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 아버지가 남겨준 공간 Studio 55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
아버지가 남겨준 공간 Studio 55 



안종현에게 아버지의 재봉공장은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다. 재봉공장과 살림집이 함께 있었던 그 공간은 그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자란 고향이자, 언젠가는 물려받아야 한다는 부담감이었다. 아버지는 사진 찍기를 즐겼지만 어디까지나 취미였고, 사진을 업으로 삼겠다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진이나 예술같이 막연한 불안보다는 재봉공장을 물려받는 쪽이 더 안정된 삶을 보장해주리라 믿었다. 아들은 그에 반발해 집을 나갔다. 그는 젊었고, 젊은 자녀들이 으레 그렇듯 아버지와는 다른 삶의 방식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스튜디오 내부


한참이 지나 이제 사진작가로 성장한 아들은 그렇게 반발했던 아버지의 공간으로 다시 돌아왔다. 공장을 물려받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연로하셨고 재봉공장의 미싱 소리는 멈췄다. 창고로 변해있는 그 공간에서 아들은 스튜디오를 차렸다.  Studio 55가 바로 그것이다. 그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은 단지 공간만이 아니다. 그는 아버지가 취미로 찍었던 풍경 사진들을 자신의 작업의 주요 모티브로 삼아, 다시 그 풍경들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촬영했다. 그렇게 찍은 ‘통로 Part.2’ 작업이 옛 미싱 공장을 개조한 전시장에서 전시 중이다.

 
개선문이 맞는 집

불광천을 따라서 걷다 보면 신사동 골목길에 주택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근엄한 대문을 만나게 된다. 양측 빌라 사이에 삐쭉 솟아있는 개선문 같은 이 문은 주택가 한가운데와는 동떨어지게 위풍당당해서, 마치 다른 세계로 통하는 통로 같다. 


 
 
스튜디오 입구


“4살 때 처음 이 집으로 이사 왔는데, 그때도 이 문은 이 모습 그대로였어요. 70년대 퇴역 장군이 살던 집이라서 개선문을 본떠서 이 문을 지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렸을 때는 이 문이 무서웠어요. 너무 크고 위압적이어서 밤길에 특히 문에 다다르면 거인이 내려다보는 것 같이 느껴졌거든요.”


대문을 들어서면 안종현 작가가 운영하는 렌탈 스튜디오이자 전시장인 Studio 55가 나타난다. 지하 1층, 지상 1층의, 창고까지 개조한 이 공간은 지하 1층은 누구나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로, 지상 1층과 창고 공간은 작가의 개인 작업실과 렌탈 스튜디오로 운영된다.     


 

​스튜디오 내부


원래 이 건물은 지하 1층에는 아버지가 미싱공장을 운영했고 지상 1층은 가족이 살던 살림집이었다. 그가 물려받은 후로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 봉제공장과 짐을 정리하고, 작업실과 갤러리로 완전히 용도를 바꿔서 리모델링했다.


“일부러 집의 구조는 크게 손대지 않았어요. 천장을 뜯고 층고를 높이고, 스튜디오 공간을 위해 마감재나 벽면을 바꾸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집 안에 있던 그대로 남겨두었어요. 문틀이나 창, 소소한 소품들까지 기존 집에 있던 부분을 재활용했어요. 여동생부터 동네 주민들에게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스튜디오 내부


그는 이 공간을 지역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많은 사람이 카페를 하라고 했지만 그는 이곳을 카페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작업하는 작가이고 이 공간도 작업을 위한 공간이자 예술로 소통할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곳을 작가들이 저렴하게 이용하는 렌탈 스튜디오로, 또 장수사진을 찍는 등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이웃 아이들도 스스럼없이 들어와 작품을 보고 놀 수 있는, 많은 이들의 손길을 타는 편안한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아들이 다시 찍은 아버지의 풍경사진


 

ⓒ안종현, 풍경 01, ultrachrome archival pigment print, 150x190. 2016


그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은 비단 공간만이 아니다. 지금 Studio 55의 갤러리에서 전시중인  ‘통로 Part.2’ 도 아버지의 사진을 발견하면서 시작했다. 아버지가 취미로 촬영했던 풍경 사진들을 보고, 그 장소를 다시 찾아가서 아버지의 시각이 아닌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촬영했다.


“예전에는 아버지처럼 사진 잘 찍는다는 소리가 제일 듣기 싫었어요. 아버지는 아마추어 사진가이고 나는 사진작가인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할까. 하지만 아버지가 찍은 풍경사진 앨범을 발견하고 생각이 달라졌어요. 왜 아버지는 그때 이 풍경을 찍었을까 생각했죠. 아버지의 풍경사진을 보고, 조금만 시선을 다르게 한다면 다른 이미지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내 사진은 아버지와 같은 장소를 찾아가 찍었어도 다른 입장과 시선에서 촬영했을 뿐 일반적인 풍경 사진은 아니죠. 나는 그 장소에 있는 나무, 풀, 돌 등의 자연이 오랜 시간 진실을 지켜본 목격자이자 증인으로, 하나의 형상으로 그곳에 남아있다고 느꼈어요.”


 

ⓒ안종현, 풍경 05, ultrachrome archival pigment print, 100x1125. 2016


보통 풍경 사진이라고 한다면 구도와 대상의 아름다움이 대략 정해져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수학 공식처럼 똑같이 찍어야 하고 그것을 ‘잘 찍은 풍경 사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안종현 작가의 풍경은 다른 입장에서 다른 시각으로 보았기에 일반적인 풍경 사진과 다르다. 피사체가 스스로 목격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았다고 느끼고 그 시각에서 풍경을 기록했다.

그는 촬영하는 순간에 누구보다 정확하게,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정확한, 결정적 순간’은 사진에 더 추가할 것이 없는 상태이다.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정적 순간이에요. 사진에는 대상과 작가간의 심리적 거리감이 보이지 않기에 모든 것이 일치했을 때 셔터를 누르면 정확한 이미지를 만들게 되죠.” 
 

ⓒ안종현, 풍경 11, ultrachrome archival pigment print, 13x18. 2016


그는 마치 명화 같은 정확함을 추구한다. 구도, 거리감 등 모든 것이 정확한 이미지, 흉내 내기나 모방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아우라, 무엇을 보고 그린 것인지 어떤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 그 역시도 스스로 정확하게 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더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사진과 글, 생각이 일치하는 사진가가 되고 싶어요. 양쪽의 퀄리티를 높이고 싶고, 한 쪽에 치우치는 것이 아닌, 양쪽 모두를 가지고 싶어요.”


세월이 흐르면서 때론 반발하고 때론 용납할 수 없었던 어떤 것들이 다시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돌아올 때가 있다. 안종현에게는 아버지의 미싱 공장과 아버지의 사진이 그러했다.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맞고, 그때는 차마 포용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시간이 준 선물이리라. 그렇게, 한때는 반발하고 밀어냈던 아버지의 자취가, 어쩌면 자신 안의 가장 중요한 핵이자 물려받은 ‘위대한 유산’이었음을 깨달으며, 아이는 어른이 된다.


안종현은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사진학 전공하였으며 2011 미래작가상을 수상했다. 2014 KT&G 상상마당 올해의 작가 선정, 2015 송은아트 큐브 작가 선정, 송은 문화재단, 2016 Art In Culture Dragon Eyes로 선정됐다.

 
글 / 사진  조한솔 기자


해당 기사는 2107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