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프리들랜더 | Decisive Framing 일상적인 날카로운 기록들

















“어떤 장면을 찍을 것인지 애써 찾을 필요가 없다. 카메라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있기에 주위를 둘러보면 수많은 장면이 펼쳐져 있다.“ -리 프리들랜더

소박하고 단출한 어느 여인숙으로 추정되는 방 한구석에 놓여있는 작은 아날로그 텔레비전 한 대. 힘 있는 오토바이가 정면을 향해 돌진하며 마치 화면을 뚫고 달려들 듯한 장면은 방안의 정적이고 건조한 분위기와는 대조되는 생동감을 담고 있다.(p.38) 산업화와 함께 한 집에 하나씩은 장만할 수 있었던 서민 가전제품 텔레비전은 1960년대의 미국에서 엔터테인먼트를 담당하는 단순한 전자기기 이상의 지위를 지녔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 작품은 리 프리들랜더가 흑백 텔레비전을 촬영한 시리즈 ‘더 리틀 스크린(The little screen)’ 중 하나이다. 텔레비전이 미국의 일상생활 속에 의기양양하게 자리 잡은 문화적 변화를 통하여 기존엔 미미하던 ‘대중문화’가 형성되고 이를 통해 텔레비전은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수단임을 넌지시 전한다.

1934년 미국출생의 사진작가 리 프리들랜더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급격한 성장기를 겪고 경제와 문화 모두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도 풍부해진 60~8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한 작가이다. 작가의 삶의 시기가 다이내믹 했던 만큼 꾸준히 활동하며 남긴 그의 사진은 미국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소개된다. 급변하는 시대였기에 이를 기록하고 촬영하는 사진작가는 많았다. 하지만 리 프리들랜더가 유독 미국 사회를 기록한 상징적인 작가로 여겨지는 이유는 아주 개인적이고 사적인 시각으로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고 이는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기 때문이다.

리 프리들랜더가 사진작가로서의 가장 잘 알려진 시작점은 재즈 음반 표지 사진이다. 작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재즈 공연을 보기 위하여 미국 전역을 여행하였고 이 과정에서 많은 뮤지션과의 교류를 형성할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사진에 취미가 있어 14세부터 찍기 시작하였고 1951년에는 로스앤젤레스 아트 센터 스쿨을 거쳐 뉴욕으로 옮겨와 1955년까지 에드워드 카민스키의 지도하에 사진을 공부하였다. 사진을 공부한 그의 배경과 재즈 뮤지션과 가까운 친분으로 마일즈 데이비드, 아레사 프렝클린, 존 콜트레인 등 뮤지션의 포트레이트를 촬영하고 앨범 커버로 소개되었다. 뉴욕에서 약 15년간 상업 사진작가로 자리 잡으며 하퍼스 바자나 홀리데이 같은 잡지의 사진을 촬영하는 프리랜서로 활동하였다. 상업 사진으로 시작하여 사진가 동료들과 교류가 생기고 점차 자신만의 작업방식을 열어가던 프리들랜더는 1960년대 눈에 띄는 발전을 보인다. 어쩌면 60년대의 가장 흥미로운 주제인 ‘미국 사회 풍경’이라는 테마 아래 상점 쇼윈도, 상업 광고, 텔레비전, 길거리의 자동차 등 매일 볼 수 있는 일상의 풍경을 시리즈로 촬영한다.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는 렌즈의 초점을 잘 맞추고 오브제를 돋보일 수 있도록 안정된 구도를 배우던 이들에게 흐트러진 구도와 빗겨나간 인물들의 모습은 마치 실수로 찍힌 장면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막 찍은 자연스러운 스냅샷 같은 장면들이 사실은 치밀한 작가의 계획이 뒷받침된 작가만의 생각이 담긴 기록사진 촬영법이었다. 이처럼 사회적 이슈나 현상이 사실적으로 기록됨과 동시에 아주 개인적인 시각으로 현상에 접근했다는 점이 리 프리들랜더를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사진의 역사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작가로 꼽는 이유이다.

미국 60년대 초반 등장한 팝아트의 영향은 그에게도 미쳤고 핵심요소인 재치와 풍자는 그의 작업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사진작가의 그림자가 최대한 담기지 않도록 노력한 과거의 사진 규칙을 그는 오히려 흥미로운 새로운 기법처럼 여겼으며 벽, 바닥, 쇼윈도 다양한 곳에 비친 작가 자신의 그림자만을 찍기도 하였다. 1958년 촬영한 ‘볼티모어, 메릴랜드(Baltimore, Maryland)’에서도 상점 안의 인물과 쇼윈도에 반사된 배경이 동시에 담겨있고 심지어 자세히 보면 사진 촬영을 하는 유리창에 비친 작가의 그림자가 함께 겹쳐져 있다.(p.39) 그는 사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애써 감추지 않았으며 동시에 어떠한 특정 오브제를 주인공처럼 여기지도 않았다. 바닥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찍기도 하고(작품명 Canyon de Chelly National Monument, Arizona, 1983)(p.33) 공중전화 부스의 한 면은 프레임 밖으로 잘려 나가 있고 그 안에서 전화하는 인물은 생생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다(작품명 New York City, New York, 2002)(p.34). 무엇을 의도하고 찍었는지 사진 속 누구를, 어느 풍경을 주요하게 보아야 하는지 전시를 감상하는 관객들은 한 번 더 눈여겨보게 될 것이다. 그는 프랑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이 ‘결정적인 순간(Decisive moment)’이라는 표현으로 사진을 설명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사진은 ‘결정적인 구성(decisive framing)’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의 전통적 방식인 하나의 오브제를 ‘주인공’으로 여기고 그 주인공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아닌 여러 오브제가 여러 층의 레이어로 겹쳐진 구상 방식으로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2021년 가을, 베를린에 위치한 사진 갤러리 C/O Berlin에서는 리 프리들렌더의 독일 데뷔 35주년을 기념하며 회고전을 연다. 1986년 봄, 같은 건물에서 그의 작업이 유럽에 소개되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90살을 바라보는 노작가를 기리는 전시가 동일한 공간에서 다른 세대들에게 소개된 바 있다. 풋풋하고 순수한 어린 시절의 작업부터 그가 촬영한 포트레이트가 담긴 재즈 뮤지션들의 앨범 재킷을 포함하여 상업적 목적 없이 처음 떠난 미국-유럽 로드트립을 담은 프로젝트, 그의 사진 인생에서 가장 주요한 대상인 아내와 자기 자신, 가족사진 등 지난 60년 동안 활동한 전체 작업 약 350점을 소개한다. 대부분 작업을 하나의 시리즈로 엮어 완성한 것이 특징으로 시리즈마다 사진집으로 출판되었으며 회고전을 통해 약 50권의 사진집을 만날 수 있다.

 

글 조희진
해당 기사는 2021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