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피보다 진하다 | 스테판 윈터 〈디 윈터〉

“우리는 행복한 가족이었고 이 사진들은 이런 행복의 증거이죠. 저는 10대 때도 이후에도 특별한 반항기가 없었어요. 부모님께서 항상 열린 마음으로 나를 친구처럼 대해주셨기 때문이죠. 우리는 가족이란 이름의 좋은 팀(Team)입니다.”

스테판 윈터는 부산에서 태어나 한 살도 되기 전에 스위스 로잔느의 로베르트 우니터와 피에레테 윈터 부부에게 입양됐다. 화학과 사진을 전공했던 그는 14세때 처음 선물받은 카메라로 가족을 찍기 시작한 이후, 25년 동안 6000장이 넘는 가족사진을 찍었다. 
 
die Winter ⓒStéphane Winter
 

그는 이 사진들을 지난 5월 제 15회 랑데부 드 부산으로 부산 프랑스문화원 ART SPACE에서 개최된 자신의 개인전 〈디 윈터die Winter〉에서 전시했다. 그에게 부산에서의 전시란 “원점으로 돌아와 25년간의 가족 프로젝트 결말이 완전해지는 것(Boucler la Boucle)”과 같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40년 넘게 자란 스위스 가족의 생활을 전시하고 한국 관객들과 공유하는 것은 그만큼 특별한 경험인데, 그는 이 전시가 “누군가에게 가족 앨범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부산 프랑스문화원 ART SPACE(부산 해운대구 우동)의 전시장에 들어서면 소박하고 유쾌한 윈터가의 가족사진이 관객을 반긴다. 작가의 말처럼 마치 누군가의 집을 방문해 그들의 행복한 기억이 담긴 가족앨범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전시는 스테판의 부모가 어린 시절의 그를 찍은 사진들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일렬로 붙어있다. 몇몇 사진은 흔들리거나 초점이 안 맞기도 하지만, 큰 침대 위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거나, 눈썰매를 들고 신난 아이의 모습은 카메라 렌즈 저 편에서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을 부모의 마음을 상상케 한다.
 
die Winter ⓒStéphane Winter
 
 
die Winter ⓒStéphane Winter
 
 

그리고 이어지는 스테판 윈터가 찍은 부모의 모습이 함께 나오는데, 욕실 속에서 익살맞은 수영복을 입고 포즈를 취한 아버지나, 껄렁한 락스타 분장을 한 어머니, 함께 코스튬을 차려입고 포즈를 취한 가족의 모습을 보면 피부색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지만 그들이 서로 닮은꼴인 가족이란 것, 한 팀이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사랑은 피보다 더 진한 법이 아니던가.

전시를 한 바퀴 돌아보면 전시장에 설치된 스마트 폰에서 반복 재생되는 짧은 영상을 볼 수 있다. 영상 속 스테판 윈터의 아버지는 여자 드레스를 입고 발레리나 흉내를 내면서 거실을 가로지르고, 소파에 앉아 이를 지켜보는 어머니가 박장대소를 한다. 반복되는 영상을 보면, 이 사진들을 찍기 위해 카메라 렌즈 너머로 부모를 바라보고 있을 스테판 윈터가 연상된다. 작가는 아마도 이 행복의 순간을 기록하며 미소 짓고 있었으리라.

어린 그를 사진 찍으며 행복해 했을 윈터 부부의 시각과, 부모의 유머러스한 일상을 기록하는 스테판의 시각, 이 두 시선이 교차하면서 부모와 자식 간,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사랑하는 순환의 고리가 완성된다. 그 충만한 행복감과 사랑이 보는 이들까지 미소짓게 한다.

“만약 나의 친부모를 만난다면 기쁘겠죠. 나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 같아요. 친부모가 나를 보낸 것에 대해서는 원망하지 않아요. 사람은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나중에 후회할지는 몰라도 그 때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하니까요. 그 때 그들이 나를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그들 나름으로 최선의 결정이었을 수도 있고요. 내가 그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들의 선택을 판단할 수는 없어요. 그렇다고 부산에서 태어나 1살에 스위스로 입양돼서 스위스 부모님 아래서 40년을 살아온 내 삶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내 가족이 바뀌는 것도 아니죠.”
 
 
die Winter ⓒStéphane Winter
 
 
die Winter ⓒStéphane Winter
 
 

스테판 윈터는 25년간 지속하던 가족사진 프로젝트를 2011년에 멈췄다.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더 이상 사진 찍는 것을 힘들어 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그만해야 할 순간을 인정해야 했다”며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 모든 것이 유효기간이 지났음을, 끝낼 때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 사진들이 단순히 가족사진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전시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중에야 이 사진들을 박스에서 꺼내어 다시 보면서 내 부모님의 사진이 단지 입양아와 그의 행복한 가족의 개인사란 의미 외에도, 80~90년대 스위스 중산층 가정을 잘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진 속의 옷, 가구, 차가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 가족의 삶은 지극히 평범했고 부모님은 이런 소박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죠. 이런 소박한 일상이 사진에 드러난 것은 내 부모님들의 삶의 방식이 자랑스러웠기 때문이에요."

스테판 윈터의 가족사진은 새삼 사진의 역할에 대해 생각케 한다. 사진은 그 순간을 종이 위에서나마 영원히 정지시킨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가장 소중했던 기억들을 사진을 통해 추억할 수 있다. 

사진이 남고 추억이 남고 가족이 남는다. 그들이 여기에 있었음을, 지금은 여기에 없음을, 그렇지만 영원히 가슴 속에 남아 있음을 사진은 기억케 한다.

해당 기사는 2017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