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해외작가 ⦁ ⦁ Thomas Ruff | 사진의 개념을 확장하는 예술가

 




토마스 루프의 개인전 《d.o.pe.》(3.31~5.27)이 취리히의 Mai 36 갤러리에 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에는 카메라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만든 새로운 형식의 최신작 d.o.pe.(p.41~43) 시리즈를 만나볼 수 있었다. 전시 오프닝 이후에 필자는 뒤셀도르프의 작업실에서 토마스 루프를 다시 만났다. 12 년 전에 특별히 고안하고 심혈을 기울여 지은 그의 작업실은 웬만한 현대 미술관보다 규모가 크고 세련된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독일 현대 사진의 거장 토마스 루프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자신의 작업에 대해 말을 이었다.

 






 
작업량이 무척 많다. 지금까지 총 32개의 프로젝트를 제작했고 프로젝트 마다 최소 12점, 많게는 100점이 넘는 사진들이 포함되어 있다. 많은 작업 량을 소화하기 위해 평소 작업에 할애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작가의 일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고 싶다.
주로 두세 개의 프로젝트를 병행해서 진행한다. 보통 아침 식사를 하고 10 시경에 작업실에 나와서 일을 시작하는데 처음 한 시간 정도는 주로 서신 에 답을 하거나 의사소통에 관련된 일을 한다. 그 이후에 작업을 시작하는 데 그날그날의 컨디션이나 기분에 따라 작업의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저녁 식사를 할 때까지 대체로 작업에 필요한 정보를 모으거나 작업을 진 행한다. 식사는 주로 집에서 하고 식사 후에는 작업실에서 하던 일을 이어 서 하는 경우가 많다. 주말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항상 작업실에 나와서 작업을 한다. (그의 작업실은 자택 바로 앞에 있고 그 거리는 불과 300미 터밖에 되지 않는다)


신작 의 작업 방식에 대해 알고 싶다. 카메라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미지를 창조했는가?
프랙탈 소프트웨어 프로그램과 포토샵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만들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기하학적 구조의 이미지의 시각적 외관에 관심이 많았 다. 수학자 Benoît Mandelbrot는 1975년에 컴퓨터로 만들어진 기하학적 구 조의 패턴에 “프랙탈”이라는 용어를 도입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보이고 높은 수준의 자기 유사성을 가지고 있어 패턴의 한 부분을 확대하면 동일 한 구조를 반복해서 볼 수 있는 물체, 구조 또는 패턴을 의미한다. 컴퓨터로 이러한 기하학적 개체를 만들려는 첫 번째 시도는 2000년대 당시 사용 가 능한 프로그램이 원하는 정밀도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그런 데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사용함으로써 프랙탈의 생산에 다시 도전할 수 있 었다. 나는 프랙탈 세계에 몰입할 때 나타나는 수학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가시화하는데 매료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완전히 인위적으로 이미지가 제작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무척 흥미로움을 느꼈다. Mandelbrot 세트에서 발췌한 다양한 이미지를 서로 중첩한 후 완성된 이미 지를 벨루어 카펫에 인쇄하여 공간적 깊이를 가지면서 부드럽고 자연스러 운 표면을 지닌 작품을 만들어 태피스트리(tapestry)로 벽에 걸었다.

 

 

 

 
전혀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도프 (d.o.pe.)>시리즈인데, 이 작품들은 사진인가?
이 작품들은 이미지이다. 전통적인 방식의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고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상관없다.


작업의 아이디어, 모티브를 어디서 얻는지, 그리고 작업을 왜 카펫에 프린트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주로 나의 일상에서 모티브를 얻는다.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 는 과정에서 유난히 관심이 가는 소재를 만나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 을 만나면 시간을 두고 그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번 신작도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프랙탈 이미지에 관심이 생겨 그것에 대한 조사를 하기 시 작했고 그 과정에서 프랙탈 이미지를 생성하는 앱을 다운로드 받게 되었 다. 이 앱으로 다운로드 받은 이미지들을 포토샵으로 작업하여 만든 이미 지를 카펫 위에 프린트하는 방식으로 제작한 작업이 이다. 처음 에 도프 작업을 완성했을 때는 늘 하던 대로 작품을 사진 인화지에 프린 트한 후, 디아섹으로 액자를 제작하려고 했다. 그렇게 작품을 만들어 보니 생각만큼 만족스럽지 않았다. 문득 인화지가 아닌 다른 것에 인화해야 하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캔버스 위에 인화를 해보기도 하고 헝겊 위에 인화 를 해보기도 했는데 전부 만족스럽지 않았다. 여러 가지 다양한 인화 방식 을 검색하던 중 벨기에에 있는 한 회사가 카펫 위에 사진을 프린트하는 방 식으로 생산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작품을 보내 카펫 에 이미지의 프린트 테스트를 했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그렇게 해서 <도 프(d.o.pe.)> 시리즈가 완성되었다.
 
 

 
 

 
작업을 할 때 컨셉을 먼저 정하고 사진을 찍는지, 아니면 이미지를 먼저 제작하다가 컨셉을 발견하는가?
작업마다 다르다. <도프(d.o.pe.)> 작업은 어렸을 때 내가 가지고 있던 판타 지에 관한 작업이다. 유년기에 유난히 환상이 많았고 많은 음악을 들었다. 그 음악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내가 꿈꾸던 환상을 시각화한 작업이 <도 프(d.o.pe.)> 이다. 오랫동안 꼭 다뤄보고 싶은 작업 주제였다.


 
작품의 수가 많다 보니 작업 과정도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제작한다고 했는데, <도프> 작업과 함께 작업한 프로젝트는 어떤 프로젝트인가?
(p.46, 47)라는 시리즈이다. 나는 프로파간다 사진을 수년 동안 다루어 왔다. 나는 프로파간다 사진을 수년 동안 다루어 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1950년에서 1970년 사이 소련과 중국의 이상화 된 세계를 보여주는 선전 사진에 관심 이 많았다. 중국에서 출판된 마오쩌둥에 관한 책들과 중국 공산당이 발행 하고 전 세계에 배포하는 잡지인 『La Chine』에서 이미지를 스캔하고 가능 한 최고의 해상도로 저장했다. 그리고 1900년도에 제작된, 러시아에서 제 작된, 중국 공산당에 관한 오래된 필름 네거티브를 사서 그 이미지들을 스 캔했다. 그렇게 아날로그 이미지를 디지털 방식으로 바꾼 후에 이미지의 픽셀들을 큰 픽셀 구조로 변환했다. 이미지 구조가 다른 이 새로운 이미지 를 원본 스캔 파일 위에 두 번 또는 세 번씩 레이어로 중복 배치하여 아날로그의 인쇄화면과 픽셀 이미지의 디지털 구조를 동시에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즉 20세기의 프로파간다 이미지를 21세기의 시각적 언어로 옮겨 보고자 했다.


 


 
작업의 픽셀이 크게 보인다는 점에서 프로젝트 (p.48)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프로젝트는 어떤 작업인지도 듣고 싶다.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배포되는 이미지, 그리고 엽서나 책자에 나온 사 진들을 스캔한 이미지들이 시리즈의 시각적 출발점이다. 나는 JPEG 형식 기반이 되는 일반적인 디지털 이미지의 기하학적 구조에 관심이 많았 다. JPEG 이미지는 디지털 이미지의 표준 압축 형식으로, 저장 프로세스 중에 픽셀 구조가 8 x 8 픽셀의 이미지 사각형으로 분할 되고 단순화된다. 이렇게 감소한 이미지 정보를 의도적으로 다시 확대하면 픽셀 그리드에서 사각형의 블록 형식이 나타난다. 이것을 우리는 이미지가 깨졌다고 이야기 하고 이미지 제작 과정의 실수로 치부하지만, 나에게는 이미지에 대한 관람객의 인식을 향상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장치였다. 픽셀 구조를 강조하고 전체 이미지를 동시에 확대하면 기하학적 색상과 픽셀의 패턴을 볼 수 있 지만, 더 먼 거리에서 작품을 보면 여전히 사진 이미지가 되는, 새로운 개 념의 이미지를 만들고자 했다.


 
스승인 베른드와 힐라 베허 (Bernd and Hilla Becher)교수님들은 교육자 로서 어떤 분들인가? 베른드와 힐러 베허 교수님들의 지도는 당신의 사진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그분들과의 시간은 정말 좋았다. 내가 공부하던 당시에 그분들은 작가로 서 왕성하게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여서 무척 바쁘셨다. 학생들에게 큰 시 간을 내주지 못하셨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그 혜택으로 많은 것을 자유롭 게 시도해 볼 수 있었다. 무엇을 찍어라, 해보라 하는 명령은 전혀 없었고 작업은 각자 알아서 해야 했다. 그 당시 나와 교수님은 사진에 관해 같은 도그마를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사진이 실재를 묘사하고 재현한다 고 굳게 믿었고 그것에 관한 작업을 했다. 대형 카메라로 심도를 높여 피사 체를 그대로 정확하게 재현하는 작업을 했고, 선명하고 중립적이며 베허 스쿨이라고 불리는 그 유형학적 사진을 했었다. 그 후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나는 생각이 조금 변했다. 유형학적 사진은 그저 사진의 한 종류일 뿐이고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형식과 종류의 사진이 있다. 물론 베허 교수님들의 말씀대로 사진은 실재를 재현하고 나타낸다. 하지만 《초 상사진》(p.49) 작업을 할 때 나는 모델의 모든 것을 컨트롤했다. 어떻게 앉 을지, 어떤 옷을 입을지, 고개를 어느 정도 올릴지 시선은 어디를 향할지 등등 많은 것들을 지시하고 통제하여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사진이 나올 수 있도록 주문했다. 즉, 그 사진들은 전부 준비되고 정리, 배열된 사진들 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사진이 있는 그대로를 재현한다는 것에 의문을 품 기 시작했다. 내 초상 작업이 사실은 모두 내가 연출한 사진들이기 때문이 다. 단순히 사진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확고해지자, 내가 가지고 있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 가 강해졌다. 그 욕구를 따라 초상사진 이후에는 개념 위주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포토그램(Fotogramm, 2012)>시리즈(p.44, 45)를 유럽의 여러 전시회에 서 굉장히 인상깊게 봤다. <포토그램>시리즈의 컨셉과 특히 작업 방식에 대해서 듣고 싶다.
나는 컴퓨터로 포토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포 토그램은 미술사에서 잘 알려져 있듯이 20세기 초에 만 레이(Man Ray), 모홀리 나기(Moholy Nagy), 크리스찬 샤드(Christian Schad)와 같은 예술 가들이 실험한 새로운 사진의 형식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카메라 없이 흑 백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그들은 빛에 민감한 종이에 안경이나 공과 같은 물체를 배열하고 노출시켰다. 나의 아이디어는 높은 해상도로 큰 이미지를 카메라가 아닌 컴퓨터로 찍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광원에서 물 체, 종이에 이르기까지 컴퓨터에서 포토그램을 재현하는 게 가능하지만, 그러한 사진을 수학적으로 계산하여 만들기까지 이미지 당 1년이 걸린다 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독일의 율리히(Jülich)연구센터에 있 는 슈퍼컴퓨터에서 포토그램의 이미지 계산을 조금 더 빨리할 수 있는지 를 질문했다. 그리고 그것은 슈퍼 컴퓨터로는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포 토그램을 디지털 시대로 전환한 프로젝트가 <포토그램(Fotogramm)>이다. 과거에 손으로 배열했던 모든 것을 나는 컴퓨터로 다시 만들었다. 율리히 연구원들의 도움으로 나는 그곳에서 수개월 동안 수십 장의 사진을 계산 할 수 있었다. 포토그램의 매력은 사물이 아니라 사진이고, 사진에서 보이 는 것도 그림자 뿐이다. 그것은 플라톤의 동굴과 약간 비슷하다. 나의 <포 토그램(Fotogramm)>시리즈에서도 물체가 어떤 것인지 추측만 할 수 있다.


그 작품들을 사진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형식의 포토그램이고 사진의 한 형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난히 쿤스트 아카데미 뒤셀도르프에서 공부한 작가 중에 유명한 작가 들이 많다. 한 대학에서 이렇게 유명한 작가들이 여러 명 나왔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런 일이 모든 대학에서 생기지는 않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졌는지 알고 싶다.
그것은 정말로 행운이었다. 현대미술에는 소위 유행이라는 것이 있다. 내가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작업하던 당시에는 사진이 과연 예술이 될 수 있을지에 관한 담론이 막 형성되던 시기였다.

사실 1980년대에도 사진이 과연 예술이 될 수 있을까에 관한 의문과 회의가 미술계에 있었다. 작업방식이 수작업이 아니라 카메라라는 기계, 기 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 당시 현대 미술의 주 흐름에 사진은 거의 없었다.

내가 대형 초상사진을 전시하던 때에 사진을 예술로 보지 않던 보수 적인 미술 컬렉터들도 내 초상사진들을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의도적으로 크고, 정확한 초상 사진들은 회화에서는 찾을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놀 라움을 관객들에게 제시하며 사진을 무시하던 미술 컬렉터들조차도 작품 들을 오래도록 감상하곤 했다. 나를 비롯하여 베허스쿨에서 작업하던 당 시 학생들(Andreas Gursky, Candida Höfer, Thomas Struth, Axel Hütte) 은 모두 대형 카메라로 심도가 깊은 정확한 사진을 찍는 작업을 했고, 그 당시에 그 사진들은 예술 시장에 처음으로 등장한 작품들이었다.

그런 사진을 하는 그룹이 당시에 전혀 없었고 우리가 처음이었기 때 문에 주목받게 되기가 쉬웠다. 그리고 모두 빠른 시기에 유명해졌다. 내 생 각으로는 그 시기에 회화, 조각 등 다른 미술 매체에서는 전혀 다룰 수 없 었던, 대형 카메라라는 매체로 예술을 한다는 것 자체에 사람들이 정말 매 료되었던 것 같다. 시기를 잘 만났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가 처음 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초상사진(Portrait)>에 관한 생각을 인터뷰에서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어떤 의도로 초상사진을 제작하게 되었으며 작품 사이즈를 대형 으로 결정하게 된 동기와 과정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내가 초상작업을 하던 1980년경 당시 현대미술에서는 초상화가 거의 사라 진 이미지의 한 종류였다. 나는 당시 초상사진에 관한 많은 연구와 리서치 를 진행하고 있었고 초상사진이야말로 동시대를 묘사하기 위한 좋은 통로 라고 믿었다. 당시 사진은 어쨌든 사물의 표면만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 했기 때문에 사람마다 석고상처럼 사진을 찍었다. 어떠한 심리적인 해석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모델들에게 사진 촬영의 조건을 다음 과 같이 제시했다. 동시대를 묘사할 당신들은 의자에 앉아 일상복을 입고 진지하고 차분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 히죽히죽 웃거나, 카메라를 향해 ‘유혹’하는 것과 같은 모든 형태의 감정적 관여는 금지되었다. 나는 직 관적으로 내 주변의 환경에서 초상화의 모델들을 선택했다. 그들은 나와 같 은 나이의 친구들 이거나 뒤셀도르프의 밤 문화에서 알게 된 지인들이다.

이 시리즈의 목표는 24 x 18cm 형식으로 약 100점의 초상화를 제작 하는 것이었다. 배경이 항상 똑같다는 사실로 인해 이 시리즈가 너무 단조 로워지지 않도록 나는 배경 색을 달리했다. 당시 주간 잡지의 표지에는 다 채로운 색의 배경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TV 스타들의 실물 사진이 정기 적으로 실렸다. 나는 어떤 색이 어떤 사람에게 어울리는지 스스로 결정하 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인물 사진 촬영 전에 피사체가 자신의 배경을 선택 해야 했으며, 다양한 각도(정면, 측면, 반측면)에서 사진을 찍었다. 1986년 에 기술의 발달로 사진의 대형인화가 가능해지면서 나는 보다 큰 형식(210 x 165cm)으로 일부 인물 사진을 찍기로 했지만, 이 형식에서는 배경의 색 이 인물 그 자체보다 너무 지배적이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초상사진의 형 식을 반복해서 실험하면서 흰색 배경을 바탕으로 한 대형 초상사진을 인 화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확인했다. 이미지의 확대는 묘사된 대상의 시선과 표정을 강 화함과 동시에 사진의 시각적 존재감을 전면에 부각했다. 나의 <초상사진> 시리즈는 이러한 과정으로 만들어졌다.


당신과 같은 사진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옛날 것들을 따라가지 않아야 한다. 자신 만의 고유한 것을 만들고 찾고 그것을 지켜라. 독일의 유형학적 사진이 한 창 유행일 때 그 사진들을 따라 하는 젊은 사진가들이 많았다. 아무리 좋 은 사진이라도 그것을 따라 하기보다는 자신의 고유한 것을 찾는 것이 훨 씬 의미 있고 중요하다.


 

글 권지현 특파원
해당기사는 2023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