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록, 보이는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

“빛에 의해 태어난 나비는 동양에서는 영혼을 상징하며, 우연히도 히브리어로 Nabi는 선지자를 의미한다.”(이정록) 오랫동안 ‘빛’에 천착해온 이정록은 소울아트스페이스에서 〈NABI Ⅱ〉 신작을 선보인다. 전시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업노트를 보면“내가 작업에 사용하는 순간광은 찰나의 빛이다. 찰나의 빛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실체를 잡을 수 없는 에너지 그 자체로, 내 작업의 핵심도구이자 주요한 상징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생명나무〉, 〈NABI〉 시리즈를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보이지 않는 에너지(기)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
성향인 것 같다. 어릴 때는 극도로 내향적이었다. 외부세계에 관심이 없고, 내면의 목소리에 관심이 컸기 때문에 내 안으로 계속 들어가게 된다. 내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탐구하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좋아하는 커피 취향을 발견하는 것처럼 직관이 작동하는 것 같다. 언젠가 평론가 선생님이 써주신 글 중에‘보이지 않는 것을 보다’라고 했는데 난 그 말이 좋다. 내 평생의 키워드가 될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다’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이 있다. 플라톤 같으면 아마‘이데아’라고 했지만 내 경우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서연
 

특히 〈생명나무〉 시리즈의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연결하는 의미가 담긴 것 같다. 유난히 나무에 천착한 이유가 있나.
빛과 나무를 다루기 시작한 것은 2006년부터다. 마른 나무에 자연광과 서치라이트를 비춰 '생명나무 시리즈'를 시작했다. 대표적인 자연물이 나무이고, 전세계 신화에서 나무는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신화적 소재다. 신단수, 우주목, 세계목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무가 연관된다. 나무는 세상을 둘러싼 여러 차원의 세계를 연결하기 위한 매개체로 쓰인다. 신본주의 이전에는 주술의 시대가 있었다. 돌에도 나무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었던 애니미즘의 시대다. 나무를 숭배한 그 지점이 궁금했다. 난 아무리 봐도 나무는 나무인데 말이다. 숭배는 영혼의 문제이기 때문에 다르다고 생각해 오랜 시간 동안 이 문제에 천착했다. 나무와 대화하기 프로그램이 있는데 채널링이라고 한다. 설악산에서 직접 해보기도 했다.

어느 날 늦겨울 감나무를 봤는데 나무 끝에서 무언가 초록색, 빛 에너지가 강렬하게 뿜어나오는 것을 봤다. 보았다고 할 수 있을런지 느꼈던지 상상을 했던지 모르겠다. 순간 강렬한 체험을 했다. 고대인들은 본 것 이나 느낀 것을 믿었을 것이다. 만약 이렇다면 숭배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수긍했다. 고대인들의 주술적 사례를 기록한 J.G.프레이저가 쓴 〈황금가지〉라는 책을 읽고 고대인들의 심리구조를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기독교 시대에는 금서였다고 한다.

나비는 동양에서는 영혼, 히브리어로 Nabi는 선지자를 뜻한다고 작업노트에서 밝혀왔다. 처음엔 ‘빛’으로 표현되던 이미지가‘나비’라는 구체적인 형상을 갖게 되는데, ‘선지자’라는 개념이 먼저 선행된 것인가. 나비는 빛이 형상을 입고 나온 것이다. Nabi-나비는 발음상의 의미로는 ‘butterfly’며, ‘영혼’을 상징한다. 히브리어로 ‘선지자’를 뜻하기도 한다. 빛을 나비나 다른 형상으로 실험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히브리어의 의미를 알고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후 이 나비를 갖고 밖으로 나가 대입시켰다.

 


ⓒ이정록, Nabi 128, 2015, C-Type Print, 120 x 160cm

 
사진을 보면 도대체 이 빛은 어떻게 표현된 것인지 ‘아트웍’을 궁금해 한다. 신비스러운 빛 때문에 ‘신화적 풍경’이라는 수식어도 많이 등장하는데, 단순히 라이트 페인팅 작업 덕분이라고 하게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하나.
미국에서 작업할 때 라이트 페인팅 작업을 했다. 비추는 방식이었고, 다음 번엔 반대로 비추어봤더니 얼추 비슷했다. 그러면서 실험을 계속했다. 〈생명나무〉 작업을 할 때는 주로 새벽이다. 2대의 카메라를 장노출 상태로 놓아둔 후 직접 만든 플래시를 나뭇가지 사이에서 터뜨리거나 서치라이트로 비추는 방식이다.

첫작업은 고창에서 했는데 써치라이트를 비춰주고 플래시로 10번을 찍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그 이미지가 100%는 아니었다. 이미지의 씽크로율이 30-40%밖에 되지 않않다. 고창은 작업하기에 먼 거리였다. 광주에서 2시간 이상 걸리니까. 그러다 나중엔 스튜디오에 적합한 환경을 만드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실내에서 촬영한 생명나무는 빛을 극대화했다.

제주에서는 6개월간 머물며 ‘생명나무(Tree of Life)’작업을 했다. 실내는 배경은 같은데 나무가 다르다면 실외에서는 나무는 같은데 다른 배경을 써보자는 생각을 했다. 나무가 외부세계와 조응을 해볼 때 같은 나무를 가지고 다른 장소를 간 것이다. 신기하게도 나무의 형상이 제주도 형상을 닮았다.



ⓒ이정록, Nabi 130, 2015, C-Type Print, 90 x 120cm

밤, 새벽 혹은 해질 무렵 등 자연 풍경 속에서도 특히‘시간의 경계’에 선 지점을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이런 자연풍경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음과 양이 대지에서 강렬하게 얽힐 때가 있다. 그때를 좋아한다. 해가 막 뜨거나 질 때 20년 동안 쭉 이어져 온 습관이다. 빛도 아니고 어둠도 아닌 것, 이 땅도 아니고 물도 아닌 곳, 경계나 섞이는 것을 좋아한다.자연 속에서 소요하면서 대지를 느끼고, 꼼지락거리는게 좋다. 음과 양의 에너지가 충돌할 때가 있다. 대지를 관찰하다보면 느낄 수 있는데 동이 트기 전에 대지는 음산하고, 축축하고 어둡다. 하지만 해가 떠오를 때의 첫빛을 얼굴에 맞으면 극양에서 극음으로 터닝하는 지점이 느껴진다. 찍기 전의 느낌과 찍고 난 후의 느낌은 다르다. 이 차이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때 〈생명나무〉의 단초가 되는 작업을 했다. 물론 신화를 생각하고 만든 것은 아닌데 신화적 풍경이 되었다. 생명나무의 단초가 된 작품이다.

신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는 알레고리가 없다. 신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의 유일한 통로는 개시체험이다. 나의 과제는 표면을 뚫고 들어가서 본질적인 것을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정록, Nabi 147, 2016, C-Type Print, 120 x 160cm

소울아트스페이스에서 곧 선보이게 될 작품 중 신작 〈NABIⅡ〉전은 장소가 중요해 보인다. 어떤 곳인가.
제주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신화를 품은 섬이고 중국의 주자각도 오래된 전통이 살아 있는 곳이다. 이외에 일본, 터키, 캄보디아까지 주로 오래된 도시를 배경으로 했는데 이유가 있나. 도시 자체나 사람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근원적인 것에 관심이 간다. 사람은 100년을 조금 더 산다, 난 조금 더 근원적인 것,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상정한다. 탐구하면서 파생되는 느낌을 가시적으로 이미지화하고 있다.

현대의 성소는 내게 의미가 없다. 성소의 개념은 인간이 신이 교통했던 장소인데 적어도 1000년 이상된 장소에 관심이 있다. 캄보디아 씨엠립, 카파도키아가 그렇다. 씨엠립의 앙코르왓이나 유적 앞에서는 반성을 했다. 카파도키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장소에는 내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그 자체가 완벽하기 때문이다. 어떤 큰 힘이 나라는 하찮은 인물을 그곳에 갖다 놨다. 거기에서 난 너무 재주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천년이 넘은 장소를 가지만 아마도 텅빈 공간을 찾게 될 것 같다. 가령 경주처럼. 앞으로의 장소는 미국 서부 인디언성지가 될 것 같다. 너무 가득찬 곳보다는 비어 있는 성소여야 한다. 카파도키아는 위험한 곳이었다. 10층 높이의 암벽인데 밑은 낭떨어지이고 무서운 개가 지키고 있다. 개에게 두 번이나 공격받아서 카메라가 깨졌다. 낮에도 무서운데 신기하게 밤에 두 손에 플래시를 들고 훌쩍 뛴다. 내가 어떤 상태가 되었을 때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지배하거나 통과할 때 작업이 나온다.

기간 2016. 10. 26 - 11. 25
장소 소울아트스페이스 www.soulartspace.com

이정록
1971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홍익대 대학원에서 사진디자인을, 미국 로체스터 공과대학에서 순수사진을 전공했다. 소울아트스페이스를 비롯하여 한미사진미술관, 트렁크갤러리 등에서 수차례 개인전을 가졌으며, 국내외 다수의 그룹전과 아트페어에 참여 했다. 2010 난징비엔날레, 2012 광주비엔날레,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 등 국제적인 비엔날레에 초대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수림문화재단 사진문화상과 Redpoll Photo Awards 최고 사진가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대림미술관, 일민미술관 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국내외를 오가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글 천수림 편집장 사진 이서연(AZA STUDIO) 이미지 제공 소울아트스페이스
해당 기사는 2016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