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하춘근 〈Justice〉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생길 수 밖에 없는 이견을 기꺼이 수용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中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보면 “분노는 이익을 취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무언가를 얻는다고 생각할 때 느껴지는 특별한 종류의 분노, 즉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다 - 탐욕은 악덕이고 나쁜 태도다. 특히 타인의 고통을 망각하게 만들 때는 더욱 그러하다.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악덕일 뿐만 아니라, 때로는 시민의 미덕과도 상충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마이클 샌델의 이 책이 당시 한국 사회에 일으켰던 ‘정의 신드롬’은 저자 스스로 놀랄 정도였는데,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함에 익숙해지고 체념하고 있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특히 지난 2016년 10월부터 2017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들의 행렬은 이런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분노이자, 변화의 의지였다. 하춘근 작가가 촛불집회와 세월호 참사를 사진으로 기록한 작품들을 전시하며 〈Justice〉, 정의란 제목을 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BE_J_Candlelight, 2017


BE_J_Life Jacket, 2017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처음 태블릿 보도 이후 이어지는 뉴스들을 보니 ‘이게 뭐지?’ 싶더라고요. 이거 정말 내가 바보가 될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이대로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4차 촛불집회부터 참여해서 쭉 사진을 찍었어요. 처음에는 나가서 구호를 외치지도 못했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그들을 보면서 ‛나는 뭐지?’라는 정체성의 혼란이 왔어요. 인파에 묻혀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이 작업을 해야겠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던 양면성을 여기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하춘근은 이전 ‘Big Eye: Ground Zero’시리즈에서 ‘파괴와 재건’이라는 인간의 양면성에 관해 물었다. 그는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와 9.11 테러가 발생했던 뉴욕에서 찍은 사진들을 여러 컷 응축시켜 회화적인 이미지로 선보였다. 그리고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에 따른 대통령 탄핵과 촛불 집회를 보면서 그 ‘파괴와 재건’이란 주제가, 멀리 갈 것 없이 바로 자신이 발 딛고 선 이 땅의 문제임을 실감했다. 세월호 참사가 인간 본성의 파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면, 촛불은 재건의 본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지나친 탐욕은 사회에서 억제되어야 할 탐욕ʼ이라고 하잖아요. 이번 사건들을 반추해보면, 우리가 정말로 지나친 탐욕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물론 사람은 다 욕망이 있지만, 지나친 탐욕은 좋은 사회를 위해 억제해야할 악덕이죠. 대통령의 거짓말, 비리 등을 보면 이게 엄청난 탐욕이구나. 우리가 촛불 광장에서 본 사람들의 요구가 바로 ‘정의를 바로 세우자’는 일련의 활동이며, 사회 공동선을 위해 탐욕을 억제시킬 수 있는 행위라고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이 전시를 통해 ‘정의는 이것이다’ 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질문을 던지고플 뿐이다. 그는 세월호 사건으로 숨진 304명의 희생자 수만큼 구명정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들을 한 장으로 응축시켰다. 광장에서 마주친 수백 명의 촛불들도 다시 한 장으로 응축시켰다. 단지 그것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이 사건과 관련된 빅데이터를 인터넷 사이트에서 산출해 일일이 그래픽 작업으로 이미지화했다. 급기야 그는 촛불과 구명정 사진의 프레임을 흑백으로 바꾸고, 반을 갈랐다. 이런 일련의 작업과정은 하나하나가 고민의 연속이었다.


 

BE_J_Needs, 2017


BE_J_ G Square, 2017


 “촛불을 반으로 가르면서, 작품 프린팅을 넘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어요. 이게 맞겠지? 그래, 가자. 스스로 묻고 또 물었죠. 작가는 자기 작품의 마지막 단계까지 고민할 수밖에 없고 그게 작가의 숙명인 것 같아요. 이미지의 속성이란 늘 새로움이어야 하고, 또 사진이란 물성을 이용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진을 둘러싼 화이트와 블랙이 이중 프레임이고, 이게 단순히 촛불은 화이트이고, 블랙은 태극기다, 이런 좌우 진영을 가르는 논리가 아니에요. 그럼 ‘정의’는 뭐지? 이 작품을 보는 각자가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그는 작가는 물음을 던지고 생각게 하는 존재이지, 답을 내놓는 존재는 아니라고 강조하며, 다만 “이미지가 반으로 갈린 것은 모순된 인간의 양면성이며 파괴의 본성과 재건의 본성을 상징한다”고 귀띔했다. 지난 몇 달간 우리는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가 몰락하고 파괴되는 모습을 생생히 지켜봤으며, 또 한편으로는 무너진 정의를 재건코자하는 움직임들도 보았다.

파괴와 재건, 그리고 정의까지, 하춘근 작가가 이번 〈Justice〉 전시에서 묻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모든 작품에는 심장이 있어요. 이번 전시작이 16작품이지만, 내 가슴이 울리는 정도가 다 틀려요. 세월호 희생자들의 304개 구명조끼를 하나하나 찍으면서 심장이 쿵쿵 울렸어요. 그때의 울림, 소리, 내 나름의 느꼈던 감정들을 이번 작품 안에 담았습니다.”

전시일정 2017. 4. 12 - 4. 29
전시장소 금보성 아트센터

 

글 석현혜 기자 
해당 기사는 2017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