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문화 기록하는 사진가 차정환

상업사진과 기업사진, 사진학과 교수, 우리의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기록하는 사진가. 지난 40년 이상을 다양한 사진판에서 활동해온 차정환 교수(나주 동신대)의 이력이다. 그는 2015년부터는 교수라는 직함에서 벗어나 순수한 사진가로 새출발 했다.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에 충무로 김한용 사진스튜디오에서 사진으로 사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한지 벌써 41년이다.

사진인생 41년에서 그는 올해 두 번째의 전환기를 맞이했다. 첫 번째는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이 큰 폭으로 성장하던 80년대와 90년대에 현대자동차 홍보실에서 자동차 전문 사진가로 활동하던 화려한 활동을 접고 고향 가까운 전남 나주에서 동신대학교 교수로 새로운 사진인생을 시작한 것이었다. 1995년의 일이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2015년에 명예퇴직을 택한 그는 그동안 남도를 중심으로 한국의 전통문화를 기록해온 작업을 더욱 확대하는 작가 생활을 자원했다.

“뭐든지 일을 하다 보면 그것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일이었어요. 현대자동차에서 17년 동안 촬영하면서도 최초의 자동차 전문 사진가가 되다 보니 모든 걸 독학으로, 때로는 자동차 선진국에서 기술을 배워가며 사진을 찍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참으로 열심히, 마치 현대자동차라는 기업이 그 시절에 그랬듯이 죽을 둥 살 둥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아마 그 바탕으로 교수라는 생소한 역할을 겁 없이 선뜻 떠맡을 수 있었을 겁니다.”

차정환 작가는 어려운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것이 다채로운 사진인생을 선택할 수 있게 했을 것이다. 40대 중반에 나주로 내려간 그는 사진 전공자가 드문 호남 지방에서 사진학과의 뿌리를 내리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그의 남도 작업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서울에 살다가 나주로 거처를 옮기니 아무래도 남도지방이 더 잘 보이고 더 가깝게 마음에 와 닿고 더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급변한 우리 사회에서 그래도 가장 한국적인 정서와 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요.”

나주행은 그에게 한국전통문화의 기록이라는 사진작업의 동기를 부여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 비로소 평생의 작업이 될 사진을 시작한 것이다.


 
 

ⓒ차정환



ⓒ차정환


ⓒ차정환


부지런함의 미덕
사진가치고 굼뜬 사람은 거의 없지만 차정환 작가는 특별히 부지런하다. 그가 즐기는 촬영시간대가 새벽이거나 저녁노을 후여서 그는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선다. 그가 즐겨 촬영한 갯벌 작업과 30년 동안 꾸준히 작업해온 낙안읍성, 전국에 산재한 전통마을의 돌담길 등은 그의 부지런함이 한몫을 한 결과물들이다.

강화도부터 제주도까지 서해의 갯벌을 작업한 그는 해양수산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의 해양보호구역을 만나다.”라는 사진집으로 발표했고, 전국의 돌담길, 고샅길을 촬영한 결과물은 “차정환의 시간여행”이란 사진집으로 발표되었다.

“어릴 적 추억 때문인지 한옥이나 한옥과 한옥 사이의 돌담길은 마음을 편안하고 아늑하게 해줘요. 사진을 찍지 않고 그 안에 있기만 해도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 아마 나만의 감성은 아닐 거여요. 그래서 더 사라지기 전에 사진으로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오랜 세월 드나들면서 세월의 무게에 무너지고 허물어지는 현장을 목격하는 일은 그를 안타깝게 했다. 더욱 부지런하게 작업을 해야 한다는 재촉으로 느껴지기도 한다고 했다.

“요즘은 소나무와 정자가 어우러진 모습에 눈길이 많이 갑니다. 한국의 정취와 어우러진 소나무를 흑백으로 촬영하고 있어요.”
우리 민족에게 가장 가까운 나무인 소나무도 풍경으로 찍으면 나무일 뿐, 그래서 작가는 한국의 정자와 연결하여 하나의 문화풍경으로 바라본다.

“문화재를 찍어도 문화재 자체만 보지 않아요. 그 주변의 마을과 어우러진 정자, 그리고 정자와 어우러지는 소나무 등, 전체적인 분위기를 통해 그 문화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존재했는가를 보려고 해요. 문화든 풍경이든 결국은 사람의 흔적이 느껴질 때 생명력이 느껴지는 것이니까요.”



ⓒ차정환



ⓒ차정환


ⓒ차정환


변모하는 모습들
남도지방에 맞추어졌던 초점이 올해부터는 서울과 강원도로 확대될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은 전남을 중심으로 많이 촬영했는데, 이제 서울로 옮겨왔으니 서울과 서울 근교의 변모해가는 풍경을 많이 찍으려고 해요. 조선시대 겸재 선생이 그러했듯이 사진으로 서울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촬영한 사진원고가 어마어마한 분량이어서 이것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작업도 이제부터 해야 할 숙제이다. 워낙 방대한 양이어서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안 난다고 말하는 그는 사진정리가 끝나면 그 사진이 필요한 곳에 제공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평생 사진만 했으니 이 정도를 방대한 분량이라고 말하기 어렵지요. 정리가 끝나면 재능기부 차원에서 그 원고를 활용할 수 있는 곳에 기증할 생각을 갖고 있어요. 내 파일 속에서 잠자고 있는 것보다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려고요.”
그의 사진원고 중에는 초가라든가 우리 전통문화에 관련된 것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하며 습지와 포구 등 어촌의 풍경도 그가 즐겨 다루는 소재다.

“앞으로 참하고 예쁜 포구를 열심히 찍어두려고 해요.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인 나라인데. 해안선을 따라가면 조그맣고 정겨운 포구가 참 많거든요. 그러나 그것조차 너무 개발 위주로 변모하고 있어서 아쉬워요. 더 변해버리기 전에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요.”

그는 아름다운 항구도시인 여수 출신이다. 어린 시절에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아둔 풍경들이 가깝게 다가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그에게 익숙한 것들이 소재가 되어 그의 사진인생 3기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것 같다.

모든 직책에서 떠나 이제 ‘사진가’라는 이름만 남았으니 앞으로 더욱 자유롭게 작업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차정환 작가. 지금부터의 작업은 그의 60여 년 삶과 40년의 사진인생이 녹아 있으므로 완결본을 만들어내리라 기대된다. 그는 걸작을 만들겠다는 욕심도, 경제적 대가나 명예를 원하는 사심도 없기 때문에 행복한 작업이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사진가로서 최고의 시간이 펼쳐지지 않을까, 그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이 든다.
 



 
글 윤세영 편집주간
해당 기사는 2015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