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큰 홀 Broken Whole〉 호정 & 브루노



호정과 브루노가 갤러리 나우에서 아이들의 배냇저고리로 만든 작품을 천장에 설치하고 있다.
지인들에게 기증받은 배냇저고리에는 호정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가 영어와 한국어로 쓰여있다.




Bruno Figueras and Hojung Audenaerde, Sengai Gibon Composition v1a2 draft



Bruno Figueras and Hojung Audenaerde, maternal trinity 2016


“나는 그 아이에게 엄마는 결코 너를 잊은 적이 없다고 말해주고 싶을 뿐이에요. 그 아이에게 왜 그 애를 보낼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를 말해주고 싶을 뿐이에요.”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내고, 이후 계속 그 아이를 찾고 있다는 여성은 떨리는 입술로 자신의 아이가 가졌을 의문인 ‘왜, Why?’에 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그녀를 호정은 차분하게 바라보았다.

호정 역시 한인 입양아로, 그는 태어난 지 27개월 만에 벨기에 출신 부모에게 입양돼 이탈리아와 미국에서 자랐다. 그가 자라오면서 계속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도 ‘왜, Why?ʼ 였다. 왜 나는 나의 부모와 얼굴이 다른가? 왜 나의 생물학적 부모는 나를 포기했는가? 모두가 서양인인 환경에서, 나 스스로도 완벽하게 서양인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데, 왜 나의 얼굴은 아시안인가?

호정은 아이를 입양 보냈다는 어머니와 한참을 대화하고, 끝내 둘은 포옹했다. 그 어머니의 눈물은 어쩌면 호정의 생모가 흘린 눈물일 수도 있고, 혹은 호정 자신의 눈물일 수도 있었지만, 낯선 여인의 품에 안긴 그녀의 표정은 한 없이 평온하고 고요했다.

“사람들은 이 작품들을 보며 내가 얼마나 괴로웠고, 얼마나 고통 받았을지를 상상하곤 하지만, 나는 평온해요. 평온해지려고 억지로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저 고요와 평온 속에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가령 저기 물이 든 컵을 응시하는 사진이 있죠. 삼각형, 사각형, 원의 프레임은 200년전 한 일본의 선승이 그린 캘리그라피로, 그가 우주라고 말하면서 표현한 도형을 상징합니다. 그 안에 물이 든 컵을 보고 물이 반이 남았다거나, 혹은 물이 반이 비어있느냐 어떻게 보느냐는 인식의 차이죠. 그러나 나는 물이 그저 거기 있구나하고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 물에 대해서 어떤 판단도 하지 않는 거죠. 전시의 제목이 〈브로큰 홀 Broken Whole - 조각난 완성체〉인 것도, 깨어진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모순 같지만, 깨어진 것을 다시 붙이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깨어진 그 자체가 불완전한 것도 아니라, 깨어진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모든 것, 완전한 것’으로 받아들일 뿐이죠. 내가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듯이요.”

 


Bruno Figueras and Hojung Audenaerde,destiny is served, 2016



Bruno Figueras and Hojung Audenaerde, cultural migrations, 2016



Bruno Figueras and Hojung Audenaerde, eyes wide open 2016


호정Hojung Audenaerde은 자신의 파트너 브루노 피구에라스Bruno Figueras와 함께 예술가 듀오 visibleINvisible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지난 3월부터 1일부터 13일까지 갤러리 나우에서  〈브로큰 홀 Broken Whole〉전시를 열었고, 지난 1월 영국 런던에서도 동명의 전시를 열었다. 작품 컨셉을 함께 정한 후, 호정이 모델로 카메라 앞에 서고, 부르노가 직접 촬영했다. 흑백의 모던한 사진 속에는 호정이 겪은 정체성의 혼란과 붕괴,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한 개인의 심리적 심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호정은 10대부터 시작된 정체성의 혼란을, 요가 수련과 불교 수행을 통해 답을 찾으려 했다. 그는 결국 자신의 생물학적 부모를 찾아 한국으로 왔고, 39년 만에 처음만난 친모는 이미 반신불수가 되어 ‘한 마디의 말’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녀는 눈빛만으로 친모가 자신을 알아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상에 누운 생모를 만나고 온 후, 그녀는 스스로 말을 잃었다. 벽 안에 갇힌 듯 자기 안으로, 깊이 깊이 가라 앉았다. 그 때 사진으로 이런 감정들을 표현해보고, 치유해보자고 제안한 이가  브루노였다.
“〈브로큰 홀〉은 내 내면의 작품이에요. 어떻게 살아왔는지, 연약한 자아정체성에 대해서 표현했죠. 우리 작업은 매우 정적인 상태에서, 침묵 속에서 태어난 작품들이에요. 그것은 이제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내 친어머니를 위한 작업이기도 하고,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위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단지 제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인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입양아이든, 한국인이든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이 깨어지고 찾아가고, 고뇌하는 과정이 있기 마련이죠.”

호정과 브루노는 가면, 접시, 가위 등의 오브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이는 호정이 느낀 복잡하고 깊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이다. 브루노는 “박스 안에 호정이 들어가 있는 사진은, 실제로 호정의 형제-입양 부모가 입양한 또다른 형제-가 박스 안에서 발견됐다는 사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호정이 아시아, 특히 일본인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은, 그가 내면에는 푸른색의 눈을 가진 서양인이지만, 그를 보는 다른 이들은 모두 호정을 ‘일본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 인식하는 자신과 타인이 바라보는 자신 사이의 격차와 혼란을 표현한 것”이라 설명했다.

한국 전시에서 적지 않은 관객들이 호정에게 ‘왜 한국인인데 일본 가면을 쓰고 있냐? 혹시 한국의 탈과 일본의 가면을 착각한 것이 아니냐?’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러나 호정은 그 가면들이 일본 전통가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녀가 자라온 지역에서는 대부분이 백인들이었고, 아시안계는 거의 없었기에, 호정을 마주친 사람들은 대게 그녀에게 ‘일본인이냐?’고 질문했다.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호정 역시 철저하게 서양인으로 자라왔기에, 한국과는 어떤 문화적 동질성이나 정체성을 지니지 못한 채, ‘일본인이냐?’는 질문을 듣는데 익숙해졌다. 그는 자신의 동양인 얼굴이 ‘스스로 덫에 걸린 듯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Bruno Figueras and Hojung Audenaerde, the fetal box 2016



Bruno Figueras and Hojung Audenaerde, behind the pearly whites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사진은 빈 접시 옆에 젓가락과 포크, 그리고 그녀의 어린 시절 사진이 놓인 작품이다. 이 사진은 일종의 서양과 동양의 만남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비어있는 접시는  자신 앞에 놓인 운명을 상징한다.

“‘당신의 접시에는 무엇이 있나요?’라는 말은 당신에게는 어떤 운명이 준비돼있냐는 말과도 같은 의미입니다. 접시가 비어져있다는 것, 그 자체로 나의 운명과 같다고 느꼈어요. 인생은 미스테리로 가득 차 있죠. 내 입양부모가 처음부터 나를 입양하려 한 것은 아니예요. 원래 다른 아이를 입양하려했는데, 그 아이가 아니고 내가 오게 됐다고 해요. 나는 자라오면서 항상 ‘왜?’라는 질문을 했어요. 그 어린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또 내 생물학적 부모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하고요.”

그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생모는 이제 말할 수 없다. 호정은 한국말을 할 수 없기에 생모에게 자신의 질문을 직접 전할 수도 없다. 대신 호정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띄우는 편지를 쓰고, 한국어로 번역한 그 편지를 108명의 한국인 여성들이 읽게 하고 그 소리를 녹음했다. 티벳에서는 룽다라고 해서,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이 있는데, 바람이 불때마다 거기 적힌 불경과 자비가 온 세계로 전해진다고 한다. 여기서 영감을 받아 호정은 108명의 갓난아기들이 입던 배냇저고리를 받아 거기에 어머니께 쓰는 편지를 적고 그것을 전시장 한 켠에 만국기처럼 매달았다. (사진1 참조)세상의 모든 아이들과, 어머니들에게, 특히 입양아와 그 아이들을 떠나보낼 수 밖에 없었던 친모들에게 자신의 마음이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엄마, 이 편지가 엄마에게 잘 전해지기를 바래요. 지난 번 엄마를 만나게 되어 저는 행복하고... 마음이 울적했어요. 저는 엄마 생각을 늘 합니다. 지난 번 함께 한 몇 장의 사진을 보냅니다. 엄마가 항상 편안하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엄마는 항상 제 마음 속에 있어요. -  사랑하는 당신의 딸, 효정

 

글 석현혜 기자
해당 기사는 2017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