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스 구르스키 | 픽처(picture)로서의 사진에 대하여


크루즈 Kreuzfahrt, 2020,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독일 태생의 작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의 국내 최초 개인전이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3월 31일부터 8월 14일까지 개최된다. 그는 칸디다 회퍼(Candida Höffer), 토마스 루프(Thomas Ruff), 악셀 휘테(Axel Hütte), 토마스 스트루트(Thomas Struth)를 비롯한 동시대의 대표적 사진가들을 대거 배출한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의 교수였던 베른트 베허(Bernd Becher)로부터 사진을 배웠다. 2001년 뉴욕 현대미술관 전시를 시작으로, 퐁피두 센터(2002),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2003), 헤이워드 갤러리(2018) 등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2015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본 전시에도 소개되며 현대미술 현장에서 사진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번 전시에는 1980년대 중반의 초기작부터 <파리, 몽파르나스(Paris, Montparnasse)>(1993), <99센트(99 Cent)>(1999, 리마스터 2009)와 같은 대표작들을 비롯해, 신작 <얼음 위를 걷는 사람(Eisläufer)>(2021)과 <스트레이프(Streif)>(2022)등 세로 2m, 가로 4~5m에 달하는 대형 작품 40여점이 소개되었다.

1984년 발표된 <클라우젠 언덕 Klausenpass)>은 그만의 독특한 작품 형식의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스위스 알프스의 봉우리를 담은 전형적 풍경 사진 같지만 아주 작은 크기로 포착된, 등반하는 사람들이 흩어져 있는 모습을 통해 사람과 환경의 관계를 탐구했고, 풍경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포착함으로써 숭고한 자연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에 저항했다. 관람자는 엄청난 크기의 사진을 감상하기 위해서 가까이 왔다 멀리 갔다를 반복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보는 행위가 강조된다.
1992년부터 그는 필름 카메라로 촬영된 사진을 컴퓨터로 스캔하여 포토샵을 이용해 수정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도입하였다. <파리, 몽파르나스>(1993)는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세로 2미터, 가로 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사진으로,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준 대표작이기도 하다.(p.38) 가로로 길게 펼쳐진 사진 속에, 750가구가 사는 대규모 공동 주택의 격자 형태로 된, 동일한 크기의 수많은 창문들은 화분, 커튼과 같은 집안 내부의 물건들과 사람들의 움직임을 통해 거주자 개개인의 다양한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 작품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컬러 차트(Colour charts)>와 매우 유사하다. 리히터는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교수였고 1962년부터 사진을 기반으로 한 회화를 제작했는데 추상과 구상, 사진과 회화와 같이 상반되는 요소들을 혼합하고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구르스키는 그로부터 전후의 현대미술에 관해 배웠는데 특히 사진 매체의 활용과 신표현주의 회화 작품의 거대한 크기에서 유래되는 이미지 효과에 관한 부분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크루즈(Kreuzfahrt)(2020)는 현대적 삶을 모티브로 한 <파리, 몽파르나스>를 잇는 작품으로, 2018년 니더작센주(Niedersachsen) 소재의 조선소 마이어베르프트(Meyer Werft)에서 제작되는 거대한 노르웨이 블리스호를 건조하는 현장을 담은 것이며, 작가는 원거리에서 여러 사진을 찍은 후 조합하여 완성했다.(p.37) 선박의 위, 아래에 배치한 공간은 단색조로 고정되고 크루즈의 객실은 완벽한 격자구성으로 비현실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데, 밀폐된 공간은 코로나 상황을 환기하기도 한다.

구르스키는 전후 추상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의 예술적 혁신을 자신의 예술에 수용하며 사진 예술을 혁신하였다.1) <라인강 lII(Rhein lII)>은 1999년 <라인강 lI(Rhein II)>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p.39) 2011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라인강 II> 는 433만 달러(약 50억 원)에 낙찰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는데, 이 작품은 독일 뒤셀도르프 외곽의 라인강을 몇 개의 수평선으로 담아낸 것으로 버넷 뉴먼(Barnett Newmann)의 <수평의 빛(Horizon Light)>(1949)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구르스키는 가로의 미니멀한 선들을 표현하기 위해 강 건너편 공장을 포함하여 원하지 않는 부분들을 포토샵으로 지워내고, 실제 강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재구성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라인강 lII>은 <라인강 lI>와 배경과 구성은 거의 같지만, 초록의 생기 있는 분위기가 잿빛의 황량한 풍경으로 바뀌었다. 2018년 가뭄으로 강 수위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고 동식물도 살기 힘든 상황을 반영한 디스토피아적인 장면이다. 이와 유사한 관심사를 반영한 작품으로는 고해상도 위성사진을 구입하여 완성한 2010년 <남극(Antarctic)>, <바다(Ocean)> 연작이 있는데,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의 재현을 넘어 예술적 상상을 불러일으키며 기후변화와 환경에 대한 고찰을 보여준다.(p.38)

1990년부터 그는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고층 빌딩, 공장과 같은 건축물과 내부공간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도쿄 증권거래소(Tokyo, Stock Change)(1990)>, <시카고 선물거래소 lII (Chicago Board of Trade III)>(2009)에서 원근감 없이 평면위에 인물을 배치하는 올 오버(all-over)방식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추상 회화에서 드러난 특성이다.(p.40) 이 작품들은 인식 가능한 초점의 부재로 특정 장소와 순간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대상이 되는 장소에 있을 법한 양상을 개별화되지 않는. 공통적인 면모를 통해 드러내었다.


 



<파리, 몽파르나스> 전시장 내 작품 촬영




전시장 내 작품 촬영





라인강 III Rhein III, 2018,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 Chicago Board of Trade III, 2009,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전시장 내 작품 촬영




아마존 Amazon, 2016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99cent> 전시장 내 작품 촬영




무제 XIX Ohne Titel XIX, 2015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작품 <회상(Rückblick)>(2015)은 독일의 전직 총리들이 버넷 뉴먼의 <인간, 영웅적이고, 숭고한(Man, Meroic and Sublime)>(1950-1951)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합성해 완성한 것이다. 뉴먼 작품에 나타난 세로 띠를 교묘하게 프레임으로 감추고 슈미트 총리가 피우는 담배 연기를 화면에 배치하여 고뇌한 지도자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였다. <정치학II(Politik ll)>(2020)은 에드 루샤(Ed Ruscha)의 <11시 5분(Five past eleven)>(1989)의 대형 시계 이미지 앞에서 독일의 정치인들이 모여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p.41) 앙겔라 메르켈 (Angela Merkel) 전 총리를 비롯한 독일 하원위원 13명은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에서 예수와 열두 제자처럼 긴 테이블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고 배경의 큰 시계는 정치적 논의의 복잡함과 지루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무제 XIX(Ohne Titel XIX)(2015)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색면 회화처럼 보인다.(p.44) 이 작품은 가까이서 보면 수백만 송이의 튤립을 재배하는 들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러 번 촬영을 거치고 디지털 수정을 통해 수평 띠처럼 보이도록 했다. 이처럼 구르스키의 작품은 현실을 닮았지만, 눈앞의 사물이나 장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대신 재구성하여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과 장면을 보여준다.

<99센트(99cent)>는 알록달록한 색으로 포장된 제품들이 항목별로 진열장에 빽빽이 채워진 양상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스펙타클한 면모를 보여주는데, 거대한 사회 속 개인의 존재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p.43) 이와 유사한 맥락을 보이는 <아마존(Amazon)>(2016)은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 위치한 대형 아마존 창고 내부에 수만 개의 상품들이 놓인 제품 선반들을 촬영한 것으로, 구르스키는 각각의 진열 선반을 따로 찍은 후 디지털로 합성했다.(p.42) 이 작품은 카테고리별 분류가 아닌 디지털 코딩 시스템으로 제품을 식별하고 재고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인해 개개인의 시각적 인식의 역할이 필연적으로 줄어든 변모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유타(Utah)>(2017)는 아이폰으로 찍은 이전 영상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달리는 차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고속도로와 가드레일의 궤적이 색띠로 보여지고 흐릿하게 보인다. 이 작품은 매일 SNS에 업로드되는 사진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상당한 양의 이미지 흐름을 생겨나게 함을 환기하여 현대 이미지의 숙명을 사유하게 한다.

 




얼음 위를 걷는 사람 Eislaufer, 2021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현대미술 기획전 《Andreas Gursky》 전시 전경,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사진: studio_kdkkdk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현대미술 기획전 《Andreas Gursky》 전시 전경,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사진: studio_kdkkdk


전시장 곳곳에서 작품에 얼굴을 가까이 마주한 관람객을 만나게 된다. 이처럼 구르스키는 작품을 일정거리에서 떨어져 보고 나서 가까이 와서 작은 디테일을 확인하는 이중적 보기 (Seeing double)를 수반하며, 얼마나 거리를 두고 보는 지에 따라 추상도 재현도 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 또한 수백 개의 이미지를 하나의 화면에 보여주며 서로 다른 시공간 속에 동시에 존재하는 듯한 환영을 제공했는데, 이것은 과거의 한 순간을 포착하는 아날로그 사진의 시간성과 단절하며 글로벌 통신 네트워크가 지니는 동시성 덕분에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만 같은 현대의 일상적 경험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2) 또한 그는 현대 자본주의 문명을 대표하는 장소들을 촬영하여 현대적 숭고(Contemporary sublime)를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는 거대한 이미지를 만들며, 사진이 어떻게 현실을 매개하며 시각적 경험을 구축하는 지와 우리가 보고 이해한 것을 규정하는 지를 면밀히 고찰했다.
아날로그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카메라의 프레임에 기초한, 촬영자의 사진 행위인 프레이밍(Framing)이다. 즉, ‘현실을 어떻게 자를 것인가?’ 의 문제이다. 잘려나간 부분은 화면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사진의 의미작용에 영향을 준다. 반면에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을 혼용하는 구르스키는 이미지 재구성 과정을 거친 인공적 사진(Artificial photography)을 만든다. 여러 이미지들을 합성하고 더 많은 디테일들을 부여하며 거대한 스케일로 완성하는 과정에서 각 요소들은 다큐멘타리적 기록과 추상적 표현 사이에서 분절적이고 통합된 양상을 포괄한다.

구르스키의 작품은 보기(Seeing)가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 행위임을 상기시켜주는데, 풍경을 담은 사진에서도 특정 회화 장르와 관습에 대해 알고 있던 지식을 연계시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는 색면 회화나 피터 브뤼엘의 사실주의 회화 등 이미지의 역사에서 확립된 표현 양식을 적극 활용한다. 다시 말해, 시각적 리터러시 측면을 활용하여 이미지의 관습적 위상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진은 실재를 재현한다는 우리의 관념과 그의 사진에서 진정한 피사체는 무엇인가를 의심하게 만들며 우리가 사는 세계와 사진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고찰한다.3) 그는 기하학적 수평과 수직적 요소를 강조하며 추상 회화나 미니멀리즘 조각의 특성을 작품에 참조하는 실험적인 작업을 통해 사진의 형태에 대한 고정 관념에 상반되는 결과물들을 만들면서 정형화된 사진의 틀을 점진적으로 확장한다. 영국 헤이워드 갤러리 관장인 랄프 러고포(Ralph Rugoff)가 지적한 것처럼, 작품의 크기, 선명한 세부 디테일보다는 그의 포괄적인 접근 방식이 작품의 중요성을 정의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 그의 작품에 남겨진 미세한 입자들은 이것이 현실의 단편임을 알려준다. 이처럼 그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묘사하지 않고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주는 이미지 재구성을 통해 기존의 사진적 틀을 벗어나 우리 삶의 실체를 드러내는 예술로서의 사진을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추상적 표현을 접목하는 등 현대사진의 무한한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구르스키의 최근 작품들뿐만 아니라 1990년대 전후의 작품도 함께 전시해 그간의 작업 변화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또한 현대미술에서 사진 매체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주요 특징인 거시적 시점과 미시적 시점에 의한 이중성, 시각적 관습에 대한 저항, 추상회화의 참조 등을 통해 바라보기 방식과 의미구축 문제 등에 관해 사유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해당 기사는 2022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글 손영실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사진 제공 아모레퍼시픽미술관