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x Cléo Roubaud 서른한 살에 요절한 여성작가











《Quinze minutes la nuit au rythme de la respiration》
파리의 프랑스와 미테랑 도서관에서는 Alix Cléo Roubaud(1952-1983)라는 낯선 이름의 요절한 한 여성 작가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그녀는 철학자이자 동시에 사진작가이기도 했는데, 당시 잡지에 그녀에 대한 소개를 보자면, 사진가라는 관점보다는 철학가, 이론가로 인식이 더 지배적이었다. 매우 짧은 생을 살았고, 시대를 앞서간 창작가였기에 사진가로서는 잊혀질 뻔 했지만, 시인이자 남편인 Jacques Roubaud의 600여점의 국립 컬렉션 기증으로 그녀가 남긴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번 사진전은 미발표된 도큐멘트 (카달로그, 밀착 인화) 기록과 남편 Jacques Roubaud와의 사적이며 은밀한 사진들을 포함해 약 200백여 점의 오리지널 프린트가 선보이고 있다. 전시 구성은 셀프 포트레이트, 연인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 암실에서 빛을 이용한 다양한 실험적 작품들과 여러 장의 필름을 겹쳐 얻어진 다중인화, 마지막으로 그녀의 죽음을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 ‘빛’과 ‘어둠’, ‘생’과 ‘사’를 넘나드는 완성도 높은 작품인 ‘Si quelque chose noir’시리즈가 중앙에 배치되어 있다. 또한, 많은 양의 텍스트들이 곳곳에 함께 전시되어 관람자로 하여금 작가가 끊임없이 찾고자 했던 사진적 사고를 풍부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녀가 사용하는 ‘텍스트’와 ‘이미지’는 어떻게 보면 따로 분리되어 생각될 수 있으나, 서로를 채워줄 수 있는 상호 보안성에 바탕을 둔 유기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철학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다양한 실험적인 암실작업을 통해서 독자적인 이론을 구축해 나가기 위한 접근 방식으로 마치 논문 등의 개별 연구를 보는 듯 그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Série Quinze minutes la nuit au rythme de la respiration [Saint-Félix, 1980 (prise de vue)
; Paris, 1981 (tirage)] © Jacques Roubaud/Hélène Giannecchini


Série Si quelque chose noir (4/17), Saint-Félix, 1980 © Jacques Roubaud/Hélène Giannecchini

《Si quelque chose noir》
전시 중앙에 마련된 부스에는 대표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만한 살아생전 마지막 작품인 《Si quelque chose noir》 시리즈가 눈에 띈다. 일본의 전통적인 단시인 하이쿠(haiku)의 원칙에 따라 17개의 음으로 이어진 글과 사진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그녀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인 동시에 그의 죽음을 암시한 작품이기도 하다. ‘말할 수 없는 것’과 ‘보여주는 것’의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의 철학적 사고에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사진과 텍스트를 사용하여 때로는 독자적으로 때로는 상호 보완적인 태도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이 시리즈는 1983년 그녀가 생을 마감하고 몇 달 후에 치뤄졌던 아를르 사진페스티벌에서 전시된 작품이기도 하다.

삶과 작품이 하나가 되다
그녀의 작품은 때로는 인간의 육체적 고행과 절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번뇌를 소멸 시키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하루 108배 큰 절을 하는 불교의식처럼, 고행을 통해 온화한 미소를 얻은 수행자처럼, 작가는 ‘셀프 포트레이트’ 작품을 일상에서 항상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고 여겼다. 이 밖에도 ‘Quinze minutes la nuit au rythme de la respiration’ 작품에서 보듯이 작가는 심한 천식으로 인해 호흡이 곤란한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가슴에 올려놓고 15분간 장시간 노출을 이용해 호흡을 가다듬으며 촬영한다. 어두컴컴한 풍경위로 보이는 흐릿하고 미세한 움직임들은 그녀가 겪었을 고통을 짐작하게 해준다.

또한, 작가는 원판 필름을 매번 파기하는데 그 이유는 ‘인화지에 드러난 이미지’만이 완성된 작품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사진의 ‘인화’를 통해서 구현된 작품, 즉 재복제가 불가능한 이미지만이 그녀가 찾고자 했던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또 다시 인화를 하는 과정을 ‘기억’을 되찾으러가는 불필요한 반복된 접근으로 바라보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작가는 미세한 빛에도 쉽게 반응하는 감광지처럼 허약한 체질을 타고 났으며, 화가의 팔렛트와 같았던 ‘원판 네거티브 필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를 기다려 그녀 또한 세상을 떠난 걸 보면 사진과 함께 할 운명이었나 보다. 

2014.10.28-2015.2.1
파리 프랑스와 미테랑(François-Mitterrand)도서관 제1전시실

 

글, 사진 김영준Kim, Young-June 파리특파원
해당 기사는 2015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