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rsty Mitchell “Wonderland”

슬픔이 찾아왔을 때, 어떤 이들은 가만히 환상 속에 둥지를 튼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비극 앞에서, 환상 속 이야기로 도피하는 것은 최소한의 자기방어일지도 모른다. 비록 허구의 세계일지라도, 슬픔 속에서 기쁨을,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게 하는 것이 바로 이야기가 가진 힘이기 때문이다.

영국 작가 크리스티 미첼은 어머니의 죽음을 겪고, 그 슬픔을 받아들이기 위해 “원더랜드”라는 환상 속의 둥지를 지었다. 영어교사였던 미첼의 어머니는, 어린 그녀에게 매일 밤 동화책을 읽어주며 함께 이야기의 나라로 여행하곤 했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하던 그녀에게, 어머니와 공유했던 그 시간들은 다시 돌아가고픈 소중한 추억이었다.

 
 
 

ⓒKirsty Mitchell, The Queen’s Centurion



ⓒKirsty Mitchell, Gaia’s Spell


미첼은 그저 본능적으로 어머니와 함께 공유했던 환상의 이야기들을 사진으로 재현했다. 이미지를 완성하는 데 약 5년의 시간이 걸렸다. 패션 디자이너였던 그녀는 모든 의상과 소품을 직접 제작했고, 숲속에서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연과 하나가 돼 촬영했다. 숨 막힐 만큼 아름다운 “원더랜드” 시리즈는 그렇게 탄생했다.

크리스티 미첼의 “원더랜드”는 단지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구상의 모든 신화가 죽음과 재생에 대해 다루듯이, 크리스티 미첼이 창조한 “원더랜드”에는 죽음과 슬픔을 마주하고, 다시 삶을 이어가는 한 인간의 여정이 상징적인 우화로 펼쳐진다. 크리스티 미첼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녀의 “원더랜드”에 대해 들었다.

“원더랜드(Wonderland)”라는 시리즈의 제목이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와 관련이 있는가?
사람들에게 “원더랜드” 시리즈를 소개할 때 가장 먼저 설명하는 부분인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 시리즈는 오직 나만의 “원더랜드(Wonderland)”다. 2008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경험했던 압도적인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했던 프로젝트이다. 이 시리즈의 사진도 스스로 창조한 이미지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 내게 읽어주셨던 수많은 책의 이야기와 삽화들, 어머니와 함께했던 추억의 시간들, 내가 자연과 영적으로 교류하며 느낀 감정에서 영감을 받았다.

어머니의 죽음이 “원더랜드” 시리즈를 시작한 계기였다. 자신만의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은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작업을 통해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어느 정도 치유될 수 있었는가?
솔직히 말해 결코 그 슬픔을 극복하지는 못했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이 시리즈는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간으로부터 나를 구해줬다. 그토록 사랑하던 어머니를 처음 잃었을 때, 마치 이 슬픔으로부터 탈출구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나는 끔찍한 우울증에 빠졌고, 잠들지도, 먹지도 못하고, 공황 상태에 이르렀으며, 일을 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도 하는 등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원더랜드” 작업을 통해 비로소 어머니를 잃은 트라우마와 공포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이 작업은 어머니의 죽음에 따른 슬픔을,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아름다운 기억으로 승화시키는 카타르시스의 과정이었다. “원더랜드”를 창작하며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없던 모든 생각과 감정을 표현했고, 그 과정들이 나를 치유했다.



ⓒKirsty Mitchell, The Stars Of Spring Will Carry You Home



ⓒKirsty Mitchell, The Distant Pull of Remembrance


작품들을 처음 봤을 때 ‘환상 속 둥지’와도 같이 느껴졌다. 새들이 상처 입었을 때 둥지 속에서 날개를 접고, 치유되기를 기다리듯이 환상 속에서 치유를 기다리는 안전한 둥지 말이다.
‘환상 속 둥지’라, 매우 사랑스러운 표현이다! 나의 “원더랜드”는 숲속에 있는 안전한 장소, 바로 ‘환상 속 둥지’다.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둥지 속에서 몇 년을 머물렀다. 그것은 확실히 현실을 잊고, 나의 꿈과 환상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안전하고 은밀한 장소였다.

처음 “원더랜드” 시리즈를 시작할 때, 전체적인 이야기의 얼개를 구성하고 시작했는가? 아니면 즉흥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이미지를 만들었는가?
정확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처음 이 시리즈를 만들 때만 해도, 이 작업은 그 자체만의 생명이 있는 듯했다. 내 안에 이 이미지들이 있다고 느꼈고, 그 이미지들을 하나씩 밖으로 꺼냈을 뿐이다. 어떤 계획도 없었다. 단지 내 슬픔을 달래기 위해, 본능적으로 이 이미지들을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이 이미지들이 현실의 내게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어머니의 죽음을 극복하게 하는지에 대해 매우 개인적인 일기를 썼다. 나조차도 몰랐었던 내 감정들이 작업에 나타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시작했지만, 작업을 하면서 결국 이 사진들은 내가 거쳐 온 모든 일을 반영하는 거울과 같은 것임을 깨달았다.
“원더랜드”의 주인공은 케이티(Katie)다. 74장의 사진 중 50장에 등장하는 소녀로, 그녀는 내 감정을 반영하고, 내 슬픔을 표현한다. “모든 사진은 결국 자화상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작가는 항상 그 주제나 소재에 상관없이 사진 안에 자신을 한 조각 남겨놓게 된다. 나 역시 내 작품 안에 내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를 동인(動因)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

이 시리즈는 매우 환상적임에도 불구하고, 공허하고 쓸쓸하며, 죽음에 대한 상징을 느끼게 한다. 일종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생각하는가?
확실히 그렇다. 이 시리즈는 결국 내가 어머니의 죽음에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한 자서전과도 같다. 죽음에 따른 애도와 슬픔은 이상한 선물이다. 아무도 그것을 원치 않고, 모두가 그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 슬픔은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고, 우리를 더욱 깊이 변화시킨다.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에 애도하고 슬퍼하며, 우리가 결코 전능하지 않고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미래에 대해 상상했던 시간들이 항상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다. 누군가를 죽음으로 잃는 슬픔을 통해 인간적으로 성숙해지기도 한다.
“원더랜드” 시리즈를 작업하며 나는 주변 사람들과 더욱 밀접한 사이가 되었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죽음은 단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마치 “원더랜드” 시리즈가 나의 삶을 완전히 바꾸듯, 죽음은 우리를 전혀 경험치 못했던 세계로 이끈다.

 


ⓒKirsty Mitchell, The Journey Home



ⓒKirsty Mitchell, The Ghost Swift


각 작품에는 배나 책과 같이 반복되며 등장하는 오브제들이 있다. 이 오브제들은 무엇을 뜻하는가?
배는 ‘여행’에 대한 은유로, 이 시리즈 전체와 슬픔에 대한 은유이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영원히 잃었을 때를 상상해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당시에는 슬픔을 견딜 수 없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감정이 점차 옅어질 것이라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겪은 바로는 그렇지 않다. 슬픔은 마치 바다 위의 작은 종이배와도 같아서, 어떤 날은 평온하게 슬픔에 대처하고 있는 듯하지만, 또 다른 날은 폭풍우 치는 바닷속에서 끝없이 무너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때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 슬픔과 비탄의 폭풍이 그치기를, 끝까지 견뎌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집의 기슭에 닿기까지, 이야기의 바다(An Ocean of Tales until the Shores of Home)’란 사진은 “원더랜드” 시리즈의 시작이며, ‘집(Home)’은 마지막이다. “원더랜드” 시리즈는 스스로 슬픔을 수용하고 평화와 안식을 찾아가는 여정이자 항해와도 같다. 사진에는 ‘배’가 자주 나타나는데, 어떤 사진에서는 아주 크고 확연히 드러나는 반면, 어떤 사진에서는 아주 작거나 잘 알아볼 수 없도록 의도적으로 숨겨서 배치했다. “원더랜드” 시리즈에서 ‘배’의 이미지를 통해, 스스로에게 슬픔은 일종의 항해이자 여행이며, 결국 그 슬픔 안에서 나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곤 했다.
이미지 속에 반복되는 ‘책’ 오브제는 “원더랜드” 이미지가 결국 어디에서부터 시작했는지, 어머니가 내게 읽어줬던 이야기들로부터 시작했음을 끊임없이 기억하게 한다. 어머니와 함께했던 기억들은 나를 이루는 가장 소중한 기억이다.

이 시리즈에서 색상은 뚜렷하게 부각된다. 각 색상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가?
각각의 색은 상징이다. 가장 완벽한 예는 노란색이다. 사진은 정적인 매체이기에, 프레임 안에서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단풍잎, 꽃, 혹은 물감 가루 등을 활용해 움직임의 흔적을 남겼다. ‘The Journey Home’에서 주인공 케이티는 그녀 뒤에 노랗게 반짝이며 빛나는 낙엽을 발자국처럼 남겨 놓으며 숲속을 여행하다, 밝고 거대한 노란색 꽃과 천으로 둘러싸인 ‘가이아(Gaia)’를 만난다. 케이티가 마지막 집으로 돌아오는 ‘Home’에서도 그 밝은 노란색 낙엽 발자국은 이어진다. 나는 케이티의 영혼의 색으로 노란색을 선택했다. 노란색은 희망의 상징이자, 그녀의 내면에서 빛나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원더랜드” 이후에는 어떤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가?
새로운 시리즈를 제작 중이다. 지난 1년간 소품을 제작하는 작업을 했으며, 이번 봄에 촬영을 시작할 계획이다. “원더랜드”보다 아마 10배는 더 강렬하고 생생하며 비극적일 것이다.
새로운 작업은 “원더랜드”를 완성한 후 내게 일어난 이야기다. 2015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진집 『Wonderland』를 발표했고, 이틀 후에 아들을 낳았다. “원더랜드”를 작업했던 5년간은 마치 산을 오르는 것 같았지만, 결국 나는 이 시리즈를 완성하며 슬픔을 극복하고, 이제 어머니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고 8개월 후 나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이후 2년간은 더 이상 작업할 수 없었고, 암 치료를 받으며 아이를 돌봤다. 감사하게도 지금은 완치됐다. 새로운 시리즈는 2015년에서 2017년까지 2년간, 새로운 생명을 낳고, 이후 죽음에 직면했던 시간을 다룬다.
나는 인생에서 불행을 마주쳐도 결국 그것을 아름다움으로 변화시키고 창조할 수 있었다. “원더랜드” 시리즈처럼 불행에서 행복으로, 공포에서 기쁨으로, 이 현대적인 우화를 통해 모든 것이 변화했다. 새로운 시리즈에서 나는 완전히 다른 여성으로, 내게 일어난 모든 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맞서는 나 자신을 표현한다.

 

글 : 석현혜 기자
해당 기사는 2019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