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해외작가 ⦁ ⦁ William Eggleston | 일상의 미스터리


 

미국 사진작가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 1939~) 개인전《Mystery of the Ordinary》(1.28~5.4)이 베를린 사진 뮤지엄 체/오 베를린(C/O Berlin)에서 열렸다. 전시된 사진 속 한 장면에는 성에가 가득 찬 냉동실에 정리되지 않은 냉동식품이 가득 차 있다. 마치 계획 없이 열어본 냉동실을 즉흥적으로 카메라 렌즈에 담은 듯하다.(p.43) 또 다른 장면은, 커피와 차를 각각 한 잔씩 주문하고 식당에서 제공된 버터와 크래커의 포장지가 뜯어져 있다. 햇살이 잘 드는 식당에 누군가 마주 앉아 있는 듯한데 정작 인물의 모습은 알 수 없고 갈색 수트를 차려입은 몸통이 잘린 채 배경처럼 보인다.(p.45) ‘작가가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한 듯 아무렇지도 않은 주변의 소품을 담은 이미지들이 깔끔한 액자에 걸려 유명한 전시장 벽 면에 걸려 있다. 꽤 넓은 전시장은 이 일상적인 이미지를 보기 위해 찾아온 관객으로 가득하다. 마찬가지로 관객이 갸우뚱하게 여길법한 사진으로 무심하게 주차된 차량의 끄트머리가 찍힌 사진도 있다. 약간은 찌그러진 낡은 자동차가 주차되어있고 그 주변으로는 미국을 대표하는 패스트푸드점의 종이컵과 미국 대형 기업의 로고가 박힌 종이가방이 찢어진 채로 버려져 있다. 누가 보아도 길 위의 쓰레기이다.(p.46)

만약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장엄하고 드라마틱한 사진전이나 칸디다 회퍼의 완벽한 구조의 사진전을 떠올린다면, 윌리엄 이글스턴의 회고전에서는 사사로운 일상의 사물들을 감상하며 새삼 낯설고 궁금한 질문이 가득 떠오를 것이다. 오늘날 컬러 사진의 대가로 여겨지는 이 작가의 배경은 무엇일까? 그가 사진 작업을 시작한 1950-60년대에는 사진에 대한 예술적 가치는 흑백 작품이 우월했다. 이처럼 사진의 가치에 대한 수직적 서열이 존재하던 시기에 그는 컬러필름을 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오늘날 컬러사진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한 작가로 여겨진다. 기존의 ‘흑백’ 이미지라는 사진의 큰 틀을 벗어나 기묘하고 미스테리한 느낌을 담은 일상의 시시한 모습의 사진을 컬러로 담아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흑백보다는 컬러가 실제 우리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더 가깝기 때문이었다. 산업이 발전하며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시기적 변화에 걸맞게 컬러사진이 발전했다면 이글스턴의 역할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나 현재를 막론하고 문화와 예술의 발전에는 항상 비판적 견해가 공존했으며 때로는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는 데에 더욱더 보수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향은 1953년 컬러필름이 상용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사진작가들이 흑백필름으로 작업을 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진이라는 개념이 흑백밖에 없던 시절이었고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본 오브제를 빛과 그림자를 다루어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던 시절이었다. 1950년에 중반 컬러필름이 대중화되면서도 실제의 사물과 비슷한 다양한 색을 담은 이미지는 저렴하고 가벼운 것으로 치부됐으며, 1980년대까지도 컬러사진은 상업적 이미지로 여겨지던 시기였다. 즉, 물건을 팔기 위해 보여지는 사진은 컬러이되 예술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에서 소개되는 사진은 여전히 흑백이어야 했다.

윌리엄 이글스턴은 1939년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초기 작업은 그 당시 이미 르포르타주 사진의 대가로 알려진 프랑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과 미국 대공황 시기의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워커 에반스의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의 명성 높은 사진작가 그룹, 매그넘도 흑백사진을 위주로 선보였다. 시기적으로 보아 자연스럽게 이글스턴의 초기 작업 역시 흑백사진이었다. 그러나 점차 컬러로 작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만의 다른 주안점을 빠르게 확립하였다. 한 인터뷰에서 이글스턴은 “같은 장면을 두 번 찍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며 ‘결정적인 순간(the Decisive Moment)’이라는 유명한 표현을 했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한자리에서 원하는 작업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고 하는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집을 파고들며 연구하듯 관심을 보였지만 이글스턴은 완전히 반대의 면모를 보이며 자신만의 사진 철학을 구축한 것이다.

 


 
이글스턴은 촬영하며 어떠한 명장면을 찍겠다고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시관 한곳에서 보여지는 그의 인터뷰를 보고 있자니 그의 목소리와 말투, 차분하고 무심하게 던지는 듯한 억양에서 넌지시 그의 철학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시스턴트로서 늘 함께 다니는 이글스턴의 아들은아버지는 더 이상 촬영하지 않고, 사진에 대해 특별한 언급도 하지 않는다고 얘기했지만, 몇 년 전 촬영된 이 인터뷰 영상에서는 나이 80이 다된노인이지만 여전히 한 손에는 묵직한 카메라 한 대가 들고 셔터를 누르는 작가를 볼 수 있었다. 그의 걸음걸이마저 묵묵하게 늘 해왔다는 듯이 본인의 주변을 무심코 찍는다. 특별히 사람이 많은 도시도 아니었고 그럴싸한 건물이나 풍경이 있는 분위기도 아닌 그가 나고 자라 현재까지 내고 있는 미국 멤피스의 오후였는데, 어제 했고 지난주에 했던 일과를 진행하듯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느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특별히 의도하지 않는 것이 그의 작업 방식이다. 이글스턴은 “마치 시간이 그의 렌즈에 포착되어 뷰파인더에 하나의 이미지로 남을 때까지 천천히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그는 사진을 통해 관객에게 무언가를 인식시키거나 아이러니한 상황을 파악하게 하는 등의 의도나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고 매일 마주하는 일상의 파편을 담아 시각적인 시나리오를 완성한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의 작품이 호평받은 것은 아니다. 그의 첫 개인전은 1976년 뉴욕 현대 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in New York)에서 열렸으며 그의 진가를 알아본 첫 인물은 존 사르코브스키(John Szarkowski)였다. 이 전시는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열린 첫 컬러 사진전이었으며 “윌리엄 이글스턴의 가이드(William Eggleston’s Guide)”라는 제목의 사진집도 출판되었다. 세상의 모든 ‘첫 번째’ 사건이 주목과 비평을 동시에 받듯이, 이 첫 컬러 사진전 역시 사회의 이목을 끌었으며 1976년 뉴욕 타임즈에서 선정한 그해의 최악의 전시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는 오늘날까지 사진 매체의 역사적 변화가 시작되는 중심이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 ‘일상의 미스터리(Mystery of the Ordinary)’는 이글스턴의 대규모 회고전이자 그의 작업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다. 이 전시가 진행된 베를린의 사진 박물관 ‘체/오 베를린(C/O Berlin)’의 건물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 사진작가들의 회고전을 정기적으로 여는 이유가 납득이 된다. 윌리엄 이글스턴의 전시에 앞서 조엘 메이어로위츠(Joel Meyerowitz, 2018), 스테판 쇼어(Stephen Shore, 2016), 조엘 스턴펠드(Joel Sternfeld, 2012)들의 회고전을 선보였다. 1957년도 한창 냉전체제였던 베를린에 세워진 미국 문화원의 건물로 오늘날까지도 건물의 명칭은 아메리카 하우스(Amerika Haus)로 불린다. 현재 베를린시에 소속된 이 건물에 2013년부터 ‘체/오 베를린(C/O Berlin)’ 재단이 들어서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윌리엄 이글스턴의 대표작 로스알라모스(LOS ALAMOS, 1965-1974)를 비롯하여 더 아웃랜즈(THE OUTLANDS, 1969-1974)의 소개된 적 없는 작업과 함께 1981년부터 1988년 사이 베를린을 방문하며 촬영한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로스알라모스(LOS ALAMOS, 1965-1974)
약 2,000점 이상의 방대한 작품이 담긴 이 시리즈는 이글스턴이 1965년부터 1974년 사이에 미국 로드트립을 하며 촬영한 것이다. 자신의 고향인멤피스를 포함하여 라스베이거스, 뉴올리언즈 등 평범한 교외를 여행하며 길 위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일상을 그만의 시각으로 담았다. 자동차 위에 놓인 콜라병(p.44), 컬러 블록이 벽화를 지나는 중년 여성의 카메라를 노려보는 시선(p.50), 햇살이 잘 들어오는 비행기 창가에서 얼음이 띄워진 음료 한잔(p.45)과 같은 일상 속 여행의 장면이 인상적이다. 1973년 여행 중 뉴멕시코 지역에서 핵무기 발전시설이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그 지역의 명칭을 따 ‘로스알라모스’라는 시리즈 제목이 탄생하였다. 그는 정부산하에 대규모로 비밀리에 설계된 핵무기 발전시설을 보고는 살며시 웃으며 “이런 곳이 바로 내가 원하는 나만의 작업실이었어...”라고 말한 일화가 유명하다.

더 아웃랜즈(THE OUTLANDS, 1969-1974)
1976년 존 사르코브스키가 기획했던 첫 개인전 ‘윌리엄 이글스턴의 가이드’에서 미처 다 소개되지 못했던 명작들이 약 30년이 지난 2021년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였다. 그가 평생 보냈던 멤피스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이 담긴 작품들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 가득한 거리나(p.47) 흑인이 가득한 교회 예배당의 한 여인의 눈빛으 담은 이미지(p.50)에서는 60년대 후반 미국 남부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뒤늦게 공개된 그의60~70년대 로드트립 작업은 이글스턴의 시각적인 언어의 범주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베를린(BERLIN, 1981-1988)
80년대 초반 많은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윌리엄 이글스턴도 정치적,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는 베를린을 방문하였다. 미국 작가들에게 도 유럽 대륙의 베를린은 흥미로운 곳이었으며 미국 사진작가 루이스 발츠(Lewis Baltz)역시 비슷한 시기에 유럽을 여행하고는 “런던, 파리, 로마는 역사가 있지만 베를린에는 과거가 있다.”(Lewis Baltz, Notes on Waffenruhe, in Lewis Baltz, Texts (Göttingen, 2012)라는 말을 남겼다. 이글스턴 역시 한창 냉전체제의 끝 무렵이던 시기에 여전히 2차 세계대전 전의 모습도 남아있는 베를린의 모습을 담았다. 그의 베를린 풍경을 담은 작품을 보고 있자면, 그는 예술이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거나 어떠한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의도가 없음이 보인다. 오히려 어느 곳이든 일상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듯이 건물의 파사드의 모습이나 건물위에서 내려다본 주차장과 이미지와 같은 매일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평범함을 담았다.(p.48-49)

약 50년이 넘도록 매일 일상을 촬영해온 사진가를 기리는 회고전을 보고나니 마치 한 개인의 일대기를 둘러본 기분이다. 또한, 미국이란 나라를
천천히 살펴본 기분이 들기도 한다. 작가가 가장 많이 촬영한 지역이 자기 고향 근처이고 현재까지도 그곳 멤피스 지역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이글스턴을 현대 사진의 거장이면서 동시에 따뜻하고 친근한 작가로 느껴지게 한다. 세상의 이슈가 되는 스펙타클한 주제를 담기보다는 자신 주변의 것을 매일매일 이미지로 남기며 일상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새삼 경건하기까지 하다.


 
글 조희진 특파원
해당 기사는 2023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