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보금자리에 둥지 튼 예술, 부산현대미술관



소리 사이를 산책하다

 

지문 Zimoun, <사운드 미니멀리즘> 전경

 

녹음으로 둘러싸인 외벽을 지나 들어가니, 그 안에는 소리의 바다였다.
지난 6월 15일 문을 연 부산현대미술관의 개관전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스위스 출신의 사운드 아티스트 지문의 <사운드 미니멀리즘: Hum of Natural Phenomena> 작업이었다. 1400개의 막대기가 천장에 매달려서, 바닥에 놓인 종이상자를 일정한 진동으로 치는데 마치 빗소리를 연상시키는 사운드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나무 빗줄기를 연상시키는 그 장대한 광경은 보는 이를 압도했다.


막대기의 비가 내리는 설치작품과 이웃한 공간에서는 역시 1400개의 줄에 매달린 금속 조각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바닥을 치는 지문의 또다른 사운드 아트 작업을 만날 수 있다. 사운드 아트 작업이지만, 그 방대한 규모나, 일정한 움직임 속에 시각적으로 먼저 압도된다. 관객들은 움직이는 나무 막대기나, 줄에 매달린 금속 조각 사이사이를 걸으며 마치 소리 사이를 산책하는 공간감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지문의 이 작업은 본래 나무 막대기가 미술관의 맨 바닥을 치도록 기획됐으나, 건물의 바닥 마감이 고르지 않아 원하는 소리를 낼 수가 없어서, 그 대안으로 막대기 아래 종이상자를 모두 깔면서 처음 구상과는 다른 새로운 작품이 나오게 됐다. 그런데 새옹지마랄까? 나무가 종이상자와 부딪치며 내는 소리도 색다르지만, 어찌 보면 나무 막대가 종이상자를 치는 모습이 국수 가락이 종이 박스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면서, 더욱 재밌는 청각적,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냈다.


한계를 도전으로, 예술적 상상력을 통한 전환

비 온 뒤에 땅 굳는다고, 부산현대미술관은 애초 기획단계부터주어진 불리한 조건을 예술가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재치있게 활용한 작업들로 더욱 빛을 발했다. 부산시립미술관에 이어 두 번째 부산시 공식 미술관인 부산 현대미술관은 서부산 낙동강 하구지역인 을숙도 생태공원에서 터를 잡고 지난 2017년 2월 준공했다. 부지 2만9900㎡, 연면적 1만5312㎡에 건립됐으며,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로 지어졌다. 그러나 미술관 건물이 공개되자, 큰 특색 없는 네모난 건축물이 마치 ‘마트 창고 같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미술관 건물 외관부터 건축 디자인에 공을 들여서 건축물 자체가 예술작품으로, 그 지역의 트레이드마크 역할을 하는 지금의 추세와 맞지 않다는 것.


그러나 지난 6월 공개된 부산현대미술관은 기존 별 특색 없는 콘크리트 사각건물이 아니라, 초록빛 식물로 뒤덮인 독창적인 외관으로 이런 우려를 잠식시키기에 충분했다. 미술관 측은 세계적 식물학자이자 조경예술가인 프랑스 패트릭 블랑을 초빙해 그의 ‘수직정원’을 미술관 외벽에 설치했다. 패트릭 블랑은 식물은 땅 위에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흙이 없는 수직 콘크리트 벽 위에 에어 플랜트를 이용해 식물을 재배하는 ‘수직정원’의 창시자로, 전세계 300개 이상의 미술관 및 공공건물에 수직정원을 설치했다. 그의 수직정원이 한국에 설치된 것은 부산현대미술관이 처음이다. 이 수직정원은 영구 설치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미술관의 외벽을 뒤덮게 된다. 철새도래지로 보호구역인 을숙도의 녹음이 우거진 생태 속에서 식물로 뒤덮인 미술관은 마치 예술적인 카모플라주처럼 잘 어우러지는 셈이다.


자연, 뉴미디어, 인간 중심의 현대미술관


 

전준호 <아티스트프로젝트Ⅰ> 전경


부산현대미술관의 개관전에서는 영상, 설치 등 미디어 아트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개관에 맞춰 강태훈, 첸 치에진 등 아시아 작가 5명의 양상작업을 중심으로 한 <미래를 걷는 사람들>과 전준호, 정혜련, 강애란의 미디어 영상과 설치작품으로 이뤄진 <아티스트 프로젝트 Ⅰ,Ⅱ,Ⅲ> 전을 함께 선보였다. 이 중 전준호의 <꽃밭명도>는 영상 작업과 함께 전시장에 작품을 하역하기 위해 만든 거대한 셔터 문에 붉은 아크릴판을 덧대서, 미술관 안에서 바라보이는 바깥 풍경이 핏빛으로 낯설게 보이도록 유도했다. 또한 전시장 바닥의 마감이 고르지 않아, 균열이 생긴 공간에 자생한 잡초 역시 일부러 균열을 키워서 잡초가 더 자라게 해서 그 조차 설치 오브제로 적극 활용했다. 전준호 작가의 작품과 이웃해 설치된 정혜련 작가의 <-1의 풍경(Landscape of -1)>은 천장에 매달린 LED 발광체가 마치 핏줄처럼 길게 배열되는데 그 사이를 빛이 심장 박동에 맞춰 순환한다. 이 설치작업은 부산현대미술관을 둘러싸고 있는 낙동강 줄기를 상징하며 지역과 예술이 어떻게 관계맺을 지에 대해 암시한다.


이처럼 부산현대미술관은 개관 전부터 제기됐던 여러 우려를 잠식시키고, 불리한 한계상황을 예술적 상상력으로 극복한 작업들로 날개를 달았다. 부산현대미술관의 김성연 관장은 “개관전은 ‘자연, 뉴미디어, 인간’을 중심으로 한 미술관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예술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돌아보고 다가올 미래를 전망코자 미술관의 지향점을 담은 전시들”이라며 “부산현대미술관은 동시대 미술을 지향하며 설치, 영상 미디어, 뉴 테크놀로지 작품들을 주목하고 수집하려 한다. 미술관 측이 자금을 대고 작가들의 신작을 선보이는 협업도 지속하려 한다”고 밝혔다.


부산현대미술관은 이번 개관전을 오는 8월 12일까지 계속하며, 이후 9월에는 부산국제비엔날레 전시가 열리게 된다. 또한 도심에서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는 서부산 을숙도라는 위치로, 관객 편의를 위해 가장 가까운 지하철 하단 역에서 셔틀버스를 운영할 계획이다. 미술관 측은 “전시 관람과 함께 을숙도 생태공원을 둘러보며 예술과 자연을 함께 즐길 수 있다”고 귀띔했다.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부산현대미술관

해당 기사는 2018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