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작가] Jeff Wall, 〈Appearance〉


현대사진의 거장, 제프 월의 개인전이 독일 쿤스트할레 만하임(Kunsthalle Mannheim)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제프 월의 40년간 작품세계를 돌아보는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신작을 포함한 대표작 30여점이 전시된다. 회화, 광고, 영화의 속성을 사진에 접목시킨 그의 작품들은 사진의 재현과 연출, 시선의 권력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한다.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 내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마치 서커스의 곁들이 프로그램에서 가끔씩 등장하는 몸뚱이 없는 머리들처럼, 실물을 왜곡해서 보여 주는 단단한 거울들로 둘러싸인 것 같다.… 내 동굴은 따뜻하고 빛으로 가득하다. 그렇다, 빛으로 꽉 찼다. 뉴욕에서 내 동굴보다 밝은 곳이 있을까. … 지하 동굴엔 정확히 1369개의 전구가 매달려 있다. 난 천장이 가득하도록 빽빽이 손수 배선을 했다. 한 줄 한 줄 빠짐없이. 그것도 형광등이 아닌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구형의 필라멘트 전구를 썼다. 일종의 사보타주 행위다. … 예전엔 어둠속에 쫓겨 들어가 살았지만, 이젠 나도 볼 수 있다. 남의 눈에 띠지 않는, 불가시성의 어둠에, 난 빛을 밝혔다.”
랠프 앨리슨Ralph Elison, <보이지 않는 인간> 中 


20세기 미국 흑인소설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랠프 앨리슨의 <보이지 않는 인간>은 흑인차별이 잔재한 미국 남부에서 태어난 흑인 주인공이 제도권 사회에서 끊임없이 밀려나며, 종래는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으로 취급당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대학에서 쫓겨나고, 일하던 공장에서도 밀려나며 사회에서 끊임없이 패배해간다. 타인에게 그는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일 뿐, 사회에서 계속 밀려나며 주인공은 “그야말로 그들은 모든 것을 빠짐없이 다 보면서도 정작 나의 진정한 모습은 보지 않는다”고 씁쓸하게 자인한다. 그는 자신을 보지 않는 타인의 시선에 대항하기라도 하듯, 자신의 유일한 거처인 할렘의 지하방을 전구로 가득 밝혀 빛으로 채운다.
 

Jeff Wall, After 'Invisible Man“ by Ralph Ellison, the Prologue, 1999-2001, Transparency in lightbox, courtesy the artist ⓒ Jeff Wall
 

캐나다 사진작가 제프 월(Jeff Wall)은 이 소설 속 묘사된 주인공의 방을, 그대로 자신의 사진으로 재현했다. 그는 자신의 스튜디오를 지하 동굴처럼 꾸미고, 소설처럼 정확하게 1,369개의 필라멘트 전구를 천장에 달아서 빛을 밝혀, 이 투명인간의 유일한 안식처를 그대로 연출했다. 소설 속 글로만 존재하던 인물에게, 육신을 주고, 장소를 줌으로써 소설 속 상상의 인물은 정교한 시각적 이미지로 구현된다. 제프 월은 ‘보이지 않는 인간’을 관객들이 볼 수 있도록 연출할 때, 주변에 너저분하게 널린 생활감 있는 소품을 통해 이 인물의 생활상을 짐작케 하며, 관객이 사진 속 주인공을 마주하게 하는 대신, 의도적으로 인물의 굽은 등과 어렴풋한 옆 실루엣만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는 “내 작업은 마치 그림처럼 구성이 가장 중요한데, 인물의 얼굴에 드러난 표현이나, 사회적인 의미보다, 오히려 구성을 통해 감정의 흐름을 보여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전시장에서 이 사진은 광고용으로 주로 쓰이던 라이트 박스 위에 투명한 필름 형태로 전시돼, 관객들은 사진 속 쏟아지는 빛을 실제로 마주하게 된다.

 
Jeff Wall, Picture for Women, 1979, Transparency in lightbox, courtesy the artist ⓒ Jeff Wall


시선의 배치와, 라이트 박스의 활용은 제프 월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주요한 키워드다. 그의 대표작 ‘여성들을 위한 그림(Picture for Women, 1979)’은 이런 시선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한 여성이 거울을 통해 정면을 응시하고 있고, 그 왼쪽 편에 한 남성이 카메라를 통해 거울에 비친 이 여성의 사진을 찍고 있다. 이 사진 속 남성은 제프 월, 작가 자신이다. 이 사진 속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정중앙에 있는 카메라의 렌즈인데, 여성의 시선은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음을 알고, 또한 거울을 통해 자신이 지금 관객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카메라 렌즈는 여성의 뒷모습과 그녀가 거울에 비추는 앞 모습을 동시에 찍을 수 있으며, 사진 속 작가의 시선은 여성의 실제 뒷모습을 보는지, 혹은 거울에 비친 여성의 상을 보는지, 그렇지 않으면 카메라에 비추는 모습을 보는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을 보고 있는 사진 외부의 관객의 시선이 있다.

이 사진은 보는이로 하여금 두 장의 명화를 연상케 하는데, 하나는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A Bar at the Folies-Bergère)>이고 다른 하나는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의 <시녀들(Las Meninas)>이다.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은 화려하고 떠들석한 술집을 바라보는 피곤하고 멍한 표정의 여급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그녀의 뒤에 있는 거울을 통해 관객은 술집 안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정면을 응시하는 여인의 시선과, 거울을 통해 그녀를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 그리고 거울에 비친 그녀의 뒷모습까지, 제프 월은 명화에서 이 구도를 차용하면서, 여기에 카메라의 시선까지 더하며, 다층적인 시선의 문제를 제기한다. 


 
Jeff Wall, A view from an apartment, 2004-2005, Transparency in lightbox, courtesy the artist ⓒ Jeff Wall

존 버거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시선에 작용하는 성별의 권력 문제를 언급했는데, 그는 “여자를 보는 방식, 즉 여자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며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제프 월은 이런 시선, 보는 행위에 있는 권력의 문제를 명화 속 구도를 빌어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이렇게 한 장의 이미지에 다층적인 시선의 구도를 가능케 하는 연출의 실마리를,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의 <시녀들(Las Meninas)> 작업에서 찾았다. <시녀들>에서 정면을 보는 공주와 시녀들의 시선 뒤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벨라스케스가 직접 등장하고, 그림의 중앙부에는 국왕부처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것이 거울인지, 회화인지는 잘 분간할 수 없다. 관객은 한 장의 사진 안에서 여러 시선의 중첩을 읽으며, 과연 그림 속 화가는 누구를 보고 있는지 혼란스러워진다. 

그리고 이런 다층적인 시선 구성을 제프 월은 자신의 사진에서 적극적으로 차용하며 관객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초기에는 회화적 구성을 위해 사진 속 모든 상황을 정교하게 연출했던 그는, 이후 사진 합성 등의 디지털 기술이 보편화 되면서, 90년대 이후에는 이미지를 디지털로 변용하거나 콜라주로 합성하는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에 공을 들였다.

 
Jeff Wall, Tattoos and Shadows, 2000, Transparency in lightbox, courtesy the artist ⓒ Jeff Wall

이번 독일 쿤스트할레 만하임에서 열리고 있는 제프 월의 전은 제프 월의 40년에 걸친 작품세계 변화를 살펴볼 수 있으며 특히 2010년 이후 최근작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작업들은 ‘수수께끼와 그로테스크함’,‘이미지 안의 이미지의 관계’,‘실내의 인물’,‘언어와 제스처’,‘역할극과 상호작용’ 등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5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Jeff Wall, Search of Premises, 2009, Lightjet print, courtesy the artist ⓒ Jeff Wall
 
Jeff Wall, Listener, 2015, Inkjet print, courtesy the artist and Gagosian Gallery New York ⓒ Jeff Wall

전시에서 공개된 ‘Search of Premises(2009)’ 작업에서는 사진 속 조사관들이 사건이 일어났던 현장을 재현해 실마리를 유추해보려고 애쓰며,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을 실제처럼 연출했다. 2015년 제작된 ‘Listener’에서는 어떤 집단에 의해 포획된 희생자를 볼 수 있는데, 관객은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한 장의 사진으로 서사를 유추할 수는 없지만, 불온한 분위기와 마치 희생제물처럼 보이는 사진 속 남성의 자세를 통해 곧 일어날 사건을 예측하게 된다. 제프 월은 2015년 영국 가디언지(The Guardian)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진연출은 미디어 보도에서 읽은 시나리오에 기반하고 있다”며 “누군가 사로잡혀 땅에 내동댕이 친 경우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좋은 징조는 아니다. 이 때 사로잡힌 포로를 수난당하는 예수처럼 고전명화에서의 희생자와 같은 구도로 연출하지는 않았다. 다만 불길한 사건이 일어난 공간을 다시 한번 재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Jeff Wall, Maskmaker, 2015, Inkjet print, courtesy the artist ⓒ Jeff Wall
 
2014년도 제작된 ‘Changing Room’이나 2015년도 제작된 ‘Mask Maker’는 둘 다 한 존재에서 다른 존재로 변화하는 인물을 담고 있다. ‘Changing Room’이 탈의실 안에서 한 여성이 지금 옷을 벗고 있는지, 입고 있는지를 알 수 없이 그저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Mask Maker’에서는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상가의 유리에 비춘 자기 모습을 보며, 가면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내가 등장한다. 이런 변이의 과정은 전시제목인 ‘Appearance’(등장, 출현)를 새삼 떠올리게 하며,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인 동시에 카메라로 포착된 정교한 연출의 순간이다.

제프 월의 작업은 초기의 극적인 연출이 도드라진 장면에서, 최근에서는 일상적인 상황들의 자연스러운 재현 쪽으로 경향이 변화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광고 라이트 박스를 활용한 작업과, 종이 인쇄물 형태의 2008년도 이후의 작업을 함께 선보인다. 이 전시는 순회전으로 쿤스트할레 만하임에서 전시를 마치고, 이후 Mudam Luxebourg에서 10월부터 전시될 예정이다.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Kunsthalle Mannheim


 
해당 기사는 2018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