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ine/상상 ② : Hugh Kretschmer, 기울어진 세계

현실은 조금 지루하고, 조금 괴롭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 바깥’을 상상하곤 한다. 누군가는 꿈을 꾸고, 누군가는 죽음을 상상하며 그 바깥으로 도피한다. 그러나 휴 크레치머(Hugh Kretschmer)는 오히려 현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사무실, 집, 병원,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같은 너무나 현실적인 공간 속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익숙하고 뻔한 현실에 조금씩 균열을 만든다. 
매끈하게 정제된 세계에 빈틈이 생겼을 때, 그 사이에서 등장하는 것들이 있다. 거대한 얼굴을 가지고, 박제된 신체로, 전시된 표정으로 걸어 나오는 사람들. 휴 크레치머의 프레임에는 현실을 담았을 때 자꾸 초과해가는 세계가 있다. 위트와 아이러니가 넘치는 시선으로 현대인의 감정 상태를 묘사하는 휴 크레치머와 너무나 현실적인 이슈들을 초현실적인 ‘기울어진(Slanted)’ 장면으로 표현한 “Slanted” 시리즈에 대해 이야기했다.

 
Hugh Kretschmer, Picking a Mechanic ⓒHugh Kretschmer

“Slanted” 시리즈 작업이 매우 흥미로웠다. 먼저 제목을 ‘Slanted’로 짓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해 달라.
내 생각에 그 이미지들은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난 모습들이었다. 뭔가 직접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말이다. 그래서 정상에서 벗어난 “비스듬한(Slanted)”이라는 제목이 가장 적절할 것 같았다. 


당신의 작업은 매우 현실적인데, 동시에 매우 초현실적이다. 당신의 상상이 현실과 대치되는 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과 깊게 공감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내 작업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다. 나는 상업 사진작가이기 때문에 잡지 작업을 많이 한다. 그래서 내 작업은 실재하는 현실의 사물과 이슈에서 시작한다. 가령 잡지 작업을 할 때에 잡지사로부터 어떤 지침을 받는다. 나는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스토리’를 만든다. 내 목표는 독자들이 기사를 읽으며 페이지를 넘기다가 나의 이미지에 주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한 목표에 성공하기 위해 독특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계속해서 만들려고 한다. 즉 현실적인 사물들에 대해 독자의 주의를 환기하고자 비현실적인 감각을 드려내려고 한다.


특히 당신의 작업은 상상력이 돋보인다. 상상력을 기반으로 당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해가는 것 같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이유를 알려 달라. 상상력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사진작가 제리 율스만(Jerry Uelsmann)의 사진집을 보여주신 이후로 내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제리 율스만은 자신만의 독보적인 이미지 작업을 위해 두 개 이상의 사진을 합치는 포토몽타주(photomontage) 방식을 사용했다. 내가 그 책을 펼쳤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때 난 사진에는 어떠한 한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유일한 한계는 오직 나의 상상력일 뿐이지만, 동시에 나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해가는 당신만의 과정이나 방법이 있다면?
나의 창작 활동은 아이디어나 콘셉트를 스케치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에게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꼭 필요한 작업이다. 첫 번째 이유는 머릿속에서 굴러다니는 여러 가지 것들을 번역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과연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는지 판단하게 한다. 두 번째 이유는 나는 내 아이디어를 나의 디렉터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때 종이와 연필로 정리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크기와 조명 방향 등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나의 스케치를 자신의 레이아웃에 끼워 넣어 어떻게 맞출지 확인하고, 조정을 하고, 최종 이미지를 위해 내가 변경해야 할 것이 있는지 알려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스케치는 실행을 계획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마치 건축가가 디자인을 실현하기 위해 청사진을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거기서부터는 이제 실행하는 문제만 남아 있다. 어쨌든 이러한 아이디어 스케치는 처음부터 끝까지 물리적으로 나와 함께 있다.


 
Hugh Kretschmer, Lion Tamer ⓒHugh Kretschmer

특히 사진 속 인물들의 신체 표현이 인상적이다. 신체는 단절되고 변형되고 왜곡되어 있다. 신체를 중심으로 작업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나는 인물들의 신체를 “변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표현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나의 첫 번째 에이전트에서는 그 점을 다소 우려했다. 그들은 나의 표현이 좀 “이상하다”고 말하면서 내게 “절단된 신체 부위가 아닌 것을 창조하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단지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방법일 뿐이다. 그 당시 나는 포토 콜라주를 실험하고 있었고 신체는 그러한 작업에 알맞은 소재였다. 사진들을 오리는 작업을 한 다음, 그것을 카메라 앞에서 조합해 촬영했다. 포토샵을 이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표현과 테크닉을 꽤 많이 사용했고, 지금도 가끔 사용하고 있다. 다양한 표현 방식과 수단을 이용해 환상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꽤 즐겁다.


현실에 대한 당신의 시선과 주제 의식은 매우 날카롭고 비판적인데, 작업들은 매우 유머러스하다. 당신의 작업에서 ‘유머’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것은 일종의 ‘블랙’ 유머다. 누군가는 ‘건조한’ 또는 ‘이상한’ 유머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말들이 가진 유머 또한 나에게 익숙하고, 감사하다. 나나 나의 영웅들, 이를테면 영화감독인 웨스 엔더슨(Wes Anderson), 누가 만들든 ‘블랙’ 유머에서 있어서 ‘은밀함’은 매우 중요하다. 내 작업의 모든 측면, 특히 유머에 있어서 그것은 중요하다. 나는 지나친 부담감을 주면서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나의 관객들은 수준이 높다. 적어도 나는 그러길 바란다. 


르네 마르리트의 ‘데페이즈망’(dépaysement; 전치(轉置), 전위법 등의 뜻으로, 초현실주의에서는 어떤 물체를 본래 있던 곳에서 떼어내는 것을 가리킴)같은 기법이 눈에 띤다. 현실의 질서를 해체하기 위해 당신이 택한 이러한 다양한 표현 방식에 대해 설명해 달라.
나는 각 작업의 주제 의식을 가장 우선으로 하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또한 프로젝트마다 다른 접근 방법과 일변의 표현 기술을 시도하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다양한 표현 방법들을 축적해 왔고, 내 경력을 발전시키면서 항상 더 많은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왔다. 이러한 기술은 3D 콜라주와 아상블라주(assemblage), 포토몽타주, 조합(constructions) 등이 포함된다. 많은 시도가 성공했지만 실패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다양한 표현 방식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당신은 상업 사진도 활발하게 찍고 있다. 상업 사진 작업들도 당신의 순수 사진과 유사하게 초현실적인 상상력이 돋보였다. 당신에게 상업 사진과 순수 사진 작업의 경계가 궁금하다. 두 개의 작업 방식은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른가?
내가 다녔던 아트센터디자인대학(Art Center College of Design)은 상업 예술에 대해 특수화된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상업 사진작가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았다. 나는 상업 사진에서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상업적인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상업 사진이 내 자신과 내 작품을 설명하는 방법이지만, 나는 내 작품이 예술과 상업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 코멘트도 들었다. 그것은 나에게 매우 기쁜 칭찬이었다. 나에게는 내가 상업적으로 만든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 사이에 차이가 없다. 내 자신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일과 자유에 관한 것이 그것을 구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Hugh Kretschmer, High Diver ⓒHugh Kretschmer

소품이나 세트를 직접 제작한다고 들었다. 포토샵 대신 아날로그적 표현을 고수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사진 작업에서 즐거운 과정 중 하나는 나만의 소품과 세트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촬영하는 것만큼이나 재미있다, 어쩌면 훨씬 더 그럴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키트 모델을 만들곤 했고, 모든 종류의 부품, 버려진 물건 등을 사용해 나만의 창작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사진 작업을 시작했을 때, 사진 촬영도 유사한 방식으로 접근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도 콜라주, 조합, 포토몽타주를 사용했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오직 나만의 이미지를 만들고자 했고, 나만의 소품을 만드는 것도 그것의 일부분이었다. 그것들을 사용해 나만의 방법을 발견했고, 내 작업의 특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아날로그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나는 컴퓨터 화면 뒤에 무언가를 만드는 대신에 카메라 앞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데 시간을 보내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설명해 달라.
현재 물에 대한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것은 물에 관한 풍경이지만 사진에는 물이 없다. 그것은 환경적 이슈에 대한 나만의 작업 방식이다. 나는 그 프로젝트가 인간의 활동이 우리의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시각적으로 서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이 한 때 흘렀던 곳이나 가장 순수한 형태의 장소에서 물의 이미지를 불러낼 것이다. 지금은 고향인 캘리포니아에서 작업하고 있지만, 앞으로 계속해서 장소를 넓히고 싶다. 언젠가 이런 활동의 수익을 물 보존에 전념하는 비영리 단체에 기부하고 싶다. 아주 오랫동안 이런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다.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지금 현실에서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목격하고 싶다.

 
 
Hugh Kretschmer, Vanity ⓒHugh Kretschmer
 


글 오은지 기자
해당 기사는 2019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