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앙 볼탕스키: 4.4》 ‘작은 기억’을 위한 진혼곡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 프랑스 태생, 1944-2021)는 일생을 죽음이라는 주제에 천착한 작가이다. 나치가 퇴각한지 열흘 남짓 흐른 후인 1944년 9월 6일 파리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에게 있어 대학살의 광기와 전쟁의 상흔 등은 먼 과거의 일이 아니었으며, 이로 인해 삶과 죽음에 관한 질문은 그를 평생 따라 다녔다. 전시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4.4》(부산시립미술관|21.10.15~22.3.27)의 제목에서 “4.4”는 그가 태어난 1944년을 의미하는 동시에 한자 문화권에서 죽음을 연상시키는 숫자인 4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생의 마지막 단계인 죽음을 암시하고자 하는 의도로 작가가 직접 붙인 제목이다. 작년 7월 14일 작가의 갑작스런 타계로 이번 전시는 작가가 작품 선정과 공간 기획 등의 준비 과정에 참여한 사실상 마지막 전시가 되었다. 생전에 그는 자신이 언젠가 울란바토르와 같이 멀고 낯선 어느 나라에서 열릴 전시를 준비하다 죽을 것 같다고 말했는데, 그가 예감했던 대로 먼 타국의 도시에서의 회고전을 준비하다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전시를 찾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먹먹하게 한다.

낯선 이들의 소멸을 기리는 애도의 제단
전시는 비교적 덜 알려진 초기작 <기침하는 남자>(1969)(p.46)와 같은 영상작업부터 2020년에 제작한 영상 설치작품 <잠재의식>(p.57)에 이르기까지 볼탕스키의 작품 활동 여정을 충실하게 돌아본다. 죽음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이 다양한 매체와 표현방식을 넘나들며 확장되어온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데, 작품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사진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이다. 그는 주로 회화와 조각 작업을 하는 것으로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작가의 형이자 사회학자였던 뤽 볼탕스키(Luc Boltanski)의 영향, 그리고 전설적인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 스위스 태생, 1933-2005)과의 교류를 통해 점차 사진을 적극적으로 작품에 수용하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가 처음 사진을 이용하여 제작한 작품은 <D 가족의 사진 앨범(L’Album de Photos de la Famille D., 1939-1964)>(1971)(p.46)으로, 이는 한 친구의 가족사진 앨범에서 발견한 사진들을 시간 순서와 무관하게 재배열하여 거대한 바둑판 형태로 설치한 작품이다. ‘D 가족’으로 익명화 된 한 가족의 역사는 지극히 구체적, 개별적인 성격을 갖는 동시에 일반적, 보편적 특성을 띄는데, 이는 D 가족의 삶의 기록이 당시 비슷한 시기, 지역에서 살았던 많은 이들의 삶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비록 지극히 평범한 이 가족사진들 속에서 전쟁의 포화나 잔혹한 집단적 폭력의 직접적인 기록을 찾을 수는 없지만, 1939년에서 1964년이라는 시기적 구분이 보는 이로 하여금 필연적으로 2차 세계대전과 전후라는 공통의 시대적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 또한 <D 가족의 사진 앨범>이 지닌 특별함이라 할 것이다.

한편 유대인이었던 볼탕스키의 아버지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몇 년 동안을 마루 아래의 은신처에 숨어 지내야 했으며, 그의 어머니는 나치가 퇴각한 이후에도 자녀들이 외부 세계와 교류하는 것을 극도로 조심시켰다고 하는데,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기록하고 싶지 않았던 탓인지 작가의 어머니는 평생 단 한 권의 가족사진 앨범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1) 따라서 <D 가족의 사진 앨범>은 부재하는 작가 자신의 유년기의 기록을 대체하는 이미지들로도 볼 수 있으며, 이 같은 부재의 감각은 볼탕스키 작품 전반에서 꾸준히 발견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제만이 기획한 중요한 전시 중 하나인 《제 5회 도큐멘타(Documenta 5)》(1972)에 포함되었으며, 이를 기점으로 볼탕스키는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제만과의 교류를 계기로 볼탕스키는 다양한 사진 설치작업들을 시도하였는데,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여러 개의 흑백 초상사진들을 긴 케이블이 달린 조명으로 비추고, 이를 제단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설치한 일련의 작품군이다. 이번 전시에도 해당 작품군에 속하는 <기념비> 연작(p.48), <저장소> 연작 등 다채로운 사진 설치작품들이 포함되어 눈길을 끈다. 전시장의 첫 번째 방에서 만나게 되는 <기념비> 연작은 어린이들의 얼굴을 담은 흑백 사진 이미지들을 작은 백열등으로 장식한 주석액자 틀에 넣어 벽면에 제단 형태로 배치한 것이다. 작품 활동 초기부터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작품화하는 작가로 널리 알려진 탓에 관객들은 자연히 작품 속 어린이들이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일 것이라고 짐작하게 되지만, 이는 특정한 희생자 그룹을 추모한다기보다는 성장 과정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어린 시절의 소멸에 관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앞서 언급하였듯이 작가에게 유년기는 부재와 상실을 의미하며, 집단적 폭력이 초래한 거대한 공포 속에서 사소한 기록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버린 시간이기에, 그에게 있어 유년기의 소멸은 본질적으로 죽음의 이미지와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제단에 봉헌된 익명의 이미지들이 실제로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아니라 해도, 해당 시기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혐오, 차별 가운데 죽어갔으며 작가 자신과 같이 상실의 기억으로 유년기를 채워야 했음을 생각했을 때, 이 일련의 흑백 사진들이 내포하는 죽음의 메시지는 더욱 강력해진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사진 속 배경을 잘라내고 얼굴 부분을 확대하여 저화질의 흑백 이미지들로 이 초상사진들을 연출하였는데, 잊혀진 이들의 기억과 시간의 흐름을 암시하는 듯한 흐릿한 이미지, 제의적인 연출 방식 등으로 인해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이라 해도 그것이 죽은 이들에 관한 것임을 직감하게 된다. 이때 작품 속 사진들은 바르트식으로 말하면 ‘그것이 있었음(there-has-been, 프랑스어로는 ça-a-été)’를 일깨우는 지표로서의 흔적 그 자체로, 그들이 그곳에 존재했었음을, 즉 그들은 이미 과거이고 죽은 자임을 명증함으로써 사진을 바라보는 우리를 ‘찌른다’.



익명의 어린이 사진을 활용하는 전략은 <작은 기념비>(1986), <저장소: 퓨림 축제>(1989)(p.47), <커다란 저장소>(1987) 등의 작품들에서도 발견되는데, 이들 작품에서 흥미로운 것은 사진 아래에 쌓아 올린 양철 상자들이다. 흔히 비스킷을 담는 용도로 이용되던 상자로, 이는 특히 볼탕스키의 초기작에서 유년기를 상징하는 오브제로 자주 등장하곤 한다. 어린 시절을 기억할 흔적들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았던 그는 기억에 의존하여 어린 시절의 오브제들 - 즉 장난감 비행기, 장난감 기차 같은 것들 - 을 점토로 빚어냄으로써 잃어버린 유년 시절을 되찾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기억 회복의 의식을 마무리할 때에는 철망으로 그 오브제를 감싼 후 비스킷 상자에 담곤 했다. 이는 흔히 어린 시절에 장난감 따위의 소중한 물건을 비스킷 상자에 넣어 보관하곤 하는 행동을 연상시키며, 망각에 저항하려는 작가의 처연한 노력을 잘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은 기념비>, <저장소> 연작 등의 작품에서도 작가는 양철 상자가 담고 있는 유년기의 행복한 기억과 녹슨 상자 겉면을 보았을 때 생각하게 되는 시간의 흐름, 유년기의 소멸과 상실, 죽음 등의 복합적인 이미지를 흑백의 어린이 사진과 함께 제시하였다. 작품 속에서 이 상자들이 어린이 사진들을 봉헌한 제단의 좌대 역할을 한다는 점 또한 인상적인데, 이를 통해 상실의 감정은 보다 강력하고 확실하게 전달된다.

<샤즈 고등학교>(연도미상)(p.50) 연작 또한 제의적 성격을 띄는 작가의 중요한 사진 설치작품 중 하나로, 이번 전시에도 총 열다섯 개의 사진으로 구성된 작품 한 점이 포함되었다. 전시장에서 <샤즈 고등학교>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유령의 복도>(2019)를 지나가야 하는데, 이는 그림자 형상들이 어른거리는 커튼으로 만든 통로로, 작가는 이 복도를 통해 관객을 영원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복도 끝 ‘영원의 세계’에 위치한 <샤즈 고등학교> 속 인물 사진들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유대인 학교였던 샤즈 고등학교의 1931년 졸업앨범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들이 강제수용소 등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는지의 여부는 마찬가지로 알 수 없다. 다만 사진이 촬영된 연도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그들 중 많은 이가 홀로코스트로 사망한 600만 명의 유대인 가운데 포함되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당시 살아남았던 이들 또한 현재 대부분 사망했을 것임을 추측해볼 뿐이다. ‘포스트메모리(postmemory)’ 개념을 처음 소개한 것으로 잘 알려진 기억학자 마리안느 허쉬(Marianne Hirsch, 루마니아 태생, 1949-) 또한 이 작품 속 인물 대다수가 히틀러의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졌을 것이 분명하다고 썼으며,2) 미국의 예술평론가 데이비드 보네티(David Bonetti, c.1947-2018)는 사진 속 인물들의 어둡게 그림자 진 눈에 주목하며, 비록 사진 속 인물들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고 자신들에게 일어날 일들에 대해 전혀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그것처럼 어딘가를 바라본다고 썼다.3)

다만 볼탕스키는 자신의 작품을 홀로코스트라는 특정한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결하여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으며, 이러한 이유로 한 인터뷰에서는 “내 작품은 ×××××에 관한 것이 아니며 ××××× 이후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며 기사 지면에서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를 아예 뺄 것을 요청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4) 홀로코스트라는 사건이 작가의 유년기의 기억에, 그리고 작품세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음은 부정할 수 없으나, 이처럼 작가는 특정한 사건 자체보다는 보다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죽음과 소멸, 그리고 그것이 초래하는 망각에 대해 숙고할 것을 요청하였다.

앞서 살펴본 작품들에서처럼 볼탕스키는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 사진, 벼룩시장에서 수집한 사진 앨범이나 졸업 앨범 등에서 발견한 사진 이미지들을 작품에 활용하였으며, 실제로 직접 촬영한 사진을 작품에 사용한 적은 없다.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을 ‘예술가가 아닌 재활용가(recycler)’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처럼 재활용한 이미지들 가운데에는 경찰의 사건 기록에서 발견한 것도 있는데, 이번 전시에 소개된 <탐정의 제단>(1986)은 범죄 피해자, 가해자의 사진에 배우의 사진들까지 더한 작품이다. 이는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 평등하다는 환원론적 메시지를 전달한다기보다는, 그가 유대인으로 성장하며 일상 속에서 경험했을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즉 평범한 얼굴을 한 악인들의 모습에 대해 반추하게 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5)
이 외에도 헝겊에 어린이들의 인물 사진을 인쇄하여 작은 지지대에 설치하거나 (<그 이후-사진 모음>(1996)), 높이 2m가 넘는 거대한 프레임에 사진을 넣어 전시하기도 하며 (<그 이후>(2013)), 사진이 인쇄된 천을 천장에 매달아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인간>(2011))(p.52-53). 어린 시절의 일상적인 순간들을 담은 사진을 모아 총 6개의 넓은 패널에 설치한 <어린 시절의 기억>(2001) 앞에 서면 누구나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되지만, 이 사진들의 주인공 역시 작가 자신이 아닌 익명의 인물들이다. 이처럼 사진을 활용한 여러 작품들을 둘러보는 동안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사진을 보존, 보관하는 방식이다.

<접촉>(1990)(p.56)은 제목 그대로 사진 인화지(제목인 ‘contact’은 ‘contact sheet’을 의미한다.)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벽면에 일렬로 설치된 여러 개의 프레임 안에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하며 촬영한 사진의 인화지들이 특별한 순서나 주제의 구분 없이 자유롭게 배열되어 있다. 프레임 위에는 작은 전등이 켜져 있는데, 담당 학예사의 말에 따르면 작가는 조명에 의해 인화지가 바래거나 손상되는 것 등에 크게 개의치 않았으며, 오히려 작품을 자연스럽게 내버려둘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기사>(2000)(p.52)의 인물 사진 표면이 변색되거나 일그러진 것에서도 다시 한번 발견된다. 이는 작품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소멸 등 자연적인 이치를 드러내고자 하였던 작가의 철학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죽음,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하여
사진을 이용한 일련의 작품군에서 드러나는 것은 거대한 내러티브 이면에 누락된 보통 사람들의 기억, 즉 ‘작은 기억’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이다. 작가는 초상사진을 이용하여 개별자들이 단지 ‘홀로코스트 희생자 유대인 600만 명’과 같은 숫자로 무감각하게 환원되는 것을 막는 동시에, 사진 속 인물들을 익명화함으로써 보편성을 획득하고, 이를 통해 작품에 포함되지 않은 수많은 개인,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사라진 무수히 많은 작은 기억들을 소환한다. 이는 낡은 옷 수 톤을 벽면 가득히 걸어 집단적 폭력이 초래하는 죽음의 규모를 물리적으로 표현하는 한편 삶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낡은 옷을 통해 부재하는 주체들의 개별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대규모 설치작품 <저장소: 카나다>(1988)(2021년 재제작) 등과 호응하며 더욱 큰 울림을 이끌어낸다. 작가는 이 같은 관심을 말년까지도 이어갔으며, 영상을 이용하여 초상사진을 벽면에 투사하는 등 (<영혼>(2021)) 꾸준히 새로운 표현방식들을 실험하였다. <잠재의식>(2020)(p.57) 또한 영상을 활용한 작품으로, 이는 평화로운 풍경을 담은 영상 가운데 베트남 전쟁, 홀로코스트 등을 기록한 사진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도록 연출한 것이다.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이미지들은 보는 이들의 잠재의식 가운데 자리하게 되며, 이는 그가 20세기에 일어난 비극적 사건들이 망각되는 것에 저항하고자 끊임없이 다양한 표현방식을 고민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시간의 흐름과 소멸, 부재의 감각 등을 드러냄으로써 망각을 선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기억하려고 애씀으로써 망각에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볼탕스키는 떠났지만, 그의 작품은 전시장에서 들려오던 녹음된 그의 심장 소리처럼 살아 숨 쉬며 끊임없이 기억할 것을, 그리하여 죽음이 선고하는 망각에 저항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글 장나윤 사진·미술사가  이미지 제공 부산시립미술관
해당 기사는 2022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