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작가]마리아 슈바르보바(Maria Svarbova), 나의 플라스틱 월드

마리아 슈바르보바는 구시대 속 행동의 조각들을 매우 동시대적인 장면처럼 담아냄으로써 여전히 우리 몸속에 남아있는 낡은 관성과 습관에 냉소를 보낸다. 이국적이고 팬시한 풍경 속 차가운 시선을 담지하는 마리아 슈바르보바의 플라스틱 세계로 초대한다.

 

Swimming Pool ⓒMaria Svarbova


파스텔톤의 달콤한 색감과 빈티지한 의상, 완벽한 화면 대칭 구조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에 흐르는 지배적인 이미지다. 마리아 슈바르보바Maria Svarbova의 작품을 보면 영화 <그래드부다페스트 호텔>이 연상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이미지적인 것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영화는 아름다운 이미지 속에 1930년대 공산주의 시기의 헝가리를 배경으로 삼아 명랑한 분위기와 괴리되는 잔혹한 이야기를 그린다. 마리아의 작품 또한 영화와 같이 보이는 이미지와 말하는 내용이 대조되는 아이러니함으로 묘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Plastic World ⓒMaria Svarbova


자연광이 들어오는 따뜻한 분위기와 아름다운 색감의 배경 속 사람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들의 눈은 아무것도 응시하고 있지 않으며,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마네킹처럼. 낭만적인 여유로움 안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이 세계를 마리아 슈바르보바는 ‘플라스틱 월드’라고 소개한다.


 

Walls ⓒMaria Svarbova


마이애미에 위치한 라이카 스토어에서 9월 28일부터 10월 30일까지 전시되는 마리아 슈바르보바의 은 서정적인 색감과 유니크한 화면 구도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미니멀하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어 지금 유럽의 어느 도시에 있는 수영장 모습 같지만, 사실 이 수영장들은 80년 이상 된 곳들이다. 문을 닫은 곳도 있다. 그는 그의 작품 속 미스테리한 장소들과 인물들이 주는 기이한 분위기는 하나의 ‘질문’이라고 설명한다. 

 

Swimming Pool ⓒMaria Svarbova


2014년에 처음 구상을 시작해 지금까지 작업한 이 시리즈를 위해 마리아는 슬로베니아 곳곳을 돌며 1930년대 무렵에 만들어진 11개의 수영장 찾아 그 장소들을 사진에 담았다. 모델들의 수영복과 수영모, 그 외의 소품들도 모두 수영장 분위기와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수영장만큼 오래된 것들 중심으로 근처 시장이나 마켓에서 신중하게 구매했다. 그는 공간 디자이너와 의상 디자이너 등 큰 프로덕션 팀과 함께 협업하며 이번 시리즈를 완성했다.

 

Walls ⓒMaria Svarbova
 

그러나 단순 미적 차원을 떠나 이번 ‘Swimming Pool’ 시리즈는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작업들 중 가장 그의 세계관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는 지금까지 ‘Human Space'와 'Plastic World', 'Wall' 시리즈를 통해 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하는 인물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넓은 공간 속 고독한 사람들의 풍경을 주로 담았다. 그리고 최근 작업인 ‘Swimming Pool’ 시리즈 또한 감정 없는 인물들의 표정과 행동을 강조했다. 이들은 컬러풀한 수영복을 입고 스포츠를 즐기는 수영장에 있지만,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나의 작품에서 인물들은 감정 없는 마네킹처럼 행동한다. 텅 빈 응시와 뻣뻣한 포즈, 감정이 부재한 모습들을 통해 나의 시리즈는 관객으로 하여금 사람들이 사회에서 행동하는 주입된 역할에 대해 질문하게 만들도록 한다. 즉 이미 주입된 삶의 역할과 그것을 채우지 못하는 무능함과 멍함, 생각 없음을 드러낸다. 그 개별 이미지는 시리즈 안에서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형성하며 또 다른 장면으로 흐른다.”

 

Swimming Pool ⓒMaria Svarbova


수영장은 물놀이를 즐기기 위해 가는 곳이지만, 사실 그곳에서 벌어지는 개인의 행동들은 매우 엄격하게 제한되고 통제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영장 안에는 많은 경고문이 붙어있다. ‘들어가지 말 것’, ‘키 몇 cm이상만 들어갈 것’, ‘청결하게 이용할 것’, ‘뛰어다니지 말 것’ 등등. 작품 속에 있는 인물들은 그 수많은 라인을 따라 서서 움직인다. 그들은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고, 똑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각자 자기 라인을 따라서서 필요한 행동(체조 정도)만 하고 있을 뿐 서로 감정을 교류하지 않는다. 수영장 속 사회는 그 안에 살균된 물처럼 매우 건조하고 삭막하다. 마리아는 이 작품의 배경이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낸 사회주의 공산국,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The Tribune ⓒMaria Svarbova

 
“이번 작업에 대한 영감은 나의 고향 슬로베니아에 있는 수영장 건물들을 보고 시작했다. 그 건물들은 80년 된 것들이다. 그 당시 수영은 다소 사회적인 활동이었다. 스포츠라기보다. 그게 아마 그 장소를 삭막하고 살균된 느낌으로 보이게 만드는 거 같다. 하얀 타일과 ‘노 다이빙 No Diving’ 이라는 사인들. 운동을 위해 만들어진 그 공간에는 네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해준다. 그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Swimming Pool ⓒMaria Svarbova


즉 그는 명랑한 분위기와 서정적인 풍경과 함께 그 안에 내재된 억압을 조용한 긴장감으로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마리아의 수영장 속 이미지들이 대부분 물의 표면에 반사되는 모습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마치 내면과 외면이 분리된 형상으로 드러난다. 사진 속 인물들이 온전한 개인이 아니라, 마치 사회의 규율과 원칙에 복종해야 하는 ‘나’와 자유 의식을 가지고 있는 ‘나’로 분리된 것처럼 말이다. 

 
“수영장이라는 장소는 이번 작업에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선명한 라인이 있고 빛이 많이 들어오는 넓고 오픈된 공간을 선호하는 데 수영장은 그런 부분에 적합했다. 그리고 가장 맘에 들었던 점은 고여 있는 투명한 물과 물의 반사였다. 나는 그것이 사람들과 그들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라 생각했다.” 

 

The Tribune ⓒMaria Svarbova


그가 포착한 이러한 사회주의 시대의 풍경은 현재와 동떨어진 단순한 과거의 기록 또는 향수가 아니다. 그는 구시대 속 행동의 조각들을 매우 동시대적인 장면처럼 담아냄으로써 여전히 우리 몸속에 남아있는 낡은 관성과 습관에 냉소를 보낸다. 우리가 그의 작품을 봤을 때 아름답고 예쁜 색감과 분위기, 그 미니멀한 풍경에 도취되어 있을 때, 우리가 붕괴됐다고 여겼던  집단주의의 잔재가 여전히 여기 남아 있음을 마리아는 차가운 눈으로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 작품들은 아름답지만 아름답지 않은 슬픈 우리의 현재이다. 이국적이고 팬시한 이 풍경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우리와 우리가 사는 플라스틱 세계일 뿐이다.

 
“나는 사람을 찍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사람의 모습이 나의 작업에 가장 큰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사람 없이는 장소도 의미 없다. 사람도 장소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다. 결국 나의 작업은 이 두 관계의 균형에 집중하는 것이다.”

 
글 오은지 기자
이미지 제공 Maria Svarbova

해당 기사는 2017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