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64 | 제20회 동강국제사진제(위원장 이재구) 국제주제전

기간 : 2022. 7. 22 - 10. 9
장소 : 동강사진박물관 1, 2 전시실
기획 : 김희정 큐레이터












 
f.64 | 강렬히 시각화하기

✽ 사진가이자 RIT 교수인 데니스 데피비우(Denis Defibaugh)의 동강국제사진제 국제주제전 글을 요약했다.

“프레스턴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나랑 비슷했다. ... 우리는 이내 가까워졌다. 함께 와인을 마시고 하트 크레인과 로버트 제프리스의 시집을 읽었다.”1) - 윌라드 반 다이크, 프레스턴 홀더를 처음 만난 시기를 회고하며.

1931년, 윌라드 반 다이크와 프레스턴 홀더가 UC버클리에서 학부 수업을 함께 들으며 친해졌다. 둘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비슷했고, 종종 함께 사진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프레스턴은 그들과 생각이 비슷한 서부 지역의 작가들을 규합해 전시를 열자는 이야기를 꺼냈고, 반 다이크는 호응하며 참가 인물을 떠올리기 시작했다.2)

첫 모임은 1932년 10월 15일, 앤 브리그먼 갤러리 683에서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 안셀 애덤스(Ansel Adams), 이모젠 커닝햄(Imogen Cunningham), 헨리 스위프트(Henry Swift), 소냐 노스코비아크(Sonya Noskowiak), 존 폴 에드워즈(John Paul Edwards), 윌라드 반 다이크(Willard Van Dyke)가 모였고, 그룹 활동 논의와 함께 ‘f.64’라는 그룹명도 정했다.3) 4) 한 달이 지난 11월 15일, 샌프란시스코의 H.M.드 영 메모리얼 뮤지엄에서 F64의 출정식 겸 사진전이 열렸다. 앞서 말한 7인의 정식 멤버에 콘수엘로 카나가(Consuelo Kanaga), 알마 라벤슨(Alma Lavenson), 브렛 웨스턴(Brett Weston), 프레스턴 홀더(Preston Holder)가 객원 멤버로 활동하는 체제였다. 그들은 사진이 매체 자체의 현실과 한계에 맞춰 발전해야 하며, 이념적 관습에서 벗어나 매체의 독립성을 지켜내야 한다고 믿었다.5)

그룹명이 대형카메라 렌즈의 최소 조리개 수치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F64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 수 있는 사진의 특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신념을 공유했다. 최대한의 피사계 심도를 위해 최소 조리개 수치를 사용해 프레임 안의 더 많은 부분을 초점거리 안에 두고자 했고, 확대기 사용보다는 밀착인화를 선호했으며, 매트지나 미술용지보다 유광지를 선호했다.6)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형태와 프레이밍을 결정하는 사진가의 선택 행위이다. 뷰카메라를 쓸 경우 촬영에 앞서 초점판 유리를 통해 피사체를 오래 관찰하며 최종 이미지를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노동집약적이고 정밀함을 요하는 뷰카메라의 특질은 곧 f.64의 특징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어떤 장르의 사진이라도 화면 구성과 프레이밍에 공들였다. 또한 이들의 굳은 신념 중 하나는 ‘사진은 회화의 모방이 아니며, 인화지에 출력되는 최종 화면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이미 사진가에 의해 이미지화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실의 아름다움은 세상 자체에 내재해 있고, 사진가는 카메라 앞에 놓인 장면을 신중하게 화면 속으로 옮겨 기록할 뿐이며, 그걸 돕는 건 바로 8x10 대형카메라와 피사체의 정직한 힘이라는 것이다.

18세기 말에서 1917년까지, ‘스트레이트 사진’은 사진가들의 관심 밖에 있는 생경한 개념이었다. 당대 최고의 사진가들이 취하던 예술적 태도는 ‘픽토리얼리즘’이었고, 그들은 사진이 회화적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공을 들이곤 했다. 사회의 담백한 기록보다는 낭만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이미지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또한 예술적 구성과 연초점을 강조하고, 복잡하고 노동집약적인 후처리 공정을 도입하는 등 사진을 만드는 과정이 인상주의 화가의 노동에 비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1932년, 미국은 대공황의 한복판에 있었고, 예술 매체로서 사진은 여러 방향으로 활로를 모색했다. 미국 서해안 지역에서는 f.64가 순수사진에 대한 입장을 선언했고, 동부에서는 폴 스트랜드, 워커 에반스, 에드워드 스타이켄 등이 선도하는 모더니즘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며, 유럽에서는 만 레이, 라즐로 모홀리 나기, 앙드레 케르테츠 등의 사진가들이 사진의 새로운 흐름을 선도하고 있었다. f.64의 첫 전시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는데, 서부 지역의 픽토리얼리즘 진영에서는 스트레이트 사진을, 다큐멘터리 진영에서는 탈정치성을 비판했다. f.64의 사진에 관한 입장과 정치성을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애덤스와 웨스턴은 확실히 자신들의 작품을 순수 예술적 표현으로 보았다. 웨스턴의 <포인트로보스, 침식된 바위>는 구불구불한 암석이 마치 미로가 흐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며 관객을 하천에 의해 침식된 암석의 곡선으로 끌어들이는데, 정치적 안건을 철저히 배제하며 단순하고 직접적인 모더니즘 특유의 조형을 통해 사진을 예술 형식으로 구축하려는 f.64의 목표에 부합하는 작품이다.

f.64는 드 영 뮤지엄에서의 첫 전시 이후 순회전을 이어갔고, 1932년부터 1934년 사이에는 멤버를 달리한 소규모 전시도 수차례 열었다. 그러나 미국 사회가 경기침체 속으로 침잠해 감에 따라, f.64의 사진 판매량과 촬영 의뢰도 급감했다. 그러던 1934년 9월, 모든 작품이 윌라드 반 다이크에게 반환되며 더 이상 예정된 전시회는 없었다. 그간 훌륭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은 지쳤다. 에드워즈와 애덤스는 그룹 활동에 흥미를 잃었고, 다른 멤버들은 각기 새로운 프로젝트로 바빠졌다. 끝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F64는 그룹으로서 단명하였지만, 그들이 현대 사진에 끼친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애덤스, 웨스턴, 커닝햄, 반 다이크 등은 모두 20세기를 대표하고, 또 존경 받는 사진작가임에 틀림없다. 당시 멤버들의 작품 또한 여전히 인기리에 전시되고 있으며 많은 수집가들이 탐내고 있기도 하다. 특히 보는 방식을 혁신하는데 천착한 F64의 노력으로 ‘아름다움’은 세상 그 자체로부터 오는 것이며, 이 세계의 리얼리티는 대상의 본질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다는 생각이 힘을 얻게 되었다.

 

1) 윌라드 반 다이크, 『미발표 자서전』 52페이지, 창의적 사진 센터(CCP) 컬렉션, 바바라 M. 반 다이크 제공.
2) 윌라드 반 다이크, 『미발표 자서전』 54페이지.
3) 메리 스트리트 앨린더 『그룹 f.64』, 뉴욕 블룸스버리 출판사, 2014, 68페이지.
4) 윌라드 반 다이크, 오클랜드 뮤지엄에서 했던 강의를 받아적은 글. 1978년 7월 14일, 5페이지.
5) 테레즈 쏘 헤이먼 편집 『똑바로 보기: 그룹 f. 64가 사진에 불러온 혁명』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미술관, 1992. 53페이지.
6) 리사 호스테틀러 『그룹 f.64』 헤일브룬의 미술사 연대표 중.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000-. http://www.metmuseum.org/toah/hd/f64/hd_f64.htm (2004년 10월).


 












 


직관의 연대기, 과학적인 시

✽ 동강국제사진제 큐레이터인 김희정의 국제주제전 글을 요약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설명할 때 현존(Da-sein)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인간만이 스스로와 세상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가지기 때문이다. 현존은 존재하는 자체로 대상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부여하는 의미와 가치 속에서 존재를 새롭게 규명한다. 이때 인간, 시간, 변화라는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구성하고 생성해 가는 일련의 과정이 뒤따른다. 우리는 이 과정을 거쳐 대상에 존재성을 부여하고, 인간 또한 이러한 맥락에선 실존하게 된다. 따라서 현존재 또한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서 다차원적인 의미를 구성하며 상호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관념적인 표현일 뿐이다. 예를 들어 ‘구름’은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지만 그 실체는 다양한 요소와 조건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물리적 차원의 존재는 결국 존재가 아니다. 단지 그것을 인식하는 특정한 존재가 있고, 그에 대한 나름의 존재성을 부여할 때 의미를 갖게 되는 것뿐이다. 그래서 현존재에게 인식되는 대상 혹은 존재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세상은 현존인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새로운 존재적 가치가 형성되기도 한다. 사물과 사물, 세상에 벌어지는 사건 간의 인과 관계는 현존인 인간이 바라보는 순간 새로운 의미와 상징으로 재해석된다. 불교의 경전 화엄경(華嚴經)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라는 말이 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마음이 만들었다’는 뜻인데, 이는 현존인 인간이 부여하는 의미 혹은 상징에 의해 존재성이 규정된다는 논리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의식에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떤 형태로든 주관의 개입이 일어난다. 이러한 개입이 있었기에 예술이 생겨날 수 있었지만, 때로는 본질을 왜곡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는 평소 우리가 인지하는 본질적 상태라기보다 상상이 만들어 낸 관념적인 상태에 가깝다. 과거 그리스 철학의 전통에서도 현실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본질, 이성, 순수, 영원성을 상정해왔다. 이러한 사고의 흐름은 실존주의 철학이 대두되면서 본질은 형이상학적 차원을 벗어나 지금 이 순간 작용하는 개별적 현상들이어야 한다고 재규명되기 시작했다.

대상을 인식할 때, 인식하는 사람의 인식 능력 혹은 경험에 따라 부여되는 주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대상 자체에 비중을 두는 바라보기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과학적 차원의 관찰은 현상이나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순수한 인간의 감각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하기에 기계의 도움을 받는다.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광학장비를 적절히 활용하여 사물이나 사건의 아름다움을 객관적으로 포착하려는 시도가 이미 오래전 사진에서도 시작되었다. 초창기 사진은 회화를 모방하고자 회화적 시각에서 재현이 이루어졌다. 이후 회화적 인식이라는 일종의 ‘주관’을 덜어내고 대상 자체에 다가가려는 시도를 통해 ‘스트레이트 포토’라는 장르가 시작되었다. 대상을 묘사하는 방식은 작가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공통적으로는 결국 선험적 주관의 왜곡과 제한을 벗어난 시각으로 대상을 탐색하고자 했던 것이다. 주관적 개입을 자제하고 대상에 포커스를 둔다는 것은 순전히 대상 그 자체에서 어떤 메시지를 탐색하고자 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경계 너머의 인식 습관을 관조하게 하여 대상을 보는 시각에 대한 왜곡 가능성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지닌 인식의 한계를 체감하고자 하는 것이다. ‘스트레이트 사진’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관습적인 시각, 습관적인 시각에서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는다면 당연히 제약이 따른다. 기존에 경험하고 있는 범위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작업일지라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대상을 포착할 때 피사계심도를 얕게 하여 특정 부위에만 초점을 맞추는 기법은 대상과 배경의 관계에 작가의 의도가 개입된 일종의 연출이다. 생략과 왜곡을 통해 예술적인 상상과 자극을 제공하고 폭넓은 주관적 해석의 영역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가치 있는 기법이다. 그러나 f.64의 작가들에게는 대상이 내포하고 있는 미와 가치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는 인위적인 연출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피사계심도를 최대한 깊게 하여 대상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드러내는 기법을 선호했다. 이를 통해 대상을 좀 더 섬세하게 보고, 인간의 시각 능력으로 포착할 수 없었던 장면의 지속성과 재현성을 부각하고자 하였다.

어떤 사진이 아무리 중요한 의미와 아름다움을 지녔다 한들, 그 찰나의 상황을 빚어낸 순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나 순간을 경험하고도 기존 선험적인 인식의 습관에 사로잡혀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존재적 가치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날 사진이라는 매개체가 가진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시공간의 한계, 인간의 시각 및 인식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 그 경계 밖의 영역에 대한 인식을 생산, 지속, 재현해주고 있는 것으로 요약된다. 경험에서 파생된 기억을 소환하여 감정을 환기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경계 밖의 차원으로 인식의 범위를 넓혀주는 작품도 있다. 인식이 넓어지면 미래에 대한 새로운 질문도 가능해진다. 관습적 시각에서 벗어나 주체적 인식을 통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본질적인 가치를 발견할 것이다.

세상은 매 순간 변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아름다움과 가치는 그 변화의 장에서 빚어진 결과물이다. 새로운 인식은 변화를 더욱 실감하게 하고 변화가 만드는 미지의 아름다움을 선사할 것이다. 이 때의 절대적 변수는 그것을 포착하는 사진가의 시(詩)적인 통찰력이다. 그들은 상상의 차원에서 본질과 의미를 창조하기도 하고, 이 순간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실의 의미 체계를 간파하기 때문이다. 요소와 조건들의 합을 넘어선 무형의 총체를 시각화할 수도 있고, 인간의 감각과 인식의 한계를 넘어 원초적인 차원에서 벌어지는 빛의 향연을 감지하여 그것들이 구성하는 패턴과 의미를 현실의 차원으로 승화하기도 할 것이다. 소위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 대부분은 다양한 해석을 남기는 입체적인 특징이 있다. 이는 하나의 이미지 속에 다차원의 세상과 다층의 시공간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주얼 레거시가 되며 동시에 직관의 연대기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f.64의 오리지널 프린트 작품에서 이러한 직관의 연대기를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자신 안에서 발견되고 드러낼 때를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비주얼 레거시들에 관심 갖게 될 것이다.

 

해당 기사는 2022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