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조현택, <빈방>

볕이 잘 들지 않았던 어두컴컴한 방일수록 바깥 풍경을 눈부시게 비췄다. 허구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실제 삶에서보다 더 삶을 기념하고 추억했다. 작가 조현택은 빈방과 드라마 세트를 카메라 옵스큐라로 만들어 촬영한 두 작품을 <빈방>(BMW 포토 스페이스, 2019.11.11-2020.2.1)에서 펼쳐 보였다. 역전된 삶의 아이러니와 존재의 증명은 물론 기억조차 붙잡지 못하는 덧없는 사진의 아이러니가 “빈방(Vacant Room)”과 “드라마 세트(Drama Set)” 위로 비쳤다.
 

 

조현택, Vacant Room #3, 나주시 중앙동 114-2, 2015, inkjet print, 50×76cm ⓒ조현택
 

카메라 속으로 들어간 사진가
 
2014년, 나주의 재개발되고 있는 지역에 작업실이 있었다. 하나둘 이사를 가고, 빈집이 많아졌다. 지나쳐 갈 땐 몰랐던 것을 빈집에 들어가서야 알아챘다. 집 밖으로는 삶의 시간이 흘러가는데, 주인이 떠난 방의 시간은 멈춰있었다. 작가 조현택은 어둑한 빈방에 바깥 풍경을 채우기로 한다. 방의 주인이 보았을 바깥 풍경을 주인에게서 버려진 빈방에 보여주고 싶었다. 방법은 빈방을 사진기의 기원인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라틴어로 어두운 방)’로 만드는 것이었다.
 

 

조현택, Vacant Room #55, 광주시 광산구 덕림동 699-7, 2015, inkjet print, 50×76cm ⓒ조현택
 

암막을 쳐서 방 안으로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고 암막에 작은 구멍을 냈다. 구멍으로 밖의 빛이 들어왔고, 빛은 안쪽 벽면에 바깥 풍경을 거꾸로 비췄다. 하늘과 구름이, 마당이, 거리의 낮 풍경이 허름하고 얼룩진 방 안으로 들어왔다. 작가는 카메라 옵스큐라가 된 빈방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빈방을 채운 바깥 풍경을 장노출로 촬영했다. 재개발로 사라지기 전 빈방은 어느 때보다 찬란한 마지막 풍경을 그의 사진에 남겼다. 백여 개의 빈방을 촬영해가면서 그의 ‘카메라 옵스큐라’는 렌즈 개발과 태양의 고도와 조도, 노출시간 등의 연구로 더욱 정교해졌다.
 
 
그러나 사진에 대한 그의 생각은 허망해졌다. 처음엔 암막에 낸 바늘구멍을 안과 밖의 세계를 잇는 통로로, 구멍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을 두 세계의 연결고리로 여겼다. 하지만 카메라 옵스큐라 안에서 사진을 촬영해 가다보니 실체 없는 빛으로 들어와 벽면에 비쳤다 사라지는 이미지가 흐물흐물한 유령 같기만 했다. 그리고 촬영한 후 얼마 지나 빈집과 빈방이 재개발로 완전히 사라진 것을 보았을 때, 사진이 그에게 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현택, Vacant Room #56, 함평군 월야면 외치리 511, 2015, inkjet print, 100×150cm ⓒ조현택
 
 
집이 있었다는 사실은 비어 있는 현실의 집터로 부정됐고, 빈방에서 촬영했던 기억은 망각되어 갔다. 실재하는 것의 증명이라는 사진에 대한 믿음, 망각으로부터 기억을 보존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상실했다. 단순히 방 안에 방밖 풍경을 비춰 한 공간에 두 세계를 보여주고자 했던 그의 사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빈방에 거꾸로 들어온 상을 다시 뒤집고, 뒤집힌 상이 다시 뒤집혀 보이도록 방에 버려진 형광등을 포함한 사물을 교묘히 배치하기도 했다. 또 방 안팎에 같은 모양의 베개 두 개를 놓고 촬영해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카메라 옵스큐라’에 들어온 환영의 이미지, 현실 안팎의 경계가 모호해 현실이 마치 환영처럼 보이는 이미지로 그의 “빈방”은 변화했다.
 
 
빈방에서 허구의 드라마 세트로


 

조현택, Drama Set_Camera Obscura #10, 2017, inkjet print, 87×190cm ⓒ조현택
 

조현택은 “빈방”의 촬영을 위해 빈집을 찾아다녔다. 끊임없이 재개발이 이뤄지는 한국에서 빈집들은 금세 허물어지기 일쑤였다. 촬영을 지속하던 중 2016년 순천에 있는 레지던시에 입주작가로 들어갔고, 순천 드라마촬영장을 찾게 되었다. 비어있는 집과 방이 많아 보인다는 점에 이끌려 찾아갔는데, 실상은 달랐다. 촬영을 위해 세워진 집처럼 보이는 것들은 얇은 합판을 스테이플로 박아 연결한 허구의 공간이었고, 집과 건물 그리고 거리에는 주민이 아닌 관광객이 매일같이 왔다가 떠났다.
 
 
일제강점기와 1960~1980년대 집과 마을, 거리로 꾸며진 드라마 세트를 배경으로 관광객들은 기념사진을 수없이 찍어댔다. 때로는 그들 스스로가 드라마의 인물처럼 연기를 자처하며 서로를 촬영하기도 했다. 드라마 세트를 배경으로 벌어진 이 광경을 바라본 작가에게 이곳은 그야말로 현실의 허구세계로 진짜와 가짜, 실제와 허구의 경계가 사라진 유령의 세계로 보였다. 그는 “빈방”에서처럼 세트 안을 카메라 옵스큐라로 만들어 “드라마 세트”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조현택, Drama Set_Camera Obscura #6, 2017, inkjet print, 87×130cm, 2017 ⓒ조현택
 

흔히 볼 수 있는 마을의 낮 풍경이 그의 카메라 옵스큐라 안으로 들어왔다. 실제와 외관이 똑같아 진짜처럼 보이는 집과 거리의 풍경이지만, 그 풍경이 비친 면이 생경하다. 격자로 연결된 합판의 면 위로 수많은 핀이 날카롭게 박혀 있다. 실제 같은 가짜 풍경이, 가짜인 그 내부에 비쳐 환영 같은 이미지를 완성했다. 조현택은 드라마 세트와 그 공간에서 실제와 허구를 즐기는 관광객을 함께 촬영해갔다. 그리고 “빈방”과 달리 공간 안팎의 경계를 혼란시키는 여러 장치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장면을 연출했다.
 
 
포토샵 등 디지털 후보정 기술을 사용해 여러 이미지의 레이어를 중첩시키듯 카메라 옵스큐라 안에서 그는 직접 손으로 이미지의 레이어를 중첩해 카메라로 촬영했다. 일례로 세트의 바깥 지붕에 새 모형을 놓고, 카메라 옵스큐라로 비치는 역전된 상에 고양이와 새의 사진을 오려다 붙이고, 새의 모형을 그 옆에 두고 촬영했다. 사진 속 새가 바깥의 새인지, 이미지의 새인지, 안쪽의 새 모형인지 구분하기 위해서는 안과 밖, 이미지와 모형을 구별해야 하고, 이를 위해 들여다보았을 때 합판에 박힌 날카로운 핀은 벽면까지 그 모든 것이 다 가짜임을 폭로한다.
 
 
조현택은 “내가 기억하는 것들”(2001-2002), “소년이여!야망을 가져라”(2007-2009), “젊은이의 양지”(2011-2012) 등을 통해 현실에서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고, 실제 인물을 통해 현실의 이야기를 연출해 보였다. 사진이 과거 현실을 보여주고, 시간의 파편으로서 상실해가는 기억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은 카메라 뒤가 아니라 카메라 안, “카메라 옵스큐라” 안으로 들어간 그에게서 무너졌다. 그는 그곳에서 사진의 처음으로 돌아갔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무엇이고, 사진가는 사진으로써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카메라 안팎을 오가며, 현실 안팎의 세계를 하나의 이미지에 환영처럼 교차하게 했다. 이로써 그의 사진은 실제와 허구, 실재와 환영, 사진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덧없는 사진 이미지 사이를 오간다. 모호한 경계 속에서 오직 분명한 것은 그 자신이 사진의 한계를 마주하고 있지만, 그 한계를 넘어보고 싶어 한다는 것뿐이다.
 
 
조현택(HyunTaek CHO, 1982~)은 동신대학교 사진영상학과를 졸업하고, 조선대학교 대학원 미학미술사학과를 중퇴했다. 개인전으로 (스페이스 바바, 서울, 2008),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대안공간 풀, 서울, 2009), <빈집-Camera Obscura>(잠원미술관, 함평, 2015), <밝은 방>(갤러리 리채, 광주, 2017), <조현택 개인전>(온 갤러리, 진주, 2017)을 가졌다. 2008 아르코 미술관 포트폴리오 서가 수록 작가, 2012 광주비엔날레 포트폴리오 35 최종 작가, 2016 광주비엔날레 포트폴리오 프로그램 등에 선정된 바 있다.
 
 
 
글 : 정은정 기자
이미지 제공 : BMW Photo Space

해당 기사는 2020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