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윈 올라프 《완전한 순간-불완전한 세계》



어윈 올라프 作 파리 룸1134(2010)와 조지 헨드릭 브라이트너 作 흰색 기모노의 소녀(1894)


어윈 올라프 作 희망5(2005)와 요하네스 코르넬리스 베르스프론크 作 푸른드레스를 입은 소녀(1641)
 

완벽한 파열, 어윈 올라프의 사진 세계

한국의 미술관이 사진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 것은 손에 꼽힐 정도이다. 어윈 올라프(Erwin Olaf, 네덜란드 태생, 1959-)의 대규모 회고전(완전한 순간-불완전한 세계 | 2021.12.14~2022.3.20,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 열린다고 했을 때 “지금, 왜?”라는 물음이 든 이유이다. 생존한 (그렇기에 계속 검증 중인) 60대 중반의 외국 작가의 다소 난해한 인물 사진과 낯선 취향의 세계를 그린 사진 작품을 미술관에서 전시하기엔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어윈 올라프 전시는 우려를 상쇄하며 많은 관객의 호평을 낳았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2021년 대구사진비엔날레 메인 포스터 사진으로 작가의 이름과 작품 이미지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무렵에 열렸고, 가볍게 날아갈 듯한 소위 인스타샷에 익숙한 한국 관객에게 영화처럼 완벽한 미장센과 북유럽의 고혹적인 칼라, 현대인의 공통감각을 깨우는 작가의 ‘완벽한 사진 세계’에 대해 공감의 폭이 컸으리라 생각한다. 필자도 두 번 관람했다. 첫 번째는 전시장 2층에 디스플레이 된 (2020) 시리즈를 시작으로 전시장을 거슬러 내려가며, 두 번째는 전시 구성을 따라가며. 관람 시차를 두고 보는 방법을 달리해 관람한 결과 작가의 작업 세계에 가까이, 새롭게 근접할 수 있었다.

어윈 올라프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작가로,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작품을 시대별로 묶어서 사진, 영상 및 설치 작품을 통틀어 약 120여 점을 선보였다. 전시는 특별 섹션인 <12인의 거장과 어윈 올라프>를 시작으로 <순간: 서사적 연출>, <도시: 판타지 사이>, <고전: 현대적 초월>로 구성했다. 먼저 <12인의 거장과 어윈 올라프>는 암스테르담 라익스뮤지엄(Rijksmuseum) 컬렉션과 올라프의 작품을 매칭한 섹션이다. 시대와 매체를 초월해, 나란히 걸린 두 작품을 번갈아 보며 둘의 연관성과 차이를 살피는 흥미로운 시도이다. 작품과 작품, 작가와 작가, 작품과 관객이 다양한 관계성을 맺으며 작품의 의미망을 확장하는데, 궁극에는 올라프의 12인의 거장을 향한 오마주이면서 자신의 작품을 거장과 나란한 위치에 올린 당찬 기획이다. 라익스 뮤지엄 큐레이터의 놀라운 기획이 돋보이는 섹션이다.

 


어윈 올라프 作 50년의 자화상(2009)


어윈 올라프 作 희망_교실(2005)


어윈 올라프 作 비탄_캐롤라인 초상화(2007)


어윈 올라프 作 짜증나는(2005)


1부 섹션인 〈순간 : 서사적 연출〉은 올라프의 셀프 포트레이트로 시작해 〈Rain(비)〉(2004), 〈Annoyed(짜증나는)〉(2005), 〈Hope(희망)〉(2005), 〈Grief(비탄)〉(2007), 〈The Keyhole(키홀)〉(2012), 〈April Fool(만우절)〉(2020)로 이어진다. 어윈 올라프의 사진 세계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섹션이다. 올라프의 인물들은 대개 연약하고 쉽게 절망하고 깨지기 쉽고 우울하고 어둡다. 그리고 상실과 낙심, 좌절과 절망에 빠져있는 듯하다. 하지만 올라프의 카메라는 그들을 완벽에 가까운 카메라 워크와 미장센을 통해 판타스틱하게 순간 포착한다. 올라프의 사진에서 멜랑콜리함은 등장인물의 포즈와 의상 그리고 인테리어 소품을 통해 잘 드러나지만, 무엇보다 풍부한 칼라와 고전의 명화로부터 빌려온 코드화한 양식(연극성)은 우울감을 증폭시킨다. 작가는 ‘코다크롬이 우리의 감정을 우리에게서 감싼다’고 표현했는데, 그만큼 본인의 작품에서 색채의 뉘앙스를 중시함을 알 수 있다.

올라프의 작품은 어긋나고 분열된, 파열음으로 가득한 사회와 인간관계를 함의한다. 작품 〈Hope_The Classroom(희망_교실)〉(2005)은 선생과 학생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선생은 학생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영웅이지만 때로는 지식 권력의 소유자로 이 작품에서는 더는 기대할 것이 없는 환멸스러운 대상으로 순간 포착된다. 〈Hope(희망)〉(2005) 시리즈는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탐구하는데, 등장인물의 우수에 찬 모습을 통해 아메리카가 내건 ‘아메리칸드림’의 시대는 끝났음을 암시하고 있다. 〈Grief(비탄)〉(2007)에서 등장인물은 눈물겨운 침묵과 터질듯한 고독 속에 놓여 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전형적인 미국 귀족의 스타일과 취향으로 가득한 실내이다. 머리는 한껏 우아하게 부풀려 말아 올리고 전반적으로 육감적인 외형을 선보이지만 자신의 방이 아닌 어딘가에 갇힌 것처럼 불편하고 애매하고 불안하고 부서지기 쉬운 모습이다. 인물의 동작과 동작 사이를 연결하는 포즈는 각각의 캐릭터에 집중하게 하는 강력한 코드를 형성하는데 조용하게, 깨지기 쉬운, 절망과 기쁨이 교차하며 관객의 마음에 서서히 스며든다. 작품의 주된 색조가 모카, 크림, 초콜릿, 베이지, 올리브, 진주 등 안정적이며 명상적이고 엄숙하여 사진 속 상황에 더욱 몰입하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한 벽면과 선인장과 꽃병, 식물이 놓인 방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고독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어윈 올라프 作 Im World_At the Waterfall


어윈 올라프 作 Im World_In the Fog









어윈 올라프 作 Im World_On the Lake


〈순간: 서사적 연출〉의 주요한 기법은 2부 섹션 〈도시-판타지 사이〉로 연결되는데, 그 중 〈Palm Springs(팜 스프링스)〉(2018)은 자연과 사회적 약자 착취에 대한 강력한 비판 의식이 래디컬하게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팜 스프링스’와 캘리포니아의 황량한 풍경은 ‘에드 루샤’와 ‘리처드 미즈락’의 사진과 ‘데이빗 린치’ 감독의 영화에서 목도할 수 있다. 전시장에서는 찢어진 성조기가 힘없이 나풀거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흑인들은 깊은 명상에 빠져있고, 백인들은 어윈 올라프의 완벽한 통제 하에 배경과 불협화음을 보인다. 이 시리즈의 압권은 단연 금발의 어린 남자아이가 자기 덩치로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큰 의자에 앉아 카메라를 직시하는 사진이다. (‘The Bank, The Successor’(2018)) 얼음처럼 차갑고 슬픈 시선, 어린아이를 감싼 방 안의 공기는 적막하고 숨이 막힌다. 사막 도시 팜스프링스를 유지하기 위해 소비되는 물처럼, 소수 부자 백인의 삶을 떠받치는 다수 흑인의 절망이 찢어진 성조기와 함께 절망적으로 메말라가는 작품이다. 어윈 올라프가 웨이터 복장으로 수영장 바깥에 서서 금발의 젊은이를 위해 카테일 잔을 들고 있는 수영장 씬처럼.
 
어윈 올라프의 작품은 아름답고 풍부한 색조와 우아한 조명, 완벽한 셋팅으로 이뤄진 완전한순간(사진) 너머의 무수한 구멍과 결핍을 응시하게 한다. 그러니 그의 사진을 볼 때는 천천히 오래 음미하며 작품이 보내는 메시지를 충분히 들을 필요가 있다. 전시장의 마지막 섹션인 3부 〈고전: 현대적 초월〉에서는 최근작 〈Im Wald(숲 속에서)〉(2020)와 흑백 포트레이트를 만날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성을 적막하고 숭고하게 끌어올린 이 작품은 여러 화가와 작가의 작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올라프의 〈At the Waterfall〉(2020)은 화가이자 사진가인 ‘토마스 에이킨스(Thomas Cowperthwait Eakins, 1844~1916)’의 작품 〈수영(1885)〉이 모티브가 되었다. 〈수영〉은 한적한 강가에서 수영을 하는 남성들의 몸짓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매혹적인 작품이다. 에이킨스는 미국인들의 일상을 주로 화폭에 담으며 특히 인체를 꼼꼼하게 관찰하고 묘사하기로 유명한데 남성 누드를 다룬 작품을 다수 남겼다. 에이킨스의 작품은 올라프의 〈At the Waterfall〉(2020)이 된다. 또한 ‘아놀드 뵈클린(Arnold Böcklin, 1827~1901)’의 그림, 〈Die Toteninsel III(The Island of the Dead)〉 은 작가의 작업에서 중요한 계기가 된다. 후대 많은 예술가의 뮤즈가 된 이 작품은 죽음을 향해 노를 저으며 검은 물처럼 깊은 애도에 잠기게 한다. 뵈클린의 그림은 올라프의 〈On the Lake〉(2020)가 된다. 마지막으로 낭만주의 운동에서 가장 두각을 보였던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er David Friederich, 1774~1840)’의 작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c. 1817)는 암벽 앞에 서 있는 어윈의 자화상이 되었다. 올라프는 풍경의 세목을 드러내기보다 안개에 가리거나 여백의 힘을 강조해 〈In Front of the Mountain Wall, Self-Portraits)(2020)를 완성한다.

마지막으로, 어윈 올라프의 〈In the Fog〉(2020)는 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Joseph von Eichendorff, 1788~1856)의 시 〈저녁 노을〉에서 모티브를 가져온다. 이 시는 스탄자(stanza, 4행 이상의 각운이 있는 시 형식)로 이뤄졌고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아이헨도르프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빼어난 문학작품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아름다운 통찰을 보여주는 시와 함께 올라프의 전시는 끝난다. 아주 아름답고 고독하고 우수에 가득한, 어윈 올라프의 완벽한 카메라의 순간 너머, 불완전한 세계에 대한 통찰로 가득한 전시였다. 아이헨도르프의 시를 읊으며 전시의 여운을 잇고자 한다. “오, 넓고 조용한 평화여 / 저녁 노을 속에서 / 우리 피로로 지쳐 있네 / 이것이 아마 죽음이 아닐까.” (아이헨도르프의 시 ‘저녁 노을’ 중에서)

 

글 최연하 독립큐레이터, 사진평론가
사진제공 수원시립아이파크 미술관  전시장 사진 편집부 촬영

해당 기사는 2022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