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문│춤과 꽃, 삶과 꿈







 

서울 중구 필동에 자리한 양재문 작가의 작업실에서는 창밖으로 남산의 꽃구름이 보이고 길가에도 벚꽃이 만개해 온통 봄이다.

 

꽃이 흐드러진 남산
바야흐로 봄이다. 도처에 꽃 대궐이지만 서울의 봄은 남산을 색색으로 물들이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른 남산 아래 필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바람에 쏟아지는 꽃비처럼 애틋하고 몽상적인 춤 사진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양재문 작가(1953~ ), 그를 찾아간 날은 벚꽃이 만개하여 어질병이 날 것 같은 봄날이었다. 3층 작업실에 들어서자 대뜸 창밖으로 남산의 꽃구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필동 작업실에서 10여 년 지내다가 작년에 이사를 했는데 결국은 몇 발짝 못 갔네요. 제가 남산을 좋아해서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하나 봐요.”

남산이라는 정원을 갖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동네자랑이 이어진다. 그는 이번에는 작업실을 집과 분리하는 바람에 전보다 작업실의 규모가 훨씬 줄었지만 오롯이 작업에만 열중할 수 있어서 나쁘지 않다고 했다. 스무 평이 안 되는 작은 공간이지만 둘로 나누어 반은 갤러리 분위기로 꾸며서 작품을 전시해놓았고, 나머지 반은 컴퓨터와 차를 마시는 공간 등으로 꾸몄다. 혼자서 남산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컴퓨터를 하고 명상을 하기에 딱 알맞은 규모다.

“여긴 참 재미있는 곳이에요. 몇백 미터 떨어진 곳은 번잡한 도심인데 아직도 시골 같은 분위기가 남아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는 여기에 작은 갤러리도 새로 생기고 작가들의 작업실도 들어서는 추세예요.”

양재문 작가는 도보거리에 한옥마을과 국악당이 있어 소리와 춤 등 전통공연을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좋지만 햇볕이 따스한 한옥마을의 툇마루에 앉아 멍때리는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게 참 좋다고 말했다. 사실 춤을 촬영할 때는 대형 스튜디오를 빌려서 쓰기 때문에 필동의 작업실에선 촬영 이전과 이후의 과정들만 이루어진다. 따라서 도심 속 전원 같은 필동의 분위기는 그에겐 사색의 공간으로서 맞춤이다. 작업실 내부도 소음이 거의 없이 조용하지만 천천히 걸어서 남산의 숲으로 들어가면 그냥 그대로 자연 속에 묻혀버린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아는 나이에 이르렀으니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그의 춤 사진에 꽃잎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그런 영향일지 모른다.


 
 
 
요즘엔 커피보다 차의 매력에 빠졌다는 작가의 장식장.




작업실을 절반으로 나눠서 한쪽은 갤러리처럼 꾸며 사진을 걸어놓고 다른 한쪽에는 컴퓨터 책상과 티 테이블을 놓았다.

 
또다시, 프리 어게인(Free Again)
삶을 버거워하는 사람처럼 그는 환갑의 나이에 이르러 “프리 어게인”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하면서 사진과 삶, 모두에서 이제는 조금 더 자유로워질 것을 선언했다. 60년, 육십갑자를 다 돌아 다시 원점으로 왔으니 세상의 이목이나 평가, 가치에서 의연하고 유연해지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물론 느슨하게 살겠다는 선언이 아닌 것이, 그 이후 10년을 오히려 더 열정적이고 도전적으로 작업에 몰두해서 그가 추구해온 춤 사진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올해 또 한 번의 <<프리 어게인Ⅱ>>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후 70주년을 맞이하여 2023년 12월에 전시 예약을 해놨다는 것.

“아버지도 어머니도 저의 가장 친했던 친구도 이상하게 단명을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도 은연중에 칠십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아요. 환갑이 되어 내 존재의 자유를 선언한 것도, 미리 칠십에 같은 제목의 전시를 기획해 놓은 것도 마지막 전시가 될지 모른다는, 그러므로 내 사진의 화양연화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작용했어요.”

최근 그의 춤 사진에는 자주 꽃이 등장한다. 꽃이라기보다 꽃잎이라고 해야 정확한데, 여인의 휘감긴 옷자락과 아득하게 뻗은 춤사위 옆으로 꽃잎 몇 개가 떨어지는 사진이다. 춤도 추고 나면, 꽃도 피고 나면 떨어지고 사라진다는 점에서 아련하기는 매한가지, 창밖의 벚꽃처럼 아름다움은 늘 짧고 한순간이기 마련이어서 그 순간이 지나면 꿈을 꾼 듯 기억 속에 환영으로 남을 뿐이다.

“2021년에 충무로 미루갤러리에서 꽃 사진과 춤 사진을 두 점씩 병치하는 식으로 전시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꽃과 춤을 한 화면에 담아 한 장의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아마 작가도 진즉부터 춤을 찍으면서 한 송이 꽃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의 환상적인 춤 사진은 꽃잎이 바람에 나부끼거나 우수수 쏟아지는, 또는 강물에 떠 흘러가는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붙인 작품의 제목은 “화접몽”이라고 했다. 장자의 나비 꿈 ‘호접몽’에 빗댄 제목이다. 꽃이 춤인지 춤이 꽃인지 어룽거리는 꿈과 현실의 경계 너머를 보여주려는데, 사실 인생 자체가 한바탕 꿈이 아닌가. 그가 즐겨 부르는 ‘사철가’의 한 대목처럼 말이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 왔건 만은/ 세상사 쓸쓸하더라.” 칠십에 이르면 봄의 짧음과 여름의 왕성함과 가을의 쇠락을 모두 알기에 비로소 삶에 대해서 또는 꿈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스튜디오에서 춤 사진 촬영 중인 양재문 작가. 그는 무용수가 마음껏 춤을 추도록 유도하고 전통적인 우리의 춤에서 우리 민족 고유의 아름다움을 표현해낸다. 

 
춤으로 보여주는 멋과 색
그가 30년 전에 처음으로 발표한 춤 사진은 흑백사진이었다. 그러나 흑백의 춤은 색을 입게 되는데, 황(黃) 청(靑) 적(赤) 백(白) 흑(黑), 다섯 가지 색 흔히 오방색이라 불리는 우리의 전통적인 색깔이었다. 그는 오방색을 원색이 아니라 색을 빼고 또 뺀 은근한 색으로 드러냄으로써 춤이 가진 정중동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냈고, 색을 더 가라앉히기 위해 한지에 프린팅을 했다. 한지의 스며드는 특성으로 우리의 색, 우리의 아름다움을 더 은유적이고 추상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춤을 찍은 줄 알았더니 요즘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국의 색을 찍었더라고요.”

그의 사진 소재가 한국의 춤이므로 전통의 멋과 색이 드러나는 것은 예견되는 면이지만 그는 특히 배경을 단순화함으로써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도록 의도했다. 최대한 생략해서 모호하고 은밀한 그의 춤 사진에서는 한국 여인의 맵시 있는 자태와 더불어 단아한 춤사위가 그려내는 선이 매우 고혹적이다.

“그동안 내 사진에는 여인의 춤이 많이 등장했는데 후반 작업으로 갈수록 처용무와 농악처럼 남성적인 춤, 집단적이고 강인한 춤으로 바뀌었어요. 한(恨)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흥(興)으로 넘어간 거죠.”

사실 작가가 여러 차례 밝혔듯이 그가 극도로 순도 높은 미를 추구한 여인의 춤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한을 담고 있었다.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눈으로 볼 순 없지만 분명 마음으로 접촉되는 어머니, 그 존재를 붙잡고 싶은, 어머니의 부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안타까움이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뒷모습이거나 흐릿하게 뭉개진 아스라한 환상으로 표현되었다. 돌아서게 하여 보고 싶은 얼굴, 잠깐 멈춰 세워 확인하고 싶은 존재로 보여주는 것은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감춤으로써 더 많은 것을 드러내고 모호함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미의식과 통한다.
여인의 춤을 통해 우리의 정서인 한을 표현했던 그는 ‘처용무’를 만나면서 큰 변화를 보였다. 개인의 춤이 집단의 춤으로 바뀌었고 사사로운 정서가 사회의 안녕, 국가의 안위를 비는 춤의 정서로 확장된 것이다. 관용의 정신을 담은 처용무와 함께 그는 대동단결의 정신을 담은 농악으로 나아갔다.

“처용무는 아주 엄격한 춤이에요. 그런데 농악은 즉흥적이며 자유스럽지요. 지나고 보니 농악까지가 나만의 전통춤의 서사시였던 것 같아요.”

그는 농악에 이르러 그가 30년 가깝게 추구해온 전통춤의 결말을 보는 느낌이라고 했다. 농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민중의 흥과 멋이 담긴 춤이고 오랜 세월 민중의 대소사에 함께 해온 춤이다. 그는 코로나로 인한 상실의 시대에 이웃과 어우러지는 농악을 보여주기 위해 8미터 높이에 카메라를 매달고 부감촬영을 시도했다.

“300평 대규모 스튜디오를 대여하여 7명의 스텝과 작업했는데 마치 영화감독처럼 스피커를 들고 영화를 찍듯이 했어요. 9시간을 연속하여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개인의 아픔으로 시작한 춤 작업이 너그러움(처용무), 그리고 다함께(대동농악)에 이르면서 자신의 마음도 편해졌다고 말하는 양재문 작가는 결국 자신의 춤 사진이 우리의 전통과 정신을 그리는 대서사시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대형 스튜디오에서 촬영할 때에는 스텝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마치 영화감독처럼 디테일을 지시하며 최상의 순간을 이끌어낸다.


춤으로 전하는 한국의 서사시
작가가 긴 서사시를 마무리하며 새삼스럽게 다시 자유로움을 말하려는 것은 이제는 사진이라든지 예술이라든지 그런 부담감에서 벗어나 탈 예술화 반 사진적, 그야말로 내 맘대로, 하고 싶은 대로 작업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이는 작업을 즐기겠다는 뜻이기도 한데 그가 최근 회화와 사진의 경계에 선 작업에 매진하는 것도 기존의 것에서 탈피하고 싶은 내면의 발로이다.

“요즘은 흑백 암실작업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수십 년간 존(Zone) 시스템에 입각해 정확한 사진을 만들었는데 이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암실작업도 하고, 한편으론 춤을 이용한 미디어 작업도 병행하려고 합니다.”

1994년의 《풀빛여행》으로 시작된 그의 춤 사진 시리즈는 2016년에 《비천몽》으로 큰 전환점을 이루었다. 2018년에 발표한 《아리랑 판타지》에 이르러서는 개인의 한이 민중의 기운으로 대체되었고, 이어 《처용나르샤》, 농악을 찍은 《비천몽 나르샤》로 이어지면서 시대의 아픔과 정서를 공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는 와중에 양재문 작가의 활동반경도 넓어지고 있다. 2020년에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Context Art Miami"에서, 2022년에는 아부다비에서 《아리랑 나르샤》 초대전으로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올 4월의 《화접몽》(4.13-4.25|무늬와공간갤러리)을 비롯하여 그동안 열린 주요한 개인전만 해도 23회에 이르는데, 그 전시 중 60% 이상이 2016년 이후, 즉 최근 7년 사이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더라도 그의 춤 사진이 이제 완성을 향해 나아가면서 많은 공감을 받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젠 이웃에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는 그런 사진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동안 받은 것에 대한 나눔과 공유를 실천하고 싶기도 하고요.”

추상적이고 은근한 우리의 멋을 보여주고 싶다는 양재문 작가는 자신을 아토그래퍼(Artographer)라 부른다. 날마다 카메라를 들고 작업을 하지 않으니 사진가라고 말하긴 어렵고 사진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으니 아토그래퍼라는 것이다. 명칭이야 어떠하든 그가 줄곧 작품을 통해 말해온 한국미의 대서사시가 올해 그의 생후 칠십 년을 기하여 그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다. 남산의 봄은 꽃이 져도 새로 돋아난 나뭇잎들이 색칠하는 신록으로 더욱 싱싱해질 것이다.


 
 

화접몽 #05 ⓒ양재문


 화접몽 #21 ⓒ양재문

 
 
양재문(1953~)은 1994년 《풀빛여행》을 시작으로 올 4월 《화접몽》에 이르기까지 23회의 주요개인전을 통해 춤 사진을 발표해왔다. 그가 춤을 통해 ‘한국의 전통적인 미’를 구현해온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나이로비 국립박물관, 아원 고택미술관, 갤러리 그림손, 아트스페이스J 등에 소장되어있다.


 
글 윤세영 편집주간
해당기사는 2023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