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 Life② - 구본창, 시간을 찍다


국제갤러리 부산점 구본창 개인전, 설치전경

구본창 작가는 인물을 오브제처럼, 오브제를 인물처럼 찍는다고 평을 받는다. 그가 찍은 백자작업들을 보면 마치 영혼이 있는 듯 느껴지는데, 분홍빛 백자는 규방에 곱게 모셔진 아가씨 같고, 청자는 소탈하면서도 우아한 선비와도 같다. 국제 갤러리 부산점에서는 지난 해 12월 14일부터 오는 2월 17일까지 구본창의 개인전 을 개최 중이다. 이 전시에서는 구본창 작가가 찍은 <백자> 연작 9점과 <청화백자> 연작 6점, 대형 <제기> 등 총 19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구본창의 <청화백자>가 처음 공개되어 더욱 주목을 끈다. 작가는 지난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푸른 빛에 물들다> 전을 보고 조선 청화백자의 세계에 매료됐다고. 국제갤러리 부산점 전시장에서 구본창 작가를 만나 그의 청화백자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들었다.   


이번 전시에서 청화백자 작업을 처음 공개했다. 우리나라 청화백자의 특징이 있다면?
청화백자의 푸른색을 띄는 안료는 조선시대 고가의 수입품이라 한 때는 왕실에서만 사용할 정도로 값비싼 재료였다. 그러다 보니 우리 청화백자를 보면 안료를 진하게 써서 색을 뚜렷하게 내기 보다는 아껴서 약간 흐릿하고, 패턴 역시 꽉 차기보단 여백을 살리면서 간결하게 그렸다. 중국 도자기는 그림을 완벽하게 많이, 가득 채우고, 일본 청자가 조형적으로 세밀하다면, 조선의 청화백자는 소박한 맛이 있다. 중국에서도 영향 받았지만 오히려 우리만의 특색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구본창 , 2005, Archival pigment print, 90 x 72 cm, 청화백자 소장처 : 오사카 동양 도자 미술관

백자나 청화백자 작업은 오브제 뒤로 흐릿한 수평선이 나온다. 이 배경의 수평선은 어떤 역할을 할까?
사진에 수평선을 넣음으로써 공간감이 생긴다. 수평선이 없이 깨끗하게 찍으면, 대상은 부각되지만 대상이 어느 공간에 있는지 현실적인 느낌이 적다. 백자 뒤편으로 수평선을 넣어야 하냐, 마냐를 많이 고민했다. 수평선을 넣음으로써 공간을 확장시키고, 오브제의 존재감을 준다.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의 작품을 보면 정물에 수평선을 많이 등장시키는데 그의 작업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구본창 , 2014, Archival pigment print, 90 X 72 cm, 청화백자 소장처 : 교토 이조 박물관

작품의 배경으로 쓰인 종이는 어떤 재질인가? 실내에서 촬영하다보면 조명은 어떻게 배치했는가?
박물관에서 촬영할 때는 단 한 번 밖에 기회가 없으니까, 여러 가지 배경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대청마루 사진을 찍고 인화해 깔아놓기도 하고, 문 창호지나 장판지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결국 백자의 느낌을 깨끗이 살리기에는 두꺼운 한지가 깨끗하고 가장 좋았다.

조명은 그림자가 강하게 나오지 않도록 신경 썼다. 백자나 청화백자는 다 귀중한 문화재이기에 스튜디오로 가져가서 촬영할 수는 없었고, 박물관 창고나 사무실을 이용해 찍어야해서 촬영환경이 열악했다. 때문에 가장 자연스럽고 강하지 않는 빛을 내기 위해 간접 조명을 많이 썼다. 어두운 공간에서 유물에 직접 조명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조명을 쳐서 그림자를 뚜렷하지 않게 해서 오히려 액자들이 공간 속을 부유하는 느낌을 내려 했다. 대형 카메라를 활용했는데, 원치 않는 부분은 포커스를 아웃시켜 대상을 오롯이 강조할 수 있도록 했다. 위에는 포커스를 맞추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오히려 포커스를 아웃시켜서 현실감이 적은 식이다.
박물관에서 찍는 자료용 사진의 경우 선명하게 찍어서 디테일을 보여주려 하지만, 내 작업은 선명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유물들이 자기 존재감을 더 잘 드러내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진을 찍을 때도, 백자의 광택이 너무 심하지 않은 것을 골라 찍었는데, 백자 중에서도 유약이 깨끗하게 발라져 광택이 적은 부분을 찍었다.


 
구본창 , 2014, Archival pigment print, 90 X 72 cm, 청화 백자 소장처 : 교토 이조 박물관 박물관


촬영대상인 도자기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다면?
결국 교감(交感)이 중요하다. 100점의 도자기가 있으면, 어떤 도자기를 찍겠다는 느낌이 온다. 물론 이 도자기들은 도공이 오랜 시간 애를 써서 잘 만든 도자기들이고, 여러 사람의 사랑을 받아 오랜 시간 남은 도자기들이다. 그런 사랑이 없었다면 이미 깨지고 사라졌을 텐데 살아남은 것이다. 나는 그 도자기에 오랜 시간을 거쳐서 차곡차곡 남겨진 사람들의 애정과 사랑을 사진으로 느끼고 싶은 것이다. 피부미인처럼 손때 하나 안타고 백옥같이 깨끗한 도자기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손때가 묻거나 긁힌 것들이 있는데, 그런 존재감이 느껴지는 도자기를 우선 적으로 선택해 찍었다.

내가 찍은 이 유물작업을 통해 ‘시간이 쌓여있는’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떤 현대도예가분이 내 사진을 보면서 “자신이 만들고 싶은, 도달하고 싶은 정수(正數)가 내가 찍은 도자 사진 속에 있다”고 말했다. 100년, 200년, 300년의 시간이 어딜 가겠는가? 그 시간들이 내가 찍은 사진 속에 다 있는 것이니까.


 
구본창 , 2014, Archival pigment print, 90 X 72 cm, 청화백자 소장처 : 교토 이조 박물관
 

백자 작업도 그렇고, 비누 오브제도 그렇고 사라져가는 것이나 흠집있는 것 같이, 완벽하지 않은 것에 애착을 느끼는 듯 하다.
아마 개인적인 성격도 연관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이야기가 많은데 잘 하지 못하고 안으로 삭이는 성격이다. 일상에서 관심 밖으로 비껴난, 소외된 것들이더라도, 눈 여겨 보면 차츰 새로이 알아가게 되고 발견하는 지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백자도 첫 눈에는 아름답지 않을지 몰라도 그 안에 내재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도록, 다소곳한 느낌을 주려고 했다.

마치 꽃봉오리 같기도 하고, 여인의 치마 곡선과도 같이 느낄 수도 있다. 이렇게 나름 상상해보는 것은 감정을 담아 의인화 시켜 대상을 보고 교감하려 하기 때문이다. 도자기의 생김이나, 다소곳하게 서 있는 모습, 두께감 등 대상을 오래 보면서 어떻게 찍을 때 가장 마음에 드는 순간이 오는지를 연구한다.


사진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내게 사진은 내가 보고 느끼는 고백이자 사는 것에 대한 고백이다. 대상과 일상의 많은 부분을 카메라를 통해 기록하고, 교감할 수 있는 것이 존재의 이유이자 살아있는 기쁨이다. 마치 작곡가나 소설가처럼 창작을 하는 이들은 결국 비슷한 지점이 있을 것이다.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을, 세상 돌아가는 여러 이야기와 나의 경험을, 순간순간 느낀 아름다움을 같이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작업을 마지막에 선별할 때도 내가 감동받지 않으면 남도 감동받을 수 없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고 작업한다.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해당 기사는 2019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