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원│고래가 있는 공간
- 2024-08-08 09:59:31
고래사진을 찍기 위해 남태평양 바다로 항해하는 배의 갑판에 선 장남원 작가와 그가 사용하는 수중 카메라들
고래의 집
서울에서 경의중앙선 전철을 타고 한강 상류를 따라 올라가면 경기도 남양주시 ‘도심’역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불과 5분 거리에 고래사진가 장남원의 작업실이 있다. ‘장남원 갤러리’란 간판이 붙은 32평의 공간에는 약 40점에 이르는 고래사진과 귀한 수중 카메라가 전시되어 있어 그곳에서 그는 태평양에서 만난 고래를 날마다 사진으로 다시 만나며 행복한 사진가로 산다.
경기도 남양주시 덕소에 있는 장남원 작가의 작업실 겸 갤러리.
7년 전에 멕시코 바다에서 수중촬영 중에 패혈증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그 무렵에 3층 건물을 지어 3층에 개인 갤러리를 열었다.
7년 전에 멕시코 바다에서 수중촬영 중에 패혈증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그 무렵에 3층 건물을 지어 3층에 개인 갤러리를 열었다.
장남원 작가(1950~ )는 한국의 대표적인 고래사진가다. 그가 고래를 처음 본 것이 1992년이니까 벌써 30년간 고래와 인연을 맺어온 셈이다. 그는 일본 오키나와 남쪽에서 배로 2시간을 달린 끝에 다다른 바다에서 처음으로 고래를 보았을 때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망망대해 태평양에서 위로 솟구쳐 오르던 고래의 힘찬 몸짓과 큰 덩치에 비해 턱없이 작고 순한 눈이 그의 가슴 속으로 훅 파고들어 온 것. 당시엔 다른 취재를 위한 출장이어서 짧은 만남에 그쳤지만 그 이후 그의 고래앓이가 시작되었다.
“원래 어려서부터 물을 좋아했어요. 당시로서는 아주 드문 일인데 그때 내가 다닌 사립초등학교에 수영장이 있었거든요. 수영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미 고래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물을 좋아해서 해군에 자원입대할 정도였는데 해군본부에 복무하는 바람에 바다 구경도 못 하고 제대했다며 웃는다. 그렇게 물을 좋아하다 보니 신문사에 입사한 뒤 자발적으로 1979년부터 스쿠버 다이빙을 배워 수중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바다는 육지에서보다 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힐링의 공간이었다.
“1977년에 중앙일보 사진기자로 입사했어요. 문제는 기계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사진공부가 제대로 안 된 상태로 의욕만 갖고 입사했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니 전쟁터 같은 신문사에서 날마다 혼나느라고 정신을 못 차렸지요. 그렇게 일이 년이 지나자 사진기자를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에 빠졌어요. 그때 나를 붙잡아준 것이 ‘물’입니다.”
1979년에 수중촬영을 시작하면서 그에게 주 종목이 생긴 셈이다. 그의 사진기자 생활에 날개, 아니 지느러미를 달았다고 할까. 틈만 나면 독학으로 해외서적을 읽으며 스쿠버 다이빙을 공부했고 바다로 달려갔다. 우리나라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인지라 그는 점차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갔고 그런 와중에 1992년 일본 출장을 갔다가 고래를 처음 만난 것.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문사에서 시련이 멈춘 건 아니었어요. 소말리아 내전과 르완다 내전, 걸프전 등 목숨을 건 취재현장에 특파되기도 했고 여러 분야에서 숱한 사진을 찍었지만 조직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 나를 힘들게 했어요. 그래서 1997년에 신문사를 그만두면서 결심했어요. 이젠 절대로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요.”
32평 갤러리의 내부에는 장남원 작가가 촬영한 고래사진과 함께 그가 사용한 수중 카메라들이 전시되어 있다.
고래에 빠지다
신문사를 그만두고 그는 1년간 카메라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먹고사는 방편으로 그의 별명을 딴 ‘고릴라’라는 음식점을 차리고 사업에 열중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물’이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육지에 발을 붙이고 있으려 하면 끝내 물이 그를 불러냈다. 그동안 수중사진을 많이 찍었지만 제대로 고래사진을 찍고 싶다는 욕망이 그를 흔들었다. 결국 사업은 아내에게 맡기고 다시 카메라를 잡았다.
“고래사진을 찍으려면 적어도 3주일은 일정을 잡아야 하니 직장을 다니면서는 힘들어요. 그런데 이제 자유인이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고래촬영에 관한 해외자료와 정보를 취합하여 지식을 습득하고 고래촬영에 필요한 카메라와 장비를 더 꼼꼼하게 갖추기 시작했다. 준비가 끝나자 그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통가왕국으로 떠났다. 통가에는 매년 7월부터 10월까지 새끼를 낳기 위해 혹등고래가 몰려들기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고래를 찍는 사진가들도 몰려든다. 따라서 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엄격한 통제 아래 촬영 허가가 이루어지는데 배를 타고 나가 고래를 발견하면 30미터 이상의 간격을 두어야 한다. 또한 고래가 놀라지 않도록 공기통 없이 맨몸으로 잠수하여 촬영을 해야 한다. 고래의 귀가 몹시 예민해서 공기통에서 올라오는 기포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현지 안내원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고래를 포착하면 시동을 끄고 접근해요. 보통 수면 아래 10미터 정도까지 잠수해서 촬영을 합니다. 한 번 잠수할 수 있는 시간이 1분 30초 남짓, 숨이 차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쉬고 내려가야죠.”
남태평양 통가왕국 바다에서 혹등고래를 촬영 중이다. 혹등고래는 온순한 성격이어서 사람과도 곧잘 어울린다.
“모성애가 지극한 포유류입니다. 그렇게 자기 몸을 비우며 새끼를 키우고는 그 새끼를 데리고 6,600km를 헤엄쳐 남극의 바다로 가요. 그 긴 여행을 하는 동안 상어와 범고래 등으로부터 새끼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런데 간신히 여행을 다 마칠 무렵엔 길목을 지키고 있는 포경선을 만나 생을 마감하기 일쑤지요. 그런 생각을 하며 고래의 눈을 바라보면 슬퍼져요.”
필름으로 촬영했으므로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 장담할 수 없지만 잘 나오지 않았더라도 상관없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설렜다고 한다. 고래를 만나 사진을 찍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장남원 작가는 점점 고래에 빙의되어 갔다.
혹등고래는 모성애가 매우 강하다. 여름이면 통가 앞 바다로 와서 새끼를 낳고 보통 4개월을 머무르며 새끼를 키운다.
그 후 새끼를 데리고 6600km를 헤엄쳐 남극바다에 이른다.
다음 목표는 향유고래
“내년에 고래를 찍으러 가기 위해 아침에 북한강을 따라 걷고 체력을 키우고 있어요.”
그는 내년 4월에 향유고래를 만나러 아프리카 모리셔스로 떠난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고래 사진은 혹등고래인데 장남원 작가는 마지막으로 향유고래를 촬영해보고 싶다고 한다. 따라서 날마다 오전에는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오후 1시부터 5시까지만 갤러리를 여는데, 고래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다양하다고 한다. 특히 작년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자폐아를 둔 부모가 찾아와 고래사진을 구입하는 일도 있었다.
“드라마에서 자폐를 가진 우영우라는 변호사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마다 고래가 등장하는데, 그게 제가 찍은 사진이었어요.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덩달아 고래사진도 조명을 받았어요.”
2022년에 잠실 롯데타워에서 대규모 고래사진전이 열렸고 여러 군데에서 전시 초청을 받으면서 고래를 소재로 한 개인전만 10회에 이르렀고 큰 화제가 되었다. 특히 그는 외국의 고래사진가들과 달리 단순한 생태사진에서 나아가 예술적 감각이 빚어낸 고래사진을 추구함으로써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남다른 고래사진을 위하여 그가 얼마나 많은 땀과 열정과 시간을 쏟아 부었을지, 심지어 7년 전에는 생명을 잃을 뻔한 일도 있었다. 멕시코에서 수중동굴을 촬영하다가 패혈증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그때 패혈증 치료를 위해 두 달간 날마다 항생제가 든 링거를 8병씩 맞았다고 한다. 이렇게 500병의 항생제를 투여한 끝에 간신히 패혈증을 잡은 다음에는 심장판막 수술이 이어졌고 망가진 간과 대장 등의 치료로 총 4달을 입원하면서 몸무게가 13kg이나 빠졌다.
“오랫동안 입원하니 우울증이 오대요. 병원 창문이 왜 열 수 없게 되어 있는가를 그때 알았어요. 뛰어내리고 싶었어요.”
퇴원하고 무기력한 시간을 보낼 때 건물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자리, 남양주 덕소에 3층 건물을 지으면서 점차 건강을 회복해 갔고 그때 지은 건물 3층에 ‘장남원 갤러리’를 열었다. 바다로 갈 수 없어 건물을 지은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작업공간이 생기자 차분하게 그간의 작업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사진을 펼칠 전시공간이 생기니 언제든지 쉽게 작품을 보여줄 수 있게 되면서 때맞추어 고래사진의 전성기가 찾아왔으니 말이다.
자신이 찍은 고래사진 앞에 선 장남원 작가. 그는 바다에서 고래와 만날 때가 참 행복하다고 말한다.
장남원 작가에게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고 수중촬영에 나선 제자들과 필리핀에서 기념촬영. 어마어마한 장비들이 눈길을 끈다.
수중사진을, 특히 고래사진을 찍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진가로서 후배들의 멘토가 된 장남원 작가. 수중사진을 처음 접했을 때 “내가 갈 길은 이 길이로구나!” 직감했고, 그 이후 물속에서 최초로 광각으로 수중사진을 찍으며 색다른 물속 세계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해외 서적을 구해 읽으며 공부했지만 오랫동안 수중사진을 찍으며 스스로 터득한 노하우를 두 권의 이론서적으로 발표했다. 현재 실전에서나 이론에서나 그를 능가할 수중사진가는 없지만 이제부터는 슬슬 육지에 발을 딛고 새로운 사진을 모색하려는 장남원 작가. 수중사진에 이은 육지에서의 작업이 ‘땅 짚고 헤엄치기’가 될지, 그가 앞으로 펼칠 새로운 작업이 매우 기대가 된다.
글 윤세영 편집구간
해당 기사는 2023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