 구동장치에 시계의 무브먼트를 그대로가져온 ‘허트비트’ 시리즈에 흠뻑 빠져 있는 것 같다. 시계의 심장을 카메라에 이식한다는 개념이 인상적이다. 기계식 시계 무브먼트의 복잡한 원리는 어떻게 익혔나?
A. 예전에 만든 핀홀카메라는 거의 다 수동으로 여닫는 구조였다. 카메라를 삼각대에 올려놓은 후 셔터를 열어놓고 시간에 맞춰 닫아야 하는데, 노출 시간이 길다 보니 타이밍을 맞추기가 꽤 불편했다. 그래서 자동으로 닫치는 기계식 장치를 고민하게 되었다. 때마침 스위스 시계 장인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시계 무브먼트를 손으로 다 만들더라. 그래서 기계식 시계 무브 먼트를 이용하면 전자적인 장치없이 자동으로 셔터가 닫힐 것으로 생각했다. 기어 가공부터 차근차근 시도했다. 당연히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다. 시계나 부품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원서를 찾아서 읽기도 했지만 가장 도움이 된 것은 유투브 영상이었다. 다큐멘터리 영상들을 정지시켜가면서 뒤에 나오는 장면들을 찬찬히 뜯어보며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추리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Q. 부속품이 굉장히 정교한데, 유투브로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있다는 게 상상이 안 된다.
A. 구조를 상상하고 유추해 나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아무래도 상상한 것을 모두 만들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장비들도 없었으니까. 시계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전용 장비들이 있는데, 국내에서는 구하기 어려워 이베이 (외국 직구사이트)를 통해 구매했다. 그렇게 시계 무브먼트에 대한 연구는 꼬박 2년이 걸렸다.

Q. 현광훈의 카메라는 제품이라기보다는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더 큰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제작을 의뢰하는 이들도 많을 것 같다.
A. 사실 상업적인 요청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대량생산식이 아니라서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현실적으로 주문식 생산을 한다는 건 힘들다. 단품으로 제작이 가능한 것은 에디션 10개의 한정품인 ‘하트비트’시리즈 밖에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제품을 하나 만들 때마다 완성도를 높이고 싶은 욕심이 크다. 상업적인 판매용도 좋지만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서 보여주고 싶다.

 

해당 기사는 2015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