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도시④ : 박찬민 "CITIES" 도시 공간에 대한 해석

대상을 알기 위해서 다가가 밀착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물러나 조망(眺望)하기도 한다. ‘조망’에는 세부가 아닌 전체로써 대상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의지가 있다. 박찬민은 높은 곳에 올라가 도시를 사실적으로 기록한 후 디지털 기술을 통해 사진 속 도시의 빌딩들을 최대한 단순화시킨다. 이로써 그의 “CITIES”(2018) 연작은 도시 구조의 전형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여러 도시 간 확대되는 유사성을 보여준다. 이는 구조를 통해 도시의 본질을 해석하려는 행위이자,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표상이기도 하다.
 
 

CTS 01_SEL, 2018, digital pigment print, 130×170cm Ⓒ박찬민
 
도시에 향한 사진적 탐색
도시에 대한 박찬민의 관심은 그의 첫 연작인 “Intimate City”(2008)에서 시작한다. 그는 “CITIES” 연작과 마찬가지로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높은 곳에 올라가 촬영했다. 수직적으로 높은 위치에서 서서, 보다 확장된 수평적 시선을 확보함으로써 넓은 도시를 한 장면에 담았다. 사진은 대개 도시를 채운 주거 공간으로서 ‘아파트’를 대상으로 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줄줄이 늘어선 아파트의 스카이 라인들이 이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의 능선과 중첩돼 한국의 독특한 지형 속 도시 풍경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지우기’의 행위 또한 “Intimate City” 연작에서부터 출발한다. 그의 ‘지우기’의 행위는 그가 사진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를 표현하는 중요한 기법이다. “Intimate City” 연작에서는 아파트들의 상호만 지움으로써, 상표를 통해 주거 공간의 값어치와 거주민의 계층이 상징화되는 것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또한 상호를 삭제하고 나면 어떠한 구분조차 없이 유사한 형태와 구조로 늘어선 아파트들로 가득 찬 도시를 확인할 수 있다.  

이어지는 “Untitled; The Level of Deception” (2013) 연작에서는 영국과 네덜란드를 포함한 유럽의 건축물을 촬영한 사진에서 그 배경을 지웠다. 배경이 사라진 건축물은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건축물의 용도까지 파악하기 어렵게 된다. 이는 건축물과 건축물이 들어선 환경 사이의 맥락을 지움으로써 실제 공간을 인식하는 체계를 성찰하는 동시에 사진 매체의 사실적 기록성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CITIES” 연작에서 건축물 외부의 사실적인 디테일들을 지우는 행위는 “BLOCKS”(2015)에서 앞서 구체화됐다. 영국에서 주거 공간으로서 높지 않은 아파트 등의 외부 즉 창과 발코니, 발코니에 널린 생활의 흔적들을 애초 없었던 것처럼 말끔하게 지워 평면화시켰다.   

이러한 “BLOCKS” 연작은 건물 내·외부 사이 통로를 막아버리고 건물의 외벽을 균일화함으로써 건물 자체를 하나의 큰 콘크리트 덩어리로 만들어버린다. 층층으로, 또 한 층에서 각 호수로 분리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개별적 삶이 하나로 뭉뚱그려지는 것. 이로부터 구조적으로 구획돼 차단되어(blocked) 있는 동시에 들여다보면 그렇다고 별반 차이를 확인할 수 없는 획일화된 현대인의 삶을 상상할 수 있다. 이러한 “BLOCKS” 연작의 주거 공간은 마침내 도시 공간으로 확대돼 “CITIES” 연작에서는 현대 도시의 구조와 그 속 도시민의 삶에 대한 고찰로 확장된다.


 


CTS 04_HKG, 2016, digital pigment print, 150×267cm Ⓒ박찬민



CTS 05_HKG, 2016, digital pigment print, 130×170cm Ⓒ박찬민



CTS 09_TKY, 2016, digital pigment print, 130×170cm Ⓒ박찬민

도시에 대한 사진적 디오라마
박찬민의 “CITIES” 연작에서 외부의 사실적 디테일이 말끔히 제거된 도시 빌딩들은 밋밋한 플라스틱 건축 모형처럼 도시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그의 사진은 마치 박물관에서 축소된 모형으로 특정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설치하는 디오라마(diorama)를 하이 앵글로 촬영해 놓은 듯하다. 그는 변화가 가장 빠른 아시아의 주요 도시들을 조망의 시점에서 사실적으로 촬영한 후 이전 연작들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기술을 통해 빌딩들의 외부를 ‘지워서’ 균일화시켰다.

특히 사진 속 빌딩의 외벽에 칠해진 페인트 색을 표본으로 추출해 그 색으로 빌딩의 각 외벽을 한 면, 한 면으로 밀어버린다. 이때 외벽에 있던 창문, 창문틀, 층층의 경계는 모두 사라져 빌딩의 평면화는 극대화된다. 이를 통해 마치 플라스틱 모형처럼 단순화되고 도식화된 도시의 빌딩들은 도시 구조를 한눈에 쉽게 살펴볼 수 있도록 기능한다.  

또 각 도시를 구분해낼 수 있는 지표, 가령 외벽에 내걸린 각 나라 언어로 기재된 커다란 광고나 간판 등을 지우면서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영어로 표기된 것들 일부를 남겨 도시 간 차별성을 최소화했다. 이는 결국 도시 간 유사성의 최대화로 이어져 급성장하고 있는 현대 도시의 본질과 구조를 통찰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은 수십 층으로 한없이 삐죽이 올라가는 높은 빌딩들의 형태와 좁은 면적에 수많은 빌딩이 빼곡히 박혀 있는 도시 구조로부터, 현대 사회가 자본을 중심으로 추구하는 ‘효율’과 ‘경제성’을 확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CITIES” 연작을 포함해 박찬민의 사진에서 또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현대 도시에 대한 통찰을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대상의 일부를 수정, 과장하여 보여주고 있지만 너무나 사실적으로 잘 재현된 도시 사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리얼리티를 잃지 않고 현실을 환기시킨다는 것이다. 익숙한 도시 풍경에서 마치 그림처럼 낯설게 평면화된 빌딩들이 보이지만,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나무와 인도, 도로 그리고 사진 전면과 후면에 위치한 산과 바다 등의 자연 풍경으로 인해 현실성을 끝까지 확보한다.


 
CTS 03_BSN, 2017, digital pigment print, 130×170cm Ⓒ박찬민
 

박찬민의 “CITIES” 연작은 도시 구조를 통해 현대 사회를 통찰하는 사진적 시선과 환기를 시도할 뿐 그에 대한 비판이나 비관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그것은 사진의 시점이 ‘조망’이라는 물리적인 ‘원(遠) 거리’를 유지하고, 그가 평면화하여 도식화한 빌딩들이 말끔하고 매끄러운 면과 단아한 색 등으로 정연하게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는 “구조를 건드리지 않고, 그 자체를 조금만 다르게 보도록 했을 때 오히려 본질적인 요소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은 스스로 사진으로써 도시 구조를 ‘해석’하면서 질문을 던질 뿐 ‘판단’은 하지 않으려는 사진적 태도이기도 하다.  

그의 말처럼 “CITIES” 연작은 현대 도시의 전형적인 아름다운 모습으로 볼 수도 있고, ‘효율’과 ‘경제성’으로 둘러싸인 플라스틱 모형과 같은 도시로도 볼 수 있으며, 나아가 그 구조 이면에 있는 현대 사회의 자본과 인간의 욕망으로도 볼 수 있다. 사진 속 평면화된 아기자기한 빌딩들과 도시를 가르는 유려한 곡선의 도로에 닿는 눈길, 혹은 이와 달리 빼곡히 들어선 콘크리트 빌딩 사이 애처롭게 뿌리 박혀 흔들리고 있는 나무에서 떼지 못하는 눈길 등 다른 관점의 다양한 시선이 한 장의 사진 안에 머물 수 있다는 것 또한 “CITIES” 연작이 가진 사진적인 힘이다.

 

글 정은정 기자
해당 기사는 2019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