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런드그렌 | 신성한 사진의 약속

Impact, 2017 ⓒ마이클 런드그렌Michael Lundgren

마이클 런드그렌의 작품이 국내에서 첫선을 보였다. 사진 매체의 자율성을 토대로 자연풍경을 초월적으로 표상한 마이클 런드그렌의 사진은 미국 서부 사진의 궤를 함께하면서, 풍경에 내재한 고유의 영성에 몰입한다. 티모시 오설리반(Timothy O’Sullivan)처럼 지형을 탐사하는 사진가이기도 하지만 영적인 깨달음이 사진 작업에서 중요하게 차지하며 차원이 다른 경지를 일궜다. 그는 풍경을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풍경이 다가와 말을 걸 때까지 기다리는 것, 풍경이 스스로 현현할 수 있게 돕는 것이 그의 사진 미학에서 주요한 지점이다. 마이클 런드그렌의 3부작이라고 할 수 있는 〈Transformations〉, 〈Matter〉, 〈Geomancy〉를 보면 작가의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호기심이 얼마나 강하고 큰지 알 수 있다. 팔림프세스트(palimpsest)처럼 자연에 새겨진 무한한 텍스트를 사진으로 해독해 땅이 기억하는 오랜 시간의 약속을 드러내는 것, 작가에게 사진은 신성한 약속을 이행하는 일이었다.

런드그랜의 첫 번째 작업인 〈Transfigurations〉(2008)는 종교적이고 영적인 사진 세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다. 눈부신 흰색과 칠흑의 어둠, 희미하게 살아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 우주의 별처럼 광활한 대지를 수놓은 작은 점들, 은은하고 가벼운 어떤 것들에 집중하며 시원의 세계를 펼쳤다. 창세기의 한 장면일 것 같은 이 시리즈에서 작가의 사진 미학이 발아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작업인 〈Matter〉(2016)는 9년여에 걸쳐 완성한 작업이다. 명명할 수 없는 오브제들이 사진의 중심에 등장하며 삶과 죽음의 형상을 살피게 한다. 이 작업으로 작가는 사진의 시적인 잠재성을 높이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Toppled Core, 2019 ⓒ마이클 런드그렌Michael Lundgren / Thief of the Tree, 2017 ⓒ마이클 런드그렌Michael Lundgren


 Current, 2019 ⓒ마이클 런드그렌Michael Lundgren / Coral and Crystal on Desiccated Mud, 2018 ⓒ마이클 런드그렌Michael Lundgren
 

그리고 최근작인 〈Geomancy〉는 〈Transfigurations〉과 〈Matter〉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으로, 2016년에 ‘구겐하임 펠로우십’을 받아 시작하게 된다. 지오맨시(Geomancy)는 ‘흙점’, ‘풍수지리에 따른 건축’을 뜻하는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땅 위에 생긴 표시를 해석하거나 흙, 돌멩이, 모래를 던져 만들어진 형상을 해석하는 일종의 점술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아프리카와 유럽 전역에서 모든 사회 계층의 사람들에 의해 행해질 만큼 인기 있는 점술이었다고 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작가는 아리조나(Arizona)와 유타(Utah), 멕시코(Mexico) 사막으로 사진 촬영을 떠난다. 작가는 이 길을 ‘순례의 길’이라고 했는데, 깨달음의 빛을 찾는 행위가 작가에게는 곧 ‘사진 촬영’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고대 서아시아 사막에서 고독과 관상을 추구하던 교부의 수행에 대한 오마주를 드러내기 위해 ‘순례’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까. 작가는 순례 장소(pilgrimages site)로 사막을 택했고,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수사ㆍ영성 작가ㆍ사회정의의 수호자)의 『사막의 지혜The Wisdom of the Desert』에서 작업의 영감을 받는다. 참된 자아와 구원을 찾는 수행의 여정이 아포리즘으로 신비롭게 펼쳐지는 책이다.

런드그렌은 이 책에 등장한 4세기 사막의 교부처럼, 태고의 신화에 접속하기 위해 ‘흙점Geomancy’을 친 후 사진을 촬영하고 시간과 장소를 언급하지 않은 채 오직 형상만을 제시한다. 관객이 ‘흙점’의 점괘를 해석할 수 있도록 유도하려는 의도이다. 무한한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실제의 흔적이 〈Geomancy〉라고 할 수 있다.

런드그렌은 촬영 시 엄밀한 통제와 암실작업, 포토샵 등 다층적인 프로세스를 활용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보이지 않는 것과 설명할 수 없는 풍경을 사진으로 옮겨오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일 것이다. 그 결과 그의 사진은 조각적이고 상징적인 공명을 이룬다. 특히 바위 위로 떨어진 별자리 문양의 사진, 〈Impact〉는 신비롭고 냉엄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물질과 영적인 세계 사이의 관계를 가시화하는 타이틀, ‘geomancy 흙점’이 시사하듯 〈Current〉에서는 흐르는 것인지, 쏟아져 내리는 것인지 분간이 어려운 이미지를 만들며 근원을 알 수 없는 인덱스를 암벽 위에 새기고 있다.


 
Coral and Crystal on Desiccated Mud, 2018 ⓒ마이클 런드그렌Michael Lundgren
 

사막의 신호에 접속할 수 있는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만이 걷고 발견할 수 있는 길에서, 작가는 스스로 샤먼(shaman)이 되어 땅과 하늘을 잇는다. 시각의 해상도를 최고치로 끌어올려 우리에게 ‘황홀한 시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다. “풍경은 우리가 세상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범위를 넘어선, 항상 신비로운 곳으로 나를 초대했다. 나는 (신비로운) 풍경의 입구를 찾아가는 사진을 만들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샤먼인 사진가는 하늘의 뜻을 밝혀 땅의 이치를 표상하는 사람이다. 하늘, 땅, 사람의 명리(命理)를 연결하는데 사진은 절묘한 역할을 한다. 사진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도 하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의 꿈과 헤아릴 수 없는 우주(하늘)의 진리, 통제 불가능한 찰나의 빛을 담아내는 신비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성스러운 순례의 장소에서 하늘의 메시지를 받아 땅과 연결한 후 사진으로 보여준다. 보이는 세계뿐만 아니라 비가시적인 세계의 인덱스를 드러내는 전 과정이 사진 촬영 즉, 빛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행위였다.

마이클 런드그렌의 〈Geomancy〉가 열리는 전시장이 신비롭고 아름다웠던 까닭을 헤아려보니, 미지의 세계의 알 수 없는 형상들 때문이었다. 대자연의 로고스가 황홀하게 펼쳐지는 그의 사진은 풍경 사진의 힘을 일깨워준다. 좋은 풍경 사진은 하늘의 이치와 땅의 울림, 사람의 운명을 드러내고 밝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런드그렌의 사진을 보며 영성을 얻고, 푼크툼을 경험하고, 깊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신화적인 풍경에 닿은 사진의 빛 때문이리라. 〈Geomancy〉는 결국 하늘과 땅이 기억한 근원의 빛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사진이 어둡고 신비로운 것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빛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서일 것이다.

 

글 최연하 독립큐레이터·사진평론가
해당 기사는 2021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