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이슈]2018 Asian New Wave 한·중·일 동아시아의 젊은 작가들⑤


어느 영역이든 젊은 피가 돌아야 지속될 수 있다.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시도는 사진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사진예술은 이번 스페셜 이슈에서 한국, 중국, 일본에서 사진공모전에서 수상하며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젊은 작가들을 소개한다. 한국 이재욱, 조경재, 일본 타이스케 나카노, 켄타 코바야시, 중국 첸 즈어, 픽시 리아오.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이들은 사진 매체에 대해 전세대보다 더 열려있고 유연한 태도를 견지하며, 때론 사진의 물질성을 실험하는 과감한 시도로, 때론 진지한 관찰과 사회 통념에 대한 도전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중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지금 동아시아 사진계에 밀려오는 새로운 물결을 느낄 수 있다. - 편집자 주


​이재욱 JAEUK LEE
조경재 Kyoungjae Cho
켄타 코바야시 Kenta Cobayashi
타이스케 나카노 Taisuke Nakano
첸 즈어 Chen Zhe
픽시 리아오 Pixy Liao


BEES & THE BEARABLE
첸 즈어 Chen Zhe


 
The Bearable: Body/Wound #011, 2008 ⓒ Chen Zhe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세계적인 행위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자신의 신체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퍼포먼스로 유명하다. 1974년 나폴리 모로 스튜디오에서 열린 전시에서, 그는 여섯 시간 동안 나체로 서서 관객들이 준비된 사물들로 자신의 신체를 학대하는 것을 견디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 퍼포먼스는 관객과 예술가, 고통을 당하는 이와 이를 지켜 보는 이, 그리고 이 고통을 가하는 이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미술사학자인 프랜시스 보르젤로는 자신의 저서 <누드를 벗기다>에서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에 대해 “아브라모비치의 작품은 예술에서 소위 불편한 것에 대한 절규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평한다. 같은 책에서 저자는 “과거 수많은 신체예술가들을 매혹시켰던 극단주의는 그 후계자들에게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이들은 자신의 몸을 혹사하거나 실험하기 좋아하는 예술가로 분류되어 있다. 그들은 타투, 장식, 피어싱과 같은 전통적 신체예술을 현대적인 형태로 변화시켰다. 자기도취를 위한 고통이 아니라 세상의 발전을 담은 불편함이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신체예술과 차이가 있다. 그들은 과학자나 표본으로서 스스로 실험을 통해 성, 감정, 신체의 경계에 대한 생각을 탐험한다.”고 지적한다.  


현대예술에서 몸은 가장 강력한 매개체이자, 그 자체가 상징이다. 페미니즘 아티스트 바바라 크루거가 “당신의 몸은 전쟁터이다”고 선언했던 것처럼, 예술가들이 몸을 바라보고 재현하는 방식에는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사회 문화적 이데올로기가 반영된다. 때론 아브라모비치와 같이 몸을 학대하고, 고통을 주는 극단적인 예술은 관객들에게 작가가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해 생각게 한다.  


 

The Bearable, Birthday, 2010 ⓒ Chen Zhe
 

중국여성작가 첸 즈어Chen Zhe의 ‘Bees & The Bearable’ 시리즈는 신체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극단적인 예술이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팔목 위에 수없이 남겨진 칼자국을  촬영한  사진은 ‘리스트컷 증후군Wrist vutting syndrome’을 연상시킨다. 리스트컷 증후군은 칼 등 날카로운 물건으로 자신의 손목이나 목, 팔뚝 등을 반복적으로 그어 상처를 내는 현상이다. 리스트 컷을 행하는 이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면서 느끼는 고통과, 몸에서 나는 피를 보면서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혹은, 동물도 스트레스가 심한 환경에서는 스스로를 자해하는 것처럼 극단에 몰려 이를 해결하지 못할 때, 외부에 대한 공격심이 무력한 자신에 대해 향하며 극단적으로 자해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Bees #054-06, 2010 ⓒ Chen Zhe
 

첸 즈어의 ‘Bees & The Bearable’ 시리즈에는 이런 자해행위를 직간접적으로 암시하는 사진들이 자주 등장한다. 컷팅 자국이 무수한 팔목,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 남아있는 허벅지, 고통을 견디는 듯 크게 커진 핏발선 눈동자와 신음하는 듯한 입술. 이런 이미지들은 첸 즈어가 10대 때 스스로 겪었던 자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촬영한 이미지다. 그 중에는 작가 자신의 자해 이미지도 있다. 그는 Finding Resonance의 Nora Uitterlinden과의 인터뷰에서 이 자해 이미지들이 고등학교 때부터 촬영했으며, 자해는 약 6년 동안 이어졌다고 밝혔다. 


그는 “아직도 그 사진들에서 당시의 정신적 충격과 광기를 볼 수 있다”며 “고등학교 때 자해를 한 후 사진촬영을 했지만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생각은 없었고, 그저 그 이미지가 내게 아름답게 보여 보관했을 뿐이다”고 말한다. 이 작업이 세상에 나온 것은 그가 2007년 고향인 베이징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옮겨 LA 아트센터 디자인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자화상을 가져오라는 과제에 그녀는 자신이 버리지 않았던 자해 사진을 가져왔고, 그것이 교수의 눈에 띄었다. 그는 “당시 누군가 내 비밀을 알게 될 것이라 긴장했지만, 그 일로 인해 내 비밀에는 작은 균열이 생겼고 나는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와 왜 그것을 했었는지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후 2010년 첸 즈어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중국을 횡단여행하며 자신과 비슷한 자해경험이 있었던 사람들을 만나는 ‘Bee’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벌’이라는 뜻의 이 프로젝트 명에 대해 그는 “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침을 쏘고 결국 그 침을 쏜 것 때문에 죽는다. 침을 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인데도, 생명을 지키기 위해 침을 쏜다는 벌들의 역설적인 행동이 나와 혹은 나와 같은 증상을 가진 이들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삶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를 해쳤다”고 설명한다.


1989년생인 첸 즈어는 21살에 이 자해 사진들을 작업으로 공개했고,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2011년 한 해 동안만 그는 Inge Morath Award, the Three Shadows Photography Award, The Lianzhou Photographer of the Year award 상을 수상했다.  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사진집은, 그 해 Kassel Photobook Festival에서 ‘Best Photobook’으로 선정돼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결코 자해를 부추긴다거나, 자해 이미지가 아름답다는 식의 자기 도취적인 행위는 아니다. Leap Magazine의 Einar Engström는 “첸 즈어가 그 자해하는 증후군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병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가능했다”며 “다른 말로 하면, 첸의 사진은 개인적인 극복의 과정이다”고 평한다. 그는 또한 “첸 즈어의 ‘Bee’는 중국 내 소외된 이들의 심리를 보여준다. 혼란과 폭력, 돌이킬 수 없는 부재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몸에 흔적을 남기려하는 충동을 느낀다”며 “첸 즈어가 행한 작업은, 인간의 고통과 예술적 상호작용으로 인간의 신체에 대한 철학적인 자기성찰과 같다. (사진을 통해) 고통을 객관화시켜 바라보며, 정신적 외상을 탈피하는 거이다”고 설명한다. 


첸 즈어의 상처 같은 이 사진들은 타인의 내밀한 고통을 들여다보는 불편함도 있지만, 결코 쉽게 눈 돌릴 수 없다. 그것은 “여전히 사진이 우리를 쥐고 흔든다면 그것은 사진이 죽음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는 현대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말처럼 첸 즈어의 사진이 죽음 가까이에서 서늘하게 삶을 응시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Chen Zhe (www.zheis.com)


해당 기사는 2018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