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리어로이드 | 현실을 마주하는 거대하고 작은 차이에 대하여










ⓒRichard Learoyd



사진 속 인물들은 무표정하고, 색감은 차갑지만 그 어떤 사진보다 생기가 넘친다. 올해 동강국제사진제 참여한 작가 리차드 리어로이드Richard Learoyd의 작품이다. 작가는 <안네일기>를 쓴 안네 프랑크의 사진적 기억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Jasmine Toward Light>을 촬영에 임했고, 정물사진들의 경우 작가가 언젠가 우연히 마주한 생선과 꽃 등 정물을 피사체로 삼아 촬영했지만, 이들이 감상자에게 제공하는 신선한 감각은 기술적인 완성도와 조형적, 사진적 선택을 통해 비로소 구현된다.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업을 조금 더 세세히 살펴보았다.

제일 먼저, 창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특히 사전 준비 과정과 촬영 중 생겨나는 우연한 요소들이 궁금합니다.
제가 사용하는 스튜디오 프로세스의 특성상 사전 기획, 시각화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러한 사전 기획을 작업의 중심으로 삼지 않고 작업을 시작하는 지점으로 사용합니다. 인물을 촬영할 때는 대상 개인의 신체성을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제 작업 루틴은 일반적으로 시작할 때 매우 빠르게 사진을 만들고, 이 첫 번째 이미지에 있는 내용을 급진적인 변화, 혹은 작은 개선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창조적 과정이 그렇듯, 예상치 못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우연한 요소들에 의지하지 않지만, 저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때는 항상 환영합니다. 하루 동안 촬영하는 사진은 약 3에서 7장 정도이며, 각 촬영은 바로 그다음 촬영을 어떻게 할지 알려줘요. 제 작업은 편집 대신 결정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다른 많은 사진과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카메라 안에서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우연히 만들어진 작품도 있을까요?
제가 작업 중간에 마음을 바꾸는지 묻는다면, 제 대답은 분명히 “그렇다”입니다. 보는 것에 대해 반응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실패에 대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작업에 임하는 날이면 시감각이 아주 예리한 상태입니다. 말하자면, 저는 제 작업을 책임지며 자유롭게 도전, 실험하고 때로는 좌절시키기도 합니다. 이는 오직 자신이 보고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하는 영역입니다. 한편, 사진 매체는 본질적으로 변화무쌍한 매체이고, 그 다양성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저는 사진이 접하고 있는 이 두 가지 현실의 간극이 진정한, 살아있는 지성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인쇄 매체를 통해서는 인화지가 감광면(필름)이고, 원본 그 자체인 작업의 특성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의 작품들이 사진 ‘이미지’로서 어떤 특징과 의미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분명 제가 대형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은 재현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진의 인쇄 및 디지털 재현은 본질적으로 사진 원본의 흔적입니다. 이는 제 사진 작업뿐만 아니라 화가, 조각가 등 많은 창작자가 공유하는 문제이죠.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저는 사진이 탄력적인 성질을 갖고 있으며, 직접적인 재현을 해낼 것이라 기대합니다. 제 사진들은 재현성과 디테일, 색상에 있어 특별합니다. 이들은 제작된 크기 그대로 존재하고 복제를 통해 공유될 수 있어요. 반드시 품질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사진적 대상으로 전달되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감상자 입장에선 생생한 사진 덕에 대상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반면, 복잡한 작업 과정으로 인해 정작 작가님은 현장에서 대상과 소통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 입장에서 사진은 소통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나요?
예술가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매체의 인식 방식에 아쉬움을 느낍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제가 선택한 사진 매체에 대해 아쉬움과 보람을 모두 느껴요. 물리, 화학, 광학적 특성에 의한 제한적인 틀은 제가 작업할 수 있는 변수를 제공합니다. 저는 이러한 제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상상력을 키우고 발명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작가님의 작품은 첫눈에 깊은 인상을 주지만, 동시에 인물의 무표정과 낯선 피사체의 제스처로 인해 설명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고요, 오묘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사진의 복합적인 특성은 의도된 것인지요?
좋은 예술은 항상 복잡하고, 감정적이며 논리적으로 도발적인 면이 있습니다. 감각이나 느낌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창작과 감상은 비슷합니다. 물론 두 가지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구축된 학문적 언어가 존재하지만, 저는 감각을 느끼고 제가 보고 만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을 선호해요. 사진에 관해서는 모두가 전문가이지만, 아주 작은 다른 점이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사진은 매체로서 아주 짧은 역사를 갖고 있고, 그 매체적 관점은 개개인의 의도에 따라 다르게 정의될 수 있습니다.

리차드 리어로이드의 작품 앞에서 감상자가 느끼는 소감은 모순을 담고 있다. 모순의 원인은 작가가 제작한 대형 카메라와 50인치가 넘는 인화지를 사진의 (필름)원본이자, 결과물로 삼는 기술적 특성과 실천,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극도로 섬세한 결과물에서 비롯된다. 사진에서 카메라는 사진의 품질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카메라의 크기나 형태, 심지어 필름의 가격 등 모든 요소가 사진가와 피사체의 태도, 움직임에 영향을 미친다. 작가는 초점을 확인하기 위해 거대한 방과 같은 카메라 안으로 들어간다. 구도를 바꾸기 위해선 모델에게 위치와 포즈 변경을 요청해야 한다. 인화지를 바로 현상, 정착해야 해 작업의 속도는 느리다. 여전히 카메라는 사진가가 세상을 마주하고, 재현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다.

 

글 김진혁 객원기자
해당 기사는 2021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