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마카오 아트 마켓에서 만난 사진들 ②

기발하거나, 혹은 도발적이거나
한편 인사이트 섹션은 좀더 큐레이터의 기획이 반영된 전시를 선보인다. 일본 마호 쿠보타 갤러리(Maho Kubota Gallery)에서 선보인 일본 페미니스트 사진작가 유리에 나가시마(Yurie Nagashima)의 ‘셀프 포트레이트’, ‘가족’ 시리즈는 반라의 임산부나, 반삭으로 머리를 민 젊은 여성을 포함한 가족의 올누드 사진 등 도발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로 ‘가족 구성원에 대한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탈리아 임마누엘 레어 갤러리(Galerie Emanuel Layr)는 필립 타마쉬Philipp Timischl의 게이 포르노그라피 합성 작업과 트렌스 젠더 사진을 선보였는데, 이 갤러리는 사진과 설치가 독특한 형태로 결합한 구성으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한 눈에 모았다. 통상 몇 백 개의 갤러리가 참여하는 아트 페어에서 갤러리들은 입구를 최대한 개방하고 관람객들이 갤러리 공간 안으로 들어와 작품을 보도록 유도하는데, 이 갤러리는 오히려 부스의 전체입구를 대형 사진작업들을 세워놓아 감옥 창살처럼 막아놓고, 그 사진들 사이를 관람객이 비집고 들어와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다.

밖의 사진은 트렌스 젠더로 분한 작가의 셀프 포트레이트 작업이고, 안쪽 작업은 인터넷상 떠도는 게이 포르노 합성이미지(본래 게이 포르노 이미지가 아닌 사진을 네티즌들이 장난삼아 게이 포르노와 합성한 사진)인데, 게이 사진 위에 군번줄을 달아놓은 독특한 작업을 선보였다. 갤러리 측은 “트렌스 젠더의 짙은 화장도, 게이 포르노 모델의 근육질 몸매도 일종의 보호색이자 가면과 같은 것”이라며 “전시장 입구를 감옥처럼 막아놓은 것은 우리 자신을 방어하는 가면, 마스크가 동시에 우리를 가둔 감옥일 수도 있다는 점을 관객이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고 작품을 설명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This is No Fantasy’ 갤러리는 마이클 쿡(Michael Cook)의 〈Majority Rule〉 작업을 벽 한 면 전체를 활용해 선보였다. 버스나 거리, 법정 등 공공장소 안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데, 자세히 보면 이 사람들이 모두 한 명의 흑인 남성으로 동일한 인물이란 점을 알 수 있다. 작가는 공공장소를 가득 채운 흑인 남성의 사진에 〈Majority Rule 다수의 법〉이란 역설적 제목을 붙임으로써,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에서 마이너리티인 흑인의 현실을 환기시킨다. 일본의 타카이시 갤러리Taka Ishii Gallery도 전체 공간 중 한 섹션을 아예 분리시켜서 ‘Tokyo Story’라는 독립된 기획전을 선보였는데, 노부요시 아라키, 에이코 호소에, 다이도 모리야마, 유타카 타카나시, 류지 미야모토, 에드 반 데르 엘스켄 등의 흑백사진 작업을 ‘도쿄 풍경’이란 제목으로 전시했다.   


Nobuyoshi Araki, “GIRL'S STORY”, 1988/2007, Gelatin silver print Ⓒ Nobuyoshi Araki, Courtesy Taka Ishii Gallery



Ed van der Elsken, “Kabuki-cho, Tokyo”, 1984, Gelatin silver print Ⓒ Ed van der Elsken, Courtesy ANNET GELINK GALLERY



Ed van der Elsken, “Tokyo”, 1987, Gelatin silver print © Ed van der Elsken,
Courtesy ANNET GELINK GALLERY


홍콩 한 복판에서 마주친 광화문의 물대포
한편, 이번 홍콩 아트바젤에서는 한국 사진작가들의 작업도 출품됐다. 학고재 갤러리는 부스 전체를 뚝심 있게 한국 민중미술을 주제로 꾸렸는데, 지극히 자본중심적인 아트마켓의 한 복판에서 한국 민중미술 작품을 집중적으로 선보인 학고재 갤러리의 시도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부스 한 쪽 편에 가벽을 치고 독립된 공간을 만들어 노순택 작가의 〈가뭄〉 시리즈를 전시했는데, 홍콩 한 복판에서 광화문 시위 현장 사진을 마주하는 것은 예상치 못한 경험이었다. 광화문 광장이 한국 사회에서 가진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생각할 때, 그 광장의 시위현장 한 복판에서 찍은 사진이 해외 관객들에게 어떻게 읽혀지는지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쏜 물대포를 촬영한 이 시리즈는 역설적으로 제목이 〈가뭄〉이다. 학고재 갤러리 측은 “사진은 물줄기인데 제목이 〈가뭄〉이라, 해외 관객들도 이런 역설적인 지점에서 흥미를 느끼고, 작품 이면에 있는 맥락들에 대해 물어보고, 이해하려 한다”고 전했다. 이밖에도 홍콩 아트바젤에서는 한국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이정 작가의 사진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아트바젤 홍콩에서 노순택 ‘가뭄’ 시리즈를 별도의 개인전 형태로 전시한 학고재 갤러리 전시 전경 Ⓒ Okyro


아시아 예술 시장의 지각변화
이처럼 이번 홍콩 아트바젤에서 사진작업이 늘어난데 대한 의견은 다양했다. 제프 쿤스의 사진작업과 페인팅을 선보인 투 팜스Two Palms 갤러리 담당자는 “지금 전시장 안을 봐라. 모두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지 않나? 지금 우리에게 사진은 친근한 매체이고 사진작품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또 누구나 사진을 찍는 시대이기에, 거장의 사진은 나의 사진과 무엇이 다른지 더 궁금해하고, 예술로서의 사진에 대한 관심도 더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한편 또 다른 갤러리스트는 “사진은 컬렉터 초기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매체이다. 자본력을 갖춘 중국 컬렉터 층이 대게 도자기나 회화, 조각 등 다분히 전통적 인 매체의 작품 컬렉션에 충실했다면, 새로운 구매력을 갖춘 젊은 컬렉터 층은 사진이나 영상, 미디어 컬렉션에 상대적으로 더 관심을 보이면서 취향 역시 다양해졌다. 사진 작품이 늘어난 데는 아시아 컬렉트의 관심 변화를 갤러리 측이 반영한 것이다”고 귀띔했다. 반면 “스위스 아트바젤이 성장이 둔화되면서 미술담론을 제시하는 연례 미술행사로서의 측면이 강하다면, 아시아 마켓을 타겟으로 한 아트바젤 홍콩은 한창 성장세인 시장이다 보니, 갤러리들도 사진이나 영상, 미디어 등에서 좀더 공격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Michael Cook, Majority Rule, Bridge, 2014, Inkjet print, Courtesy the artist and THIS IS NO FANTASY dianne tanzer + nicola stein


ⒸMichael Cook, Majority Rule, Bus, 2014, Inkjet print, Courtesy the artist and THIS IS NO FANTASY dianne tanzer + nicola stein


ⒸMichael Cook, Majority Rule, Parliament, 2014, Inkjet print, Courtesy the artist and THIS IS NO FANTASY dianne tanzer + nicola stein
 

폴리 옥션, 홍콩 아트센트럴도 동시 열려
이런 아시아 예술시장의 변동은 아트바젤 홍콩과 근접한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중국 폴리 옥션(Poly Auction)에서도 눈에 띄었다. 폴리 옥션은 소더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 옥션이지만, 주로 중국 고미술품과 도자기, 중국 현대미술작가들의 작품이 거래되는 등 중국 컬렉터의 취향을 강하게 반영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런데 이번 폴리 옥션에서는 모던 앤 컨템포러리 전시의 하나로 ‘중국 현대사진’(Chines contemporary Photography) 섹션을 별도로 꾸려 눈길을 끌었다. 이 전시에는 롱롱RongRong이나 창 진Chang Xin, 잉 시우젠Yin Xiuzhen, 왕 진송Wang Jinsong 등 중국현대작가들의 퍼포먼스 사진작업을 선보였다. 폴리 옥션의 제이미 유(Jamie Yu) 중국 아시안 모던·현대 예술부문 부장은 “중국 현대사진의 섹션을 별도로 마련한 것은 새로운 시도로, 이에 대한 수요를 살펴볼 때이다”고 전했다. 중국은 천안문 사태 이후 대중 앞에서의 퍼포먼스 예술이 정치적 이유로 금기시 된 후, 이렇게 사진으로 기록된 퍼포먼스 사진들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기에, 이를 별도의 섹션으로 보여주려 했다는 것.

한편 아트바젤 홍콩의 위성행사로, 하버 프론트에서 열렸던 아트센트럴 홍콩(Art central Hongkong)에서도 이런 아시안 컬렉터를 겨냥한 작업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진작가인 어윈 올라프는 상하이 Danysz 갤러리의 개인전을 앞두고 신작인 상하이 시리즈를 공개했고, 홍콩 블루 로투스 갤러리Blue Lotus Gallery는 홍콩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윙 샤야(Wing Shya)의 ‘Sweet Sorrow’(달콤한 비애) 시리즈를 선보였다. 아트바젤에 비해 아시안 지역 갤러리의 참여가 높았던 아트센트럴에는 국내 갤러리도 대거 참여했으며, 갤러리 현대에서는 이명호 작가의 ‘나무’ 시리즈를, JJ 중정갤러리에서는 박찬우 작가의 ‘기억흔적’ 시리즈 등을 전시했다. 아트센트럴 홍콩은 컨벤션 센터 건물 안에 있는 아트바젤과 달리, 항구에 인접한 실외에 가설된 공간으로, 탁 트인 층고가 인상적이었다. 아트센트럴 홍콩의 잉 쿽(Ying Kwok) 큐레이터는 “전시 공간의 층고가 높다보니 좀 더 스펙터클하고 규모가 큰 설치작업을 전시할 수 있어 관람객들이 특히 좋아 한다”고 전했다.

홍콩 아트바젤 기간 동안, 곳곳에서 거장들과 새로운 작가들의 작업을 함께 발견할 수 있었다.  한편으론 사진이 동시대 미술과 어떻게 궤를 같이하며, 또 어떤 맥락에서 컬렉터와 조우하는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아시아 예술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며 주목받고 있고, 사진 컬렉터 층도 두터워지고 수요도 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국제예술시장의 첨단에서, 한국 사진작가들의 작업이 세계적 거장들의 작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현장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수확이다.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Art Basel Hongkong, Art Central Hongkong, Poly Auction, HK Photobook Fair, Photo Macau
해당 기사는 2018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