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작가]사울 레이터(Saul Leiter), All about Saul Leiter
- 2019-11-06 14:27:11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사울 레이터 Saul Leiter
분명하지 않은 뿌연 화면, 인물들의 뒷모습, 부분만을 보여주는 비밀스런 화면은 토드 헤인즈의 영화 <캐롤>에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영화를 본 적이 있다면, 사울 레이터의 사진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캐롤>에 등장하는 자동차 차창, 상점의 쇼윈도, 두 주인공의 긴장된 관계를 나타내는 듯한 굴절된 뉴욕 거리는 사울 라이터의 작업에서 시작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따뜻하고 연약한 화면 속에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삼아 하나뿐인 딸을 두고 이혼 소송 중인 캐롤과 남자친구가 있지만 확신이 없던 테레즈의 동성애 관계를 조심스럽게 그렸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도 뉴욕을 배경으로 피사체가 가진 아름다운 모습을 연약하고 흐릿하게 드러냈다. 마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속삭이듯이.
화가를 꿈꾸던 사울 레이터는 뉴욕에서 추상표현주의 화가 리처드 푸세트 다트와 만났고 친분을 쌓게 됐다. 하지만 리처드 푸세트 다트는 사울 레이터에게 회화 대신 사진을 권유했다. 이것을 계기로 사울 레이터는 35mm 라이카 카메라로 흑백 사진을 촬영하며 사진가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사울 레이터는 1948년부터 컬러 슬라이드 필름을 이용한 작업을 진행했다. 빗방울로 덮인 유리창 뒤로 보이는 중년 남성, 가로등, 김이 오른 창문, 빗방울 반사, 비오는 거리의 노란 모자, 눈 속의 밝은 빨간색 우산…이들은 1940년대 뉴욕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피사체는 사울 레이터의 눈을 통과하며 그들이 가진 따스한 색과 차분한 분위기를 드러냈다. 사울 레이터는 세계 2차 대전과 같은 거대한 사건이 아닌 주변에 존재하는 것의 가치를 재발견했다. 이런 그에게 사진은 찰나의 순간에서 발생하는 특별한 파편이 아니라 “미완성의 작은 파편이자 기념품”이었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를 찍는다. 친숙한 장소에서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늘 세상 반대편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크림이 항상 표면에 떠오르지는 않는다. 예술의 역사는 간과되고 무시되고 부적절하고 평범한 것들이 찬사를 받는, 위대한 것들의 역사다.”
사진은 마치 아름다운 한 폭의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의 구도는 어딘가 빗나간듯하고 전반적으로 흐릿하다. 사울 레이터는 다중노출의 효과를 이용해서 불분명하고 또 불투명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음으로 비밀을 갖는 이미지는 서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이는 “나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확신하지 못할 때를 좋아한다. 우리가 왜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는지 모를 때, 갑자기 우리는 보기 시작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울 레이터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사울 레이터는 그의 이력에 비해 조용한 삶을 살았다. 그가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오브제들에 관심을 두듯이. 사울 레이터는 전시 기획자인 에드워드 슈타이켄에게 발탁돼 MoMA에서 전시
“인생에서는 무엇을 얻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내놓는가가 중요하다.”
“나는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에 휘말린 적이 전혀 없다. 내 작품이 인정받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아마 우리 아버지가 나의 일이라면 거의 모두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일 텐데-내 존재의 비밀스러운 곳에는 성공을 피하려는 욕구가 있었다.”
2009년 봄, 사울 레이터 조수인 마지트 어브는 사울 레이터의 방에 있던 여러 물건 밑에서 검정 포트폴리오를 발견했다. 그 안에 있던 것은 사울 레이터의 연인, 뮤즈 그리고 그의 동료 예술가들을 담은 흑백 사진 위에 색색의 아크릴 물감을 두텁게 칠해진 작업이었다. 마지트 이브는 “추상화지만 창을 통해 보이는 인상, 풍경, 폭발하는 우주의 모습 등이 과감하게 그려진 그림이었다. 사울이 그림을 하나씩 들어 올릴 때마다, 침실의 부드러운 빛이 종이 질감까지 비췄다. 빛이 닿을 때마다 물감의 색조가 바뀌고 붓 자국이 입체적으로 변했다”고 회상했다.
그의 회화 작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남다른 컬러 감각이다. 흑백 사진 위에는 노란색을 중심으로 부드러운 바다가 떠오르는 듯한 흰색이 많이 섞인 파랑, 밝은 분홍색 등의 다채로운 색채가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는 흑백 사진 위에 덧칠된 색채는 회화를 향한 사울 레이터의 열정과 감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진 속에 보이는 혼란스러운 색채 때문에 본래의 이미지를 모호하게 느껴진다. 작업에 집중하던 사울 레이터의 순수한 작업 욕구에서 탄생한 결과물은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결국, 성실한 예술가의 직업적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일은 불필요하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사울 레이터는 작업을 통해 숨겨진 것들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고, 그것을 솔직하게 말하고자 한 예술가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작품을 보며 거부할 수 없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진이던, 그림이던 상관없이 말이다.
“나는 색의 선구자라는 말을 듣는다. 나는 내가 선구자인지 몰랐지만, 선구자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저 쭉 계속하기만 하면 선구자가 된다!”
사울 레이터가 평생을 다뤄온 색채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싶은 이들은 프랑스와즈 독끼에르가 기획한 대구사진비엔날레의 특별전
이미지 제공 월북, Sylph Editions
해당 기사는 2018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