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훈, 사진으로 시대를 진술하다

인도네시아 주석광산, 베트남 노천탄광, 페루 금광도시, 우즈베키스탄의 사막화, 우리는 사진을 통하여 인간의 욕망, 그 뒤의 참담함을 보고 있다. 성남훈 사진전 “패 FAIT”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힘’을 실감케 한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오늘도 가장 열악한 조건과 환경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사진 속에서 우리를 응시한다. 그들에게도 희망이 있을까? 끼니를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하루의 생존을 위하여 미래를 방치하는 이들에게 다른 생존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런 무거운 의문에 답을 낼 길 없어 사진 속으로 더 깊게 들어가 본다. 인도네시아 주석광산, 베트남 노천탄광, 페루 금광도시, 우즈베키스탄의 사막화, 그 어떤 것 하나에도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우리가 사진을 통하여 인간의 욕망, 그 뒤의 참담함을 보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성남훈 사진전 “패 FAIT"는 참으로 오랜만에 ‘다큐멘터리 사진의 힘’을 실감케 한 강렬한 전시였다.


 




ⓒ성남훈, 방카섬 주석광산, 2016


우리의 부는 어디에서 오는가?
지난 4월, 일우사진상 수상 기념으로 열린 성남훈의 “패 FAIT"는 11개국에서 촬영한 다양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사실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표현 자체가 생존을 위해 처절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에게는 미안할 따름이다. 누구에게나 하루를 산다는 것은 하루의 죽음을 의미한다지만 이들의 삶은 아예 죽음과 등을 맞대고 있는 형국이어서 너무나 위태로워 보인다. 오염되고 열악한 노동환경, 정착하지 못하고 난민으로 떠도는 삶, 에이즈로 죽어가는 사람들, 전쟁터와 놀이터가 혼재되어 있는 일상...

21세기, 문명시대에 이들은 왜 아직도 온갖 십자가를 다 짊어진 것처럼 살아야 하는 것일까? 작가는 바로 이 질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왜?”라는 물음은 곧 우리에게 돌아오는 부메랑이 된다. 더 많이 가지려는 문명세계의 욕망이 제3세계의 무분별한 파괴와 착취의 원흉이기 때문이다. 순박하게 농사를 짓고 살던 동네가 어느 날 금광, 탄광으로 북적거리면 삽과 곡괭이를 버리고 돈이 된다는 채굴에 매달린다. 그러나 자원이 바닥을 드러내면 원상복구도 하지 않은 채 자본은 물러가고 이젠 농사도 지을 수 없게 파헤쳐지고 오염된 땅만 남는다. 단물이 다 빠진 곳에서 이삭을 줍듯이 하루를 연명할 채굴에 매달리는 그들은 심각한 환경오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생활을 한다. 말 그대로 살아가는 것인지 죽어가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잘 사는 나라는 제3세계에 빚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가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성남훈, 방카섬 주석광산, 2016


성남훈 작가는 이런 관점으로 제3세계를 바라본다. 그러나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개인의 고통’에 함몰되지 않으려 애쓴다고 말했다.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간적 고통에 공감하지만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바라보아야 다큐멘터리 사진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의 소모가 많으면 지치고 우울해지기 쉽다. 그래서 불특정한 사람과 땅, 불행 속에서도 삶을 배워나가는 그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반문한다.

 

“지금 우리의 삶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아는지요? 내가 안락하고 풍요롭다면, 동시대를 사는 어느 누군가는 지구촌 어디에선가 힘들고 가난하게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 적은 있는지요?”



사진의 매력은 기록성
1980년대 중반, 성남훈은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사회적 진술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이었다. 따라서 연극을 하다가 사진을 만났을 때 그의 갈 길은 어렵지 않게 정해졌다. “시대상황을 사진으로 기록하자.” 1989년에 프랑스로 사진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졸업을 하기도 전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데뷔작이 히트작이 되었는데 바로 루마니아 집시를 찍은 사진이었다. 그 결과 1994년, 프랑스 사진에이전시 ‘라포’ 소속 사진가로 활약하게 되었는데, 난민들을 다큐멘트 할 운명은 그때 이미 결정된 것 같다.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이방인의 삶을 시적으로 풀어간 루마니아 유민시리즈는 서른 살 청년 사진가의 감수성과 서정성, 긍정적인 시선과 부드러움이 그대로 발현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정통 다큐멘터리 사진이 보여주는 고발적 성격이나 강요하는 메시지 없이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잔잔하게 보여줌으로써 성남훈의 ‘남다른 다큐멘터리’를 알리는데 성공했다.

그로부터 25년이 흘렀다. 그동안 국내외를 넘나들며 줄곧 소외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 전시와 출판에서는 그의 관심이 환경문제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정치 종교적인 박해와 전쟁으로 인해 난민이 되어 떠도는 사람들과 함께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으로 인해 파괴되어 가고 있는 지구의 구석구석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난민을 구제하는 것보다 오염된 지구를 치유하는 것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면 난민에서 환경문제로 쏠리고 있는 작가의 문제의식에 수긍하게 된다.

 

“사진이 굉장한 일을 해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더 그들의 고통과 심각한 환경문제에 대해 인식을 하게 된다면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가 고단한 작업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그동안 지구촌 곳곳 분쟁지역과 무분별한 자원개발로 인해 파괴된 지역을 찾아 ‘그들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인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온 성남훈 작가는 “누군가 다루어야 할 문제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할뿐”이라고 말한다. 국내문제도 많은데 국제문제에 더 관심을 갖는 이유에 대해서 “외연을 확장해 보면 국내문제가 국제문제와 닿아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답한다. 사실, 우리가 날마다 손에 쥐고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만 하더라도 ‘주석’이란 물질이 없으면 만들어질 수 없고, 그것은 그가 이번 발표에서 보여준 인도네시아 방카섬의 주석 채굴과 이어진다. 그가 큰 그림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우리의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라는 것이다.

 


ⓒ성남훈, 베트남 노천탄광, 2007



ⓒ성남훈, 베트남 노천탄광, 2007



ⓒ성남훈, 베트남 노천탄광, 2007


다르게 보여주기    
성남훈 작가의 사진주제는 몹시 무겁고 어둡다. 그것을 반영하듯 사진은 전체적으로 컬러사진이란 느낌을 갖기 어려울 정도로 그늘진 부분이 많고 색이 단조롭다. 그런데 착 가라앉은 톤을 감싸주는 차분한 아름다움이 내포되어 있어 오래 들여다보게 만드는 성남훈 작가만의 특징이 있다. 희망의 단서라고 할까. 이들의 삶에도 항상 고통만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들춰내려는 것처럼 보인다. 어두운 컬러에 감도는 미묘한 서정성은 성남훈 작가가 얼마나 컬러에 민감하고 빛을 잘 읽어내는 사진가인가를 깨닫게 한다.

특히 인도네시아 방카섬에서 촬영한 코발트색의 호수는 인체에 치명적인 오염물질로 가득 찬 호수라는 설명만 없다면 숨이 막히도록 아름답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인체에 유해한 각종 금속물질로 인해 그토록 아름다운 발색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주민들도 몸에 나쁘다는 것은 대강 알지만 그 색깔은 또한 돈이 되는 광물질이 존재하고 있다는 반증이므로 기꺼이 그 물에 몸을 담근다고 했다.

해발 5200미터에 위치한 페루 금 광산도 멀리서 보면 마치 남극의 빙산을 보는 것 같다.  수은을 이용하여 금가루를 채취하는 바람에 수은에 중독된 풍경이다. 식물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푸른빛이 감도는 하얀 암벽의 산은 마치 미래 어느 날의 풍경처럼 생경하면서도 아름답다. 사막화가 진행된 우즈베키스탄의 풍경도 삭막하면서도 어쩐 일인지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이 감돈다. 작가는 심각한 메시지를 던지는 사진에도 기적처럼 햇빛 한 줄기가 비치거나 화면 전체를 발갛게 노을로 물들이거나 혹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활짝 꽃을 피운 꽃나무 한 그루를 등장시키는 식의 엉뚱하면서도 예기치 않은 아름다움을 슬그머니 흘린다. 지구라는 무대가 아직은 암전된 것이 아님을, 완전히 막이 내린 것이 아님을 암시하려는 의도일까.

사진의 표현방법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시장에서 보여주는 방식도 독특했다. 두꺼운 철제 프레임을 썼는데 프레임의 위, 아래 두께가 달라 사진이 비스듬히 기울었다. 위쪽에서 아래로 경사지거나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프레임의 밑 부분이 넓은 것은 바닥에 안정적으로 세울 수 있어 벽에만 거는 방식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이번 사진의 내용이 전쟁이라든지 광물질 자원에 관련된 것이 많아서 나무 대신 철제 프레임을 고안했어요. 그리고 평평하지 않고 기울기를 줌으로써 불안한 상황을 강조했어요.”


사진 역시 예술적 속성을 갖고 있지만 다큐멘터리의 경우 그 표현의 폭이 좁다. 타인의 고통에 가깝게 다가가는 장르이므로 진지하고 솔직해야 하고 그래서 인위적 변화를 주기가 쉽지 않다. 기록적 가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년 간 늘 같은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싫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한다.
 

“시대적 트렌드는 어느 분야에나 있는데 다큐멘터리 사진은 오랫동안 변화하지 않았어요. 그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이제 유연성을 가져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특히 젊은 세대는 우리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지요.”


다큐멘터리 사진이 고되고 힘든 작업이라서 젊은 사진가들이 기피하는 종목이 되어가고 있지만 어느 시대인들 할 이야기가 없겠는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것은 사진가의 숙명 같은 것이다. 다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그 시대의 언어와 접근방식으로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젊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에게 자신부터 조금 더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성남훈, 베트남 노천탄광, 2007



ⓒ성남훈, 페루 금광도시 오염, 2014



ⓒ성남훈, 페루 금광도시 오염, 2014


도시유민 작업 중
1996년에 “소록도”를 통해 국내 작업을 보여준 바 있는 작가는 앞으로 10년 안에 우리나라와 중국, 동북아시아를 무대로 ‘도시유민’을 발표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는 신흥국가들의 도시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 주제는 그가 오랫동안 지속해온 유민의 마무리 작업이 될 것이라는데, 전쟁으로 인한 난민 못지않게 여러 경제사회적 이유로 도시를 떠도는 유민들의 삶 역시 우리 시대 또 하나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정통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도시유민을 파고들 것이라며 지역성을 떠나 도시유민 역시 국제적으로도 보편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밖에도 순수 국내작업으로 중첩된 땅, 중첩된 역사를 은유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어쩌면 이 작업은 성남훈 작가에게는 의미 있는 변화를 보여주는 전환점이 될 것이란 예감이 든다. 지금까지 해온 정통적인 다큐멘터리 기법과는 다른 접근을 보여줄 주제이기 때문이다. 난민이나 환경오염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실질적인 대상을 찍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을 중첩시켜 역사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하는데, 과거와 현재를 중첩시킨다는 것이 어떤 이미지로 나타날 것인가 흥미롭다. 예를 들어 지리산은 여러 함의를 갖고 있다. 고대에 무기를 생산하던 터도 있고 현대사에서는 빨치산이 마지막까지 활동하던 근거지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지리산은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다. 다양한 역사를 품고 있는 공간에서 시간을 어떻게 압축하여 보여줄 것인가, 찰나를 포착하는 사진의 시간성과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을 찍어내는 사진의 속성을 어떻게 극복하여 시간과 공간을 두께 있게 표현할 것인지, 이것이 또한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로운 영역 확장이 될 것인지 주목된다.      
 


사진 ⓒ곽명우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모임인 ‘온빛’ 회장과 ‘꿈꽃팩토리’ 대표직을 맡고 있는 성남훈 작가는 종합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고 종합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지한 것이 경시되는 이 시대에 세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질문을 갖고 사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성남훈. 정답을 내놓지 못한다고 해도 정답에 이르기 위한 물음표를 던지는 그의 사진이 경박한 현대사회에 묵직한 울림을 준다.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

 

글 : 윤세영 편집주간
해당 기사는 2018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