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우, 2019 동강사진상 수상자

올해 동강사진상은 사진가 박종우(1958~ )에게 돌아갔다. 30년간 사진과 동영상 작업을 함께 하고 있는 그는 ‘차마고도’를 비롯해 아시아 문화 기록들을 중점적으로 발표했고 최근에는 DMZ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사진은 타임캡슐이라는 그의 생각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박종우 작가의 사진 작업은 사라져버리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런 감정은 빛과 색감과 구도가 절정에 이르는 순간을 포착함으로써 그 대상이 무엇이든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화면으로 표출된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한순간도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시간의 단면을 도막내어 단단히 붙들어 매는 사진은 시간과 겨루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인간의 유한성을 보완해주지만 동시에 그 한계를 가장 실감하게 만드는 매체다. 사진은 결국 흘러가버리는 시간의 흔적을 주워 담는 그릇이 아닐까. 타임캡슐 안에 우리가 살았던 시간, 우리가 보았던 슬프고 아름답고 소중했던 기억들을 차곡차곡 담아 후세의 사람들이 꺼내 볼 수 있도록 현재를 저축하는 것, 그것이 또한 박종우 작가의 사진을 설명해주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박종우 작가는 중학교에 다닐 때 이미 그의 카메라를 소유했다. 훗날 카메라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삶의 도구가 될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 시절에 사진은 즐거운 놀이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신문방송학과에 다닐 때까지도 기자가 되겠다는 생각이었지 사진 기자를 꿈꾸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진기를 잘 다루던 그는 결국 「한국일보」 사진 기자가 되었는데 오래지 않아 그의 적성이 아님을 알아차렸다고 말한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분야의 사진을 전문성 없이 두루 다 찍어야 한다는 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또 신문 사진은 이래야 한다는 정형화된 틀을 따라야 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고요. 찍기 싫은 사진도 찍어야 한다는 게 싫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2년 만에 사표를 썼고 다시 2년 후에 재입사하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1984년에 입사하여 그럭저럭 10년을 채우면서 역시 사진 기자 체질이 아님을 절감하고 1995년에는 마지막 사표를 썼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프로덕션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에 자신의 프로덕션을 설립, 찍고 싶은 사진만 찍는 길을 선택했다.

“1987년에 히말라야로 촬영을 하러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프랑스 사람 세 명이 영상을 만들고 있기에 어느 방송사 소속이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방송국이 아니라 프로덕션에 있다고 하면서 한국에는 없느냐고 묻는 거였어요.”

그때 처음으로 그들로부터 프로덕션이 뭐 하는 곳인지 알았다는 그는 “그렇다면 나중에 우리나라에도 생기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프로덕션을 하려면 사진만이 아니라 동영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남보다 일찍 동영상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이 1995년에 독립하여 프로덕션을 차릴 때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아시아의 문화 기록에 관심을 갖고 다니다 보니 기록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고, 기록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것이라면 어떤 게 먼저 사라질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그중 하나가 소수 민족이었습니다. 90년대 중반만 해도 많이 사라져버렸지만 그래도 아직 깊은 오지에 가면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지구 곳곳의 오지를 찾아다니며 촬영한 동영상은 당시에 공영 방송사에서 방영되었고, 때로는 방송사의 기획으로 그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세계를 누비기도 했다. 1995년 이후 지금까지 동영상 작업이 그가 전업 사진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밑천을 대준 셈이다.

 


Asian Portraiture ⓒ박종우



On the border - Forbidden Forest ⓒ박종우



On the border - Forbidden Forest ⓒ박종우


멀리 보면 눈빛이 깊어진다
“그들의 눈빛이 왜 깊은지 아세요?”
이제까지의 작업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아시아인의 포트레이트라고 말하던 박종우 작가가 갑자기 질문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참 눈빛이 강렬하고 깊다. 설령 남루한 옷을 입고 문명화되지 않은 모습일지라도 그들의 눈빛만큼은 아주 깊고 투명하다. 그 이유는 그들이 멀리 보며 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에서 작가가 왜 그 멀고 험한 곳으로 그들을 만나러 가는지, 왜 그들에게 애정을 갖고 촬영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바로 그 눈빛을 만나러 간 것이었다. 날마다 손 안의 것만 들여다보고, 눈앞의 것에만 연연하며 울타리 밖을 쳐다보지 않는 현대 문명인의 근시안에서 벗어나 문명 이전의 것, 문명 이외의 것을 바라보며 사는 원시인(原始人)이 아닌 원시안(遠視眼)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리라.

1989년에 티베트 출장을 갔다가 티베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곳에서 우연히 옛 차마고도를 오가던 대상들의 사진을 보게 되면서 그들의 깊고 센 눈빛에 매료되었다. 그 이후 그곳을 부지런히 오가며 촬영한 결과물이 2007년에 선보인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 2008년 “사향지로”, “바다집시” 등과 TV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한 2001년의 “몽골리안 루트” 등이다. 그가 매그넘 작가인 스티브 맥커리(Steve Mccurry)의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도 ‘아프카니스탄의 소녀’라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인물의 눈빛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권에서 흥미를 느꼈던 지역은 두 개의 문화가 부딪치면서 혼합되는 캐시미르 같은 지역이었어요. 불교와 힌두교가 섞인다든지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만나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가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때도 경계와 만남 그리고 섞임 같은 것에 마음이 쏠렸던 것 같아요.”

이러한 그의 성향은 아시아에서 국내로 눈을 돌려 작업을 할 때 남과 북의 경계선, 비무장 지대(DMZ)로 자연스럽게 전이되었다. 2009년에 한 신문사에서 기획한 “비무장 지대” 프로젝트에 동참하면서 DMZ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박종우 작가는 지금은 “DMZ 작가”라고 불릴 정도로 비무장 지대의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보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On the border - Guards Post ⓒ박종우



On the border - NLL ⓒ박종우


독일 출판사에서 분단 사진집 출간
올봄 ‘문화역서울284’에서 라는 제목으로 사진과 동영상뿐 아니라 회화, 설치, 건축 등 각 장르를 아우르는 대규모 전시가 이루어졌다. 이 전시장 한쪽에는 박종우 작가의 비무장 지대를 보여주는 대형 사진들과 함께 동영상도 선보였다. “DMZ inside”라는 제목의 작품은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공간을 촬영하는 것이어서 작가가 마음껏 자유롭게 찍을 수 없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많은 것을 기록하고자 한 그의 절실한 의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2009년 처음 비무장 지대에 들어갔을 때 냉엄한 현실임에도 그곳이 가상의 공간처럼 느껴졌어요. 이런 초현실적인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군사적인 시설을 배제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지는지…. 자연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DMZ 사진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어요.”

그의 말처럼 그의 비무장 지대 사진을 보면 어느 명소의 풍경 사진 이상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의 속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마치 숨은 그림처럼 군사 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이 엉뚱하고 생경한 조합이라니! 이중 삼중으로 얽힌 삼엄한 철조망, 지뢰라고 쓰인 표지판, 중무장한 군인, 그 반면에 사람의 간섭이 없어 무성해진 숲과 맑은 시내와 물웅덩이에서 한가롭게 목을 축이는 고라니와 떼를 지어 날아가는 새들…. 마치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어리둥절해진다. 더구나 그 터무니없는 세월이 70년이나 지속되고 있다니…. 그러므로 이 역설적인 아름다움은 오히려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넌지시 일러주는 반어법으로 느껴진다.

그가 촬영한 초현실적인 공간 DMZ는 2017년 독일 슈타이들(Steidl) 출판사에서 사진집으로 출간되는 등 반응이 좋았지만, 비무장 지대는 사진 촬영의 허락을 받기 어려워 후속 작업의 어려움이 따른다. 이에 대한 차선책으로 그가 택한 분단의 소재는 ‘대전차 방어막’이다. 이는 DMZ 인사이드가 아니라 아웃사이드에서도 촬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무장 지대 촬영을 시작하면서 대전차 방어막이 아주 광범위하게 퍼져있음을 보고 이 소재만 별개로 작업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2017년부터 대전차 방어막을 찍기 시작한 그는 우리처럼 분단국가였던 독일로 범위를 넓혀 촬영 중인데, 슈타이들 출판사에서는 내년에 독일과 한국의 대전차 방어막을 소재로 한 사진집을 내자고 제안해왔다고 한다. 대전차 방어막은 1950년 한국전쟁 때 북한의 탱크가 거침없이 돌진해왔던 아픈 경험이 있어 전후에 우리 국방부가 열성적으로 설치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시대착오적인 측면이 있지만 그 트라우마가 워낙 강했던 터라 이 설치물은 아직도 요지부동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독일의 대전차 방어막은 서독과 동독의 사이에 있는 게 아니라 히틀러가 프랑스와 국경 지대에 만들었다는 점에서 분단의 산물이 아니죠. 그러나 경계라는 측면에서는 같은 의미라고 봅니다. 프랑스의 전차가 넘어오지 못하도록 콘크리트 장벽을 몇 단계로 쌓았는데 이걸 영어로 ‘Dragon teeth’라고 불러요. 우리나라에서도 용의 이빨이란 뜻을 그대로 받아 용치라고 부릅니다.”
독일에서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용치가 영국의 해안가에도 스위스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시설물들이 실제로 용도에 맞게 쓰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어찌 보면 괜히 만들고 괜히 공포감을 조성하고 괜히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또한 엉뚱한 가상 현실 같다. 오지 않는 적을 기다리며 필요 이상의 경계심을 고취시키는 국가 이데올로기에 대해 작가가 의구심을 제기하는 대목이다.


 


On the border - Yongchi ⓒ박종우



On the border - Yongchi ⓒ박종우




ⓒ곽명우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찍고 싶어
지난 5년간은 동영상 작업이 훨씬 많았다고 말하는 작가는 앞으로 진짜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고 말한다. ‘진짜’라는 의미는 그들의 삶으로 녹아 들어가는 사진가의 진정성을 말하는 것이다.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해마다 시행하는 ‘부산참견록’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어 부산을 촬영 중인 그는 자신이 여덟 번째 작가여서 지난 7년의 작품들과 다른 각도에서 부산의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고민이 많다고 말한다. ‘Street Photography’라는 원칙은 정했지만, 아직 구체성이 없다며 고민을 거듭하는 그에게서 작가로서의 엄격한 결벽증이 느껴진다.

“요즘에는 젊은 작가들이 해석과 포장에 너무 공을 많이 들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진이 사유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냥 좋은 사진, 아무 설명 없이도 그냥 좋은 사진도 좋잖아요?”

그는 너무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내 주변과 지역을 도큐멘트하는 작업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어렸을 적에 보았던 서울의 동네와 골목들을 왜 기록해놓지 못했을까 안타까워요. 우리 집 앞에 대장간도 있었는데 그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어요. 그리고 청진동 골목과 무교동 골목…. 돌이켜 보면 아쉬운 게 한두 개가 아니에요. 그런 후회 이젠 안 하려고 해요.”

한때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유행어였는데, 사진가는 ‘있을 때 찍어야’ 한다. 걸어 다니는 걸 참 좋아한다는 박종우 작가의 부산 스트리트 포토그래피가 완성되면 곧이어 서울의 거리가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그의 유난한 연민이 그의 유려한 카메라 워크로 타임캡슐 속에 무엇을 담게 될지 궁금하다. 한편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7월 5일부터 시작되는 동강국제사진제 기간 중에 동강사진박물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 동강국제사진제  전시일정 : 7월 5일 ~ 9월 29일

 

글 : 윤세영 편집주간
해당 기사는 2019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