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호│사진으로 사유하기
- 2024-05-30 09:47:54
7년 기획으로 프랑스 라호끄 포도농장 7군데의 리미티드 포도주병 라벨 작업을 협업하고 있는 이명호 작가의 작품이다.
그곳에서 생산되는 포도주로 염색한 캔버스와 그 작품으로 라벨을 만든 포도주병. 이미 3종류가 나왔고 올 11월에 네 번째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Wine #1, Chateau Laroque ⓒ이명호
북한산 바라보기
이명호 작가가 지난해에 도봉구 방학동으로 작업실을 옮겼다고 했을 때 “아하, 마당이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나보구나.”라고 짐작했지만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주택가에서 외톨이처럼 비켜선 4층짜리 작고 평범한 건물이었다. 자동차 한 대 주차할 만한 공간에 목련 한 그루가 서 있을 뿐, 작가와 어울리는 코드가 읽히지 않았다. 그 전에 홍은동 야산 높은 곳에 4개의 컨테이너로 구성한 작업실과는 너무 다른 분위기였다. 그런데 나의 의문을 잠재운 답은 간단했다. 건물 옥상에서 바로 보이는 북한산 만경대와 백운대, 인수봉이었다!
“처음엔 종로구 서촌에서 북한산의 남쪽이, 다음엔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북한산 서쪽이 보이는 곳에 작업실이 있었어요. 제가 서울의 상징인 북한산을 굉장히 좋아해서 동서남북 빙 둘러가며 바라보자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거든요. 그래서 이번엔 북한산의 동쪽으로 여러 군데를 알아봤는데 백운봉과 만경봉 그리고 인수봉이, 그야말로 삼각산(북한산의 다른 이름)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을 보자마자 ‘여기다’ 싶더라고요. 서울시내에서 삼각산의 세 봉우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가슴 벅찬 곳입니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 작업실에 있는 서재에서 작업에 필요한 스케치를 하고 있다.
그는 작업실을 고를 때 북한산이 보이되 ‘서울 같지 않은 서울’이 기준이라고 했다. 활동의 근거지 서울을 벗어나는 거리는 부담스럽고, 그러나 복잡한 도심과는 멀어지고 싶은 두 가지 목적을 충족하는 곳으로 선택된 지금의 작업실 건물은 야산과 거의 맞닿아 있다. 건물을 나서면 몇 걸음 지나지 않아서 시골길 같은 산책길이 펼쳐지고 북한산 둘레길 20구간으로 이어지는데, 그 길의 이름이 ‘왕실묘역길’이다. 그래서인지 작업실 옥상에서도 잘 다듬어진 봉분들이 몇 개씩 보이는데, 조선시대 여러 왕자, 공주와 부마 등의 묘가 이곳에 모셔져 있다고 했다.
“서울인데도 한적한 시골 같지요? 이다음엔 북한산 북쪽으로 가볼 생각인데, 동서남북 순례가 끝나면 최종적으로는 다시 종로구 북한산 자락으로 돌아갈 계획입니다. 집도 거기에 있으니까요.”
이명호 작가에겐 작업실을 옮기는 데에도 다 계획이 있었다.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북한산의 봉우리를 사계절 음미하며 살아보고 싶다는 장기적인 계획의 3단계가 지금의 방학동 작업실인데, 그는 마지막에 살게 될 북한산 자락의 터도 이미 눈여겨 봐 놓았고 그곳에 작업실을 지으면 붙일 이름까지 벌써 생각해놨다고 했다.
“이휴(李休)라고 붙일 거예요. 제 성이 ‘나무 木 아래 아들 子’잖아요. 그리고 ‘쉴 휴’라는 글자도 사람이 나무에 기대선 모양이죠. 제 작업도 나무에서 시작했고요. 그러니 나무 아래서 난 놈이 나무에 기대어 살 팔잔가 봐요.”
“서울인데도 한적한 시골 같지요? 이다음엔 북한산 북쪽으로 가볼 생각인데, 동서남북 순례가 끝나면 최종적으로는 다시 종로구 북한산 자락으로 돌아갈 계획입니다. 집도 거기에 있으니까요.”
이명호 작가에겐 작업실을 옮기는 데에도 다 계획이 있었다.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북한산의 봉우리를 사계절 음미하며 살아보고 싶다는 장기적인 계획의 3단계가 지금의 방학동 작업실인데, 그는 마지막에 살게 될 북한산 자락의 터도 이미 눈여겨 봐 놓았고 그곳에 작업실을 지으면 붙일 이름까지 벌써 생각해놨다고 했다.
“이휴(李休)라고 붙일 거예요. 제 성이 ‘나무 木 아래 아들 子’잖아요. 그리고 ‘쉴 휴’라는 글자도 사람이 나무에 기대선 모양이죠. 제 작업도 나무에서 시작했고요. 그러니 나무 아래서 난 놈이 나무에 기대어 살 팔잔가 봐요.”
작업실에서 5분만 걸으면 북한산을 한눈에 조망하며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북한산 만경대와 백운대 인수봉이 차례로 보인다.
이명호 작가는 사람 일이 대부분 팔자대로 간다고 믿는 ‘팔자주의자’라고 농담을 했지만 실은 차곡차곡 플랜대로 움직이는 완전한 계획주의자 같다. 어쩌면 그런 일면이 그가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2007년에 첫 개인전에서 발표한 <나무> 시리즈부터 지금까지 큰 오차 없이 작가로서 탄탄대로를 달려오게 한 비결일지 모른다. 그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오래 생각하며 그 생각을 언어화하고 또한 설계도면을 그리듯이 스케치를 한다. 그러한 치밀함이 국내외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작업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국내외 전시, 홍보대사 같은 사회적 활동까지 동시에 능숙하게 감당하는 바탕인 것 같다.
전남 해남의 파인비치에서 나무 뒤에 대형 캔버스를 설치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계속 성장하는 나무
이명호 작가의 나무 사진은 처음 발표하면서부터 굉장히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단순히 나무를 찍은 것이 아니라 나무 뒤에 대형 캔버스로 배경을 설치함으로써 자연의 나무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얼핏 사각 캔버스에 나무를 그린 그림같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림과 달리 캔버스를 벗어난 그 너머 풍경까지 사진 속에 포함하여 자연과 인위적인 행위가 함께 조화를 이룬다. 그저 들판에 혹은 언덕에 서 있을 뿐이었던 나무가 이명호 작가에게 픽(pick) 되는 순간,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결과물을 보여줌으로써 존재론적 사고를 이미지화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그의 사진 작업이 항상 마음속에 품어 왔던 실존과 본질에 관한 의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고 말한다.
나무 작업은 그 후 <신기루> 시리즈로 발전하는데, 흔히 ‘사막’ 작업이라고 불리는 사진들이다. 사막에서 수백 명이 긴 천을 잡고 길게 늘어서는 마치 퍼포먼스와 같은 작업을 촬영했는데, 멀리서 보이는 천은 햇빛을 반사하며 바다 같이 보이기도 하고 강줄기 같은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멀리서 볼 때는 실재 같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허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무와 사막은 소재로 볼 때는 전혀 달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일관성을 갖는다. 작가는 존재와 본질, 진실과 허상, 실재와 착시 같은 철학적인 화두 앞에서 깊이 사유하고 이를 사진으로 구현하려고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나무 작업에서부터 실시했던 캔버스를 설치하는 등의 행위 프로젝트를 사막 촬영에서도 이어갔고, 그 이후 작업에서도 결과물은 평면의 사진일지라도 그 과정에는 항상 행위와 설치 작업이 동반되었다.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새롭게 시도하고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명호 작가는 진정한 아티스트다. 국내외에서 갈채를 받은 나무 사진에 연연하지 않고 설치와 영상 작업을 병행하면서 계속하여 사진의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2013년 갤러리현대에서 《어두운 방, 밝은 방》, 2017년 사비나미술관에서 《까만 방, 하얀 방 그리고 그 사이 혹은 그 너머》, 2020년 고은사진미술관에서 《드러내다》에 이르기까지 그는 집요하게 사진의 본질, 더 나아가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2년마다 한 번 꼴로 개인전을 여는 틈틈이 단체전과 비엔날레 참여 등을 통해서도 실험적인 작품을 보여줌으로써 그가 펼칠 수 있는 예술세계가 어디까지일지 그 한계를 가늠할 수 없게 했다.
특히 그가 문화재를 온통 천으로 덮는 퍼포먼스는 발상이 참신했다. 첫 시도였던 남대문 작업이 둘레에 빔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사고의 위험성 때문에 중단된 아쉬움이 컸는데 그는 문화재를 천으로 덮는 프로젝트뿐 아니라 독도를 모두 덮어보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2021년 크리스토 부부의 유작이 된 대형 아트 프로젝트로서 파리 개선문을 천으로 덮는 퍼포먼스가 성공하면서 이명호 작가가 꿈꾸었던 작업이 쓸데없는 짓(?)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이제 그 결과를 보았으니 저의 프로젝트를 설득하기가 더 쉬울 거예요.”
지금 국립문화재연구원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이명호 작가는 올가을에 문화재청에서 실시하는 경복궁 영훈당 복원 공사의 가림막을 캔버스 작업으로 제작할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 라호끄 회사의 포도원에서 현지 어린이들과 함께 포도주 염색을 하고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등, 현지인들과 함께 하는 작업을 즐긴다.
이러한 작업 과정을 영상으로 다큐멘터리를 찍는 현지 취재팀도 보인다.
타 분야와의 적극적 만남
지금 서울의 거리를 지나다 보면 빌딩 광고판에서 문득문득 이명호 작가를 볼 수 있다. 고은사진미술관에서의 전시 컨셉 ‘드러내다’의 개념을 광고 카피로 이용한 한국수출입은행 영상광고다. 고은에서 전시를 본 은행 관계자가 발의하여 성사되었다는데, 일반고객을 상대하지 않는 국책은행이어서 1976년 설립 이래 CF를 해본 적이 없는 기록을 깬 첫 시도라고 했다. 그만큼 이명호 작가의 작업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뜻이다.
또한 프랑스의 포도주 회사인 샤또 라호끄(Chateau Laroque)에서 의뢰받은 작업도 그의 국제적 명성을 반영한다. ‘보르도 생떼밀리옹’ 지방에서 최고급 포도주를 리미티드로 생산하는 샤또의 포도주병 라벨에 ‘아티스트 이명호’라는 이름과 함께 그의 작품이 인쇄되었다. 7개의 포도농장을 갖고 있는 회사라서 7년간 한 군데씩 작업하기로 했는데, 현재 3번째 와인까지 출시되었고, 올 11월에 4번째 사진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기존의 작품을 넣는 것보다 현장에서 직접 작업한 작품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제가 제의했어요. 현장에서 마을 어린이들과 캔버스로 쓸 천을 포도주로 염색한다거나 농장에서 일하는 농부들과 ‘떼루아(포도 농사에 영향을 주는 일체의 환경적 요소)’ 개념을 환기시키는 등 현지인들과 공동 작업이 되도록 했어요.”
그는 이 작업을 계기로 프랑스 3대 와인 기사작위 가운데 하나인 ‘쥐라드(Jurade)’라는 작위를 받았는데 이 작위는 와인 보호에 기여할 수 있는 왕족이나 한 국가의 수장, 정치 외교 교양 예술계 저명인사, 와인 업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선정된다고 한다. 한편 작가는 현지인들과 공동 작업한다는 정신을 앞으로 콜롬비아 작업에서도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주민과 함께 캔버스를 현지의 식물로 천연염색으로 물들이고 설치하는 등 그들의 손을 빌림으로써 원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속 깊은 의도다.
“단순히 제 작업의 목적만 취하고 돌아오기보다 현지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다행히 제 촬영에는 선행 작업이 많아서 그럴 여지가 좀 있거든요.”
지구가 좁다 하고 종횡무진 활약하는 이명호 작가는 타 분야와 교류하며 새로운 자극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시인과의 교류는 그에게 큰 자극이 된다고 했다. 시인의 언어로 명징하게 표현한 시는 그가 명징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우성 시인 같은 이는 이명호 작가의 사진을 가리켜 “시적인 것이 아니라 명백한 시다.”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하고 뉴욕 전시에서는 ‘한 장의 사진에 미술사를 담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이 모든 것은 작가가 타 분야의 예술과 철학을 넘나드는 사유의 결과일 것이다.
4층 건물인 작업실에서 1층은 아카이브 방으로 사용한다.
어마어마한 양의 자료가 저장되어 있어서 이명호 작가의 작품이 무엇을 바탕으로 나오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세상에 대한 애정
“결국엔 작품을 하는 이유가 휴머니즘인 것 같아요. 세상에 대한 애정을 작업으로 드러내는 일이죠.”
그는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은 작가다. 한국의 문화재뿐 아니라 세계 주요 문화재에 캔버스를 설치하거나 아예 천으로 포장하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왜 문화재에 캔버스를 설치하느냐고요? <나무> 시리즈는 무의미한 것을 캔버스로 인하여 유의미한 대상이 되게 했는데, 문화재는 사실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유의미한 존재잖아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유의미해서 무의미해지는 거예요. 대체로 그 가치를 잊고 살지요. 그래서 유의미한 것의 무의미해진 가치를 복원하고 싶은 의도입니다.”
학창 시절에는 작업 자체가 어불성설인 꿈처럼 생각되기도 했었다고 말하는 이명호 작가. 그러나 순수하게 그 일이 좋아서 하다 보니까 작가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동안 걸어온 길이 순간마다 용단을 내려야 하는 어려운 길이었지만 자존감과 자신감을 갖고 해나갔고, 하나가 마무리되면 가슴이 꽉 차오르는 느낌에 다음 작업을 시작할 에너지를 얻었다고 말한다.
“작업은 수행의 과정인 것 같아요. 계속해나가는 것, 그것 자체 같아요.”
이명호 작가는 태도가 작품이 된다는 말을 한다. 평상시 언행이 그대로 작품에 반영되기 때문에 좋은 작업을 얻기 위해서는 평상시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자꾸 작품에게 물어본다고 한다. “네가 좋은 작품이 되기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그가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 해내갈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과연 이명호 작가는 사진가인가, 철학자인가, 아니면 사진으로 도를 닦는 수도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오늘날의 이명호 작가를 만든 것은 탁월한 재능과 기발한 감각 넘어 진지하고 겸손하고 긍정적인 태도가 아니었을까.
4층 건물 옥상에서는 북한산의 동쪽면이 직선거리로 보인다.
실은 그 이유가 이 건물을 구입하여 작업실로 만든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글 윤세영 편집주간
해당기사는 2023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해당기사는 2023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