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이슈]2018 Biennale, 비엔날레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_제9회 부산비엔날레


제9회 부산 비엔날레
뭉쳐도 살고, 흩어져도 산다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


조아나 하지토마스 & 할릴 요레이<전쟁 엽서>, 1997-2006
<경이로운 베이루트 #22>,1998-2007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속담은 이솝우화의 ‘네 마리의 황소와 사자’에서 유래했다. 항상 함께 지내던 황소 4마리를 상대할 수 없었던 사자는 꾀를 내서, 황소들을 이간질해 그들이 흩어지게 한 후 한 마리씩 잡아먹었다는 것이다. 이 속담은 이승만 대통령이 해방 후 좌익과 우익으로 나뉜 국민의 단결을 호소하며 남긴 말로 유명하다. 그렇지만 과연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을까? 이승만 대통령이 그렇게 ‘흩어지면 죽는다’고 뭉치기를 호소했지만, 결국 우리는 남과 북으로 분단된 채 전쟁을 벌였고, 그 뒤로도 여전히 나눠진 채, 흩어진 채로 살아가고 있다. 흩어진다고 해서 집단이 사라질 뿐, 그 개체 하나하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홀로된 실존의 무게를 견디며, 그저 살아갈 뿐이다.


2018 제9회 부산비엔날레의 주제는 ‘비록 떨어져 있어도’로, 영어로는 ‘Divided We Stand’이다. ‘흩어져도 우리는 산다’ 는 뚯이며, 동시에 서로 흩어져서 실존하고 있는 ‘분단’  그 자체를 지칭할 수도 있다. 지난 9월 7일부터 막을 올린 부산비엔날레는 그렇듯 ‘분단된 우리의 모습’에 주목한다. 여기서의 분단은 영토적 분단일수도, 심리적인 분단이나 세대간의 단절 등 넓은 의미에서의 ‘분단’으로 해석된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인터넷을 통해 지구 반대편의 일을 단 몇 초 만에 알 수 있는 시대지만 여전히 인류는 분단과 대립을 계속하고 있고, 오히려 냉전이라는 양강 대립구도가 붕괴이후 지역간, 민족간, 인종간, 종교간의 갈등과 대립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부산비엔날레는 이 분단과 대립이 계속되는 우리의 모습을 ‘과거, 현재, 미래’라는 3개의 시간대에 투영한다. 전시공간 역시 두 곳으로 분리돼있는데, 을숙도에서 올해 개관한 부산현대미술관과 남포동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구(舊) 한국은행 부산본부가 바로 그것이다. 기존 부산비엔날레는 부산 동부지역의 부산시립미술관과 고려제강 옛 수영공장 등 주로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열렸다면, 이번에는 을숙도와 남포동으로 부산 서부지역에 둥지를 텄다. 주전시장인 부산현대미술관에서는 ‘과거 냉전시대를 거친 우리가 오늘날 다시 냉전 상태로 회귀하고 있는 기이한 상황’을 과거와 현재의 시간대에서 살펴보는 작업들로 구성했으며, 제2전시장인 구(舊) 한국은행 부산본부에서는 ‘현재 우리사회의 정황을 과학소설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를 토대로 구상한 대안적, 미래지향적 시나리오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총 34개국 66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125점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비엔날레로서는 다소 작은 규모이지만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인 크리스티나 리쿠페로와 큐레이터 외그르 하이저는 비엔날레의 규모가 그 질과 비례하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2017년 독일 뮌스터 조각프로젝트는 참여작가가 38명이며, 2017년 제15회 이스탄불 비엔날레는 56명, 올해 열린 제10회 베를린 비엔날레는 46명으로 이런 국제적인 대규모 전시들이 참여작가의 수를 기존보다 축소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성과를 보였다”며 “우리는 전시 공간과 작품 수를 계속 불려가는데 급급해, 전문적인 관객마저도 지치게 만드는 초대형 전시의 시대는 끝났다”고 밝혔다. 


이들의 장담처럼, ‘2018 부산 비엔날레’는 소규모지만 짜임새 있는 전시로 관객들에게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줬다. 비엔날레 같은 대규모 전시는, 다양한 작업들을 배치하고 관객의 동선을 잡을 때, 전시 전반으로 지속되는 담론을 읽을 수 있도록 기획돼야 한다.


 

에바 그루빙어, <군중> 전시전경

부산현대미술관의 총 3층에 이르는 전시는 이렇게 하나의 흐름으로 통일성있게 기획됐는데, 이는 마치 분리되고 대립하는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도 같다. 관객은 1층 전시장 입구에서 공항의 체크인 카운터를 연상시키는 번거로운 긴 줄을 발견하게 된다. 철 기둥과 나일론 재질의 줄로 만들어진 이 바리케이드는 길고 반복적으로 구부러져 있어, 관람객으로 하여금 지루할 정도로 길게 줄을 서서 꾸물거리게 한다. 입구에 있어 관람객들을 순서대로 통제하기 위한 미술관 시설이라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이 바리케이드는 오스트리아 작가 에바 그루빙어의 <군중>이라는 설치작품이다. 그는 이토록 의도적으로 복잡하게 만든 안전바와 바리케이드로, 공항의 출입국관리소에서 긴 줄을 서서 심사를 기다리며, 주체에서 객체로 전락하는 군중이나, 긴 컨베이어벨트에 마치 물건처럼 움직이는 현대인의 모습을 조명한다. 크리스티나 리쿠페로 전시 감독은 “전시 전체는 일종의 관객을 위한 여행과도 같다. 남북 분단이나 독일 통일, 미국과 러시아의 냉전 등 시간을 넘나드는 분단과 대립의 현장을 보며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과 같다” 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서독과의 통일 이후 좌절한 동독인들의 심리를 가구 인테리어 배치를 통해 보여주는 헨리케 나우만의 <독일 통일을 애도하는 제단>이나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접경지대인 ‘골란고원’에서 전쟁으로 보지 못하는 어머니와 자녀들이 서로를 향해 특별한 음향기기로 안부를 전하는 상황을 녹음한 스마다 드레이푸스의 영상작업 <어머니의 날>등 우리가 접하기 어려웠던 지구촌 곳곳의 분리된 현실이 전시장에 집약됐다.


전시장에서 나누는 정(情)? 초코파이
 
천민정, <초코파이 함께 먹어요> 전시전경

 
우리에게 ‘분리’라고 할 때, 가장 직접적인 주제인 ‘남북분단’이나 ‘북한’의 존재도 다양한 작업에서 다뤄졌다. 그중 가장 화제가 된 작업은 천민정 작가가 한 과자회사로부터 10만개의 초코파이를 기증받아 제작한, <초코파이 함께 먹어요> 설치작업이다. 초코파이의 포장 겉면에는 ‘정(情)’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어 한민족 공동의 정서를 기반으로,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작업이다. 개성공단 가동 당시 북한 노동자에게 초코파이가 인기상품으로 비싸게 매매됐었다는 일화에서 착안한 이 작업은 바닥에 반원모양으로 계단식으로 나란히 쌓인 초코파이는 관객들이 직접 집어서 전시장 안에서 먹을 수 있고, 전시장에는 봉지를 까서 버릴 투명한 쓰레기통도 마련돼 있다. 초코파이로 쌓은 탑이 사라져 갈수록, 투명한 쓰레기통에는 쵸코파이 봉지들은 더 쌓여만 간다. 현대미술을 어려워하는 이들이나, 부모 손을 잡고 온 아이들 역시 이 작업 앞에서는 하나같이 웃음 지으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초코파이를 손에 든채 작품 앞을 떠날 줄을 몰랐다.

 

주황, <민요, 저곳에서 이곳에서> 2018, 스틸컷

사진, 영상 작가인 주황 작가의 신작 <민요, 저곳에서 이곳에서>에서는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을 담은 풍경사진과,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동포들이 한국 민요를 부르는 영상으로 구성됐다.  주황 작가는 “영상을 가만히 보면 똑같은 창부 타령인데 일본교포와 북한 주민, 중국 교포의 가사가 다르다. 해외동포들의 민요와 춤은 남한 사회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데, 이들이 부르는 민요를 통해 ‘오랜 세월 떨어져 살았지만 우리는 역시 비슷하다’라는 동질성을 확인할 수도 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오며 서로 달라진 부분의 ‘이질성’을 느낄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민요를 통해 느끼는 이질감과 동질감이라는 이 양가감정이, 현대의 디아스포라 시대에 어떻게 작용할지 묻고 있는 것.


기호와 실제 이미지의 교차, <부산 1:10,000>


 

최선아, <부산 1:10,000>, 2018

부산출신인 최선아 작가는 <부산 1:10,000>에서 청사진을 활용해 자신의 고향인 부산의 단편적 장소이미지와 부산의 지도를 교차시킨다. 작가는 “각각의 파편화된 부산의 이미지들은 예전부터 차곡차곡 아카이브로 촬영해왔다”며 “이런 부산의 지역 이미지와 부산의 10년전 종이 지적도를 마치 베를 짤 때 씨줄과 날줄이 교차시키듯 교차시켜 전체의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은 지도라는 인간이 편의로 만든 기호와 그가 실제 촬영한 장소의 이미지라는 기호와 실제, 그리고 과거의 지도와 현재 존재하는 장소의 이미지 등 과거와 현재라는 대립되는 요소가 교차하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한다.

 

킬루안지 키아 헨다, <새로운 인간>, 2010-진행 중


킬루안지 키아 헨다, <새로운 인간>, 2010-진행 중

해외작가의 작업 중에서는 앙골라 출신의 킬루안지 키아 헨다의 작업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권력의 재정의>라는 사진연작 시리즈와 조각, 사진, 사운드로 구성된 <비너스의 섬> 등 총 두 시리즈의 작업을 선보였다. 특히 사진작업인 <권력의 재정의>는  앙골라가 포루투칼의 식민지이던 시대에 지어졌던 포르투칼의 기념물 동상을 중심으로 작업했다. 그는 식민지 시절 처음 세워졌던 그 기념탑의 기록 사진과, 앙골라의 독립 이후 포루투칼 지배자의 동상이 좌대에서 끌어내려지고 텅 빈 좌대의 모습, 그리고 이 좌대 위에 올라선 앙골라 시민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권력의 재정의>라는 말처럼, 좌대 위에 올라서서 당당하게 선언하는 듯 포즈를 취한 앙골라인들의 모습은 ‘권력이 상징적으로 돌아왔음’을 보여준다. 킬루안지 키아 헨다는 “좌대 위에 올라선 시민들은 동성애자거나 혹은 페미니스트들로, 그들은 (좌대 위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고 의견을 말하고 싶어 한다”며 “식민지 시절 세워진 동상과 좌대이지만, 이제 비어있는 그 좌대는 사회의 비주류들에게도 자신들의 주장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 설명했다.


사진으로 하는 인류학, <플래쉬백>

 

브뤼노 세라롱그
Photographic Report of the Dismantling of the Migrant Camp Know as "State Slum" or "New Jungle",
Calais, 24-27 October 2016


사진은 가장 직설적으로 지구촌 곳곳의 ‘분쟁’을 기록하고 전달할 수 있다. 프랑스 사진작가 브뤼노 레라롱그는 포토 저널리즘과 예술사진을 오가며, 함께 작업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의 난민 정착지 ‘칼레’에 잠입해 지난 2006년부터 장기간에 걸쳐 촬영했다. 난민 캠프를 해체하려는 프랑스 정부의 움직임이나, 국경을 따라 짐을 가지고 걸으며 받아줄 곳을 찾는 난민들의 사진을 통해 그는 ‘이데올로기, 종교, 민족 등 다양한 대립’으로 인해 희생당하는 이들의 초상을 생생하게 전한다. 
 

타이푼 세르타스, <플래시백> 전시전경

터키 작가인 타이푼 세르타스의 <플래시백> 사진 아카이브 작업은 벽면 전체에 수 백 장의 사진을 설치하는 거대한 규모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타이푼 세르타스가 전시한 사진 아카이브는 1935년부터 1985년까지 터키 이스탄불에서 자신의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고객들을 촬영한 여성 사진가 ‘마리암 샤히니안’의 사진이다. 마리암 샤히니안은 여성 사진가였기에, 여성 고객들은 그녀의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편안해했다. 타이푼 세르타스는 “내 작업은 사진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한 인류학자의 작업과도 같다. 마리암 샤히니안의 작업은 당시부터 현대까지 이스탄불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며 “그녀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 여성들이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머리를 뒤로 쓸어내린다거나, 뒷모습을 거울로 비춰 바라보는 등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사진 속 여성들이 모두 중산층 이상의 여성들이라는 점도 중요한데, 당시 중산층 이상 가정의 여성들은 남성 카메라의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은 직업적 모델이 하는 일이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여성 사진가의 스튜디오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좁힐 수 없는 틈, <악수-형체를 얻은 거리감>

 

칼리드 바라케, <악수-형체를 얻은 거리감>, <기억의 비계> 설치전경



칼리드 바라케, <악수-형체를 얻은 거리감>, <기억의 비계> 설치전경

 
마지막으로 이번 부산비엔날레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작업은 칼리드 바라케의 작품 <악수-형체를 얻은 거리감>과 대형 사진 출력물 <기억의 비계>이다. 시리아 출신의 칼리드 바라케는 예술을 통해 사회적, 정치적 충돌을 중재하며, 이를 다시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는 북아일랜드의 도시 데리에 초청받아 그 곳에서 북아일랜드에 존재하는 카톨릭파 아일랜드 독립 민족주의자와 신교도파 친영국주의자들의 뿌리깊은 갈등에 대해 조사한다. 그리고 운명처럼 이 도시에 서있는 두 남성의 조각상을 발견한다. 북아일랜드 출신의 조각가 모리스 해론이 제작한 공공 기념동상인 <화해/분열 너머로의 악수>는 제목과 달리 아이러니하게도 두 남성의 손끝이 닿을락 말락한 가까운 거리에 멈춰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화해를 망설이며 주저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칼리드 바라케는 이 동상을 3D로 스캔해서, 두 손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는 여백을 입체작품으로 주조했다. 또한 이 3D 스캔 이미지를 대형 사진으로 출력해서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굽이치는 형태로 전시장 바닥에 세워놓았다. 칼리드 바라케는 “내 작품이야말로 서로 떨어져 있으며, 서있으니 이번 비엔날레 주제인 Divided we stand라는 말 그대로 이다”며 “두 동상의 틈을 메꾸는 일은 화합의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또 그만큼 이들 사이의 메꾸지 못할 틈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3D 스캔 이미지를 대형 종이에 출력했는데 이들의 손은 그 긴 종이 위에서 구부러지지만 여전히 닿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칼리드 바라케는 자신의 작업이 명징하게 정의내리기 보다는 “마치 물 속에 잉크를 한 방울 떨어트리면 다양한 형상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는 이들의 마음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트리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잉크 한 방울의 비유는 비단 그의 작업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산비엔날레 역시 분리와 대립에 대한 다양한 시선들을 담은 작업들을 통해, 관객들의 마음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트린다. 125점의 작품 중 어느 작품이 우리 마음에 넓게 퍼지는 잉크 한 방울이 될 수 있을지는, 직접 전시장을 방문해 확인해 볼 일이다. 전시는 11월 11일까지. 



 
글 : 편집부
이미지 제공 : 부산비엔날레

해당 기사는 2018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