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라이터 |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추상적이고 흐릿한 사진의 표면에서 언표하기 힘든 온기를 감지하곤 한다. 게다가 사진 속의 계절이 겨울이라면 그 온기는 더욱 신비롭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미국 태생의 사울 라이터(Saul Leiter)는 컬러사진이 예술로서 인정받기 이전인 1950년대부터 꾸준히 컬러사진을 탐구한 사진가이다. 색에 대한 탁월한 감각과 수십 년에 걸친 꾸준한 관심 끝에 뉴욕 컬러사진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사울 라이터의 회고전《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21.12.18-22.3.27 | 피크닉)이 진행 중이다.

사울 라이터는 1923년 펜실베이니아의 피츠버그에서 랍비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탈무드 학자인 볼프 라이터(Wolf Leiter)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독실한 유대교 집안, 특히 아버지의 영향으로 랍비가 되기 위해서 어린 시절부터 신학 교육을 받았다. 그는 23세가 되던 해인 1946년, 신학교를 떠나 십 대 후반부터 관심을 가진 미술에 대한 탐구를 위해 뉴욕으로 이주했다. 새로운 도시에서 사울 라이터는 한창 사진으로 실험 중이던 추상 표현주의 화가인 리차드 푸셋 다트(Richard Pousette-Dart)와의 만남과 사진가 유진 스미스(W. Eugene Smith)와의 우정, 뉴욕에서 진행되던 여러 사진전, 특히 MoMA(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앙리 카르티에-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전시회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다.

사울 라이터와 사진의 인연은 12살에 그의 어머니에게서 받은 카메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뉴욕에서 리차드 푸셋 다트와의 만남 이후 본격화되었다. 1948년부터는 코닥의 컬러 슬라이드 필름인 Kodachrome을 사용해 주로 도시의 거리와 친구들을 촬영했는데, 그가 가진 색에 대한 감각과 추상적인 요소의 가미는 완성도 높은 사진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컬러사진을 위한 시장이 없던 시기에 에스콰이어, 하퍼스 바자, 퀸, 노바 등에서 생계를 위해 패션 사진을 찍었고, 50-60년대부터는 성공한 패션 사진작가로 널리 알려졌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상업 사진을 찍을 때에도 스튜디오보다 거리를 선호했다는 것인데, 그는 “거리는 발레와도 같다”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결코 알 수 없는 거리를 참 좋아했다. 사울 라이터는 어디에 있던지 거리를 거닐며 온전히 개인적인 기쁨을 위해 사진 촬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단순한 것이 지닌 아름다움을 믿는다. 전혀 관심을 끄는 데가 없는 대상도 굉장히 흥미로울 수 있다고 본다.” - 사울 라이터

사울 라이터가 주로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던 것은 거리의 네온사인과 조명, 빨간 벽돌과 우산, 노란 택시 등 다양한 색채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거리면 거리, 사람이면 사람을 개별적으로 보여주던 사진이 인정받던 시기에 이런 종류의 사진들은 당시 대중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게다가 당시 거리 사진에서 유행하던 흑백사진도 아니고, 은밀한 시야와 불안정한 각도에 어딘가 흐릿하기까지 한 사진이다. 사울 라이터의 조수였던 마지트 어브가 말했듯 그는 사진을 촬영할 때 모든 규칙을 파괴하고 추상적인 것과 색채에 관심을 기울이며 전경의 초점을 흐려 마치 걷는 중에 흘긋흘긋 쳐다보는 듯한 시선을 묘사했다. 그렇게 무엇을 찍었는지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 그의 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사진 속에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는지 궁금하게 만들며 때로는 더 오래 깊숙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러한 사울 라이터의 시각적인 성향에 대해서 작가 오타케 아키코(Otake Akiko)는 “엄격한 양육 환경에서 뿌리 깊게 스며든 금욕적 태도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사진에서는 그의 성격이 엿보인다. 수줍음 많고 겸손하며, 무작정 밀어붙이고 단정하는 대신 관찰에 공을 들이는 주의 깊은 성격.”이라 말했다. 저명한 탈무드 학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랍비 교육을 받으며 보낸 유년 시절의 시간들이 녹아있는 것이다. 수줍은 관찰을 통해 탄생한 그의 사진은 대부분 유리를 관통해서 촬영된다. 창문이나 거울에 비치는 거리와 사람, 젖은 유리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흐릿하게 보여주는 그의 시각은 따듯하고 아름답다. 기획자이자 예술사가 리사 호스테틀러는 “그의 사진들은 리듬과 움직임, 도시에서 포착되는 감각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도시의 감각들! 사울 라이터의 작품은 시각적인 완성도로 널리 인정받는 영화 <캐롤>(2015년 개봉)이 제작되는 데에 큰 영감을 주었다. <캐롤>의 감독 토드 헤인즈는 1950년대의 뉴욕을 묘사할 때 창문이나 거울, 차창, 쇼윈도를 통해 인물들을 보여주는 방식을 많이 택했는데, 이는 모두 사울 라이터의 사진에서 빈번하게 드러나는 특징이다.

그는 “책을 소장하는 게 좋다. 그림을 감상하는 게 좋다. 인생을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좋아서 내게 마음써주는 이에게 나도 마음을 준다. 내게는 이것이 성공보다 중요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현재 많은 사람과 작품의 영감이 되고 예술가로서 인정받는 사울 라이터는 당대 주목받지 못했으나 그런대로 자신의 삶을 낙관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인퍼블릭(iN-PUBLiC)에서 사진가 데이빗 깁슨(David Gibson)과의 인터뷰 중에 이렇게 말했다. “사진가들 자신이 무얼 했는지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크림이 항상 표면 위로 떠 있지 않듯이 예술의 역사는 위대한 것이 방치되고 무시되며 나쁜 것들이 존중받는, 그러다가 피카소의 후기작이 재평가되는 것처럼 예술작품과 예술가 등을 바라보는 방식이 계속해서 바뀌어 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970년대 뉴 컬러 사조가 등장하기까지 컬러사진은 주로 광고 사진에만 쓰이며, 예술사진은 흑백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팽배했던 시기에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그것을 즐기며 나아갔다. 결국 끊임없는 재조명을 통해 지금 사울 라이터는 위대한 컬러 사진의 선구자로서 여겨진다. 컬러사진이 예술로써 인정받기 시작한 1970년대보다 훨씬 전부터 홀로 지속했던 사울 라이터의 컬러사진에 대한 애정과 노력을 감안한다면 “선구자”라는 칭호는 다소 인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해당 기사는 2022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글 류지훈 기자  사진제공 사울라이터재단(Saul Leiter Foundation), 피크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