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작가]조슬린 리(Jocelyn Lee), Appearance of Things


여성이 아무 데나 널브러져 있다. 숲의 덤불 속에 누워 있고, 바위 위에 서 있으며, 햇볕 아래 앉아 있고, 고요한 호수 위에 떠 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녀들은 늘어진 피부와 노출된 성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다. 다만 온몸으로 생의 감각을 느끼는 중이다.
조슬린 리(Jocelyn Lee)의 작품은 우리의 살갗을 건드린다. 작품 속 인물들이 느끼고 있는 물의 흐름과 꽃의 기운, 빛의 온도 등이 작품 안에서 작품 밖으로 생생하게 흐른다. 삶과 죽음에 대한 감각이 몸에서 몸으로 통과한다. 몸에서 사물로, 사물에서 풍경으로 통과해 간다. 당신에게도 이 감각이 느껴지는가.


 
 

“우리는 결코 무(無) 속에 머물러 있지 않다. 우리는 항상 충만 속에, 존재 속에 있다. 마치 얼굴이 쉬고 있을 때나 심지어 사망해 있을 때도 늘 무엇인가를 표현하지 않을 수 없게끔 되어 있는 것처럼.”
-메를로 퐁티, 『지각의 현상학』


조슬린 리가 보여주는 ‘살의 세계’는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 ) 의 현상학에서 출발한다 . 그녀는 “Appearance of Things” 시리즈에 대한 설명을 메를로 퐁티의 문장들로 대신하기도 한다. 그녀에게 사물의 몸, 껍질, 살갗 따위는 텅 빈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 자체로 충만하다. 지각의 주체가 몸이 되는 순간, 정신에서 해방된 몸의 감각이 작품 속에서 되살아나는 것이다.


특히 몸의 감각이 이성적 사고와 가부장적 세계관에서 만들어지는 질서와 규율을 벗어나는 순간 사물과 인물, 인물과 풍경의 경계가 사라진다. 그녀의 “Appearance of Things” 시리즈에서 여성의 몸은 꽃처럼 피었다가, 떨어지는 열매가되고, 한데 뒤섞여 서로의 정물이 되고, 풍경이 된다. 이러한 피부와 감각의 세계에서는 나와 너, 사물과 타인의 관계가 ‘우리’ 안에서 연결된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가는 존재이고, 그 바깥을 향해 함께 던져진 존재인 것이다.


조슬린과 그녀의 작품 속 여성들은 모두 외부 세계를 향해 몸을 던진다. 삶과 죽음이 뒤엉켜 축축하다 바스락거리고, 우울하다가 충만해지고, 부풀어 올랐다가 수축하고 흔들리는, 그 피할 수 없이 넘쳐나는 감각의 충만함에 대해 물었다.


 

Jocelyn Lee, The Appearance of Things, The Empty Mirror, 2016 ⓒJocelyn Lee


Jocelyn Lee, The Appearance of Things, Dark Matter #1, 2016(left panel) ⓒJocelyn Lee


당신은 “Appearance of Things” 시리즈에 대해서 “나의 작품은 신체가 풍경이 되고, 정물이 초상이 되고, 풍경이 신체가 되는 관점의 이동을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경계 없는 인식의 흐름과 연결, 그리고 순환의 과정이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시리즈에 대한 당신의 언급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달라. 신체의 물리적인 속성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우리 몸이 지니고 있는 물리적 속성은 우리가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물체들처럼 덧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우리는 태어나서, 늙어간다. 그리고 결국엔 죽는다. 나의 작업은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기념하는 것이자, 솔직하게 알아보는 과정과 같다. 그러한 사실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하거나 피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이러한 본질적이면서 감각적인 진리를 우리 주변의 살아있고, 동시에 죽어가는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당신의 작품은 촉감과 시각적 효과가 매우 강조되어 있다. 이러한 감각에 집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효과가 마치 신체를 어떤 의미망을 벗어난 하나의 물질적인 대상처럼 느끼게 하는 것 같았다.
맞다. 나는 카메라는 광학기기일 뿐이라 생각하며,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이름을 짓는 일 또한 이러한 시각적인 것을 통해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대상을 눈으로 인식하고 이름을 짓는 일은, 대상을 의미와 가치를 서열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여자(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는 나이가 많은 여자보다 더 가치 있는 대상으로 평가 받는다. 늙은 몸을 노출하는 것을 금기처럼 여기고, 그 몸을 더 이상 섹슈얼한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풍경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며, 동물은 물건으로 취급한다. 나의 작품은 대상을 바라볼 때 발생하는 우리 인식상의 고정관념을 무력화시키고, 우리 인식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것에 중점을 둔다.


당신의 작품은 특히 여성의 몸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사회 안에서 금기화된 것들과 우리의 문화가 억압하고 있는 것에 관심이 많다. 늙은 여성의 몸을 더 이상 섹슈얼하지 않고, 감각적이지 않은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화가 난다. 그것은 남성적인 목소리와 젊은 층의 왜곡된 취향과 선호에 의해 지배되어 온 인식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사회를 이루고 있는 많은 구성원을 침묵시키는 그러한 인식을 받아들이고싶지 않다.


 

Jocelyn Lee, The Appearance of Things, Late September, 2017 ⓒJocelyn Lee


Jocelyn Lee, The Appearance of Things, Dark Matter #12 (White Sinking Rose), 2017 ⓒJocelyn Lee 53


그래서 유독 나이가 많은 여성들의 모습에서 어떤 능동적 태도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가령 늙은 여성의 몸에서 죽음에 대한 좌절이나 무력감보다 어떤 에너지가 느껴진다. 인생의 취약함 속에서 어떤 강함이 느껴지고, 환희의 감정과 멜랑콜리가 동시에 느껴지기도 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작품에서 말하고 싶었던 지점이 바로 그런 부분이다. 내 작품 속 이미지들이 진실하고 평화롭기를 바란다. 그러나 결코 그것이 거짓이 아니길 바란다. 늙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늙는 것은 우아하고 관능적인 것이기도 하다. 나는 젊음이 무조건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젊음에는 무지와 허영심 또한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젊음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나는 외적인 아름다움과 내적인 아름다움을 동시에 드러내고 싶다. 그 두 가지 측면 모두 매우 중요하고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순간이 가장 아름답고 강력한 순간이라고 느낀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당신이 표현하는 신체는 단순한 감각기관이 아니라 어떤 강력한 내면을 담보하는 것 같다.
내면 또한 ‘세계’라는 큰 감각 조직의 한 부분이다. 그것은 물질과 구조의 자극을 통해 느끼게 되는 감각이다. 우리 앞에 살아 나타나는 것이 아닐지라도, 우리가 매일 즐기고 유영하면서 느끼는 감각적 향연의 한 부분이다.


“Appearance of Things” 시리즈는 “Dark Matter” 시리즈와 “Bountiful” 시리즈가 결합된 프로젝트인 것 같다. 이렇게 구성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알려 달라.
두 개의 시리즈, “Dark Matter”와 “Bountiful” 시리즈는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했다. 두 개의 아이디어는 동시에 떠올랐다. 열매는 나무에서 열리고 무르익은 뒤, 시들고 썩고 사라지지만 그 열매는 동시에 가장 아름답고 감각적인 그 상태를 찬양한다. 풍경 속 여자들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젊고, 어떤 이는 늙었지만 그들 모두는 감각적인 존재다.


 

Jocelyn Lee, The Appearance of Things, The Cove, 2017 ⓒJocelyn Lee


Jocelyn Lee, The Appearance of Things, Dark Matter #5 (Sunflower and Sky), 2016 ⓒJocelyn Lee


여성의 신체 이미지로 구성된 “Bountiful” 시리즈와 정물 이미지로 구성된 “Dark Matter” 시리즈의 작품들을 함께 배치해 딥틱(diptych) 등으로 전시를 구성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정물사진 속 사물과 포트레이트 속 신체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시를 구성하고 설치할 때 작품 간 배치에서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나는 대상과 대상 간의 거리와 차이의 감각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가령 동물과 인간, 과일, 채소, 풍경, 초상화 등을 연결하고 싶다. 결국 초상화란 무엇인가 질문하게 된다. 초상화에는 꼭 얼굴이 있어야 할까? 나무의 초상화는 무엇일까? 인간의 몸은 풍경이 될 수는 없을까? 이미지를 통해 동물의 의식 수준을 증명할 순 없을까? 그래서 초상화에 담긴 인간보다 더 중요하게 표현할 순 없을까? 철학적으로 그리고 그냥 말 그대로, 내 작업은 경계와 구분을 흐리게 하는 것이다.


당신의 작품을 관객들이 어떻게 경험하길 바라는가.
글쎄, 어떤 사람들은 내 작품 속 당당한 나체의 모습을 불편해한다. 우리 모두 늙고 죽어가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늙어가는 것을 마주하기 싫어한다. 나의 작품 속 여성들은 매우 용감하고, 나체의 그들을 보길 원하지 않는 불편한 상황과 문화를 당당히 직면하고 있다. 나는 그들의 그런 점을 사랑한다. 한편 이러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기뻐하는 관객들도 많다. 그들은 이러한 작업에 대해 안도
하는 것 같았다.


현재 작업 중인 다음 작품의 제목이 ‘Personal HIstory’로 알고 있다. 왠지 “Appearance of Things” 시리즈 속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욱 확장될 것 같아 흥미롭다. 어떤 내용인지 간단하게 설명해달라.
나의 다음 작품은 35세 이상 여성들의 몸에 대한 정신학적인 추적이다. 어떤 케이스는 유년기에서 성인기까지의 시간에 대한 것이고, 또 다른 케이스는 중년의 시기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에 대한 것이다. 시간에 따라 한 개인이 갖게 되는 자의식, 그리고 몸과의 관계에 대한 궤적을 담는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이, 내면에 있는 것들이 시간과 함께 외부로 나타나며 명백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슬린 리(Jocelyn Lee, 1962~)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어나 현재 미국 메인 주 포틀랜드와 뉴욕 브루클린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구겐하임 펠로쉽(2001)과 뉴욕필름아카데미의 펠로우(2013)에 선정된 바 있으며, 뉴욕의 Pace/MacGill과 런던의 Huxley Parlour, 암스테르담의 Flatland 등 다수의 갤러리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을 진행했다. 유럽 사진의 집(Maison Européen de la Photographi)과 예일대박물관(The Yale Museum of Art), 포틀랜드미술관(The Portland Museum of Art)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글 : 오은지 기자


해당 기사는 2019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