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코플런스 | The life of form


Lying Figure, Holding Leg, Four Panels, 1990 ⓒThe John Coplans Trust


Frieze, No. 4, Three Panels. 1994 ⓒThe John Coplans Trust


◁ Upside Down No.1, 1992 ⓒThe John Coplans Trust
△ Body Parts, No. 8, 2001 ⓒThe John Coplans Trust


Hand, Spread Fingers, 1987 ⓒThe John Coplans Trust
Torso Front, 1984 ⓒThe John Coplans Trust
Back with Arms Above, 1984 ⓒThe John Coplans Trust
 



존 코플런스(John Coplans)의 “The life of form” 전시가 파리의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재단(21.10.5-22.1.16)에서 진행 중이다. 영국 출신으로 60세에 이르러 사진작가로 전업한 코플런스는 화가, 큐레이터, 잡지 편집장, 비평가 등 이색 경력의 소유자로, 신체 일부를 확대 촬영한 누드 《자화상 Self - Portrait》 시리즈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각질화된 피부와 털끝 하나까지 극도의 사실성이 돋보이는 그의 자화상은 보편적인 미의 기준과는 상반된다. ‘관객과 소통하는 몸’이 된 코플런스의 대형 흑백사진은 2차원적 평면에 3차원적 입체감을 구현한 이집트 미술을 보는 듯하다. 평면의 사진 작품임에도 동시적 시각(Simultaneous Vision ; 여러 각도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단일한 이미지속에 융해한다는 의미로 입체주의 회화에서 유래)을 발생시키며, 작품에 대한 관람자의 인식과 해석방식에 자율성을 허락하며 시·공간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국내의 미술관과 개인 컬렉션을 총망라하여 소개한다. 코플런스의 사진 작품을 좀 더 이해하고자 공동인터뷰를 진행했다.

1970년대 후반 대형 사진에 회화적 타블로(Tableau)의 개념을 처음으로 적용한 프랑스의 저명 사진이론가 장-프랑스와 슈브리에(Jean-François Chevrier) 와 그의 어시스턴트이자 동업자인Élia Pijollet가 이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의 코플런스 전시를 공동기획했습니다. 회고전 형식이 아닌 프랑스 국내 컬렉션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다루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파리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과 노르망디 쉘부르(Cherbourg)의 Le Point du Jour예술 센터와 공동기획으로 전시를 준비했을 때 몇 가지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있던 모든 코플런스의 작품을 프랑스 국내로 끌어모아야 했기 때문이지요. 1984년도부터 2003년까지 코플런스가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까지를 기준으로 잡았고 《자화상 Self - Portrait》 시리즈를 선보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참고로, 1990년대의 초대형 규모의 작품은 전시 공간 상의 제약으로 제외하고, 그대신 3개의 부분에 중점을 두었어요 : 신체의 조형적 형태를 탐구한 초창기 자화상 시리즈(1984-1988) ; 화면 분할 그리드(grid) 방식의 몽타주를 적용한 첫 시리즈 (le tournant de 1988) ; 코플런스와 교류한 예술가와 사진가.
사진으로 전업하기 전에 코플런스는 20년간 예술 비평가로 활동 했었습니다. 20세기 미술과 미술사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본인의 사진 창작 활동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되지요. 그리고, 당시 비평가로서의 활동 모습은 이번 전시 한켠에 선보이는 다큐멘트 자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코플런스의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훑어보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1989년 Another Objectivity (Centre national des arts plastiques, Paris, 1989) 전시 도록에 수록된 코플런스와의 인터뷰에서Jean-François Chevrier는 코플런스의 사진 행위를 ‘one and multiple’ 라고 표현 했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좀 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기록성과 사실성에 근거한 사진을 ‘one’라고 한다면, 사진이라는 틀 안에서 피사체를 어떤 방식으로 배치하여 보여줄지는 프레이밍(framing)을 다루는 예술가의 의도와 관점에 따라 다양하기에 ‘multiple’이라고 가정합시다. 그리고, 인터뷰에서 저(Jean-François Chevrier)는 코플런스에게 사진 매체를 선택하게 된 이유를 물었습니다. 코플런스는 “어떤 고정된 자아가 없는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이라고 자신을 표현했어요.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 또한 ‘자화상’과 ‘파편(fragment)’ 라는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코플런스에게 제가 보기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유일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인 사진적 행위를 통해서만이 당신은 독립적 자아도 되며, 동시에 다양성을 지닌 사람도 될 수 있지 않나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현재 진행중인 전시 도록에도 이 부분을 다시 한번 언급했습니다. 《one and multiple, singular and universal》 : 《파편화된 신체의 몽타주는 여러개로 흩어지고 해체된 이미지를 하나로 집결시키려는 조형적 리듬을 생산해내면서 다시 전체를 구축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후에도 파편화된 잔상은 지속해서 남게 된다》

손, 발, 다리, 토르소 시리즈를 보면 신체의 단편들을 조합한 몽타주 사진이 눈에 띕니다. 예를들어 《Upside Down, 1992》와 《Lying Figure, Holding Leg, Four Panels, 1990 and Body Parts (2001-2002)》작품에서 얼굴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신체를 조금씩 엇갈리면서 연속적으로 촬영한 파편들을 몽타주 기법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범위》와 《경계》가 명확한 몽타주를 사용하여 한편의 통일된 작품으로 구성하는데, 그의 작품에서 이러한 몽타주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
코플런스는 모노크롬 배경에 얼굴없는 자신의 신체 일부를 노출시켜 흑백으로 촬영합니다. 1984년도 부터 자신의 신체를 클로즈업하여 신체의 자율성과 파편화된 형상으로서의 가능성을 탐구해요. 각각의 이미지는 ‘최소한’으로 절제된 완성된 형태를 갖추고 있고, 관람자는 그것이 신체의 일부라는 것을 곧 알아차리죠. 얼굴 없는 파편화된 신체는 고대 조각사를 대표하는 남성 누드 조각상 The Belvedere Torso 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1988년부터는 더 복잡해진 화면분할의 몽타주로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몽타주의 모든 단편 조각들은 그 자체로 완성된 사진이고, 코플런스는 이미지의 불필요한 부분을 자르는 대신에 파편들을 재구성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결합시킵니다. 그럼에도 같은 자세를 다각도로 촬영한 신체의 파편 조각으로 몽타주를 만들때 생기는 미묘한 틀어짐은 피할 수 없어요. 이렇게 잔상효과를 일으키는 그의 작품은 불연속성 운동성을 일으킵니다.
옆으로 누워있는 신체를 연속 촬영하여 각각4개의 독립된 프레임을 병열로 재구성한 《Lying Figure, Holding Leg, Four Panels, 1990 and Body Parts (2001-2002)》작품은(p.36) 좌우 분할된 몽타주의 ‘일치와 불일치’에 따른 충돌을 일으키고 동시에 화면 전체를 통일하려는 환기력에 의해 동적인 움직임을 생산해냅니다.

(Frieze No. 4, Four Panels, 1994)작품은(p.38) 3부작 (triptyque) 프레임이 수평 방향으로 나열되어 하나의 거대한 전체를 이루고 있는데, 하나의 시점이 아닌 조각의 여러 시점을 통해 연속적인 장면을 만들어냅니다. 코플런스의 그리드(grid) 프레임은 파편화된 신체의 충돌로 인한 잔상효과를 일으키고, 입체와 평면의 교묘한 합작이 이뤄지는 상황을 만들어 놓습니다. 소위 말하는 조각의 입체주의적 시점인 《뷰 포인트Point of View》 개념을 적용하여 관람자를 시-공간적 경험으로 끌어들이고 있나요 ?
코플런스의 작품에는 기성화되지 않은 엄격한 형상이 존재합니다. 어떤 ‘놀이의 의미’로 봐야 할거 같은데요, 분열되고 파편화된 재조립된 신체는 현상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 미니멀리즘 조각가들과 같은 맥락에 속해요. 특히 현상학적 접근 방식 뿐만 아니라 시퀀스 사진, 신표현주의 회화의 화면을 ‘행위하기 위한 장’으로의 개념, 미니멀리즘의 단일한 형태(single form), 하드엣지 Hard-Edge(화면 전체를 부분적으로 분할하는 표현 방식) 등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러한 미술 개념들은 10년 후에 그의 사진 작품에서 모두 드러나게 됩니다.

코플런스는 포지티브/네커티브 폴라로이드 필름을 장착한4×5인치 대형카메라를 사용하였는데, 피부의 반점, 주름, 털과 같은 세월의 흔적을 디테일하게 가감없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클로즈업(close shot)을 통해 신체 일부분을 확대한 그의 흑백사진은 때로는 우수광스럽고 때로는 그로테스크(grotesque)하며 또한 원시미술을 연상시키곤 합니다. 수천장의 식물을 확대 클로즈업하여 덩굴과 줄기, 유선형의 꽃에서 생물학적 구조와 놀라운 조형성과 신비로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축학적 장식을 재발견해내어 건축, 회화, 디자인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친 칼 브로스펠트(Karl Blossfeldt(1865-1932)의 접근 방식과 유사해 보입니다.
코플런스는 조각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특히 고졸기 그리스 (기원전 8세기 중반-기원전 480년 제2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까지의 기간) 미술과 로마네스크 미술, 조각가 브랑쿠시 (조각 이외에 자신의 조각 작품을 직접 사진촬영한 작가)를 작품에 애착이 많았어요. 코플런스의 첫 작품부터 건축적인 성향과 그로테스크한 특징을 보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도 소개되고 있는 Torso, Front (1984) 작품에서는 근접 촬영한 토르소 (Torso)가 보는 시각에 따라 ‘토로스-얼굴’의 모습으로 중첩되지요. Back Torso from Below (1985) 작품은 허벅지를 기준으로 팔과 머리를 최대한 뒤로 젖히면서 상체만 드러내는데 조금은 혐오스럽기도 합니다. 실제로 코플런스는 이 작품에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라는 평가를 달가워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2001년도 Body Parts 시리즈 부터는 그로테스크한 개념을 처음으로 받아들입니다. 몽타주를 사용하는데 인체를 해체하거나 재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 근접해 있는 두 개의 이미지 파편화의 상호작용에 의해 어떤 형언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혼성 생명체를 발생시키기 위함입니다.
브로스펠트와 같은 도감(圖鑑) 접근법은 이번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Hands Squeezing Knees, de 1985 작품을 보면서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플런스 작품에서 칼 브로스펠트의 도감 사진을 본다는 것은 아마도 유기적 (organic)인 곡선과 형태로부터 광물화 (mineralization)의 성질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신체의 유기적인 곡선을 따라 윤곽선이 돋보이는데 이렇게 화면 전체를 꽉 채운 파편화된 신체는 1984-1987년도 작품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980년대부터 코플런스는 신표현주의의 타블로 (Tableau) 형식의 회화를 계승하면서 사진적 재구축을 통해 전통적인 사진 체계로부터 분리를 시도합니다. 회화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대형 규모의 그의 작품은 사진과 관람자의 대면적 경험을 강조하고 ‘자율성’을 정립하는데요. 코플런스는 어떤 방법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있나요 ?
타블로 형식의 ‘회화로의 복귀’를 알린 사진은 회화와 유사한 맥락을 보여줌으로써 대형 화면 앞에서 작품을 마주보는 관람자의 대면적 경험을 강조하는 인식의 장 (Champ)의 개념으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198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나타나며Jeff Wall, Thomas Struth, Craigie Horsfield, Suzanne Lafont등 여러 작가들에게서도 관찰됩니다. 코플런스는1980년대 중반부터 타블로 사진에 참여하는데요, 타블로 사진이란 반드시 대형 사이즈만을 의미하는건 아닙니다. 기존의 책이나 잡지에서 출판되었던 사진이 아닌 미술관의 ‘벽’을 의식하여 제작하고 관람자가 작품을 ‘수직으로 대면하는 경험’을 전제로하기만 하면 됩니다. 물질성을 강조한 이미지-오브제 (image-objet)로 관객의 체험을 중요시 해요. 당시 많은 예술가들이 사진 매체의 예술적 확장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회화와 조각의 지위에 정면 도전하기 시작했고 이후 그들과 대등한 지위로 인정받게 됩니다.

존 코플런스는 촬영 하기 전에 ‘데생 (dessin)’을 하며 작품 구상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사진작업에서 데생과 사진과의 관계를 설명 부탁드립니다.
2002년에 발행된 책A Body 시리즈 보면 마지막 부분에 2, 3개의 데생을 수록하여 그의 작품의 이해를 돕고 있어요. 다시말해 데생은 코플런스 사진 작품에서 필수 불가결하다고 봅니다. 저희가 이번 전시에서 인용한 한 구절이 있는데요, 1988년 뉴욕 MoMA의 전시 인터뷰에서 발췌한 것으로 : 《제가 관심 있는건 사진의 정면성(frontalité), 사이즈, 확대 비율, 구도에 따른 긴장감, 데생입니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카메라로 데생을 할 수 있다는 생각 합니다》. 게다가 저(Jean-François Chevrier)는 코플런스와 ‘사진과 데생’을 주제로 전시회를 이미 구상했었습니다. 지금까지 다룬 적이 없는 상당히 흥미로운 전시였는데, 저희가 함께 작업할 시간을 갖기도 전에 작가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해야 할 전시로 남아있습니다.

 

해당 기사는 2021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글 김영준 Kim Young June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