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고은사진미술관+KT&G 상상마당, 제11회 KT&G SKOPF 올해의 작가展

사진이 기록을 통해 무엇을 재현하는가에 대한 이해가 다른 세 명의 젊은 작가. 그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고은사진미술관+KT&G 상상마당 제11회 KT&G SKOPF 올해의 작가展>이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2월 19일까지 열린다. 고은사진미술관과 KT&G SKOPF(KT&G 상상마당 한국사진가 지원프로그램)가 신진작가를 발굴하여 지원하는 연례기획전으로, 제11회 KT&G SKOPF에서 ‘올해의 최종작가’로 선정된 김승구의 “밤섬”과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정정호의 “코인시던스(Coincidence)”, 고성의 “그림자들 헤아리다 지문이 거멓다”를 선보인다.

 

정정호, Torso for my father, 110x138cm, Archival Pigment Print, 2018 ⓒ 정정호


정정호의 “코인시던스(Coincidence)”는 흰 배경에 사물을 중앙에 배치하여 기록한 작품이다. ‘우연의 일치’ 또는 ‘동시 발생’의 뜻을 가진 ‘코인시던스(Coincidence)’ 라는 제목과 함께 선보인 작품에서 관람객은 마치 발굴된 유물 또는 기념비처럼 설치된 사물들을 볼 수 있다. 사진 속 사물들은 녹슨 철사, 때 묻은 스티로폼 부표, 새의 마른 사체, 시체처럼 걸려 있는 진흙투성이 옷, 조개나 굴 껍데기가 박혀 있는 돌, 뼛조각, 탄피, 돌, 나뭇가지 그리고 훼손된 군인사진을 포함한다.

 

정정호, Coincidence Summertime in 1952, archival pigment print, 110×8138cm, 2018 ⓒ 정정호


썩고, 낡고, 녹슬고, 부패하고 훼손된 것들로 죽음의 분위기를 풍기는 사진들은, 사진 속 오브제의 구성요소로 쓰인 군인 사진 그리고 그 사진 속 “HAPPY NEW YEAR FROM KOREA 1952” 등의 텍스트를 통해 이 작품이 한국전쟁과 관련된 것임을 누설한다. 정정호의 “코인시던스(Coincidence)”는 한국전쟁 당시 전쟁노무자였던 할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됐다. 할아버지의 죽음에 다가서기 위해 한국전쟁에 대한 문서와 사진 기록물 찾아보았지만 수확이 없었고, 조사를 위해 찾아간 섬에서 갯벌에 빠져 죽을 뻔한 사고를 당한다.

 

정정호, Coincidence Floating body, 2018, archival pigment print, 100c×80cm ⓒ 정정호


작가는 ‘우연의 일치’처럼 일어난 죽을 뻔한 사고를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입해 추모하는 행위를 시작했다. 갯벌에 빠졌을 때 입었던 작업복을 걸어놓고 촬영하고, 갯벌과 미군의 옛 폭격장에서 주워 모은 사물들, 또 오래된 것으로 보이기 위해 부식시킨 한국전쟁 관련 사진을 함께 설치한 후 사진으로 찍었다. 오브제가 사진에 찍히기까지의 과정, 그 과정에서 작가의 사고와 행위가 작품에 중요하지만 사진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의 사진은 사진 속 사물이 지닌 이야기, 그리고 사물들의 조합과 설치로 이룬 사진 속 형상에 주목하게 한다. 이로써 관람객은 마치 설치미술을 사진으로 보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 김승구, 밤섬 100, Pigment Print, 840cm x 150cm, 2018


김승구의 “밤섬”에는 인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숲과 숲 너머로 인간의 문명인 도시가 보인다. 숲의 나무들은 가지와 잎이 무성하고, 땅은 수풀로 뒤덮여 사람이 다닐 만한 길이 보이지 않는다.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숲에는 인간이 찾아낼 수 있는 문명의 질서라는게 없다. 흔히 보던 숲과 다르고, 도시와 함께 보여 그 곳이 어디인지 궁금하다. 작가는 ‘밤섬’이라는 작품제목 그리고 숲 위로 지나는 대교, 숲 너머 도시의 풍경, 도시 속에 63빌딩과 같은 서울의 지표가 될 수 있는 빌딩 등을 포함시킴으로써, 그곳이 서울에 있는 ‘밤섬’이라는 장소성을 드러낸다.

 

김승구, 밤섬 101, 2018,pigment print, 100×80cm ⓒ 김승구


김승구가 촬영한 ‘밤섬’은 한강의 하중도(河中島), 강의 하류에 퇴적물이 쌓여 이룬 섬이다. 1967년까지 400여 명의 주민이 고기잡이, 약초 재배, 염소 방목 등을 하며 살았다. 그러나 정부가 1968년 여의도 개발 시 여의도 제방을 쌓는 데 필요한 돌을 채취하고 강의 흐름을 좋게하기 위해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후 밤섬을 폭파, 해체했다. 이후 밤섬 대부분이 없어졌으나 몇 십 년이 흐르면서 퇴적물이 다시 쌓이고, 나무와 풀이 우거지고, 철새들이 찾아왔다. 인간에게 파괴되고 더 이상 인간이 살지 않는 밤섬은 자연으로 돌아갔으며, 1999년 자연생태계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어 출입이 통제되었다.

 

김승구, 밤섬 001, 2011, pigment print, 50×40cm ⓒ 김승구


김승구는 “진경산수”, “Better Days”, “Riverside” 등을 통해 자본과 경제의 논리에 따라 성장, 개발되는 한국 사회에 관심 갖고,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기록해왔다. “밤섬” 역시 도시개발과 경제성장 논리로 인간이 파괴한 자연을, 자연이 인간의 도시 한복판에 원시의 생태로 회복해 놓은 역설을 보여준다. 작가는 ‘밤섬’의 모습을 통해 인간 중심, 도시 중심의 문명사회에 대해 비판하는 동시에, 회복된 ‘밤섬’을 생태도시 서울을 만들어가는 데 좋은 본보기와 새로운 가능성으로 제안한다. 그의 사진은 사회에 대한 면밀한 관찰로 시작해 작가로서의 사회적 발언을 사진의 전통적 기록성과 엄밀한 형식으로 보여준다.

 

고성, 그림자들 헤아리다 지문이 거멓다 oss2628, 2017, archival pigment print on mulberry paper, 100×67cm ⓒ 고성


고성의 “그림자들 헤아리다 지문이 거멓다”에는 깊은 숲의 어둠, 어둠 속 수풀의 장면, 그리고 드문드문 수풀 속 작가의 모습이 담겨 있다. 카메라는 원경보다는 중경과 근경으로, 햇살 가득한 숲의 찬란함보다는 낮의 숲이 은닉하고 있는 짙은 어둠의 세계를 보여준다. 전시장에서 “그림자들 헤아리다 지문이 거멓다”는 짙은 남색으로 칠한 벽에 가는 나무 액자 안, 암부의 디테일을 삼킨한지 프린트로 선보인다. 그리고 전시장 중앙에는 작가 노트의 내레이션을 작가의 낮은 목소리로 녹음해 오디오의 헤드폰으로 들을 수 있게 설치했다.

 

ⓒ 고성, 그림자들 헤아리다 지문이 거멓다 oss7460, Archival Pigment Print on Mulberry Paper, 2017


작품 중간 중간에 등장한 작가의 것으로 보이는 아웃 포커스된 얼굴과 손, 작가의 뒷모습은 숲 속 장면들과 연결돼 마치 그의 발자취를 따라 숲속을 헤매고, 그의 깊은 내면과 감정을 좇도록 만든다. 그러나 명확하게 어떤 내면과 감정, 어떤 이야기인지 규정할 수 없어, 어둡고 깊은 분위기에서 여러 상상을 하게끔 한다. 고성은 모호한 이미지에 의미를 한계 짓는 장치로서 글(문자)과 내레이션(음성)을 이용하지 않고, 작품제목 “그림자들 헤아리다 지문이 거멓다”와 같은 시적 표현으로 이뤄진 언어(문자와 음성)로써 여러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고성, 그림자들 헤아리다 지문이 거멓다 oss0816, 2017, archival pigment print on mulberry paper, 150×100cm ⓒ 고성


작가는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 언어로 쉽게 읽히는 것이 아닌 언어로 설명 불가하거나 규정하기 어려운 자신의 감정과 인식을 외부 세계의 이미지로 상징화하고자 한다. 또 “부재를 바라보고 그것을 관찰하고, 그것을 시각화하는 이미지를 만들면서 그에 대해 사유하는 작업”을 해왔다. 부재의 흔적이 아닌, ‘부재’를 카메라가 시각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짙은 남색의 전시장에 모호한 이미지와 함께 설치된 깊고 낮은 작가의 내레이션에서 우회하는 답을 찾게 한다.

 

<고은사진미술관+KT&G 상상마당 제11회 KT&G SKOPF 올해의 작가展> 전시 전경

 
<고은사진미술관+KT&G 상상마당 제11회 KT&G SKOPF 올해의 작가展> 전시 전경



<고은사진미술관+KT&G 상상마당 제11회 KT&G SKOPF 올해의 작가展> 전시 전경


정정호, 김승구, 고성 세 명의 작가는 각기 자신이 만든 것을 기록하는 데, 관찰한 것을 기록하는 데, 느낀 것을 기록하는 데 사진을 활용했다. 현실에서 관찰하여 본 것을 카메라로 기록해 사진으로 재현하는 것은 사진예술의 정통적 방식이다. 그리고 보이는 것 너머 보이기까지의 행위와 규정하기 어려운 감정을 현실에서 기록한 사진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예술에서 반복되는 실험이자 시도이다. <고은사진미술관+KT&G 상상마당 제11회 KT&G SKOPF 올해의 작가展>은 동시대 젊은 작가의 다양한 사진의 경향 그리고 기록을 통해 재현하는 사진에 대한 여러 이해와 시도를 의미의 유무를 떠나 살펴보게 한다.


고성(Goseong)은 뉴욕 프랫인스티튜트 순수예술 석사를 졸업했다. 개인전으로 (Blue Sky Gallery, Portland, Oregon, USA, 2014), (Encuentros Abiertos-Festival de la Luz, Buenos Aires, ARGENTINA), <그림자들 헤아리다 지문이 거멓다>(KT&G 상상마당 홍대 갤러리, 2019)를 가졌다.


김승구(Seunggu Kim)는 상명대학교 사진학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전문사를 졸업했다. 개인전으로 <풍경의 목록>(송은아트큐브, 2015), <꿈에 그린>(탈영역 우정국, 2016), <유리의 성>(BMW Photo Space, 2017),
(송은 수장고: 화이트 큐브 프로젝트, 2017), (아트비트갤러리, 2018), <밤섬>((KT&G 상상마당 홍대 갤러리, 2019) 등을 가졌다.


정정호(Jungho Jung)는 건국대학교 신문방송학과와 홍익대학교 사진학과 석사를 졸업했다. 개인전으로 <결>(사이아트 스페이스, 2014), <白의 發話>(류가헌, 2015),
(갤러리 정미소, 2016), (류가헌, 2019), (현대카드 디자인라이브러리, 2019) 등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