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구 《암각화 또는 사진》 |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아직도 사진을
평생 사진을 해온 원로사진가 강운구(1941~)는 전시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아직도 사진을 하고 있습니다.”로 말문을 열었다. 군살 없는 암각화처럼 늘 본질로 직통하는 그의 화법이 오늘의 한국 사진과 자신의 사진 작업을 압축하는 뼈 있는 첫마디였다. 아직도 사진을 하고 있다는 것이 팔십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사진을 찍고 있다는 말은 물론 아닐 테다.

다큐멘터리 사진, 소위 정통 사진이 구식으로 치부되는 한국 사진의 가벼움을 꼬집는 동시에 또한 그의 사진의 자세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일함을 말하려는 것으로 들린다. 사실 누구나 셔터를 누르면 사진이 나오는 시대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과제가 되었다. 그 어려운 길을 아직도 걷고 있는 사진가 강운구의 뮤지엄한미에서의 전시 《암각화 또는 사진》(2023.11.22-2024.3.27)은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앞으로 더 이상 보기 힘든 기념비적인 전시가 될지 모른다.

전시에 맞추어 출간된 묵직한 사진집에는 300여 점의 사진과 원고지 500장 분량의 글이 수록되어 있지만 전시는 흑백과 컬러사진 151점으로 이루어졌다. 암각화를 촬영한 사진은 흑백이고 암각화가 위치한 현지의 환경을 보여주는 사진은 컬러사진이다. 고요한 흑백과 선명한 컬러가 대조되면서 오래된 것은 더 오래된 것으로, 현재는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효과를 자아낸다. 전시를 보면서 수천 년 전의 시간을 더듬다가 문득 나타나는 컬러사진에 화들짝 현재로 돌아오는, 그리하여 아득한 그 시대와 오늘의 시간적 거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의 울산 반구대와 천전리를 비롯한 8개국 30여 군데의 암각화 사진은 뮤지엄한미의 지하 1층부터 지상 1층 전시실까지, 9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전시 중이다. 이번 전시를 보면서 일단 그 어마어마한 양의 암각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란다. 수천 년 전에도 인간은 자신의 시대를 기록하고 표현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마찬가지였음을 깨닫는다. 수렵하거나 유목하는 단순한 생활이었으니 그림의 소재도 단순한데 그들은 굳이 왜 바위에 그것을 남겼을까? 설사 심심풀이 낙서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내가 여기 있었노라”라는 존재 증명이면서 반영구적이라고 여겼을 바위에 새김으로써 내가 떠난 이후에도 나의 흔적이 영원히 남길 바라는 무의식의 발로였을 것이다. 결국 그들의 소망대로 지금 우리는 사진가 강운구의 암각화 사진에 힘입어 그들의 존재를 느끼며 그들을 만나고 있다.

사진가 강운구는 암각화가 고대인들의 ‘사진’이었다고 해석한다. 기록하고 표현하고 흔적을 남기는 일, 사진이 가장 잘하는 특성이다. 그들에겐 사진이란 매체가 없었으므로 필름과 인화지 대신 바위에 새겼던 것이고, 바위는 수천 년의 세월을 이기며 필름보다 더 보존성이 뛰어난 기록장치의 역할을 해냈다. 그들이 남긴 사진, 즉 암각화를 들여다보면 짐승과 함께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사람이 나타나고 춤추고 사랑하고 사냥하는 일상의 소소한 장면이 보인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전시에 등장한 8개국, 한국,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몽골, 중국의 암각화가 서로 다르면서도 공통점을 보인다는 점이다. 생각 없이 바라본다면 국가별 상이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닮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옛사람들의 신호를 해독할 수 있다.



질문이 답이 되어 돌아올 때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오지와 험지를 찾아다니며 촬영한 대장정의 출발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오래전에 품은 질문에서부터였다. 그는 처음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세로로 서 있는 고래를 발견하고 “이 고래는 왜 서 있을까?” 궁금했다고 한다. 관련 서적을 찾아보았지만 그런 의문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서적을 뒤지면서 답을 찾고자 했는데 자료를 찾아볼수록 궁금증이 풀리기는커녕 암각화에 대한 또 다른 의문과 함께 관심과 호기심이 깊어져갔다. 마침내 고고학과 암각화 분야를 이론적으로 섭렵한 후에 그는 카메라를 들고 직접 답을 찾아 나섰다. 우리와 문화적으로 친연성이 높은 중앙아시아, 우랄산맥과 톈진산맥을 품고 있는 국가들로 향한 것이다. 3년 동안 총 여섯 번, 한 번 가면 두 달씩 머무르며 촬영에 집중했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요체는 한 주제에 대한 탐구와 집념입니다.”

그가 비주얼 위주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사진의 정신이 가려지지 않도록 전시를 기획하는 이유다. 강운구 전시는 항상 세 가지 사이즈, 8x10, 11x14, 20x24인치의 사진들로 구성된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과장을 싫어하는 그의 성격이 드러난다. “사진은 작은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는 크기가 작으면 가까이 가서 보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작가의 의도대로 보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컬러사진보다 흑백사진을 선호하는 것도 컬러는 구체성을 띠고 있고 나름대로 장점이 있지만, 그 구체성이란 것이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잔소리일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보다는 본질로 직진하는 흑백사진이 자신의 사진적 태도와 더 일치한다는 것.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7대3의 비율로 흑백과 컬러사진이 섞였다. 컬러사진이 전체적인 흐름을 깰 수 있다는 위험부담을 감수한 까닭은 암각화 사진이 구체적인 설명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현지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컬러사진으로 인해 저 삭막하고 황량한 땅에 살았던 고대의 사람들과 수천 년 세월 너머 여전히 삶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며 긴 시차를 단숨에 뛰어넘을 수가 있다. 문화는 환경의 산물이어서 중앙아시아 국가에 암각화가 잘 보존된 것은 건조한 날씨와 무관치 않다. 특히 그림을 새기기 좋은 바위, 즉 파티나(patina) 성분이 있는 바위가 산재해 있어 그림을 그리기가 쉬웠고, 형체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전시장 지하 1층 멀티홀은 국가별로 나누지 않고 각국의 가장 특징적인 암각화를 전시, 말하자면 각국의 대표선수들이 포진해 있다. 멀티홀에서 대강의 파악을 한 후 지하 1층 복도형 전시실에서부터 1층 전시실까지 중앙아시아 4개국과 러시아, 한국, 중국, 몽골의 암각화가 이어진다. 특히 마지막 섹션인 제2전시실에서는 이번 작업의 출발점이 된 한국의 반구대와 천전리 암각화를 보여준다. 작가는 암각화를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았는데 하나는 고고학적인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미학적 측면이다. 작가의 말대로 어느 시대이든 천재는 있기 마련이어서 아마도 한 천재가 도구를 이용하여 바위에 그림을 새기기 시작했을 것이고 그 뒤를 따라 후대의 사람들도 유사하게 흉내를 냈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그 당시 사람들의 수명을 생각하면 이 그림을 그린 사람들은 20대 전후반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에는 서른을 넘기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엔 사람
이 사진들은 휙 보고 지나가면 의미가 없다. 그러나 천천히, 찬찬히 살펴보면 발견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고대인들이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나약한 인간으로서 날쌔고 힘센 짐승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짐승처럼 꼬리를 달고 있는 사람들을 그리게 했고, 후대로 내려가면 짐승을 길들여 고삐를 끌며 의기양양한 사람도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고삐와 연결된 짐승들이 네 발로 버티며 한사코 끌려가지 않으려는 자세다. 사람과 짐승 사이에 길들이기가 아직은 과도기인 모양새다. 또한 청동기 후기로 넘어오면서 신문물의 상징인 바퀴가 등장한다. 마치 수수께끼를 풀 듯이 그림 속에 있는 실마리를 따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묘미가 있다.

처음엔 고래로 시작했으나 끝은 사람이었다. 결국 사진가는 암각화를 찍은 게 아니라 수천 년 전의 사람을 찍었고 어림잡아 천 명쯤은 만났다고 말한다. 그는 수십만 개가 넘는 암각화에서 주로 사람이 있는 장면을 골라서 찍었다. 따라서 이번 작업도 사람을 만나러 나선 길이 되었고 수천 년 전 사람들과 만나 그들이 말하고자 한 것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사진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사진가 강운구는 평생 사람을 찍었다. 그의 대표작인 <마을 삼부작>, <오래된 풍경>, <경주 남산>, <사람의 그때> 등에서는 문인 혹은 예술가의 초상처럼 직접적인 인물사진을 비롯하여 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주변의 자연과 사회 문화적 풍경을 소재로 했음을 알수 있다. 특히 <경주 남산>의 불상이나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능으로 가는 길>에서 보듯이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탐구를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암각화 또는 사진>은 지금까지 60년간 이어온 사진가의 작업이 총체적으로 작동하여 나타났다고 생각하게 된다. 오래 축적된 인문학적인 바탕에서 출발했으므로 주마간산이거나 표피적인 비주얼의 측면이 강조되지 않고 사진가 강운구 자신의 결대로 그 방대한 작업을 마무리한 것이다.

사진가의 발길을 따라 사진가의 눈길이 머문 장면을 따라 전시장을 돌아 나오면 우리가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사진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가 5천 년 전 사람들의 <암각화 또는 사진>을 보듯이 5천 년 후 우리의 사진을 볼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아직도 사진을 하는 선배 사진가가 후배에게 전하는 속마음인 것 같다.


 


글 윤세영 편집주간
해당기사는 2024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