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다음작가상, 성지연

성지연은 2016년도 박건희문화재단이 주최하는 14회 다음작가상으로 선정됐다. 다음작가상은 박건희문화재단의 작가 창작지원 프로그램으로 2002년에 제정됐으며, 사진을 매체로 작업하는 45세 이하의 작가를 대상으로 1인을 선정한다. 2016년은 성지연 작가가 ‘애매모호’ 시리즈와  그간의 작업 활동과 그 가능성을 인정받아 수상했다. 그는 이 상이 “사진작업을 하던 10년이란 시간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였다”며 “앞으로도 여전히  작업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믿음을 줬다”고 전했다. 성지연은 또한 지난 해 북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서울사진축제〉 기간 동안, 신작 〈Homo Movens〉를 선보였다. 최근에는 ‘빛으로 그린 데생’이란 개념의 새로운 작업에 한창인 그녀를 합정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Woman with a Candle, 2009 Ⓒ성지연

다음작가상 수상을 축하한다. 첫 개인전을 연지, 10년째 되는 해의 수상이라 더욱 의미 깊을 듯하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고 하는데, 10년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상이었다. 2006년 프랑스에 있을 때, 파리의 한국문화원으로부터 ‘젊은 작가상’을 받은 지 딱 10년 만에 받은 상이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받은 상이라, 더욱 기뻤다. 기존 발표작들과 미발표작 포트폴리오를 함께 제출했는데, 다시 원초적으로 작업하고픈 마음에 인화하는데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었다.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제출하는 그 과정만으로도, 다시 뭔가를 시작하고 있다는 느낌이 스물스물 올라와서, 기분이 좋았다.

학부에서는 불문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사진으로 진로를 바꾸었다고 들었다. 프랑스는 처음에 불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간 것인지?
파리에는 조명디자인을 공부하러 갔다. 예술대학에서 다양한 매체 수업을 듣던 중, 특히 사진을 배울 때 마치 내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장 편안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매체가 예술이고, 특히 사진이라는 분야다.
당시에는 촬영보다도 암실에서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할 때가 더 좋았다. 흑백필름을 현상할 때, 현상액에 담그고 바운스를 쳐주지 않나? 아기들 요람을 흔들어주듯이 조금씩 흔들면서 바운스를 주면 슬며시 드러나는 이미지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한동안 암실작업이 너무 재밌어서, 집에서 검은 천으로 창을 가리고 밤새 필름을 뽑는 데만 집중하기도 했다.


 
 Conversation, 2009 Ⓒ성지연
 
 
 Mask Play, 2009 Ⓒ성지연
 

‘애매모호’ 시리즈로 2010년도에 트렁크 갤러리에서 첫 국내 개인전을 가졌다. 오브제와 인물간의 관계에 집중한 이 시리즈는 전체적인 모노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일종의 차가움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단지 금속적인 차가움은 아니다. 또 이 시리즈에는 인물과 오브제 사이에서 미묘한 ‘불안’이 감지된다.
글쎄, 차가움 보다는 ‘거리감’이 아닐까? 냉소적인 차가움이 아니라, 거리를 둔 시선과 객관적이면서도 다가설 수 없이 각자 자기만의 영역이 있는, 그런 거리감 말이다. 나는 정주하 작가의 ‘불안, 불-안’ 작품처럼 평범해 보이는 일상인데, 그런 평범한 이미지 속에 불안한 요소들이 깔려있고, 엄습해오는 느낌을 좋아한다. 그런 일상 속 불안의 느낌을 포착하려는 욕구가 있다.
 
이 ‘애매모호’ 시리즈는 언어를 배제한 사진임에도, 사진 한 장에 하나의 스토리가 있지 않을까 상상케 한다. 촬영 전 하나의 스토리를 먼저 구상했는가?
대부분은 내가 거의 스토리를 정해놓고, 거기에서 인물들이 연기를 할 수 있게끔 끌어내는 과정이 있다. 물론 사진에서는 그런 스토리텔링이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숨긴다. 항상 그 다음단계를 상상하다보면 숨어있는 고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다보니까, 뭔가 극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보다 사건의 전후 같은 사람들의 정지 모션이 많다. 사진 속에 내재돼있는 사건들, 감정들이 이후 어떻게 풀려갈지는 저마다 다르게 상상할 수 있는 열린 결말인 셈이다.  

작품 속 모델들은 배우인가? 또 작품 속 인물들이 각각의 오브제와 사연이 있는 사람들인가?
일반인이다. 전문모델은 철저하게 자기를 제어하고 컨트롤 할 수 있기 때문에, 너무 완벽하게 연기를 하면 내가, 혹은 관객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런 면에서 카메라 앞에서 낯설어하는 일반인들이 오히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색깔이 사라지고 내가 새롭게 입힌 감정선이 드러난다. 내게는 그 어색함과 불편함에서 나오는 날 것의 느낌이 필요하다. 인물들과 함께 하고 있는 오브제들은 내가 직접 준비했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감정들을 효과적으로 표현해줄 오브제들을, 사진 하나하나에 연극적 장치로 배치했다.

이 시리즈에서 각각의 사진 속 주인공들은 서로 연결된 이야기의 주인공들인가? 파편화 돼있나?
스토리가 연결되고, 등장인물이 하나씩 나오는 식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이들이 같은 시간,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느낌이다. 아파트를 잘라 단면을 보았을 때 각자의 공간에서, 따로따로 뭔가를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모노톤으로 색감을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려고 했다. 한 시간, 한 공간에 각자 따로 있는 사람들의 느낌을 의도해서 말이다.


 
Homo Movens 3, 2016 Ⓒ성지연
 

Homo Movens 2, 2016 Ⓒ성지연
 

‘애매모호’ 시리즈는 모델들이 다 서양인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프랑스에서 나는 이방인이었기에, 작품에서 ‘고독감’을 이야기하면, 그곳 사람들이 ‘넌 이방인이니까 외로움을 느끼는구나’ 라는 시선으로 너무 단순하게 해석할까봐, 그게 싫었다. 그래서 더 철저하게 서양인 모델만 썼다. 내 작품 안 ‘고독감’이 외국인이 타지에서 혼자 있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그냥 너희들도 느낄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인간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작가 이름을 보면 내가 외국인인 것을 알겠지만, 그것을 모르고 작품만 봤을 때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 안에서 보기를 바랬다. 물론, 그 때는 내 작품 속 느낌을 ‘고독’이라 표현했지만, 지금 와서는 이 작업들 역시 ‘고독’이 아니라 ‘거리감’이란 생각이 든다. 궁극적인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감 말이다.

미발표작인 ‘Home Sweet Home'은 같은 한국인을 찍었다. 이들은 외투, 혹은 숄을 걸친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왜 모델들을 바꾸었는가?
서양인들 속에 있다 보니, 오히려 동양적 인물을 유형학적으로 관찰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다시 한국인을 촬영하게 됐다. 이 작업은 파리에서부터 계획했던 것이다. 모델들이 뒤집어쓰고 있는 외투가 하나의 집 같이 느껴졌다. 우리 몸을 감싸고 있는 유일한 도피처이자, 은신처 같은 느낌이랄까? 또 한편으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떠나는 기차에서, 그 유태인들이 도톰한 외투를 입고 있는 이미지가 내게 와 닿았다. 그들은 당시 가진 게 정말 그 외투 하나였다. 우리는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 절망이라고 알고 있지만, 당시 그들은 아우슈비츠의 현실을 모른 채, 오히려 희망에 차서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이동(Movens)이란 그것이 절망인지, 희망인지 미처 모른 채, 그저 움직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작인 ‘Homo Movens’가 모델들이 입고 있는 옷이 ‘디아스포라’를 상징한다는 해석이 있는데?
이 모델들은 평범한 20대 한국인들이다. 옷 보다는, 오히려 각양각색으로 염색한 머리에서 그들이 타문화를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20대들은 서울에 앉아 온 세계 사람들과 연결되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모델들이 입은 옷 자체도, 벼룩시장에서 사 온 것이다. 이 옷도 어디서, 어떻게 누군가의 손에 거쳐서 왔는지, 그 역사는 아무도 모른다. 촬영을 위해 동묘 벼룩시장에서 직접 사왔는데, 그 산처럼 높이 쌓여져있는 옷들이 너무 신기했고, 이 자체가 디아스포라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떠도는 우리를 대변하는 현실이라고. 그 중 마음에 드는 옷들을 가져왔는데, 신기하게도 처음부터 모델들이 가져온 옷처럼 잘 맞았다.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20대와, 이미 많은 여정을 거쳐서 벼룩시장에서 온 옷, 그 기묘한 어우러짐이 재미있었다.

지금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최근에는 ‘드로잉 포토그라피’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이 ‘빛으로 그리다’는 뜻이 있는 것처럼, 연필로 데생을 하듯 빛으로 드로잉하는 작업이다. 지금까지는 계속 조명을 사용한 연출로 대상을 부각시켰지만, 이번 작업은 처음으로 자연광에 반해서 인물이 배제된 오브제만을 자연광으로 촬영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현재 당진에 위치한 아미미술관의 〈2016 에꼴드아미 레지던시전〉에서 전시중이다.  

2017년 새해다. 올 한해가 어떤 한 해이기를 바라는가?
이제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한지는 15년이 됐고, 작가로서 첫 개인전을 연지 10년이 됐다. 올해는 또 다른 10년을 밟아가는 첫 해이다. 어쩌면 그동안은 해야 할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을 중심으로 해왔다. 그렇지만 지금은 더 늦기 전에 진지하게 사진이란 정말 무엇인지 고민하고 싶다. 원초적인 질문일지는 몰라도, 이미지란 무엇인가, 그 이미지에서 내가 해방이 될 수 있을까?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서, 그 이미지들을 해체하고, 다시 표현할 수 있을까? 단지 사진가여서 당연히 사진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원론적인 질문에 나 다운 답을 찾았으면 좋겠다.  

 

글 석현혜 기자  정리 이민주 기자 이미지 제공 박건희 문화재단
해당 기사는 2017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