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사진미술관 해외교류전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



지도는 지구 표면의 일부 또는 전체의 상태를 약속된 기호나 문자를 사용하여 일정 비율로 줄여 평면상에 나타낸 것이다. 영토는 한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땅의 영역을 말한다. 지도상에 표시되는 영토가 실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영토와 삶에는 현실과 인식의 차이가 있다. MYOP 소속 6명의 사진가들은 실제 영토의 현실을 기록함과 동시에 이를 주관적인 방식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현실과 인식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세계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실재하는 세상과 우리가 보는 세상과의 차이를 말이다. 질문을 던지는 것은 그들만의 저항의 표현이며, 그 저항을 표방하는 방식은 현실에 기반한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에드 알콕 Ed Alcock

“지난 겨울 나는 브르타뉴에 있는 모르비앙의 길들을 여행했다. 동물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사람들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과 꿈을 탐사하면서 인간과 야수 사이의 사라져가는 연결고리를 찾아보고자 했다. 이것은 그들이 직접 손으로 쓴 내밀한 이야기들이 첨부된, 그들의 초상화이다.”  - 에드 알콕 작가노트 中

 


기욤 비네 Guillaume Binet

“우리는 일종의 지형학적 감각을 갖고 여행을 시작했다. 즉 어떤 지리적 환경이 위대한 작가들을 탄생시키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출발했던 것이다. 우리는 장소가 주는 느낌을 찾는 것부터 시작했다. 특정한 땅이 어떻게 문학에 스며드는지 알고 싶었다.”  - 기욤 비네 작가노트 中

 

피에르 이브르 Pierre Hybre

“2년 동안 나는 스페인 접경 지역인 피레네산맥을 여행했다. 우리는 막다른 길에서 영토의 끝을 나타내는 산봉우리들을 본다. 이 숨겨진 계곡들과 숲들과 가혹한 환경은 또 다른 조망을 찾는 많은 사람들을 수십 년 동안 매료시켜 왔다.”  - 피에르 이브르 작가노트 中

 

알랭 켈레 Alain Keler

“오래 전 발칸반도에는 모범이 되고자 했던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두 번 태어났다. 처음에는 왕국으로, 다음에는 공화국으로. 아버지의 사망 이후 자식들은 땅을 나누기를 원했으나 불가능했다. 혼란이 시작되었다. 어둠이 빛을 대체했다.”  - 알랭 켈레 작가노트 中

 

줄리앙 페브렐 Julien Pebrel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흑해가 뒤로 물러나면서 건물 주변으로 텅 빈 땅이 드러났다. 그러는 동안 유럽의 다뉴브 위원회가 떠났고 그와 함께 많은 터키, 그리스, 독일, 프랑스, 러시아, 리포반과 우크라이나 코사크 상인들도 떠났다. 10개의 영사관들도 깃발을 내렸다.”  - 줄리앙 페브렐 작가노트 中

 

스테판 라구트 Stéphane Lagoutte

“오랜 별거 후 다시 만난 부부처럼, 오늘날의 사진들이 어제의 사진들 위에 놓여 있다. 1975-2015의 베이루트. 중첩된 시간 속에서 두 외로운 영혼이 만나서 포옹한다. 스테판 라구트는 현재가 확장되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창조한다.”  - 사무엘 두(Samuel Doux)


 

고은사진미술관 해외교류전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La Carte N’est Pas Le Territoire)》

1월 8일부터 4월 17일까지 고은사진미술관에서는 프랑스 사진 에이전시 MYOP 소속 사진가들이 참여하는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 전이 열리고 있다. MYOP는 프랑스 다큐멘터리 사진의 오늘을 보여주는 사진 그룹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6명의 사진가; 에드 알콕(Ed Alcock), 기욤 비네(Guillaume Binet), 피에르 이브르(Pierre Hybre), 알랭 켈레(Alain Keler), 줄리앙 페브렐(Julien Pebrel), 그리고 스테판 라구트(Stéphane Lagoutte)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The Map is not the Territory)”는 폴란드 태생 미국의 논리학자 알프레드 코르집스키(Alfred Korzybski, 1879-1950)가 1930년대 초에 현실과 인식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쓴 표현에서 가져왔다. 지도는 영토를 동일한 축적으로 표시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지도를 영토와 쉽게 혼동한다. 즉 현실의 모형을 현실 자체와 혼동한다는 것이다. 지도와 영토의 관계와 같이, 우리는 현실로 인식되는 것과 현실 그 자체, 다시 말해 주관적인 마음의 지도로 보는 세상과 실재의 세상이 다름을 안다. MYOP의 사진가들은 이러한 간극을 어떻게 볼 것이며, 인정하고 줄이기 위해서 사진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또한 그들은 현실과 현실에서 파생된 인식의 차이를 기본 모티브로 삼고 각자의 방식으로 실재 세상과 개인이 인식하는 세상의 차이를 규명하고자 한다.

 



6인 6색의 주관적 기록들
이번 전시는 6명의 작가들이 주관적으로 바라보는 현실에 대한 기록과 함께 ‘실재하는 세상’과 ‘우리가 보는 세상’의 차이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질문을 던지는 것은 저항의 표현이며, 그 저항을 표방하는 방식이 현실에 기반한 다큐멘터리인 것이다. 그들에게 저항은 무조건적 반대나 비판이 아니다. 잘못된 현실에 대한 그들의 발언으로 일반적인 관습에 대해 저항함으로써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에드 알콕(Ed Alcock)의 <개와 늑대 사이(ENTRE CHIEN ET LOUP)> 시리즈는 황혼 무렵의 이야기를 선사하고 있다. 하루에 두 번 빛과 어둠이 서로 바뀌는 해뜰녘과 해질녘, 개와 늑대의 실루엣을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을 ‘개와 늑대 사이(entre chien et loup)’라고 한다.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또한 동물들도 사람이 이로운 사람인지, 해를 끼치는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시간대이다. 이 시간대에 작가는 “사람과 동물 중에 누가 짐승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인간과 짐승 사이에 쉬이 사라져버리는 관계를 탐색한다.
이 사진 시리즈는 프랑스 브르타뉴(Brittany) 지방의 모르비앙(Morbihan) 1,800km를 여행하며 포트레이트와 다큐멘터리 풍경을 촬영하였다. 인간과 동물 사이의 덧없는 관계를 탐구하기 위해 다큐멘터리와 픽션 사이를 오가며 스토리를 만들어 갔다. 박제사, 어부, 소방관, 동물보호연맹 자원봉사자, 수의사, 화장터 관리자, 관리인 등 동물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그 지역 사람들을 만나서 촬영을 하였다. 그들의 유년 시절 기억과 꿈을 찾아보는 탐험을 통해 인간과 야수 사이의 이중적 연결을 찾고 있다.

기욤 비네(Guillaume Binet)의 <작가들의 미국(L’AMÉRIQUE DES ÉCRIVAINS)> 은 문학 속의 현실과 상상이 가득한 가족 여행이다. 그는 아내인 소설가 폴린 게나(Pauline Guéna), 4명의 자녀와 함께 오래된 캠퍼 밴을 타고 캐나다와 미국을 여행하며 이 시리즈를 완성했다. 여행 동안 미국의 유명 작가 26명을 만났고, 그들의 포트레이트를 촬영하였다. 그리고 유명 작가가 인기 있는 작품을 쓰게 된 장소의 느낌을 찾으려 노력했고, 특정한 땅이 어떻게 문학에 스며드는지 보여주고 있다. 캠퍼 밴의 핸들 너머 길에서 일어나는 것을 촬영하여 이야기를 담고 있는 한 편의 영화와 같은 서사가 흐르고 있다. 서사 속에는 개인적 사색을 통해 재탄생한 책 속의 장면들이 시각적으로 변모하여 재현되고 있다.
위대한 문학을 탄생시킨 작가들의 지형학적 환경을 발견하기 위한 가족 여행은 또 하나의 아주 사적이고 친밀한 다큐멘터리를 탄생시켰다. 이 시리즈 동안 잡담이 끝없이 이어지며 즐거워하는 모습,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 그리고 박물관에서 무엇인가를 관람하는 모습 등 그와 가족 간의 유대와 감정들이 순수 예술적 미학으로 보여지고 있다.

피에르 이브르(Pierre Hybre)의 <야생의 삶(LA VIE SAUVAGE)> 시리즈는 자연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를 보여준다. 프랑스에서 인구가 가장 적고 가난한 주인 아리에주(Ariege)의 피레네(Pyrenees)산맥에서 아직 현대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에서 자연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풍경을 촬영했다. 인티(Inti)는 가장 친한 친구 늑대 룰라(Loula)와 함께 살고 있으며, 데릭(Derek)은 예술가이자 음악가인 쇼피(Sophie)와 예술가의 삶을 살고 있다. 매갤리(Magalie)와 올리비에(Olivier)가 두 자녀들과 지내는 숲속의 원뿔형 천막,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낡고 정겨운 집 등 각자의 삶을 영위하는 곳들이 자연의 풍광을 독특하게 만든다.
현대인은 물질이 주는 삶과 편안함에 안주하여 그것에서 벗어난 삶을 두려워한다. 물질적인 삶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고, 행복을 찾기 위해 물질적인 소비를 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곳사람들은 자연이 삶의 중심이며 그들에게 새로운 행복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작가는 현대의 생활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각자의 삶의 방식으로 자유로움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삶을 프레임에 담아내고 있다.

알랭 켈레(Alain Keler)의 <모텔 파라디소(MOTEL PARADISO)> 시리즈는 전쟁과 내전 이후의 발칸반도에서 사라져 버린 나라와 그 피폐한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유럽의 남동부 지역인 발칸반도에서는 전쟁, 내전, 학살, 암살, 정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어둠이 빛을 대체하고, 황폐함과 고통이 사람들을 덮쳤다. 그는 이렇게 망가진 발칸반도의 황폐한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다. 발칸반도 여행의 시작과 끝, 만나는 곳마다 삶의 희망과 온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거친 흑백 사진은 그곳이 얼마나 피폐한 곳으로 변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미 전쟁이 끝난 곳인데도 어두컴컴한 질감과 흔들리는 화면으로 마치 지금 내전이 일어나는 듯한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차를 타고 가거나 걸어가면서 찍은 순간적 스냅 샷을 통해 드러나는 장면들은 비참한 현장감을 더하고 있다. 사람들에게서는 황폐함과 고통, 혹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이 느껴지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말과 개들, 부서진 건물의 잔해 속에 버려진 차와 옛 영광을 위해 훈련하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들도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평화와 독립을 외치고 있지만 왠지 공허한 외침으로 보이는 것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줄리앙 페브렐(Julien Pebrel)의 <술리나, 인술라(SULINA, INSULA)> 시리즈는 화려했던 다뉴브강 어귀의 영광은 사라지고 도시의 오래된 등대만을 상징적으로 외로이 보여 주고 있다. 루마니아의 항구 도시 술리나는 유럽의 동쪽 관문으로 다뉴브강과 흑해가 합류하는 지점의 도시이다. 이곳은 루마니아 영토였지만, 다뉴브 유럽위원회가 80여 년을 통제하던 아주 번영한 곳이었다. 루마니아 전역의 생활이 순탄치는 않았지만, 이곳은 어업, 조선소, 수산공장, 항만 등이 자리 잡아 공산주의 시대에도 번영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혁명 이후 다뉴브 연합회는 떠나고 루마니아가 권리를 찾으면서 대부분의 산업이 문을 닫고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화려했던 영광은 사라지고 땅은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가 쇠락하고 한갓진 어촌마을이 된 술리나의 모습을 담고 있다. 더 이상 화물선은 다니지 않으며, 건물 주변으로 텅 빈 땅만 남아 있다. 아파트는 허물어질 듯 위태롭고, 들판에 덩그러니 얹혀 부식되고 있는 폐선, 6마리밖에 잡지 못하는 어선, 아버지 집에 살면서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청년의 낙담한 모습, 좌절하며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 힘든 삶에 고통스러워하는 전직 군인의 모습, 누추한 방에서 홀로 있는 어부의 모습만이 남아 있다.

스테판 라구트(Stéphane Lagoutte)의 <베이루트 75-15(BEIRUT 75-15)> 시리즈에서는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기억을 만나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는 2012년부터 내전 이후에 그 전쟁의 상처가 가득한 베이루트 시내를 촬영하였다. 그 사진들 속 건물과 집들은 금이 가고 허물어져 있고, 레스토랑과 상점들은 불에 탄 형태만 남아 있다. 거리는 부서진 차와 포격의 잔해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는 폭파된 한 호텔에서 1975년 내전 이전에 누군가가 촬영한 아카이브 이미지를 발견한다. 이 이미지들은 내전 이전 사람들의 열정적이고 행복한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는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있는 그대로 스캔하여 디지털화했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에 그가 2012년부터 촬영한 사진들을 중첩시켜 ‘시대의 만남’을 재현하였다. 이렇게 연결이 되어 시대가 얽혀 있다는 것은 오늘날의 베이루트가 레바논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또 그것이 바로 그들의 역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6인의 사진작가들이 각자의 주제를 담은 사진들의 의미를 곰곰이 새기다보면 MYOP라는 사진가 집단이 얼마나 세상에 대한 질문에 진심인지, 그리고 파격적인 접근방식을 시도하고 있는 그들이 얼마나 새롭고 진취적인가를 알 수 있다. 각 사진가들이 대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주관적인 관념을 저널리즘, 포토 에세이, 다큐멘터리 스타일, 파인아트, 개념미술 등으로 목적에 최적화된 표현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적인 면에 내용적인 면의 깊이가 더해져 전하고자하는 하는 이야기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글 이진영 부산디지털대학교 영상크리에이터학과 교수
이미지 제공 고은사진미술관

해당 기사는 2022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