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메이플소프 | More Life


Calla Lilies 1983 Silver gelatin 50.8×40.64cm / Milton Moore 1981 Silver gelatin 50.8×40.64cm
Clifton 1981 Silver gelatin 50.8×40.64cm / Snapdragons 1979 Silver gelatin 50.8×40.64cm
ⓒThe Robert Mapplethrope Foundation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Patti Smith 1976 Silver gelatin 50.8×40.64cm ⓒThe Robert Mapplethrope Foundation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Ken Moody and Robert Sherman 1984 Silver gelatin 50.8×40.64cm ⓒThe Robert Mapplethrope Foundation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1980년대 미국의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치며 문화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예술가로 안드레 세라노(Andres Serrano), 마돈나(Madonna),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를 꼽는다. 당시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금기시되는 성적인 요소들과 동성애에 대해 파격적인 표현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반면으로 그의 사진이 규범의 틀에 반한다고 여긴 시민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 예술가의 경우에 작품에 대한 검열의 필요성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필라델피아 현대미술관의 전시부터 시작된 보수적 성향이 강한 시민들의 극렬한 전시회 반대 시위는 상원의 지원금을 받는 코코란 갤러리에서 개최하기로 했던 1989년 유작전이 취소되도록 상원 의원들을 종용했다. 표현의 자유에 관대하다고 여겨졌던 서구 사회에서도 극렬한 비난에 봉착했던 작가의 작품 세계는 불과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대중적으로도 재평가받았다. 메이플소프 사후 30년이 지나, 한국에서 최초로 그의 전시회가 국제 갤러리 서울과 부산에서 2021년 2월 18일부터 3월 28일까지 열렸다.

메이플소프는 1963년 뉴욕 프렛 대학교에 입학하여 회화와 조각을 전공하였다. 조셉 코넬(Joseph Cornell),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에게 영향을 받은 그는 콜라주 작품을 만들다가 1970년에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잘라 콜라주의 소재로 사용하였지만 후에는 폴라로이드 사진에 푹 빠져 사진을 주요 미디엄으로 사용하였고, 1973년 첫 전시회인 <Polaroids> 후 중형카메라로 바꾸었다. 1980년대에 경력의 정점을 찍어가던 중 1986년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고, 198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생명을 불태우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France 1981 Silver gelatin 50.8×40.64cm / Bird of Paradise 1981 Silver gelatin 50.8×40.64cm
Richard Gere 1982 Silver gelatin 50.8×40.64cm / Flower 1983 Silver gelatin 50.8×40.64cm
ⓒThe Robert Mapplethrope Foundation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Self Portrait 1981 Silver gelatin 50.8×40.64cm ⓒThe Robert Mapplethrope Foundation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Leather Crotch 1980 Silver gelatin 50.8×40.64cm ⓒThe Robert Mapplethrope Foundation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그가 남긴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균형미이다. 작가의 셀프포트레이트를 보면 배경의 V자와 가죽 재킷의 곡선이 좌우 대칭을 만들어 안정감과 균형감을 준다. 또 가죽바지를 입고 있는 이미지에서도 다리 안과 밖으로 있는 삼각형 구도와 낭심 쪽 가죽 부분이 만드는 역삼각형 구도가 만나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연인이었던 패티 스미스(Patti Smith)를 찍은 사진에서는 대칭 구도를 넘어서는 아름다움이 있다. 라디에이터가 만드는 대각선과 가녀린 팔과 갈비뼈가 만드는 선, 창문의 빛과 패티 스미스 몸의 밝은 하이라이트 부분, 바닥의 섀도우가 균형감과 리듬감을 자아낸다.

패티 스미스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메이플소프는 인물 사진을 찍을 때 인물의 특징이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비전을 인물을 통해 드러내려고 하였다. 인물의 신체 일부를 프레임 안에 담아 추상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밀턴 무어의 이미지를 보면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다. 인물의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얼굴을 담는 것이 필수이지만 이 사진은 얼굴 부분을 과감히 프레임 밖으로 위치시켰다. 또 자세, 제스처 등으로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부분들도 과감하게 제외하였기 때문에 사진에서 밀턴 무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보게 된다. 캔 무디와 로버트 셔먼의 이미지에서는 백인과 흑인의 얼굴 옆면이 배치되어 있다. 백인은 검은 배경에 흑인은 회색 배경 앞에 세워 명암의 대비를 깊게 준 것이 인상적이다. 이 이미지에서 비록 인물들의 얼굴이 조망되고 있지만,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동성애에 대한 은유이다. 인물의 얼굴을 보여주면서도 이야기를 이미지에 녹여 내는 그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다.

이야기를 자유롭게 시각화했던 그는 꽃을 찍는 것이 누드를 찍는 것과 같은 방식이라고 말했다. 꽃을 찍을 때는 꽃의 잠재력을 회복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었고, 누드를 찍을 때는 미적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식물의 생식기라고 할 수 있는 꽃과 누드를 다른 의미에서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으므로 개념적 접근은 차이가 있지만 시각화된 모습에서는 유사점이 있다. 즉 꽃과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이미지들에서 동질함을 느끼게 해준다.

메이플소프는 에이즈로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자화상으로 남겼다. 에이즈에 대한 비난이 거셌던 때에 남긴 작품이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지인을 초대하여 성대한 고별 파티를 열고 영상 기록으로 남겼다. 에이즈 환자로서 죽음을 맞이하는 자신 모습을 당당히 기념하고 사별조차 유쾌한 잔치로 즐길 수 있는, 세상의 통념을 파괴하는 창조적인 예술가였다.

전시장에서 만난 감상자 한 명이 생각보다 이미지의 강도가 세지 않다고 말했다. 1980년대의 대중이 받았던 강력한 충격이 이미지가 범람하는 2020년대의 감상자에게는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예술가에 대한 평가는 그 예술가가 활동했던 당대에서 예술 작품의 가치나 그 이후에 미친 영향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의 육적인 생명의 불길은 꺼진 지 오래지만, 그의 이미지가 작가의 정신과 영혼의 불을 피우고 있다는 점에서 전시명 <More Life>처럼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영감을 주었으며 현대의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Self Portrait 1988 Silver gelatin 60.96×50.8cm ⓒThe Robert Mapplethrope Foundation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1946년 미국 뉴욕 퀸스에서 태어났다. 휘트니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필라델피아 현대미술관, 파리의 그랑 팔레 등에서 전시회 및 회고전이 열렸으며, 그의 작품은 신디 셔먼, 데이비드 호크니 등의 예술가들이 큐레이팅한 전시회로 재탄생하였다.

 


해당 기사는 2021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