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사진공간 탐방




사진 공간은 때론 그 곳의 사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사진공간이 있기에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작품을 볼 수 있으며, 서로 교류할 수 있다. 이런 교류를 통해 그 지역의 사진문화 역시 특색있는 성격을 가지며 자리 잡을 수 있다.


서울 보다 면적이 약 3배 이상 더 큰 도쿄에서는 도시의 구석구석 사진공간들이 많으며, 공간들 특유의 특성이 있다. 그 중에는 국제적인 상업 갤러리나 도쿄사진미술관처럼 대규모의 공공미술관도 있지만, 지슈갤러리라 불리는 자주공간(自主空間)이나 사진책을 전문적으로 접할 수 있는 예술, 사진서점까지 크고 작은, 다양한 성격의 사진공간들이 존재한다. 일본 사진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들이 주로 활동하는 일본 사진공간에 대한 이해가 앞서면 좋다. 약 일주일 동안 도쿄 현장 취재와 현지인들의 추천을 통해, 도쿄 구석구석 역사적이고 특색있는 사진공간을 탐방했다.


사진책 출판과 전시공간을 겸하는 사진갤러리


일본 사진갤러리의 특징 중 하나는 갤러리와 사진집 출판사를 같이 겸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갤러리들이 그 안에 작게나마 자신들이 출판한 사진책들을 전시하는 공간을 같이 갖추고 있다. 사진책 디자인과 출판에 있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일본 사진문화를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피지아이 갤러리
 

도쿄의 굵직한 예술 갤러리는 록뽄기와 에비스, 긴자를 중심으로 한 삼각형 지대에 대부분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지역은 도쿄의 문화, 상업의 중심지로 주요 금융 기관부터 쇼핑몰, 사무실 등이 밀집해있는 거리이다. 록뽄기는 모리 아트 타워와 도쿄국립신미술관과 이웃해 있으며 이 주변으로 아트 갤러리들이 산적해 있다. 록뽄기에서 사진을 중심으로 돌아봐야 할 갤러리는 타카이시 갤러리, 젠 포토 갤러리, 피지아이 갤러리, 카나 카와니시 갤러리 등이 있다. 타카이시 갤러리는 현대미술전시를 주로하는 타카이시 갤러리와, 사진과 영상 작업을 주로 전시하는 타카이시 포토그라피/필름 갤러리 두 개를 록뽄기에서 운영하며, 홍콩아트바젤이나 파리포토 같은 해외 아트 마켓에도 일본 사진작가들의 작업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젠 포토 갤러리의 경우 영국 출신의 마크 피어슨 관장이 운영하고 있으며, 피지아이 갤러리는 1979년부터 시작된 도쿄에서 가장 유서 깊은 사진전문 갤러리 중 하나로 일본 사진기행을 하는 이들이라면 필수적으로 들리는 코스이다.


카나 카와니시 갤러리에서는 한국과 일본작가들의 교류전인



에비스에 위치한 지피 갤러리는 사진집 전문서점인 NADiff A/P/A/R/T와 같은 건물에 위치하고 있다. 마침 이 곳을 방문한 7월에는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행사 준비에 분주했다. 지피갤러리는 도쿄사진예술미술관이 가까이 위치해있는데다, 아 건물 안에 두 개의 갤러리와 사진예술서점 공간이 위치해 있어 사진 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피 갤러리에는 거장급 작가들 외에도 다이스케 요코타나 마유미 호소쿠라, 유미코 우츠 등 일본의 젊은 세대 작가들이 소속돼있다.
 
아키오 나가사와 갤러리


쇼핑의 중심가인 긴자지역에 위치한 사진 갤러리들도 살펴볼 만하다. 아키오 나가사와 갤러리는 현대미술전시와 함께 종종 사진 전시도 열리는데, 대가들의 작업 위주로 선보인다. 가디안 가든 크리에이션 갤러리의 경우 반대로 전시 작가들이 35세 이하라는 제한을 두고 있다. 리크루트 그룹이 운영하는 이 공간은, 젊은 작가들을 공모전으로 선발해서 전시공간과 사진책 출간을 지원하는, 일본 사진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일본 사진의 뿌리 깊은 힘, 자주공간(自主空間)


일본 사진공간을 논할 때 자주공간(自主空間)을 빠트릴 수 없다. 이 전시공간은 작가 및 사진 애호가로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경영하며, 재정적 부담도 1/n로 운영진들이 함께 나눈다. 작가들이 직접 운영하는 대안 공간적 성격으로 바라볼 수 있다. 주로 10명에서 20명 내외의 작가들이 운영멤버로 참여하고, 매년 일정 회수 이상,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이 공간 안에서 전시를 가진다.


 

토템폴 갤러리


일본 사진계에서도 사진만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전업작가들은 적기에, 대부분 작가들은 다른 생업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게 된다. 때문에 자주공간의 운영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전시를 정기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작품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토템폴 갤러리의 운영멤버인 강미선씨는 “정기적으로 전시를 가져야 하니까, 부담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사진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하게 되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플레이스 엠


각 자주공간들은 길게는 10년 이상 운영된 곳도 있고, 이제 막 자생적으로 시작한 공간들도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자주공간들의 경우 그 구심점이 되는 유명 작가들이 있는데, 토템폴 갤러리는 아리모토 신야, Place M은 세토 마사토, 포토그래퍼스 갤러리는 기타지마 게이조 등이 운영멤버로 참여해 있다. 이런 자주공간은 때론 Place M이나 Photographer's gallery처럼 사진책 서점을 함께 경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암실이나 인쇄 공간을 사진작가들에게 대여하고, 워크샵을 진행하는 공간도 있다. 단지 사진 공간만이 아니라, 사진작가 지망생들을 모아서 교육하고, 전시 및 출판 기회를 주며 사진문화를 견인하는 뿌리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썰드 디스트릭트 갤러리의 입구에 배치된 사진전 안내 코너


자주공간 멤버들은 공간 운영과 관리를 외부 인력 없이 자체적으로 꾸린다. 그중에는 사진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전업 작가도 있지만, 대게 생업을 겸하기에 전시공간에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다. 매번 멤버들이 순번을 정해서, 하루 중 잠시 시간을 내 전시장을 열어놓고 다시 생업으로 돌아갔다가, 저녁 퇴근 후에 전시장 문을 닫으러 오는 경우가 많다. 신주쿠의 썰드 디스트릭트 갤러리를 방문했을 때도, 독일인 멤버인 Manuel van Dyck은 점심시간 잠깐 짬을 내서 전시장을 오픈해놓고 다시 직장으로 급하게 복귀하려는 참이었다.


자주공간은 일본 작가들에만 한정짓는 것은 아니어서, 사진에 관심 있거나 사진을 전공하는 외국인 멤버들도 운영에 공평하게 참여하고 있다고. 전시 역시 멤버들의 전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작가들에게 공간을 대관하기도 하고, 또 자체적인 초대전, 기획전을 가지기도 한다고. 토템폴 갤러리를 방문했을 때, 마침 한국 강재구 작가의 전시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자주공간의 규모는 다양하다. 도쿄의 갤러리들이 전반적으로 비싼 땅값 때문에 큰 공간을 가진 경우가 드문데, 특히 자주공간들은 한 뼘만한 공간부터, 건물 2,3층을 같이 씨는 공간까지 다양했다. 특히 도쿄의 갤러리들은 자주공간이 아니라 상업 갤러리라도 1층 대로변에 위치해 쇼윈도우를 가진 경우가 드물고, 주로 건물의 3,4층 이상에 위치해 있어 처음 가는 사람은 잘 찾기 힘든 경우가 많다. 신주쿠의 자주공간을 둘러보는 동안, 30도가 넘는 도쿄의 뙤약볕 아래서, 무거운 카메라를 든 관객들이 이 자주공간을 순례하듯이 돌고 있는 모습을 자주 마주쳤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진지하게 사진을 마주하고 다시 다른 공간으로 순례하듯 옮겨가는 관객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자주공간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각 공간의 앞 쪽 통로나 현관문 쪽에, 다른 자주공간에서 하고 있는 전시의 팜플렛들이 잘 비치돼 있다는 점이다. 보통 우리나라 전시공간의 경우 지금 열리고 있는 전시나, 앞으로 같은 공간에서 열릴 전시만을 홍보하는 반면, 자주공간 앞에 마련된 다른 작가들의 전시 소개 팜플렛과 포스터는 일본 사진작가들이 서로 주고받는 일종의 풀뿌리 네트워크인 셈이다. 사진전 팜플렛과 포스터를 벽 한면에 마치 또 다른 전시처럼 잘 배치에서 보여주고 있어서, 지금 도쿄에서 어떤 사진전이 열리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한다.


일본 사진책 전문공간

일본 사진계에서 사진책은 때론 전시보다 더 중요한 요소로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오래 활동해온 박진영 작가는 “우리나라는 사진을 전공하고 졸업전이나 석사청구전이란 형식으로 전시로 데뷔하고, 이때 주목받거나 해서 전시를 몇 번 가지고, 이후 사진책을 출간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본은 정 반대이다”며 “사진공모전 등에 입상해서 사진전문출판사나 기획자의 눈에 띄면 사진 책을 출간하게 되고, 이 사진책이 주목받고 화제가 되면 이후 사진전시의 기회를 얻어 첫 개인전을 여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만큼 사진책이 중요하기에, 그 디자인과 편집, 인쇄의 질에 신경을 많이 쓴다. 일본 사진책이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츠타야 긴자 사진예술서적 코너
 
 

츠타야 긴자 내부에는 작가의 사진책과 사진작품이 함께 전시되는 갤러리도 위치한다.


사진책 천국인 일본에서 사진책을 마음껏 접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은 긴자 츠타야와 에비스의 NADiff A/P/A/R/T를 꼽을 수 있다. 지난 1983년부터 시작된 츠타야 서점은 일본을 대표하는 대형서점으로 책 판매에 앞서 ‘취향을 설계하는 곳’ 이다. 특히 긴자의 츠타야는 긴자의 중심가에 새로 생긴 긴자 식스 쇼핑몰 안에 입점해 있으며, 사진책 공간이 크고 충실하다. 일본 국내외의 사진 서적뿐만 아니라 사진전시를 함께 진행하는 갤러리도 갖추고 있으며, 중국현대사진특집처럼 하나의 테마로 사진집을 모아 별도 부스에서 소개하고 있었다. 츠타야의 사진전문코너 담당인 후미아키 밤바(Fumiaki Bamba)씨는 “다이칸야마의 츠타야가 디자인 서적 중심이라면 긴자 츠타야는 좀 더 예술서적, 사진서적 중심으로 꾸려졌다”며 “이 곳에서는 새로 출간된 사진집 뿐만 아니라, 과거 출한 후 절판된 희귀 사진책들도 볼 수 있는데 이런 절판본은 매장 운영자가 직접 헌책방을 돌면서 발굴해내기도 한다”고 전했다.


한편 에비스의 NADiff A/P/A/R/T 역시 사진책 전문 서점으로, 이 곳은 도쿄사진미술관 안에 분점을 경영하기도 한다. 갤러리와 함께 운영되는 복합예술건물안에 위치해 있어 사진서적과 전시를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이 밖에도 같은 에비스 지역에 위치한 사진책 출판과 사진서점을 함께 겸하는 POST나, 사진책 도서관과 까페를 함께 운영하는 메구타마 까페 등에서도 일본의 사진책 문화를 접할 수 있다.


한편 일본 사진책에 관심있다면, 오프라인은 아니지만 온라인 상에서 최신 사진책 정보를 손쉽게 찾고, 주문할 수 있는 사이트도
있다. 2013년부터 ‘일본과 아시안 사진을 세계로’라는 캐치프라이즈를 걸고 시작한 shashasha (www.shashasha.co) 사이트에서는 최근 출간된 사진책들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대형출판사부터 독립출판사의 출간서적까지, 일본 뿐 아니라 아시아지역 사진책들이 충실하게 구비돼있어서 다양한 사진책들을 고르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록뽄기
타카이시 갤러리 TakaIshi Gallery (www.takaishiigallery.com)
젠 포토 갤러리 Zen Photo Gallery (www.zen-foto.jp)
피지아이 갤러리 PGI Gallery (www.pgi.ac)
카나 카와니시 갤러리 Kana Kawanishi Gallery (www.kanakawanishi.com)

에비스
도쿄사진예술미술관 Tokyo Photographic Art Museum(topmuseum.jp)
지피 갤러리 G/P Gallery(gptokyo.jp)

긴자
아키오 나가사와 갤러리 Akio Nagasawa Gallery (www.akionagasawa.com)
가디안 가든 크리에이션 갤러리
Guardian Garden Creation Gallery G8 (www.rcc.recruit.co.jp)

신주쿠
토템폴 갤러리 Totem Pole Photo Gallery (tppg.jp)
썰드 디스트릭트 갤러리 Third District Gallery (www.3rddg.com)
포토그래퍼스 갤러리 Photographer's gallery (www.pg-web.net)
플레이스 엠 Place M (www.placem.com)
레드 포토 갤러리 Red Photo Gallery (photogallery.red)

긴자
츠타야 서점 Tsutaya Books (www.store.tsite.jp/ginza)

에비스
나디프 아파트 NADiff a/p/a/r/t (www.nadiff.com)
포스트 POST (www.post-books.jp)
메구타마 PHOTOBOOK DINER MEGUTAMA (www.megutama.com)

온라인
shashasha (www.shashasha.co)



 
글 석현혜 기자

해당 기사는 2018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